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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쿱 보이차 전시장

 

624일부터 8월 14일까지 한국문화정품관 갤러리에서 보이차, 흑차 특별전이 열린다. 전시품은 150여 점의 보이차와 흑차류인데, 보이차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볼 수 있게 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생산된 보이생차는 6대 차산에서 변경차구, 북부차구 등으로 산지를 구분하고, 제작 시기별, 대표성 있는 차들을 모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하였다.

 

1990년 전후 보이차

전시장 내부

 

보이차에 관심 있는 분들이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차의 실물과 사진으로 만든 연대기도 볼 수 있다. 생차와 숙차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보이차를 시음할 수도 있게 했다.

70년대 보이차

 

특히, 보이차 전시는 부산이나 울산에서 마니아가 주축이 되어 전시를 해 왔지만, 서울에서 기업 차원에서 하는 전시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차와 흑차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사로 평가받을 수 있다. 전시장에서 서해진 본부장을 만나서 재미있게 설명을 듣게 되었다.

티쿱은 보이차 전문 유통업체인 지유명차에서 만든 한국차문화협동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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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도감 작업

 

보이차도감사진 작업을 마쳤다고 공고하고도, 예외의 추가 작업 양이 생기면서 부득이하게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기념이 될 만한 차들을 모아, 기념 촬영을 하는 기분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사진의 차들이 더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첫 작업 때 빠진 차들이 필자와 다시 인연을 맺게 되어, 형제처럼 나란히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8년간 슬라이드 필름으로만 촬영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중요한 차 사진 필름을 찾지 못한 경우가 있다 보니 시간이 좀 지체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차 산지별로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차를 만나게 되고, 유사한 차들은 교체를 하기도 했습니다. , 촬영 당시에는 알지 못한 모방품을 발견하게 되면서 선택에 더욱 신중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620일 전후로 발행 예정이었던 보이차도감, 부득이 72530일 사이로 지연되었음을 알립니다.

이 책을 기다리면서 책값을 먼저 보내주신 분들께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조금이라도 더 빛나는 책으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보이차도감에 대한 문의는 wkey@daum.net

 

보이차도감 관련 지난 기사

2016/04/20 - 보이차 도감, 마지막 촬영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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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도감, 진미호 노만아 2012년

 

필자가 운남성에서 300년 이상의 고차수와 보이차 생산 현장을 확인한 당시는 2004년이다. 한국인이 중국에서 보이차를 주문 제작하는 시기는 대략 2002년 전후가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필자가 완전품을 확인하고 시음해본 기회는 없었다. 정식으로 수입통관 절차를 거칠 만큼의 작업량이 동반된 시기는 2004년 전후가 된다.

 

필자는 2006<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를 초판 발행 후 보이차 마니아로서 2008년부터 보이생차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기록의 대상에 포함시켜 보이차를 기록해 왔다.

 

한국에서 주문하여 들어온 보이생차 사진작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하나하나 촬영해 나갔다. 이런 나의 작업을 노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의미 없는 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2008년에는 골동보이차와 보이생차를 겸하여 기록해 오다가 2010년에는 보이생차에 집중적으로 조사하면서 차 산지별로 구분하여 사진작업을 하게 되었다.

 

사진 작업을 마치고 짧은 영상을 담았다(동영상)

 

이제 그 막을 내리면서 마지막 사진 작업하는 날, 짧은 영상 하나를 남긴다.

책은 6월에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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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산고차수

 

울산의 차인 여상구 씨가 113일 대단한 전시를 기획한다는 소식을 직접 만나서 알게 되었다. 그동안 여상구 씨의 보이차 일지를 접하면서 특이한 차인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보이차 300편(필자 주, 300종류에 가깝다)종류를 전시한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있지만 그동안 차에 따른 회사별 년도별 등등으로 구분하여 10년차 차라도 5년전, 3년전의 차 일지를 공개한 것을 보면서 이번 전시가 우리 보이차 매니아에게 신선한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한 자리에 각각의 차품과 그 품평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준비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마도 지금 이런 전시는 앞으로 다시 없을 수도 있는 진실로 매니아적인 산물인 것이다. 각기 같은 연도의 차라도 봄, 여름, 가을차가 있으며 그것의 생김새부터 그 품차된 내용까지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마도 매우 드믈 것이라 생각된다.

