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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원대학교 중국 운남성차업협회 공동주최로 보이차 세미나 개최가 있다는 안내지를 보았다. 국내 차산업이 불황임에도 차 세미나 특히 보이차에 대한 학술 세미나는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만, 차를 구매해서 마시지 않고 보이차 공부만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는 입장료 10만원의 가치와 저울질해야 할 것 같다.

한국과 중국에서만 보이차(푸얼차)에 열광하는지 모르지만 필자가 보기엔 광적인 열광은 예전 같아 보이지 않다. 그동안 맹목적인 투자를 권유했던 상인들이 3, 5년뒤의 미래가치를 너무 부풀여 왔기에 이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는 상황이다.

보이차를 거론 하면서 투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할 것 같지만 이렇게 붐을 조성시킨 상황들을 보면 마음속에 투자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흔히 하는 말로 보이차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 자식들에게 줄려고 구입했다고 하는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돈의 환금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투기와 투자는 다르기 때문이다.
보이차 세미나는 투자와 같다. 보이차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바로 경험이기 때문이다.
보이차에 대해 즐기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과 그 화두를 보면 마셔 보았는가?”이다. 더 나아가 그것을 어떻게 마셨는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도 추가 부연되기 마련이다.

보이차는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시간에 돈을 벌 수 있는 목적을 가진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어떤 사람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는지는 팔고 산 쌍방이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보이차는 1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2-3세대 후에 진가가 나타나는 것이기에 중국의 차인들도 보이를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은 경험이다. 보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잠시간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년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보이차를 늘 대해 왔던 필자의 입장에서도 매우 조심스러운 대상이기도 하다.

이번 세미나 초청 강사와 발표내용을 보면,
# 중국 운남성차업협회 추가구 회장은 차마고도는 왜 유라시아대륙을 넘지 못했는가?
# 짱유화보이차연구소 짱유화 원장은 보이차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3가지 이유
# 경기도 광덕사 경원 스님은 보이차 맛의 문학적 표현.

위 세 분의 발표 제목을 보면, 보이차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다.
주식투자 특강과는 다를 것이다. 이 강의를 듣고 투자할 만한 보이차를 알고자 한다면 권고할 내용은 아니다. 보이차의 차성이 좋아서, 보이차를 즐기는 방법, 보이차의 역사적 진실 가운데 이미 밝혀진 자료보다는 좀 더 통사적인 면을 알고 기대할 수 있는 강사라고 생각한다면, 입장료 10만원에 투자해 보는 것이다. 강사의 목소리는 다름아닌 경험이다. 10만원에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보이차에 대한 생생한 진실이다.

행사: 제2회 한중보이차세미나
후원: 주한 중국대사관 문화처&주한 중국문화원
일시: 2112년 2월 25일
장소: 주한중국문화원
행사문의: 대원대학교 국제교류원
043) 649-3566-8
행사장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자동 200번지,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7번 출구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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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건성에서 무이암차가 생산되는 무이산, 무이산 공항]

무이산은 예로부터 “차나무왕국”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유성군체 차나무가 야생하고 있으며 현지 사람들로부터 채차(菜茶, 또는 기종(奇種))로 불리고 있다. 채차는 긴 역사를 거치면서 외부 품종과 자연교잡을 진행하고 또 무이산의 독특한 자연환경 영향을 받아 다종다양한 성상과 특징을 구비한 무이산 현지의 독특한 차나무품종을 형성했다.

복건성에서의 차 연구가들은 자연 교잡된 품종가운데서 우량품종을 선정, 육성시켜 현재의 많은 명차 품종들을 재배해냈다. 무이산에서 유명한 대홍포, 철나한, 백계관, 반천요, 수금귀, 백서향, 백목단, 불지춘, 불견천 등의 품종은 채차로부터 변이, 재배된 것이다. 후에 재배, 육성한 명품차나무는 수백종이나 되며 통상적으로 팔백여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혜원암(慧苑岩)에만 해도 다음과 같은 264종의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철라한(鐵羅漢), 백월계(白月桂), 정태륜(正太侖), 수호로(水葫蘆), 야래향(夜來香), 금사자(金獅子), 홍월계(紅月桂), 과자인(瓜子仁), 취귀비(醉貴妃), 새문단(賽文旦), 소심난(素心蘭), 취서시(醉西施), 정설리(正雪梨), 순산후(巡山猴), 녹제매(綠薺梅), 정벽매(正碧梅), 과산룡(過山龍), 취해당(醉海棠), 취모후(醉毛喉), 금정향(金丁香), 선인장(仙人掌), 도홍매(桃紅梅), 정벽도(正碧桃), 과자금(瓜子金), 취동빈(醉洞賓), 백설이(白雪梨), 병제란(幷薺蘭), 정작약(正芍藥), 정서향(正瑞香), 녹부용(綠芙蓉), 백두견(白杜鵑), 부독점(付獨占), 벽도인(碧桃仁), 정옥란(正玉蘭), 백사향(白麝香), 백조란(白弔蘭), 녹앵가(綠鶯歌), 금관음(金觀音), 정장미(正薔薇), 월월계(月月桂), 홍해아(紅孩兒), 백기란(白奇蘭), 분홍매(粉紅梅), 금류조(金柳條), 녹모단(綠牡丹), 정황용(正黃龍), 녹독점(綠獨占),, 나한송(羅漢松), 백서향(白瑞香), 정육계(正肉桂), 석유향(石乳香), 정모후(正毛喉), 정산호(正珊瑚), 수금전(水金錢), 연자심(蓮子心), 고과(苦瓜), 석중옥(石中玉), 불지춘(不知春), 만년홍(萬年紅),

 

 

[무이암차 맛의 매력은 '암골화향'에 있다. 그 맛을 잘 내기위해서는 홍배의 기술이 절대적이다. 사진에 보이는 홍배실은 무이산 왕순명 회장이 운영하는 공장의 홍배실이다.]

정목과(正木瓜), 만년청(萬年靑), 석관음(石觀音), 수금귀(水金龜), 정매점(正梅占), 사방죽(四方竹), 만수향(滿樹香), 기난향(奇蘭香), 호이초(虎耳草), 일주향(一柱香), 용수초(龍須草), 금전초(金錢草), 관음죽(觀音竹), 월상향(月上香), 팔보향(八步香), 사계향(四季香), 영웅초(英雄草), 천리향(千里香), 만산향(滿山香), 영지초(靈芝草), 엽하홍(葉下紅), 만지홍(滿地紅), 만홍홍(滿紅紅), 태양국(太陽菊), 연명국(淵明菊), 정신초(精神草),

일일홍(日日紅), 반반약(半畔藥), 노내홍(老來紅), 장원홍(狀元紅), 침향초(沈香草), 동리국(東籬菊), 봉미초(鳳尾草), 해조국(蟹爪菊), 수사연(水沙蓮), 오시연(午詩蓮), 불수연(佛水蓮), 천층연(千層蓮), 팔각연(八角蓮), 병중매(甁中梅), 영상매(嶺山梅), 출장매(出墻梅), 경양난(慶陽蘭), 응조난(鷹爪蘭), 석조난(石弔蘭), 사계난(四季蘭), 금호접(金蝴蝶), 금옥섬(金玉蟾), 금석곡(金石斛), 금영자(金英子), 금불환(金不換), 옥사자(玉獅子), 기린(麒麟),옥연환(玉連環), 홍매당(紅梅棠), 홍계관(紅鷄冠), 홍수구(紅琇球), 계조황(鷄爪黃), 옥해아(玉孩兒),

