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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들어와서 차산업은 웰빙에 맞물려서 큰 성장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녹차 산업은 중국차에 밀려서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것은 그동안 애국심에만 호소했지 스스로 좋은 차를 생산하여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겨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중국차 때문에 우리차 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말은 억지에 불과하다.

중국 발효차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보이차는 차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과 그렇지 못한 점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대륙의 보이차 투기 붐과 함께 우리나라도 ‘묻지마’ 투자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중국의 보이차 시장이 무너지고 한국에 맹목적인 투자 분위기로 몰고 간 상인들과 함께 왜곡된 차시장이 결국은 우리나라 차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4-5년간 우리나라에 거세게 불었던 보이차 붐이 꼭 부정적인 면만 거론할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녹차 시장은 성장하지 못했지만 보이차 때문에 우리나라의 차 붐이 이만큼 생겼다고 할 수 있다. 3년 전만 해도 보이 생차를 많이 주문하는 상인들이 오래된 숙차는 믿을 수 없으니 우리가 주문해서 안전하게 보관하여 건강한 차를 마시자고 하면서 그런 상인이 건전하고 성실하게 보인 한 시절이 있었다.

보이차는 그대로 있지만 판매하는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변명을 해오면서 이젠 오래된 차나무에서 만든 차가 좋다거나,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차나 환경이 매우 좋은 곳에서 생산된 차만 마실 수 있다고 하는 차가 생겨나고 있다.

차 소비의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는 오늘의 이야기가 5년 뒤에는 또 다른 말로 다른 사람의 차는 안 되고 내차만 좋은 것이다라고 하는 방식으로 갈 때 우리나라 차시장의 성장은 요원하다. 차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차를 소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많은 방법 가운데 지난 5월 21일 “차의 날” 행사가 아닌 또 다른 캐치프레이즈를 걸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차문화 콘텐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산차인연합회 최해룡 사무국장이다. 그가 주장하는 Tea day (茶壽 : 차수하세요)를 보면 다음과 같다. - 다음 - Tea day (茶壽 : 차수하세요)

상인들은 그가 가진 물건을 팔기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 개발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소비자가 외면을 한다면 그 상품은 현대사회에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거나 혹은 아예 사라져 버린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인의 생활 패턴에서 수많은 상품이나 기술들이 끊임없는 생로병사의 원칙에 따라 윤회하거나 소비자의 외면으로 아예 빛을 못 보는 경우도 허다하게 많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상품을 알리기 위한 생산자의 노력은 정말 피눈물 날 정도로 치열하다. 젊은이들의 생활문화에 어느듯 자리 잡은 “발렌타인데이”가 한 회사의 상술과 기치에 의해 그 본질이 변화되어 전 세계의 젊은이가 열광하는 날로 바뀌어 버렸다. 쉽게 열광하는 십대들의 특성에 맞게 수많은 상혼들이 “발렌타인데이”를 본보기로 여러 가지 날들을 만들어 그들의 상품을 홍보하기에 바쁘다.

예를 들어보자. 2월14일 “발렌타인데이”때와 반대로 3월14일은 “화이트데이”라 하여 여자가 남자에게 쵸코렛을 선물하며 이도 저도 못한 솔로들은 4월14일 모여 짜장면을 먹는 “짜장면데이”를 만들었으며 5월14일은 로즈데이라 하여 장미꽃을 선물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데이”를 만들어 갔다. 좀 더 현실적으로는 3월3일은 “삼겹살데이”라 하여 삼겹살을 먹는 날이고 11월11일은 “빼빼로데이”라 하여 모회사의 과자를 연상시켜서 그 과자의 매출이 이날만큼은 엄청난 물랑이 팔려 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소위 “데이마케팅”이 자리 잡으면서 날짜와 관계있는 관련업계에서는 앞 다투어 데이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농수산부에서 2월23일 “인삼데이” 3월3일 “삼겹살데이”, 5월2일은 “오이데이”, 8월18일은 “쌀데이”, 11월11일은 “가래떡데이”로 지정하여 이날 관련된 농산물의 판촉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관뿐 만아니라 일반 민간 기업에서도 자사 상품의 판촉을 위해 데이를 정하였는데 닭 판매업계에서는 9월9일을 “구구데이”라 하여 닭을 할인 판매 하며 12월12일은 “고래밥(과자)데이”라고 하여 과자의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상혼에 의해 지정된 각종 “데이”들이 50여 날이 된다고 하니 “데이마케팅”의 위력은 실로 놀랄 만 하다고 본다.