 

울산보이차 전시회 기획자 여상구 씨, 전시회를 여는 목적을 육성으로 듣기(석우미디 동영상)

 

보이차 전시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보이차의 대중화를 위한 최초의 개방형 전시

2. 제품마다 설명서가 붙어 있는 OPEN형 전시

3. 현실성 있는 가격을 제시하여 구매자와 판매자 Win-Win

4. 년도별, 차창별, 구분하여 전시 일반인도 쉽게 접근

5. 새로운 판매방식으로 가격에 대한 신뢰 향상

 

<가격결정 방법 : 블라인드옥션가격제>

보이차, 자사호, 다화 소장가가 원하는 가격을 미리 제출하고 전시중 구매자가 원가는 가격을 밀봉하여 가격카드에 제출하여 전시회 중 매일 5시부터 50개씩 OPEN하여, 가격폭을 가장 높게 제출한 자와 판매자의 마지막 조율1회를 통해 거래를 원칙으로 함.(단 공개방식)

 

일시 : 20151123~ 29(오전 10~ 오후 6)

장소 : 세민S갤러리 7(울산시 중구 반구동 777-5 세민S병원)

전시내용 :

보이차 300(년도별, 차창별, 교목, 대수차, 고차수 등)

자사호 20(주니, 자니, 녹니, 흑니등 작가별)

다화 20

 

판매방식 (블라인드옥션판매방식)

- 1126~28(보이차 70, 자사호 6, 다화 6)

판매수익의 일부는 울산 중구 독거노인돕기에 기부

이벤트 행사

개막식(23) 보이차 관련 동영상 상영(11, 15)

특강1 (25) 서쌍판납 12차산의 고차수 현황(11, 15)

특강2 (28) 보이차와 현대인의 건강 (15)

 

여상구 씨 관련 다른 기사

2015/03/06 - 다미향담(158) 두기차창 노반장과 2003년 복원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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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 상태가 양호한 일점홍인

 

인급차를 대표하는 홍인은 현재 보관 상태에 따라서 3000만원에서 8000만원을 호가하는 차이다. 이런 홍인이 보관 과정에서 어떤 환경에 노출되었는지 모르고  무조건 건창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경우 대표와 호급차와 인급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홍인은 건창으로만 보관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유익한 내용이라 생각하여 김 대표에게 부탁하였다. 홍인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고 석우연담에 올려 공유하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받아 보기로 했다.

 

보이차 퇴창 창고

 

홍인은 건창으로만 보관되지 않았다.

홍인은 1980년대 후반 돈황차루(敦煌茶樓)에서 먼저 차가 나왔다. 다음은 녹백다장 최윤석 대표의 구술내용이다. “홍인을 구입하러 갔었는데 창고 바닥 한쪽에 종이를 열어 선풍기로 병면에 눅눅한 습기를 말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상으로 미루어 보아 홍인이 우리가 건창차의 대명사로 알고 있지만 모든 홍인이 결코 건창으로 깨끗하게만 보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0년 중반에 이르러 금산루(金山樓), 용문차루(龍門茶樓)등에서도 홍인이 창고에서 나왔다. 이때 나온 홍인은 비교적 깨끗하게 보관된 차였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1950년대에 지어진 가옥 구조에 따라 보관된 창고의 습기 노출 정도에 따라 홍인은 습기에 노출된 편차가 있었든 것이다. 통풍이 잘되든 곳에 있었던 차는 비교적 깨끗하게 보관되어졌고 통풍이 잘되지 않은 장소에 있는 차는 습기에 노출되어 병면의 형태, 포장된 종이 등이 온전하지 못했다.

 

온전한 홍인 한 통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홍인중 일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입창과 동일한 결과물로 포장된 종이와 차의 상태가 습기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기에 딱히 입창이라고 결론 내릴 수도 없다. 다만 보관된 창고의 특징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당시 가옥 고조의 특징상 바닷가 근처 습도가 높은 지역에 보관 창고를 지었다. 입구 쪽 문은 크게 하여 습도가 높은 해풍이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으나 바람이 빠져 나갈 수 있는 반대쪽 창문은 작게 지어진 구조였다. 창고 구조상 상대적으로 높은 습도가 창고에 그대로 머무는 구조였기에 홍인은 습기에 노출 될 수밖에 없었든 것이다.