녹부용(綠芙蓉), 대계림(大桂林), 수중포(水中蒲), 녹창포(綠菖蒲), 수중선(水中仙), 노군미(老君眉), 노내교(老來嬌), 노옹수(老翁須), 점점금(点点金), 향일규(向日葵), 전춘라(剪春羅), 전추라(剪秋羅), 국공편(國公鞭), 섬궁계(蟾宮桂), 공작미(孔雀尾), 만년송(萬年松), 관공미(關公眉), 마미소(馬尾素), 칠보탑(七寶塔), 진주구(珍珠球), 엽하청(葉下靑), 인삼과(人參果), 석연자(石蓮子), 조금귀(弔金龜), 쌍봉관(雙鳳冠), 위영선(威靈仙), 과강용(過江龍), 불수감(佛手柑), 쌍여의(雙如意), 제금채(提金釵), 소옥계(小玉桂), 일지향(一枝香), 일엽금(一葉金), 취화교(翠花嬌), 남전옥(藍田玉), 낙양금(洛陽錦), 절절옥(節節玉), 왕모도(王母桃), 화조석(花藻石),

자금관(紫金冠), 석종유(石鐘乳), 은사필(隱士筆), 동심결(同心結), 죽엽청(竹葉靑), 동빈검(洞賓劍), 천명동(天明冬), 불로단(不老丹), 마제금(馬蹄金), 오경괴(五經魁), 파초녹(芭蕉綠), 서원류(西園柳), 우미인(虞美人), 협죽도(夾竹桃), 향명삽(香茗澁), 천남성(天南星), 소도인(小桃仁), 운남벽(云南碧), 서유조(絮柳條), 오동자(梧桐子), 송옥수(宋玉樹), 보보교(步步嬌), 소목단(笑牡丹), 연화전(蓮花箋), 야명주(夜明珠), 수화침(銹花針), 관음장(觀音掌), 자금정(紫金錠), 석감람(石橄欖), 자목봉(紫木峰), 영춘류(迎春柳), 야장미(野薔薇), 산상봉(山上棒), 십팔초(十八草), 묵두필(墨斗筆), 취화합(醉和合), 환혼초(還魂草), 연지미(烟脂米), 취수선(醉水仙), 백창난(白蒼蘭), 백두규(白豆竅), 백두견(白杜鵑), 백옥매(白玉梅),, 금자연(金紫燕), 새용치(賽龍齒), 새영양(賽羚羊), 새주기(賽珠琪), 새옥침(賽玉枕), 새낙양(賽洛陽), 출림소(出林素), 옥여의(玉如意), 옥미인(玉美人),

정수지(正水枝), 정옥잔(正玉盞), 정반죽(正斑竹), 정마노(正瑪瑙), 정삼수(正參須), 정여지(正勵枝), 정송라(正松蘿), 정백호(正白毫), 정자금(正紫錦), 정장춘(正長春), 정속향(正束香), 정유리(正瑠璃), 추유조(墜柳條), 정부평(正浮萍), 정은광(正銀光), 정당수(正唐樹), 정형극(正荊棘), 정나의(正羅衣), 정기남(正棋楠), 홍두규(紅豆竅), 옥토이(玉兎耳), 암중난(岩中蘭), 칠보단(七寶丹), 왕채관(王彩冠), 백옥상(白玉霜), 향동규(向東葵),

해용각(海龍角), 도엽류(倒葉柳), 번부용(蕃莩蓉), 초복난(初伏蘭), 향천매(向天梅), 옥상춘(玉常春),호조홍(虎爪紅), 월월홍(月月紅), 정청태(正靑苔), 정백과(正白果), 정봉미(正鳳尾), 정훤초(正萱草), 정상심(正桑甚), 정죽난(正竹蘭), 정옥국(正玉菊), 대부판(大夫板), 만년목(萬年木), 군자죽(君子竹), 자형수(紫荊樹), 천년왜(千年矮), 구품연(九品蓮), 금쇄시(金鎖匙), 수양매(水楊梅), 수저월(水底月), 월중선(月中仙), 사계죽(四季竹), 망우초(忘虞草), 정당매(正唐梅), 옥녀장(玉女掌)

혜원암 및 기타 명암(名岩)에 있는 차품종들은 주로 여덟가지를 근거로 차 이름을 지었다.
차나무 생장환경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불견천, 석각, 영산매, 과산용, 수중선, 금쇄시, 반천요, 조금종 등이 있으며, 차나무 형태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취해당, 취동빈, 조금귀, 봉미초, 옥기린, 국공편, 일지향 등이 있다.

찻잎 형태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과자금, 금전, 죽사, 금류조, 도엽류 등이 있다. 찻잎 색깔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태양, 태음, 백조난, 수홍매, 녹제매, 황금정 등이 있다. 차나무 싹이 발아하는 시기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영춘류, 불지춘 등이 있다. 완제품차의 향기종류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육계, 백서향, 석유향, 백사향, 야래향, 십리향 등이 있다.

전설중의 재배시기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정당수, 정당매, 송옥수 등이 있다. 신화 및 전설내용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대홍포, 백계관, 수금귀, 여동빈, 백목단, 홍해아 등이 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판) http://www.seoku.com/442

차도구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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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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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다예연구소(원장 이영자)에 설치된 "보이생차"로 만든 차벽의 일부, 2010년 5월 설치]

보이차에 대한 자료를 알기 쉬운 방식으로 정리하면서 많은 책들을 새롭게 보게되었다. 이전에도 보았지만 그 당시엔 그때의 관심사만 보았을 뿐이다. 이젠 차학이란 분야에서 접근해 보면 “차의 선진국(필자 주)”에서 만들어진 중국차에 대한 관심은 보이차에 집중되는 현상을 실감하게 된다. 그 원인이 어디에서 출발하는가는 차지하고 차에 대한 비전문가 들이 알고 싶어하는 차(茶)가 ‘보이차’라고 하면 믿고 싶지 않겠지만 현실이다.

 

특히 홍인이 언제부터 제조되었는가 대한 논리는 ‘호차급(號茶級)’ 차(茶) 생산 이후에 만들어진 ‘인급차(印級茶)’ 포장 인쇄술에까지 그 시대 상황이 반영된 내용으로 볼 때 박창식 선생(필명 죽천향)의 블로그(죽천향실)에 올려진 2009년 8월 28일 ‘인자급 홍인의 진실’에 대한 글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동안 여러 논저에서 나온 인급차(홍인, 녹인 등)의 생산 기간을 (1938-1970)에서 [인급차(印級茶) : 1951-1970]으로 하게 되었다.