이러한 “데이마케팅”은 현대생활에서 매일 매일의 날짜개념을 그들 상품과 연결하여 연상시키므로 인해 그 날짜가 되면 자동적으로 그 상품이 연상되어 물품을 구매하거나 상대방에게 선물을 하는 행동으로 연결시켜 판매 증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1981년 5월25일 진주 촉석루에서 사단법인 한국차인연합회가 주최하고 진주지부에서 주관하는 제1회 “차의 날”을 선포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녹차를 마시는 인구는 극소수에 불과하였으며 아예 우리나라에서는 차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이렇게 차에 관한한 황무지나 다름없는 이 땅에 뜻있는 차인들의 열성으로 “차의 날” 선포이후 오늘날 수많은 차인들을 배출하였고 그로인해 차의 소비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차의 소비율 증가는 주요 차생산국의 소비에 비하여 극소량에 불과하다. 7~80년대의 산업구조는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밤낮없이 노동과 근로에 종사하여 잘 살아보자는 일념 하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빨리빨리”의 문화가 이 땅의 산업역군들의 머릿속과 마음속 깊이 배어있는 행동문화가 차를 즐기는 느림의 문화에는 도저히 적응이 어려운 동떨어진 문화였다.

차를 마시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하고 맛 또한 단것에 젖어있는 젊은이의 입을 당기기에 부족하였다. 신농씨가 차를 발견한 이래 오랜 세월동안 인류가 차를 마셔왔다. 그것이 약용이나 식용으로 인간은 차를 가까이하였다. 차를 특별한 날을 정해 마신 것도 아니고 또한 강제로 마시게 한 것도 아니며 못 마시게 한 적도 없다. 선조들은 차를 즐기면서 문학을 논했고 시를 읊었으며 절개를 지키고 풍류를 즐겼다.

몸이 상하였을 때도 차를 마셔며 상한 몸을 추스렸으며 쏟아지는 잠을 쫒기 위해 차를 마셨고 옮고 그름을 판단할 때에도 차를 놓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멀리서 벗이 오면 제일 먼저 내어오는 것 또한 차였다. 이렇듯 차는 우리 일상생활에 가장 들어나지 않으면서도 가장 소중한 자리를 말없이 지키고 있었다. 오죽하면 다반사(茶半事)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차는 여러 환경적인 요인과 사회적인 통념에 의해 그 본질이 변해있다. 갖은 곡물로 우려낸 물을 차라고 표현하며 슝늉도 차라하고 심지에 음료수도 차라고 한다. 물론 커피나 코코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차의 본질이 변하면서 현대인들의 차문화가 변화되어 본연의 차가 가진 기능과 역할 등이 축소되거나 상실되는 경우가 나타나며 심지어 차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일도 생겼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나면서 심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즐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서양에서 불어온 웰빙의 바람까지 몰아치면서 급속도로 그 삶의 질이 향상되어갔다. 물만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문화도 위에서 밑으로 흐른다. 일부 특수 계층 및 귀족사회에서 즐기던 차문화도 웰빙의 바람을 타고 서서히 대중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때맞추어 여러 단체에서도 차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으며 교육기관에서도 차와 관련된 학과를 개설하는 등 차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은 모임에서 큰 모임까지 많은 이들이 차를 소재로 토론하고 품평하며 차를 즐기는 이들뿐만 아니라 차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차를 알리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으나 차 소비의 증가는 여전히 미약하다.

더구나 2007년도 가을에 있었던 녹차에서 검출된 농약파동으로 차의 유통 곤두박질 쳤으며 차농들은 그해 생산된 수천통의 녹차들을 폐기처분하는 사태까지 빗어지면서 차의 유통과 소비는 꽁꽁 얼어붙어 해빙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실증이다. 차소비의 확대를 위해 관과 민이 합동으로 차의 안정성을 알리고 소비촉진을 홍보하여도 소비자들의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

본인의 차문화산업연구소에서는 10월 10일을 Tea Day(티데이)를 정하고 차유통과 소비촉진을 위해 “티 테이마케팅”을 제안합니다. 차(茶)라는 글자에서 艸(20) + 八(8) + 木(八十:80)으로 풀이하여 108이란 숫자가 나오는 것은 차를 즐기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108이란 숫자에는 종교적인 해석의 의미도 있기에 그 누구도 부담 없는 가장 평화적인 날짜로 선정한 것입니다.