 

현재 홍인은 인급 보이차를 대표하는 차로서 높은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또한 대다수가 홍인을 건창차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신차를 만들면서 세월이 지나면 홍인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세월이 지난 후 홍인이 되기 위해서는 홍인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한 다음에 신차를 만드는 과정이나 보관과정에 적용 시켜도 세월이 지난 후 홍인의 맛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홍인과는 거리가 멀다. 단일지역에서 생산된 찻잎과 이른 봄에 채엽 한 찻잎으로 홍인을 만들지 않았다. 이른 봄 찻잎 여름 찻잎 가을 찻잎을 적절히 병배하여 차가 만들어질 당시 아주 강한 고삽미를 가진 차가 홍인이다. 보관과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순수한 자연 상태의 환경에서 보관된 것이 아니다. 적절하게 습도가 유지되는 창고에서 홍인은 보관된 차이다. 이렇듯 모차가 다르고 보관환경이 다름에도 홍인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은 한번쯤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 보이차 시장의 절대 다수의 중국 유통 상인이나 소비자는 2005년 이후에 보이차업에 종사하기 시작하였으며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보이차를 접하기 시작한 시기는 호급 보이차, 인급 보이차, 숫자급 보이차중에서도 오래된 차는 가격이 비쌌고 차의 수량이 부족하여 접해볼 수가 없는 시기였다. 그러다보니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신차를 제작하여 유통한 것이다.

습기에 노출된 홍인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신차를 보관해서 발효가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해 본적이 없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차를 두고 세월이 가면 무조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한 무조건 신차가 좋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손에는 오래된 차나 잘 발효된 노차가 없으니 무조건 신차가 좋다고 한다. 보이차는 체질에 따라 신차가 맞는 사람 잘 발효된 차가 맞는 사람으로 엄연히 기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차가 나쁘다는 취지에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의 소지가 없어서면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 좋은 차, 훌륭한 차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보이차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는 좋은 모차를 사용하여야 하며, (이 부분은 오해의 소비를 없애기 위해서 보충해서 설명하자면 풋풋한 향과 청아한 향으로 마실 차는 굳이 오랜 기간 보관해야할 이유가 없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유의 향의 없어지면서 발효된 향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발효가 될 수 있는 보관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세월이 지난 후 홍인이 되든 람인이 되든 훌륭한 차를 기대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알았으면 하는 부분은 건창차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홍인은 절대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적인 환경으로 습도가 낮은 곳에서 보관되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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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의 종류

홍인은 1950년대에 맹해차창에서 생산된 차이며 포장지의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하고 있다. 생산시기에 따라 조기홍인(早期紅印), 중기홍인(中期紅印), 후기홍인(後期紅印)으로 구분하며 포장지의 특징에 따라 갑급홍인(甲級紅印), 일점홍인(日點紅印), 세자홍인(細字紅印)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단일 품목으로는 람인철병과 더불어 잔존 수량이 가장 풍부한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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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73청병

 

73청병은 오늘날 인급 호급차를 제외하면 보이차 매니아에게는 아주 고급차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가격 또한 인기만큼 높다. 그런데 이 차의 출생을 두고 여러 말이 분분하다. 73청병이라는 이름을 두고 연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이들이 여러모로 말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현재 일부에서는 80년대차라고 하는 추측과 확신이 어우러진 상태이다. 여기에 김 경우 씨는 정식으로 반박하는 입장이다. 이 부분에서 필자가 김경우 씨의 논거에 보편적인 동의를 하고 실제 제작 연도에 대해서는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김경우씨가 정리한 자료를 석우연담에 올린다. - <석우>

 

보이차 73청병

 