박창식 선생의 논저를 믿는 것은 첫째 ‘호차급과 인급차’를 수년 전만 해도 실제 생활에서 완편을 쪼개어 마셔온 차꾼으로서 ‘등시해 교수 책과 짱유화 교수의 논저’ 및 중국내 신문을 인용하여 그 근거가 매우 논리적인 점이다.  http://blog.daum.net/36254598/13385065

『푸얼차(普洱茶)』의 저자인 ㄷ교수의 설명.
“찻잎 원료의 산지를 구별하기 위해 맹랍(勐臘)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붉은 색으로 표기하여 ‘홍인(紅印)’이라 했고, 맹해(勐海)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푸른색으로 인쇄하여 이를 ‘녹인(綠印)’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붉은 차자(茶字)의 푸얼원차(普洱圓茶)는 맹랍의 제일 좋은 찻잎으로 만들어졌고 이무진(易武鎭)은 맹랍현(勐臘縣)에 속해있기에 붉은 색으로 찍힌 차자(茶字)의 찻잎은 가장 좋은 찻잎으로 인정받은 이무차산(易武茶山)의 대엽종 차나무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곁들여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홍인푸얼원차(紅印普洱圓茶)는 40년대 국민당정부(國民黨政府)(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50년대 공산당정권(共産黨政權)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진다. 40년대의 조기홍인은 이무차산에서 생산된 최고품질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졌기에 품질이 우수한 반면 후기홍인 제품은 50년대 공산정권 아래서 제조한 것으로 품질면에서 조기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홍인에 대한 판별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짱유화 교수의 인급차(홍인)에 대한 이야기
홍인에 대한 의혹 풀이는 먼저 제작연대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다. 1950년대, 내란을 겪은 후의 중국은 전쟁의 피폐함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효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우리가 언급하고자 하는 맹해 지역은 중국의 변방이기에 그 참상은 더욱 심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의 맹해의 물품거래는 현금이 아닌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이곳에서의 화폐는 가치가 없으며 돈이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불해차창(佛海茶廠) 오늘날 맹해차창 복원에 참여했던 탕렌량(湯仁良) 선생의 인터뷰

“1949년 중국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이곳에서 철수한 후 맹해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맹해차창의 경우 생산설비들이 모두 도난 또는 파괴가 되어 차 생산은 물론 기초 작업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되었다. 당시 우리는 맹해차창의 복원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오직 차창(茶廠) 작업장의 복원에만 매진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맹해의 현황에 대해 “당시 맹해의 인구 구성원을 보면 소수민족이99%이며 이곳의 한족은 모두 외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뿐이다. 소수민족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 자신들이 생산하는 물건으로 서로 교환하면서 생활하는데, 당시는 무척 빈곤했던 터라 모두들 곡물을 시장에 내놓아 교환할 처지이지 차를 만들어 내다 파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설사 있었더라도 그 양은 아주 미미했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번 맹해현 정부자료실을 들췄으나 당시 이곳의 차에 관한 그 어느 자료도 찾지 못했다.

:현 운남성 서쌍판납 맹해현 차엽판공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1951년까지 맹해는 무척 혼란하기에 차를 만들고 상품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 운남성의차의제조 및 판매에 관한 유통은 모두국영형태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지시는 모두주관 부서인‘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로부터 받았다. 설령 생산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들이 만든 가정용 형태의 차일 뿐 상업제품은 아니다.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맹해에는 푸얼차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정확한 일기는 갖고 있지 않다.” 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운남성의 푸얼차에 관한 모든 자료는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에 보관되고 있다.

필자는 현 중국운남성차엽협회(中國雲南省茶葉協會) 회장이신 쯔어우자쥐(鄒家駒)씨의 도움으로 당시의 자료를 찾을 수가 있었다 .운남성공사의 기록에 따르면 맹해차창은 1956년부터 푸얼차를 만들었으며 당시 출하했던 이 제품은 모두 광동성으로 갔는데, 이 제품이 바로 후일 ‘홍인’이라는 푸얼차다.

그럼 여기에서 나타나는 의혹은 어떠한 연유로 정식으로 등록된 녹색‘ 차(茶)’자의 마크가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 출하된 것이냐의 문제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50년대 맹해는 무척 낙후된 지역이기에 인쇄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이에 당시 맹해차창에서 출하한 모든 포장지는 가장 가까운 지역인 푸얼현(보이현)에서 인쇄됐으며 이러한 작업은 6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50년대 당시 푸얼현의 인쇄는 원시형태인 목판으로 이뤄졌다. 목판인쇄(木版印刷)란 목재의 엇결이나 절단면에 그림이나 글자 따위를 볼록하게 또는 오목하게 조각한 판목에 안료를 첨가한 수성잉크를 칠하고 인쇄지를 놓고 종이 뒷면을 문질러 인쇄하는 방법이다. 인쇄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잉크를 배합하는 과정에서 색상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다. 즉 사용된 색상의 배합비율의 정확성이 바로 인쇄의 품질을 좌우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푸얼차 포장지의 인쇄는 단순한 색감 즉 붉은 색과 녹색 등 2가지 색감의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포장지 전체를 붉은 색으로 인쇄했던 것은 보통 당시의 낙후된 인쇄기술로 치부하고 있으나 필자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오늘날 인자급 푸얼차를 판별하는데 에 있어 포장지의 글씨체뿐만 아니라 인쇄된 붉은 색의 농담(濃淡)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즉 붉은 색의 진하고 엷음에 따라 도홍판(桃紅版)과 주홍판(朱紅版)로 나뇐다.

여기서 말하는 ‘도(桃)’란 복숭아와 같은 엷은 붉은 색, ‘주(朱)’란 주사(朱砂)와 같은 짙은 붉은 색을 말하는데, 이러한 색상의 차이는 염료의 배합비율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2가지의 색상 즉 녹색과 붉은 색을 한 가지의 색으로 통일되어 인쇄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업자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잘못된 포장지의 인쇄는 3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얼마가지 않아 운남성공사의 직원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부각되었으며, 이 일로 인해 운남성공사는 맹해차창을 심하게 비판하였다. 질책을 받은 맹해차창은 푸얼현의 인쇄소에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 결과 포장지의 ‘차(茶)’자를 원안대로 녹색으로 인쇄하게 된다. 이 포장지로 출하한 제품이 바로 ‘녹인’이라는 푸얼차다.

이상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답이 나온다.

홍인과 녹인의 구분은 찻잎 원료의 생산지 즉, ㄷ교수가 설명하는 것처럼 ‘홍인’은 맹랍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며, ‘녹인’은 맹해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 라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러한 포장지의 차이는 단순한 인쇄상의 착오일 뿐 찻잎의 생산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리고 맹해차창에서 ‘팔중차’ 로고로 출하한 첫 번째 푸얼차의 연도는 1956년도 이다. 글. 짱유화

죽천향의 첨언:
그럼 도대체 인급차 홍인은 몇 년도부터 생산된 차인가요!
첫째, ㄷ 교수의 말대로 1942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절대로, 아니다” 입니다.
그 이유는 운남성 차엽 진출구공사<云南省茶叶进出口公司志>의 기록에 따르면 “云南中国茶叶贸易公司”는 1950년 9월 이름을 “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로 개명한 바,

1942년-1949년 만들어진 소위 조기홍인의 포장지에 1950년 에 바뀐 이름인“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라는 명칭이 절대로 인쇄되어 찍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짱유화 교수의 말대로 홍인은 맹해차창에서 1956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인급차가 맹해차창에서 1956년 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사실은 위 여러분들의 증언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맞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인급차는 1952년부터 생산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가요 ........
그것은 바로 맹해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으로 보내 하관차창에서 생산한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아래 중국의 인터넷 자료를 보면 현 운남성서쌍판납맹해현차엽판공실(雲南省西雙版納勐海縣茶葉辦公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 중에 나와 있는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중국 인터넷 자료중에서...
http://www.puertea8.com/html/259.html
下关茶厂的制式茶品