티데이를 10월 10일을 정한 이유로는 차(茶)자가 열십(十)이 두개 첫머리에 올라앉아 10월10일을 뜻하며 그 아래 사람(人)이 있어 나무(木)처럼1) 오래 누구나가 다 천수(天壽)를 다 할 때까지 변함없이 살아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10”이란 숫자는 인생이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주어진 삶을 다할 수 있는 천수를 뜻하기도 합니다.

“티데이”인 10월10일에 몇 가지 의미를 부여 해 보았습니다. 첫째 10월10일은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입니다. 무더웠던 여름도 가고 가을도 제법 깊어갈 쯤이라 따뜻한 음료가 생각나기 시작할 때입니다. 이때쯤 녹차 한통을 선물 받으면 얼마나 행복 할까요?

둘째 “차수(茶壽 =열이 열이면 백이 됩니다. 100세)하세요”라는 의미입니다. 갑자기 계절의 변화로 인해 건강을 소홀이 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므로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라는 의미를 부여 했습니다.

셋째 차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상징하며 맑은 정신과 보은의 의미도 있습니다. 차를 통해 정신을 가다듬고 사리를 분별하며 병을 치료하고 은혜로운 사람에게 보답을 하는 고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10월10일 “티데이”는 윗분들에게 차를 선물하는 날로 하였으면 합니다. 물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을 통해 윗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는 드리지만 이날은 자신 인생에서의 길라잡이가 되어준 존경스러운 분들에게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는 의미로 “차수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차를 선물하는 Tea Day(티데이)로 정하고자 합니다.

차를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차인들과 함께 큰 소리로 “차수하세요”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차수하세요” 2008년 7월21일 차문화산업연구소 최해룡

상기의 일에 관심 있는 분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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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흑차에 대한 번역책이 한 권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출간되지 않아서 조금은 기다린 적이 있었다. 이번에 다인무역에서 湖南黑茶(호남흑차)를 발행하였다. 부제로는 중국 고대 차마고도 위의 신비로운 차 - 필진은 채정안과 당화평으로 나오지만 주 필자는 호남농업대학 차학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채정안(蔡正安) 교수로 보였다. 번역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김태만, 김지수 박사가 하였다.

흑차란 무엇인가? 진정한 의미의 흑차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학술계는 차 분류학상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개하고 있다. 다엽학자 진연 교수는 차의 이상적 분류 방법은 반드시 두 가지의 요소를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다. 하나는 품질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제조방법 체계이다. 이 이론을 근거로 초제가공방법에 따라 전통적으로 녹차 · 황차 · 흑차 · 백차 · 청차 · 홍차 등을 중국의 6대 다류로 분류한다.

흑차는 과초살청(鍋炒殺靑, 차의 생잎을 고온의 가마 솥에 넣어 덕어 풋내를 제거함), 악퇴(渥堆, 차를 무덤처럼 쌓아 일정한 온도와 습도조건에서 발효시키는 과정. 역자)와 송시명화건조(松柴明火乾燥, 소나무를 땔감으로 불을 지펴 건조하는 과정. 역자)라는 매우 특수한 초제가공공정을 거치는데, 이러한 가공기법을 거친 흑차가 잘 건조되면 흑갈색에 광택과 윤기가 흐르고, 찻물의 경우 원숙하고 부드러우며 떫지 않는 맛에 약간의 송연향을 띤다.

저자는 흑차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흑차는 호남성 설봉산맥 차 재배지역의 대 · 중엽 군체 품종을 원료로 하여, 살청 · 유념 ·악퇴 · 송시명화건조 등 4대 작업 과정을 거쳐 제조된 것으로, 건차는 흑갈색의 윤기와 광택을 띠고, 찻물은 맑고도 진한 붉은 빛을 띠며, 독특한 송연의 향을 지닌 흑모차와 그것을 원료로 증압(蒸壓)하여 만든 긴압차의 총칭이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광서성의 육보차(六堡茶)가 가공 과정과 품질의 특성상 호남 흑차와 매우 근사하여 흑차류로 분류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운남 보이차와 사천의 변차를 흑차류에 포함시킬지 여부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 학계의 진일보한 연구와 검토가 요구된다고 하였다.