73청병은 홍콩 의안차창 창고에서 나온 차이며 대만 옥호헌(玉壺軒)에서 통째로 매입하여 유통한 차이다. 옥호헌에서 수입한 차는 7542(501)이라고 한다. 다음은 옥호헌 대표 황슬금(黃瑟琴, 72)씨의 구술 내용이다. “1973년 가계 오픈 후 처음에는 자사호를 수입하여 싱가포르, 태국 등지를 역 수출하는 영업을 하였다. 자사호 때문에 중국 의흥을 가기위해 늘 홍콩을 경유하였다. 1980년을 전후하여 홍콩을 드나들 때 당시 대만은 오룡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후 발효차인 보이차가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당시는 오래된 호급이나 인급의 보이차가 창고에서 나오기 전이였기 때문에 홍콩에서는 주로 10년 전후의 세월이 지나 약간의 발효가 진행된 생차 내지는 숙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1980년 무렵부터 조금씩 가져다가 판매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80년대 중반 무렵 어느 날 의안차장에 있는 7542(501)가 눈에 들어왔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돈과 친구에게 빌린 돈을 합쳐 2000천만원(대만돈)을 투자하여 7542(501)을 수입하였다고 한다. 수입할 당시 자료가 부족하여 홍콩에서도 정확한 연도는 몰라 본인 생각과 홍콩 의안차창에서의 말을 종합하여 70년대 초반차라는 결론을 내리고 단순한 생각에서 생차 계통이니 73청병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현재 시중에서는 73청병의 생산 연대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한 때 73청병이 싸여진 바닥에 신문지가 있었는데 신문지의 날짜가 민국 73(서기 연도로는 플러스 11년을 하면 됨)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기 1984년 생산 된 차로 언급되면서 인터넷이나 단행본에서 1984년 생산된 차로 사실로 기정사실화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왜곡된 정보이다. 황슬금씨의 구술에 의하면 신문지와 민국 73년이란 말은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알 순 없으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라고 한다.

 

73청병은 대만 옥호헌에서 홍콩의 의안차창에서 나온 차를 수입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부산의 녹백다장에서 수입하였다. 녹백다장 최윤석 대표의 구술에 의하면 “73청병을 수입하기 위해 통표를 살펴보니 7542(503)으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73청병은 7542(503)이며 최윤석 대표는 73청병의 발음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073청병(공칠삼청병) 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영남지역에서는 73청병을 073청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73청병을 1975년에 만든 차로 추정하는 이유로는 황슬금 대표와 최윤석 대표의 구술 내용뿐만 아니라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근거에 의해서이다.

 

내비에 표기된 글씨가 이를 뒷받침한다. 맹해차창에서 생산 된 차의 내비에는 서쌍판납태족자치주 맹해차창출품(西双版納傣族自治州 勐海茶廠出品)이라고 표기되어져 있다. 여기에서 출()자의 위쪽의 산()자가 아래쪽의 산()자 보다 좁아 뾰족하다. 이런 출자를 우리는 첨출(尖出)이라고 한다. 첨출 내비는 1970년대 생산된 차에서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위쪽의 산()자와 아래쪽의 산()자의 넓이가 같은 것을 평출(平出)이라고 하며 평출내비는 1980년대 이후 생산된 차에서 나타난다.

 

종이질감이 1970년대에 사용된 격문지(格紋紙)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격문지로 포장한 보이차의 종류가 없다.

포장지 중앙의 녹색 차()자의 인쇄 방법이 도장으로 직접 찍은 수인이다. 이렇게 직접 자를 수인으로 찍는 방법은 1980년대 차에선 볼 수 없고 오로지 1970년대에 생산된 차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73청병을 1986~1987년 무렵에 수입하였다. 당시 보이차는 10년 정도 발효된 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고 황슬금 대표 역시 이런 종류의 차를 선택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975년에 생산 된 7542(501)인 것이다. 하지만 큰돈을 투자하면서 1984년에 만든 차라면 만든 지 2~3년 밖에 안 된 차를 10년 이상 된 차와 구분하지 못하여 수입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몇 가지 사실들을 근거로 73청병의 생산 연대는 1975년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7542로서는 최초로 생산된 차에 속하며 1975년 이후 7542는 계속해서 생산 되었을 것이다.

73청병은 홍콩의 의안차창 창고에서 나온 차로서 다른 차에 비해 높은 습도에서 보관된 차이다. 그러다보니 차에 따라 습기에 노출된 편차가 큰 차이다. 의안차장의 보관창고는 홍콩에서도 대표적으로 습도가 높은 창고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보관이 양호한 차와 습기에 노출된 차의 편차가 크고 바닥에 눌러져 있든 차는 매변이 심하게 발생한 차도 있다. -<끝>

 

1970~1980년대 생산 된 차들 대부분은 홍콩 보관창고에서 입창이 된 차들이다. 다만 입창의 정도에 따라 습기에 노출 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73청병은 대표적으로 입창이 강하게 된 차이다. 그래서 인지 습기에 노출된 차들이 많고 병면이 깨끗한 차들은 드물다. 습기에 노출됐더라도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충분하게 거풍이 된 차는 농익은 맛으로 마시기에 편안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보관이 양호하고 병면이 깨끗한 차만 건창차로 인정되며 높은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시장 질서이다. 체질에 따라서 마셔야 될 차가 다르고 선호하는 차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다는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2015년 1월 10일 황슬금 대표와 김경우 대표