(상략)
饼茶篇 印级圆茶 自上世纪50年代初,下关茶厂生产了现在称为“印级圆茶”的红印、绿印、蓝印甲乙级圆茶。这些产品,长期以来的普洱茶书籍中都误解为勐海茶厂生产。但前不久,在早期勐海、下关厂的相关史料中,发现了勐海厂早期只有经营原料收购、调配业务,而印级茶都是下关茶厂生产的相关证据。并且,坊间所称的印级茶年代承接也被进出口公司的纪录所修正。印级圆茶,最早生产的是绿印(蓝印)系列,后因绿色原料在卫生检疫中未能过关,而改印全红包装。

"인급원차
20세기 50년대 초,하관차창은 현재 “인급원차”로 불려지는 홍인、록인、람인 갑을급 원차를 생산하였다。이 생산품은 오랫동안 보이차 서적에는 맹해차창이 생산한 것으로 잘못되어있는데 맹해, 하관차창의 상관사료에 나타난 것을 보면 맹해차창은 초기에 경영과 원료를 거두어 사들이고 배급을 조절하는 업무를 보았다. 이는 인급차가 하관차창에서 생산되었다는 관계있는 증거이다 (하략)....。 "


그리고 1949년 12월 중국차엽공사 정식성립, 1950년 9월 중국차업공사 운남성공사의 성립 1951년 말 팔중차 로고의 (중차패) 등록, 이라는 기록을 감안하면 중국차업공사 운남성공사“의 지시로 맹해차창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차창으로 보내어 1952년부터 인급차를 생산하였다는 정황이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해서 초기에 하관 차창에서 만든것이라 하여도 인급차의 역사는 아무리 빨라도 1951년 말 - 1952년 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확한 것입니다.


여기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의 진실과 거짓 5 - 홍인 에서 발췌한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푸얼차’서적에 따르면 홍인원차의 역사 기원은 40년대 국민당정부(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 50년대 공산당정권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졌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괴력이 발휘되어 1950년에 설립된 회사의 명칭이 40년대의 제품에서 등장하게 되고 1951년에 설계한 로고가 40년대의 제품에 인쇄되어 출하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것이 홍인에 관한 기록이자 역사이며 진실과 거짓에 대한 답이다.

상품이라는 존재는 비록 자신의 능력껏, 재주껏 파는 것이 상술이라고 하나 상술에도 격이있어야 한다. 있지도 않는 제품을 존재하는 것처럼 고가에 판매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것은 분명히 격이 결여된 상술이다.

푸얼차 상술에 관한 대가들은 모두 홍콩과 타이완에 모여 있다. 세계 푸얼차 상품의 출고가 이들로부터 비롯되었기에 이들을 가리켜 푸얼차계의 큰손이라 한다. 이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는데 필자는 이 모임의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푸얼차에 관한 상업적 정의는 대부분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필자는 이들과 푸얼차의 역사에 대해 적잖은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학자의 논거에 대해 귀를 기울여 지난날의 실수를 대부분 인정하는 반면 이들을 통해 푸얼차를 취급하고 있는 개인상점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부정하는 것을 보면 푸얼차의 진실을 가리는 것이 얼마나 험난하고 요원한가에 대해 한탄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인급차의 역사가 10년 정도 뒤쳐졌다고 해서 보이차의 왕자로 불리는 인급차 홍인의 명성과 품격이 결코 손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등시해 선생의《普洱茶》에 쓰여진 자료에 오류들이 있지만 운남보이차에 대한 전고가 미비했던 시절, 나름대로 수많은 보이차를 접하고, 그에 대한 자료들을 수합하여 한권의 책을 만들어냄으로 보이차에 대한 지평을 보다 넓게 만들었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보이차에 대해 알게 되고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오늘의 보이차세계가 있게 한 그분의 공로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는 점과 더불어 홍인이라는 이름의 보이차는 그 생산 년대를 떠나서 현대보이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명품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차는 그저 차일뿐이고 홍인의 맛과 향은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죽천향_()_

참고 (중국신문의 기사)

http://www.yxdaily.com/yxnews/cate/xxb/2007_5_18/239399.shtml
http://www.yuxinews.com 2007-5-18 8:07:00

富豪陈茶庄里的印级茶
玉溪新闻网讯(实习记者 马瑞华 文/图)说起来应该算是缘分,才第一次去富豪陈茶庄,店家就给我介绍了三款市场上很少见的印级茶,分别是八十年代朱砂红印铁饼、八十年代大红印生茶饼和八八九二生茶饼。

据了解,印级茶指的是上世纪五十年代初至六十年代后期下关茶厂生产的红印、绿印、蓝印甲乙级圆茶,以及后来的蓝印铁饼等茶品。(인급차 지적시 상세기 오십년대 초 지 륙십년대 후기 하관다차창 생산적 홍인、록인、람인갑을급원다,이급 후래적 람인철병등 차품)。印级圆茶的外包装纸,上方自右向左横书大字“中国茶叶公司云南省公司”,下方为小字“中茶牌圆茶”,中间为八个中茶商标,内有印刷了八个中茶商标的方形小纸条,没有其他字样。
印级圆茶整体品质优异,尤其以红印、无纸红印等为佳品。这些茶的原料主要来自西双版纳勐海地区的班章、巴达、布朗等茶山的野生、野放型老茶园,所以茶质厚重、茶韵深沉。印级圆茶,是由石磨手工压制而成的。

印级圆茶有着悠久的历史,它见证了中国普洱茶国营生产及社会主义计划经济时代的开始,凭借着为“红火江山,生生不息”创造的高品质,成为市场中高级普洱茶的代称,是普洱茶中高陈期、高价位的杰出典范。在经历了四五十年的陈化后,他们现在的身价都已超过了万元,所以渐渐从流通市场上退出。印级茶是陈茶中的陈茶,精品中的精品。因其用料考究、做工精细,除了饮用之外,也是一款馈赠、珍藏佳品。

[2010년 5월에 <보이생차>로 설치된 차벽이다. 사진은 벽면 전체의 일부, 1년이 지나면서 벽에 조금씩 틈이 생기는 현상이 보인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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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공정원 진종무 원사가 발표한 보이차의 기능성 효과에 대한 내용을 검색하다가 보이 생차의 보이차 편입에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 것을 죽천향 님의 번역으로 정리된 내용을 보게되었다. 이 글은 처음 올렸을 때도 보았지만 오늘 그 내용을 다시 보게 되면서 《보이차 지리표지산품 보호관리판법》유감 표명의 글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보이차 애호가에게 유익한 글이라 생각되어 올려본다. 출처: 죽천향실 
                                                                                       blog.daum.net/36254598/13385119 죽천향실

중국공정원(Chinese Academy of Engineering) 진종무 원사
“일부 차상, 학자, 공무원은 역사의 죄인이다”

《보이차 지리표지산품 보호관리 판법》 유감 표명..
2009年6月1日,由国家质检总局批准的《普洱茶地理标志产品保护管理办法》正式实施。然而随后,中国工程院院士、中国农业科学院茶叶研究所研究员 陈宗懋却意外表示:“遗憾这个《办法》的内容有着致命的硬伤,它将阻碍普洱茶产业的继续发展,甚至会造成无法控制的恶果,某些茶商、学者和官员都会成为历史的罪人。”

2009년6월1일,국가 품질검사 총국 비준《보이차 지리표지산품 보호관리법》정식실시.
중국 공정원(Chinese Academy of Engineering) 원사인 중국농업과학원 차엽연구소 연구원 진종무는 이 표준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불행하게도 이《판법》(보이차 지리표지산품 보호관리법)의 내용엔 치명적 결함이 있다,통제 할 수 없을 심각한 결과를 만들어 내어 보이차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방해 할 것으로, 일부 차 상인, 학자, 공무원들은 역사의 죄인이다. "

陈宗懋院士所说的“硬伤”,是指由云南省政府主导制定的这个《办法》中,把传统概念中的“普洱茶”明确分为了“普洱生茶”和“普洱熟茶”两个种类,并得以官方法规形式肯定下来。而对于“普洱生茶”概念的横空出世,国家茶叶质量检测检验中心主任骆少君于2006年就在昆明的一次专题会议上明确表示:“云南省是在搬石头砸自己的脚。”

진종무 원사 가 말한 “硬伤경상”=결함은,운남성 정부가 주도하여 제정한 《판법》중,전통 개념의 “보이차 ”에 “보이생차”와 “보이숙차”의 2종류가 있는데 이것을 관방법규에서 긍정(인정)하는 것을 가르키는것으로 “보이생차”에 대한 개념이 처음 나타났을 때 국가 차엽 질량검측 검험중심 주임인 락소군 이 2006년 곤명의 1차 전체회의에서 :“운남성 스스로 자기가 던진 돌에 자기 발을 맞게 될 것이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陈宗懋在2009年6月说,“《普洱茶地理标志产品保护管理办法》的实施并不能从根本上解决普洱茶遭遇的困境,甚至还将长期贻害,核心问题就是普洱生茶的问题。”“但是现在木已成舟,国家的法规都出台了,我们再说也没有意思了,想要重新修改普洱茶标准,谁知道要等上多少年?”陈宗懋表示。

" 2009년 6월 진종무 - “《보이차 지리표지산품 보호관리판법》실시는 보이차가 처한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해를 끼칠 것이다. 그 핵심문제는 보이생차의 문제에 있다. 하지만 현재 국가법규로 되어 있어 몇 년을 기다려야? 보이차 표준을 새롭게 쓸 수 있을지 말할 수 없다. ”

CCTV 운남 보이생차의 약리작용이 없음을 보도
事实上,普洱茶在2007年下半年突然价格“崩盘”与媒体的报道有关,与“普饵生茶”的真实市场情况有关。2007年年中,央视二台报道云南普洱茶没有宣传的药理作用,媒体基于普洱生茶(一般不发酵绿茶)实验结果的报道,全面否定了真的后发酵普洱茶已有的特殊药理作用。

사실 보이차의 가격이 2007년 하반기에 돌연 “붕반=폭락”한 것은 언론에서 “보이생차”의 대해 보도한 것이 실제로 시장정황과 관계가 있다. 2007년 중반 CCTV는 운남보이차의 약리작용이 없음을 2편 보도하였다. 언론에서 보이생차(일반 불발효 녹차)의 실험결과를 보도함으로 진정한 후발효 보이차의 특수 약리작용까지 부정하게 되었다.

“这使云南政府处于一种非常尴尬的境地。”云南知名茶人说,“如反驳央视说生茶不是普洱茶,标准已赫然列立;如说生茶是普洱茶,自己已经钻进了否定的实验结果和舆论。”

“이렇게 되자 운남정부는 매우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CCTV가 보도한 생차는 보이차가 아니라고 반박하게 되면 스스로 생차도 보이차 라고 표준에는 분명하게 확립 해놓고는 (보이)생차에 대한 실험결과와 여론은 부정하는 것 이 되기에 ” - 운남 저명 차인

생차의 보이차 편입 후 상황
如果严格按照“03标准”的定义,上世纪70年代以来普洱茶的年产量不过三四千吨左右,而到2006年云南官方公布的普洱茶(按06标准)的产量达到8万吨,2007年这个数字是10万吨,“其中生茶占了大部分比例”。与此同时,普洱茶市场的畸形“繁荣”,还使云南勐海、澜沧江流域和西双版纳地区的野生茶林惨遭各路资本的蹂躏,普洱茶市场开始进入“混乱的战国时代” 在这股浪潮下,由于云南省大部分茶叶原料被用于普洱生茶加工,导致传统的滇红和少部分绿茶产量减少,迅速失去了许多原有的市场。

70 년대 이후 "03년 표준"(운남성 차엽협회 제정 운남성 보이차 지방표준) 정의에 따른 연간 생산량은 3천-4천톤 좌우, 06년 운남관방공포 표준(06년 운남성 질량 감독국 제정, 생차 편입된 신 “보이차 정의”) 8만톤 에 도달, 2007년 수치는 10만톤, " 이중 생차의 비율이 거의 대부분 이였다“ 아울러,보이차 시장의 기형적 “번영”은 ,운남 맹해、란창강 유역과 서쌍판납지구의 야생차 산림을 자본으로 유린하여 황폐하게 하였으며,보이차 시장은 혼란한 전국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 파도 속 에서,운남성의 대부분 차엽원료는 보이생차의 가공에 사용되었고 전통적인 전홍과 일부 녹차의 생산량은 감소하여,기존 시장의 대부분이 급격하게 사라졌다.

보이생차(=쇄청녹차)의 문제점
“只有经过后发酵过程成为真正的普洱茶才有市场和更多消费者,某些人以为把云南的大叶晒青绿茶换个'普洱生茶'的名称就可以行销全国了,这种想法和做法太过幼稚。要知道全中国各种各样优质绿茶品种数不胜数,云南明显是犯了以劣质品去与优质品竞争的战略错误,失败是必然的。”,“不要说向全国发展,炒青绿茶、烘青绿茶和蒸青绿茶先后在云南本土上市后,晒青绿茶基本上被淘汰出了云南城市的绿茶市场,只能保留在一些乡村和小地方。”
“시장과 많은 소비자들은,후 발효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보이차의 재능이 있다고 여기는데 운남 대엽 쇄청녹차를 ‘보이생차’로 이름을 바꾸어 중국전역에 판매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중국 전역엔 각종 각색의 우수한 녹차품종이 수없이 있는데 운남이 떨어지는(녹차)품질로 좋은(녹차) 품질과 경쟁하는 것은 전략의 오류로 실패가 불가피하다. 전국을 향한 발전은 불필요하다. 초청녹차. 홍청녹차, 증정녹차들이 앞 다투어 운남본토의 시장에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쇄청녹차는 운남의 녹차시장에서 도태 될 것이며 작은 향촌이나 지방에서만 보존될 것이다.