 

현재 보이차가 역 수출 되는 시점에서 가격 형성으로 본다면 73청병은 대표적으로 1970년대에 생산된 차가 분명하지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저평가된 차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현재 보이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중국 유통상인들의 이해 부족과 73청병을 마셔보지 못해 객관적으로 품질대비 가격을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접 마셔 본다면 동일한 연대에 생산 된 다른 종류의 차 보다 맛이 절대 뒤떨어지진 않고 오히려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에 따라 품질대비 가격 평가를 제대로 못하는 현실 속에서 다른 종류의 차에 비해 평가 절하된 안타까운 차이다.

 

73청병의 병면 외형 찻잎을 살펴보면 1980년대에 생산된 7542 계열의 차보다 찻잎의 크기가 작다. 오히려 7532 계열의 차에 가까울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는 숫자급 보이차의 병배방식을 1974년부터 만들어 적용하였지만 생산 초창기이다 보니 기술적으로 완성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차의 무게와 찻잎의 크기가 7542라고 보기에는 작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은 1970년대 생산 된 7432, 7452, 7542, 7572, 7582 등등에서 대부분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며 찻잎의 크기에서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생산 10년을 전후하여 홍콩으로 들어 온 차[보이 생차, 숙차]들은 위 말처럼 당시 대만의 주요 차류로 인정받고 시장에서 판매가 되었던 것이며 그 중에서 80년 중반의 시기에 들어와 있던 7542(501)가 연도를 따져 73청병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니 지금 시중에 퍼져 있는 80년대 차라는 인식은 충분히 잠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옥호헌 대표의 구술 내용처럼 직접적인 판매상의 증언이 있는 기록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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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중국 대익차의 공식통지문이 아니라 제목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어서 수정하였다. 중국 기사내용은 대익차와 대리상 점주들간의 회의에서 희사측에 요구한 내용이 일방적으로 기사화 되어 중국 신문에 보도 되었다. 필자는 대익차 대표가 한국에 와서 한국보이차 시장을 10배 키우겠다는 발언을 언론을 통해 접하였기에 한국에서의 대익보이차에 대한 기사는 하나하나 중요한 사항이라 이를 전하게 되었다.

2015326일자로 중국 보이차 시장의 톱뉴스가 나왔다. 한국에서도 대익보이차 대리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중국에서 대익차 본사 차원에서의 대응 통지가 나온 것은 전체 보이차 시장의 어려운 점을 대변해 준다 할 것이다.

ㅡ<아래 기사 내용은 중국 신문에 난 기사>

(생략)대익차(대익보이차)는 대리점에 통지를 보내 회사에서 장차 일련의 중대한 조정을 실시 시장변화에 적응코자함을 고지했다. 그중에 요점은 이렇다 : 숙차의 가격을 50% 하향조정, 수장(收藏)의 믿음을 드높인다, 다시는 강제적으로 상품을 출고하지 않는다, 매장에서 다른 차들을 판매할 수 있다, 다시는 전문매장에 대해서 심사하지 않는다.

존경하는 각 전문매장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복의 변화가 심했던 2014년도 이미 지나갔습니다.

여러분들의 대익(大益)과 시장부서 업무에 대한 지지에 감사드리며, 현재 회사는 위로는 최고위층에서 아래로는 일반 직원 모두에 이르기까지 다들 주지하다시피 전문매장이 생존의 위험에 직면한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경제가 불경기라서 허다한 업종 모두 생존의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 측에서는 영업판매, 생산, 구조 등 각 방면에 걸친 조정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얼음 두께가 삼 척()인 건 결코 하루에 얼은 게 아니다.”란 사실처럼, 단시간 내에 이런 상황들을 개혁하자면 예측컨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이제 몇 가지 사항을 통지 합니다 : 2015년 회사정책 :

1.숙차 가격인하(거의 50%에 육박), 중점적으로 소매를 지지, 후기에 장차 부분 중기년도 숙차를 함께 분배 배급하되, 가격은 시장가격의 절반으로 한다.

2.생차, 정교하고 세밀하게 제작하는 것, 억제량, 회사는 다시는 재고품 등을 남기지 않는다, 점차적으로 수장하려는 믿음을 드높이도록 한다.