딜레마 속의 타협
针对社会上愈演愈烈的普洱茶热后的一落千丈,2008年以来黄炳生多次建议抓好普洱茶保护立法和质量标准修订,他认为“普洱茶”不能以“生茶”、“熟茶”来划分,这与普洱茶的后发酵特性相冲突。他同时呼吁云南茶叶界,从茶农到厂家、商家,从教学、科研到技术推广,从生产、销售到消费,要做到科学种茶,认真做茶,诚信卖茶,健康饮茶。

보이차는 불황에 빠지고 2008년 이래 황병생은 “보이차는 생차, 숙차로 구분하면 안 된다. 이것은 보이차의 후 발효라는 특성과 충돌하는 것이다” 하며 수차례 보이차 보호입법과 질량표준의 수정을 건의 한다. 또한 운남 차엽계, 차농, 제조업체와 상인들에게 생산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 까지 과학연구, 기술 진흥 교육을 하여 과학적으로 차를 기르고科学种茶,진실 되게 차를 만들어认真做茶,참 된 신용으로 차를 팔아诚信卖茶,건강한 차를 마시게健康饮茶 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普洱茶的运作经验在于,普洱茶的文化和历史比其他茶有更大想象空间,所以无论云南的政府、企业还是科研单位都在全力打造普洱茶。居于种种危机的出现与蔓延,云南省决心对普洱茶产业进行法规规范,从而获得最大实惠,使“普洱生茶”的生存道路.越走越长

보이차 운영의 경험상 ,보이차의 문화와 역사는 다른 차와 비교해 많은 상상의 공간이 있기에 운남정부와 기업 그리고 연구기관들이 보이차를 위해 전력으로 힘 써야한다. 이러한 위기의 출현과 확산 에서,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보이생차”의 월주월장越走越长이 생존길이므로 보이차 산업진행 법규규범에 대한 운남성의 결심이 있어야한다.

현실 상황
目前,正常条件下储存四五年的普洱茶普遍被认为比一两年的茶品质好,价钱上也要相差很多倍。由于“普洱生茶”的品质会随储存年份变化在不同程度上趋近于经过后发酵的“普洱熟茶”,因此市场也出现了以熟茶充当储存多年的生茶的情况,成为普洱茶被“炒作”的重要原因。

현재 정상적인 조건에서 4-5 년 보관된 보이차는 1-2 년 된 차에 비해 품질이 좋아 가격의 차이도 몇 배가 된다. 보이생차의 품질은 저장되어 후 발효 된 ‘보이숙차’ 의 변화가 기간에 따라 다름이 기본이 된다. 시장에서 숙차로 충당할 생차를 몇 년 동안 저장 한 정황이 나타난 것도 보이차 “초작=투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普洱生茶在市场上出现,的确是普洱茶能够被大肆炒作的一个重要原因。”云南省茶叶协会会长黄炳生说,“在如此不切实际的暴利价格目前,一些地方政府非但没有看到其长期危害性,非但不能给予理性、正确的价格引导,甚至在当中推波助澜,贻害众生。”

“보이생차의 시장출현은 확실히 보이차의 극한 투기를 가능하게 한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운남성 차엽협회 회장 황병생 - “목전의 폭리가격은 비현실적 이였으나 지방정부는 장기적 위해성을 간과하고 비이성적 이였으며 정확한 가격을 유도하지 못함으로 이 파동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손상을 주었다.”

“不太准确的'普洱生茶'被推广,现在普洱茶的概念的确已经被混淆了。由于传统饮用云南绿茶与后期宣传的原因,也有一部分人对于'普洱生茶'的概念是接受的,马上取消这样的称呼也不现实。由于普洱茶无论在发酵时间还是发酵程度上也不容易量化操作,所以成为了一些人钻空子的机会。”

“매우 부정확 한 기준의 '보이생차'가 확산 됨 으로, 현재 보이차의 정확한 개념은 어지럽게 뒤 섞여있다. 전통 음용의 운남녹차를 선전한 것이 원인인데 이는 일부 사람들의 '보이생차' 에 대한 개념이 받아들여진 것으로,(이것을) 바로 취소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한 보이차는 발효기간에 따른 발효정도를 계량화하기 쉽지 않는데, 일부 사람들이 그 허점을 이용하는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방안 모색
他表示,云南省茶叶协会正在考虑新的工作方案,以应对由“普洱生茶”带来的被动局面,即动员商家在今后重点向顾客推销“熟茶”,一方面尽量不要再把“生茶”当作普洱茶来销售,另一方面也要担负起告知消费者的责任,“尤其是当年生产,没有经过发酵过程的云南晒青毛茶其实就是绿茶,最好不要再当作普洱茶喝了”。

운남성 차엽 협회는 "보이생차"의 피동적 상황에서 새로운 방안의 작업을 고려하고 있다.기업을 통해 “숙차”의 판매에 중점을 두게 하는 한편 소비된 량 만큼 바로 "생차"를 만들어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또한 소비자에게도 “당년에 생산된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은 운남쇄청모차는 실제에 있어 녹차이기에 가장 좋은 것은 당년에 만든 보이차를 마시지 않는 것이다”고 알려 책임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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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홍차를 대면한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낀다. 차의 풍미(風味)가 자신들이 알던 유럽 홍차의 그것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직설적인 질문이 쏟아진다.

“이게 정말 홍차인가요?”

"우리가 지금까지 마신 홍차는 그럼 무엇인가요?”

최근 우리나라에 홍차 열풍이 불고 있다. 홍차에 대한 열광은 중년층은 물론이고 젊은층에까지 공통적이다. 다양한 관련 책과 홍차 전용 다기가 수입된다. 인터넷에서 ‘홍차 전문점’을 검색해 보라.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의 예쁜 찻집들이 꽤나 많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인 유행은 아닌 듯하다.

홍차 관련 학회가 만들어지고, 주기적으로 티 파티(Tea Party)를 여는 홍차 전문점이 늘어나는 데다 티월드 페스티벌(www.teanews.com) 같은 차 축제장에 홍차 관련 부스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다만 젊은층을 비롯해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홍차가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촬영협조=명가원] 유럽에서 시작됐으며, 홍차는 꼭 유럽산 다기에 마셔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약간의 선입견, 또는 귀족 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한 유럽 홍차에 대한 환상도 있는 듯하다.

○ 400년 전 우연히 탄생

필자는 몇 해 전 중국 푸젠(福建) 성 퉁무(桐木) 촌 우이(武夷) 산에서 400년째 대를 이어 차를 만드는 장위안쉰(江元勳·우이정산다업유한공사 대표) 씨를 만났다. 그는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홍차의 탄생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400년 전 어느 해인가 찻잎을 딸 계절에 청나라 군대가 우리 마을로 들이닥쳤답니다. 평소 차 농사만 지으며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피신했지요. 군대가 물러간 후 내려와 보니 군인들이 차를 보관한 창고에서 먹고 자고 한 흔적이 있더랍니다. 찻잎은 붉게 변해 있었고요. 애가 탄 농민들은 그렇게 방치됐던 차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찻잎을 솥에 넣고 소나무 장작불로 말렸습니다. 새카맣게 건조된 찻잎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고 합니다.

이 차는 녹차를 즐겨 마시는 인근 지역에선 팔리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은 붉은 차를 100여 리 떨어진 시장으로 가져가 헐값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이듬해 두세 배의 값을 치르고 이 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지요. 자연히 농민들은 붉은 차의 제조를 재연했고, 이 차가 외국 상사에 판매돼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산샤오중(正山小種) 홍차 제다법의 시작입니다.

이처럼 홍차의 고향은 유럽, 특히 영국이 아니다. 홍차는 중국에서 우연히 생겨났다. 홍차의 시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설(說)도 있지만, 그 원류로 중국을 지목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 진정한 여왕의 차

원훈다창은 100년이 넘은 3층 목조건물이다. 아궁이에서 땐 소나무 장작의 연기가 3층까지 올라온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이유는 위조(萎凋·찻잎을 시들게 해 수분을 제거) 과정의 온도를 높여주기 위함이다. 또 소나무 연기는 발효된 찻잎에 솔향이 스미게 한다. 이를 훈배(燻焙)라 한다. 차 만드는 사람들은 1층에선 위조 작업을, 2·3층에선 유념(柔捻·rolling)이나 발효 작업을 한다. 유념은 찻잎을 비비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찻잎의 세포벽이 파괴돼 차 맛을 내는 성분이 밖으로 나오고, 산화발효가 촉진된다.

유럽 홍차는 주로 인도나 실론(스리랑카의 옛 이름)에서 생산된 찻잎을 원료로 한다. 영국인들은 차 수입에 들어가는 막대한 금전 지출을 줄이고자 중국의 차나무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몰래 빼돌렸다. 찻잎에 여러 가지 천연 향신료나 과일, 꽃잎 등을 첨가한 가향차(Flavory)도 많다. 유럽 지역의 홍차는 귀족들의 사교 문화를 통해 발전했고, 이제는 생활 속에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영국의 군인들은 1, 2차대전 당시 전투 중에도 차를 끓여 티타임을 가졌다고 한다. 유럽의 홍차는 유럽인들의 음식 및 생활습관과 융합해 원래의 홍차와는 다른 종류로 발전했다. 밀크티가 대표적이다. 영국인들은 하루에 5, 6번이나 홍차를 마신다.

○ 중국 홍차엔 다른 맛 섞지 않아

그렇다면 중국 홍차와 유럽 홍차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중국 홍차에는 가향차나 여러 차를 섞어 만드는 혼합차가 없다. 또 중국 홍차는 찻잎의 크기와 맛, 향에서 지역별 차이가 명확하다. 유럽에서 즐기는 홍차에도 아무 것도 섞지 않는 다즐링이나 아삼 같은 종류가 있긴 하지만, 순수한 맛과 깊은 풍미에서는 아무래도 중국산 홍차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지금도 우이산에서 충실하게 만든 홍차를 직접 대면했을 때를 기억한다. 열탕에 그대로 우려낸 홍차는 달고 향기로웠다. 일반적으로 녹차는 80도의 물에 우리지만 홍차는 팔팔 끊는 물에 우려야 제 맛이 난다.

중국 홍차는 원류(原流)라는 개념에서도 특별한 느낌을 준다. 영국인들은 애초에 홍차와 녹차가 같은 나무의 잎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다 차에 대한 지식이 높아지면서 우이산을 동경하는 풍조까지 생겼다. 중국 홍차야말로 홍차의 원조이며, 영국 왕실이 환호하며 사들였던 바로 그 맛을 낸다.

▼ 紅茶

○ 홍차는
홍차는 발효 정도가 85% 정도인 완전발효차다. 검게 보이지만 뜨거운 물을 부으면 붉은 물이 우러난다. 동양에서는 홍차(紅茶), 서양에서는 흑차(Black Tea)로 불린다. 전 세계 생산량의 75%를 차지한다.

○ 중국에서 생산되는 대표적 홍차

안후이(安徽) 성 치먼(기문·祁門) 홍차 다르질링, 우바와 함께 세계 3대 홍차로 꼽힌다. 소엽종(小葉種) 찻잎을 사용하며 은은한 향기와 깊은 맛이 나온다. 차 애호가들은 특히 치먼홍차의 향기를 기문향이라 하며 즐긴다.

푸젠(福建) 성 정산샤오중(정산소종·正山小種) 홍차 소엽종 찻잎을 쓴다. 4년 이상 건조한 홍송의 연기를 쐬어 소나무 훈향이 배어나온다.

윈난(雲南) 성 윈난뎬훙(운남전홍) 대엽종 찻잎을 사용하며, 치먼 홍차나 정산샤오중보다는 향이 진하고 맛이 단 편이다. 찻잎은 싹이 크고 광택이 나는 검은색으로, 금호(金毫·금색 솜털)가 있으며 독특한 품격을 지니고 있다

장쑤(江蘇) 성 이싱(의흥·宜興) 홍차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시골에서 생산되는 차라 홍보가 부족해 가격 대비 품질이 상당히 매력적인 차다. 소엽종이며 봄과 가을에 생산된다.

○ 홍차와 건강

홍차는 녹차에 없는 고유한 향과 맛을 낸다. 이런 향미는 찻잎이 발효되면서 생긴다. 심신을 편안하게 하며 갈증을 해소하는 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홍차는 심혈관질환과 암, 충치, 당뇨병 등에 효능이 있다. 찻잎의 폴리페놀이 산화돼 생기는 데아플라빈은 일부 보건작용에서 녹차의 카테킨을 능가한다.

매일 4잔의 홍차를 마시면 동맥경화의 위험이 70% 가까이 줄어든다. 하지만 홍차를 너무 많이 마시면 카페인으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잠이 오지 않는 등의 좋지 않은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카페인 섭취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홍차 8잔 이상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판>www.seoku.com/442

한국인은 차를 어떻게 마시는가
국내도서>가정과 생활
저자 : 박홍관
출판 : 티웰 201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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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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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동아일보에서 새로운 주간 섹션(O2 산소같은 주말)이 만들어 지면서 차에 대한 필자로 중국차에 대해서 연재를 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는 4월23일 [O2/박홍관의 세상의 모든 차]홍차의 고향은 영국일까, 를 시작으로  [O2/박홍관의 차(茶) 기행]천량차, 기분좋은 청량감, 보이차, 용정차, 동방미인 등등으로 해서 지난주 광동성의 봉황단총를 마지막으로 끝을 내었다. http://news.donga.com/3/all/20110527/37596114/1

마지막으로 5월 28일 나간 기사의 원문을 올려본다. 지난 기사는 동아일보에서 검색하면 모두 볼 수 있다.
우룽차(烏龍茶·오룡차)는 즐기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 소양이 필요해 궁푸차(工夫茶·공부차)라고도 한다. 오룡차의 고향은 광둥(廣東)과 푸젠(福建) , 타이완(臺灣) 3개 성(省)이다. 최근에는 다른 성에서도 생산이 되지만 그 양이 많지 않다.

[사진, 봉황단총]

광둥 오룡차는 푸젠의 우이옌차(武夷岩茶)에서 유래했으나, 모방과 개조를 거치면서 독자적인 차의 품격을 형성했다. 그 중 대표가 펑후안단총(鳳凰單欉·봉황단총)이다. 이 차는 품질이 특히 좋아 중국 국내외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봉황단총은 녹차와 홍차의 중간인 반 발효차다. 녹차의 맑은 향(청향)과 홍차의 농후한 단맛이 다 들어있다. 꽃향기, 벌꿀향기, 과일향기, 차향기가 모여 일체가 된다는 평도 듣는다. 형태는 단단히 말려있고, 색은 흑갈색 또는 회황갈색이며, 탕색은 순수하고 시원한 등황색이다. 마시면 시원한 맛이 오래도록 지속되며, 회감(回甘·차를 마신 뒤 입안에 감지되는 단맛)이 강하고, 여러 번 우려져 나오는 특징이 있다.
봉황단총은 향을 중시해서 마시기 때문에 자사호 보다는 향이 배지 않는 백자 개완을 사용하는 편이 좋다.

봉황단총차(鳳凰單欉茶)
원래 단총차(單欉茶)는 다른 나무의 찻잎을 섞지 않고, 차나무 한 그루의 잎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현대의 단총차는 그 개념이 약간 다르다. 한 그루가 아니라, 같은 자연향을 가진 차나무의 잎을 모아 만든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에 걸친 테스트가 필요하다. 그 품종에는 난향(蘭香), 황치향(黃梔香), 행인향(杏仁香), 화향(花香), 천리향(千里香) 등이 있다.