3.상품배합정책의 개성화, 즉 전문매장은 시장상황에 근거해서 상품배합을 적게 혹은 하지 않아도 된다.

4.여유롭고 개성화된 전문매장의 관리정책은 회사의 묵인아래 너무 큰 자본의 투입을 증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여분의 이윤을 증가한다, 즉 비보이차류의 기타 차를 판매할 수 있다(시장부에 보고해서 비치할 것, 억제비례는 20%를 넘지 말 것, 혁명적 노선을 밟지 않을 것)

5.전문매장의 경영상황에 대한 소리(梳理)통계를 진행하며, 유효한 방부(幇扶)계획을 제정한다.

6.전문매장에 대한 심사는 다시 진행하지 않는다[계수(係數)는 계약을 체결한 후에 전부 1번에 귀속시킨다]. , 판매 통계 수치는 정상적으로 제보(提報)할 것(실제 수치를 제보하되, 많게 제보해도 소용없다).

시장에 출현한 새로운 정황에 견주어서 대익(大益)은 적기에 변화와 조정을 실시했으니, 보이차 각 제조업자는 참고삼아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이번 중국에서의 긴급 대응은 보이차 시장이 얼마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이것은 비단 대익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거품이 제거되고 새로운 시장경제가 도입되는 보이차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중국대리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 대익차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대리점주에게 얼마나 효율적인 방안이 적용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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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익보이차 여의도점 전경

중국차 가운데 보이차는 2000년대부터 중국이나 한국에서 최고의 이슈를 가지고 차 시장을 선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에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차가 정식으로 수입되어 들어올 때 온갖 소문도 안고 들어왔다. 중국차를 마시면 크게 잘못되는 것처럼 언론에서 기사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몸에 좋은 차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중국의 명차를 소개했고, 녹차, 홍차, 흑차를 다루면서 보이차가 큰 화두가 되기도 하였다. 보이차는 그 역사만큼이나 말이 많았던 차다. 그런 한편으로 또 보이차는 고급차다’, ‘보이차는 몸에 좋은 차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수차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었다.

점심시간에 '타이버블보이차'가 인기를 얻고 있다.

젊은 층이 '보이차 아이스크림', '타로버블보이차' 등을 즐길때 중년 층은 세월감 있는 보이차를 우려마신다

우리가 보이차에 대한 호불호를 논하는 사이에 중국에서는 대익보이차가 차의 세계에서 중심에 서게 되었다. 기업에서 생산하는 차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잘 알면서도, 결국 시장 논리로 한국에도 한국총판이 설립되고, 지역별로 대리점이 개설되었다.전국적인 유통망이 형성되면서 대익보이차 서울 여의도점과 홍대점은 다른 보이차 전문점에서도 그 추이를 지켜보게 되었다.

보이차 맛을 아는 손님은 매장에서 주문하여 우려마시거나 소포장으로 구입할 수 있는 차가 진열되어 있다

사실 이런 큰 규모의 매장이 잘 운영될까하는 우려의 시선도 함께일 것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한국 차 시장은 새로운 도약으로의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 여의도점의 운영에서는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차에 대한 인식이 어렵게 다가왔다. 우려했던 것처럼 접근이 쉽지 않았다. 필자가 초기에 방문했을 때의 걱정이 현실이었다.
보이차 아이스크림

프랑스에서 수입한 즉석 아이스크림 기계

망고빙수

그런데 3개월이 지난 시점에 보이차 아이스크림’,‘타로버블보이차' 라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여, 주변 직장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장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보이차를 간접적으로 만나고, 그 고객의 일부는 보이차를 마시게 되는 역발상의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보이차 전문점의 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기대를 하게 된다.

타로버블보이차와 보이차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손님들
보이차 아이스크림을 즉석해서 만든다(석우미디어 동영상)

보이차 아이스크림은 사실 그간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 하지만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고, 그것으로 인해 연관 상품이 만들어지면서 보이차에 대한 인식이 젊은 층으로 확대 보급되고, 결국엔 차 시장이 커피 시장과는 다른 측면에서 한 축을 형성하여 성공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대익보이차 여의도점과 홍대점의 분발에 성원을 보내며, 꼭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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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익보이차 여의도점을 운영하는 명가원(대표 김경우)은 향후 별도 법인을 만들어 전국 체인점을 모집할 계획이라고 한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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