지란향(芝蘭香), 밀란향(蜜蘭香), 황지향(黃枝香), 강화향(薑花香) 등은 현대 단종차로 불리지만, 그 모주(母株)가 모두 백여 년~수백 년 전에 발견된 것들이다.

2011년 광둥 차 시장에서 거래되는 송종단총(宋種單叢·봉황단총 고급차)은 한 근(600g)의 도매 시세가 8000~1만 위안(약 190만원) 정도다. 이것은 푸젠 무이암 대홍포의 고급차와 비슷한 높은 가격이다. 그만큼 중국 내에서 인기가 있다는 말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밀량향, 황치향, 개화향 등 신품종의 가격대는 도매 기준으로 근당 800위안(약 16만원) 전후다.

 제조법
봄철 맑은 날 오후 1시~4시에 찻잎을 채집한다. 봉황단총의 채엽 시기는 다른 오룡차의 그것보다 조금 늦다. 따라서 좀 더 자란 잎을 따게 된다.

따낸 찻잎은 여러 공정을 거친 후 반드시 음지에서 일정시간 위조(萎凋·찾잎 시들리기)해 초제가공(初製加工)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봉황단총(鳳凰單欉) 특유의 향운(香韻)을 만들어낼 수 없다.

현지의 차 농가들은 집안에서 작은 규모의 기계를 놓고 완성차를 선별하고 자신들만의 가공작업을 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누적된 차 제조 노하우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다. 이런 자연스런 노하우 전수가 오늘날 봉황단총을 유명한 차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나무
차나무를 씨앗으로만 번식시켰다(유성생식). 그러다가 청말/중화민국 초기에 ‘삽목’이나 ‘접목’의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무성생식(삽목, 접목 포함) 차나무가 탄생한 것은 1950년대 이후다. 현재는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을 모두 이용한다.

봉황단총의 전통적인 유성생식은 자연변이에 의한 차나무의 품종(株系) 다양화를 가져왔다. 무성생식은 독특한 향기가 나는 차나무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해줬다.

차도구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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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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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차의 포장은 원래부터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중국의 모든 차가 그렇지는 않지만 보이차의 경우에는 오룡차와 달리 포장의 청결성에 관대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습(濕)을 먹은 차에 대한 고정된 시각의 변화를 보면서 포장지와 차의 품질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서 과거 5-6년 전보다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오룡차의 품질은 형태, 색깔, 향기, 맛 등 네 가지 방면으로 검토되고 까다로운 평가가 이루어지지만 보이차는 보관된 차의 외형으로 초심자에게 상황에 따라 말을 달리하여 판매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타까운 현실속에 지난번, 다미향담(13) 마실 수 없는 보이차에 이어서 글을 올리게 되었다.

지난번 사진은 보이차 자체에 생긴 "백상"의 상태가 아주 심각하게 차의 내부에 까지 생긴 것을 거론 한 것이다. 차의 표면에 생긴 곰팡이 보다도 차의 내부 깊숙이 생긴 곰팡이의 배설물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영향이 없다고 해도 병에 약한 체질의 경우에는 어떤 반응으로 나타날지 모르는 치명적인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중국에서 대기업에 속하는 회사의 차로서 시멘트 바닥의 습기에 영향을 받은 것]
상기 사진의 보이차는 차의 포장 상태가 매우 불량한 것으로 시멘트 바닥의 습기가 요인이 된 것이다. 이런 포장의 차류는 무조건 마시지 않아야 한다. 이것도 차를 조금 건조시켜 포장을 바꾸어 저렴한 가격에 유통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보이차의 거래는 믿을 수 있는 상인을 통해서 구입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사진으로 보이는 차는 가격 불문하고 취급되어서는 안될 차라는 것으로, 혹시 보이차에 맹목적인 사랑을 보내는 분들께 알리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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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화차 (穀花茶) 에 대한 건전한 논쟁이 차관련 카페와 블로거에서 생긴 것을 알았다. 쟁점은 끝났지만 필자도 알고 싶어 죽천향 님께 논거가 되는 원본 자료를 받아 전문가의 도움으로 번역을 해보니 아래와 같은 내용임을 볼 수 있다.

1939년 李拂一  선생의 《불해다업개황(佛海茶業槪況)》생산지역과 생산량에서 곡화차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차를 생산하는 시기는 음력 삼월 말부터 구월 내지 십일월까지이며 매년 육칠개월간의 채집기가 있다.

삼월 말과 사월 초에 채집한 걸 일러 ‘춘차(春茶)’ 또는 ‘백첨(白尖)’이라고 하는데, 대략 흰털의 여린 싹이 달린 탓일 게다.

이때를 지나 생산한 건 ‘흑조(黑條)’라 하는데 가무잡잡한 색깔에 묵직하니 농후한 색과 맛이 ‘원차(圓茶)’와 ‘전차(磚茶)’를 제조하는 주요 성분이다. 흑조(黑條) 뒤에 것은 ‘이수차(二水茶)’라 하며 또는 ‘이개(二蓋)’라고도 하는데, 잎이 커다랗고 거친 질감이 검은색과 누런색 중간이다.

 

이수(二水) 뒤에 것은 ‘조차(粗茶)’라 하는데, 아마도 황색의 늙은 잎이 다시는 흑조(黑條)가 그 사이사이에 섞여있지 않고 품질이 제일로 떨어지는 것이기에 전적으로 티벳에 판매하는 긴차의 포심(包心)을 가공하는데 쓰여 진다.

 

구월 초에 다시 재생 한 백모(白毛)의 여린 싹을 일러 ‘곡화차(穀花茶)’라 하는데, 아마도 그때가 마침 벼꽃이 휘날릴 계절이라 그 지역사람들은 도(稻)를 곡자(谷子) 곧 벼라고 부르기에, 마침내 그때에 생산된 백모(白毛)의 여린 싹을 ‘곡화차(穀花茶)’ 또는 ‘곡화첨(穀花尖)’이라 명명한바, 품질은 춘첨(春尖)다음이나 잎의 색깔은 오히려 춘첨(春尖)보다도 더욱 화려하고 윤기가 나며 쉽게 검게 변하지 않기에 통상적으로 원차(圓茶)의 개면(蓋面)을 만드는데 쓴다.

 

운남은 입체적인 기후 특성상 십리 안에도 서로 다른 날씨가 갖춰져 있다한다. 열대아열대지역으로 우기는 5~10월 사이로, 7,8월은 강우량이 제일로 많은 달이다. 추계(秋季)시기에는 일반적으로 차를 세 차례 딸 수가 있는바, 제일차는 입추(立秋)다음으로 비록 가을이지만 그래도 우수(雨水)의 끝머리라 채집한 차는 여전히 우수차(雨水茶)의 범주에 속함이 마땅하다. 제이, 제삼차 채집한 차는 다름 아닌 앞서 거론한 곡화차(穀花茶)이다. [중국보이차논단(中國普洱茶論壇) 소월판주(小月版主)]

곡화차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죽천향실 http://blog.daum.net/36254598

박홍관의 중국차 견문록 (양장)
국내도서>가정과 생활
저자 : 박홍관
출판 : 도서출판이른아침 201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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