책의 내용에서 호남흑차의 기원과 변천, 호남 흑차 제품의 변천에서 감인(甘引)과 섬인(陝引), 복전차(茯磚茶), 호남 청전차, 천첨차, 공첨차, 생첨차, 화권차, 화전차, 현대 호남 흑차의 신품종으로 나누어 구분하였다.

제조편에서는 변차의 분류(작색 기법에 따른 변차 분류, 긴압 형상에 따른 변차 분류), 흑모차의 가공, 인차(引茶)의 제조법, 복전차의 제조법, 천량차(화권차)의 제조법, 화전차의 제조법, 흑전차의 제조법, 천첨 · 공첨 · 생첨의 제조법, 청전차의 제조법으로 되어있다.

각 차의 제조 공정을 사진으로 설명이 되었다면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차에 대한 지식이 짧은 사람은 사진이 없는 제조공정 설명에는 익숙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국내에서 흑차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3년 전부터 부산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복전차, 흑전차 등에 관심도 높았으며, 흑차에 대한 정보에 메말라 있는 시기에 나온 것이라,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흑차의 역사적인 고증이나 생산 지역, 생산량 등등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책값이 50,000원이다. 우리나라에서 한정된 수요에 맞추어 경제성을 고려해서 책정된 것이겠지만 책의 판권을 가진 다인무역에서 차 홍보를 위하고 흑차를 바르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조금이라도 우선되었다면, 책값은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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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홍차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은 현대식 CTC 기계를 이용하여 발효시킨 후 건조하는 방법으로 만든 차를 마시는 경향이 많은 편이다. CTC 기계로 만든 차의 큰 장점은 대량 생산을 하면서도 일정한 맛을 균일하게 내고 제품을 규격화 표준화시키는데 가장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틱 홍차로서 알루미늄 재질로 만든 것이다]

유럽에서는 티백 제품도 환경친화적인 상품으로 개발 되어 가고 있으며, 차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티백 제품은 등급이나 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많은 편이고 티백의 한계성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회용 포장의 변화가 차 소비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볼 때 유럽 상품은 동양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아이디어 상품을 볼 수 있다. 창원의 모레스토랑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티백 홍차가 아닌 스틱 홍차를 후식으로 가져온 것을 보고 함께 앉은 사람들이 놀라적이 있다.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것으로 스틱의 재질과 디자인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게 된 것이다. 이 표현이 유럽 홍차를 즐기는 분들이 보면 당연한 것을 가지고 왜 그러나 할 수 있겠지만 그날의 분위기를 맛보는 사람들은 순수 차맛을 즐기는 것으로 홍차라고 하면 중국 홍차의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맛은 유럽 사람의 음식 문화 속에서의 입맛과 그들의 기호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즐기는 것과는 다르게 순수한 차 맛을 즐겨온 사람들이 립톤 같은 곳에서 나오는 티백은 뭔가 다가갈 수 없는 맛이었고 브랜딩이 아무리 잘되어 있어도 티백은 티백이었기에 눈으로 보는 맛으로 치자면 티백 홍차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는 것이다. 스틱 홍차는 알루미늄 재질에서 오는 유해 요소는 분명히 그 나라의 의학규약에 맞게 만들어진 것으로 믿고 본다면 스틱 그 자체는 굿아이디어이다.

우리나라도 차를 마시기 불편해서 팔리지 않는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편하게 마실 수 있는 형태나 도구의 사용이 소비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는 그날 스틱 홍차에 찬사를 보내는 바람에 주인장이 나와서 정식으로 홍차를 즐길 수 있도록 다구 세트를 들고 우리 테이블에 가져다 주었다. 덕분에 다즐링 홍차를 한 가지 더 서비스로 즐길 수 있었다.

CTC 기법 - 찻잎을 눌러 으깨고 절단하여 궁글게 말아 형태를 잡는 것으로 3가지 공정을 영문 이니셜(crush, tear, curl)로 표기한 것이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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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에 대한 담론은 앞으로 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만 보아도 더 이상의 특별한 모범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자료는 나올만큼 나왔다. 여기서 기존의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나는 보이차에 대한 자료적인 접근에 가능한 사람은 중국인으로서 전문 차학자이거나 언론만이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대만과 홍콩의 차시장에서 거래되는 차를 구매해서 마셔보지 않았다면 현실과는 [사진, 대만 보이차 전문점에서 차를 내는 모습] 동떨어진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실제 홍인을 차의 수준별로 비교해서 마셔본 사람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동급의 다른 차들도 다양하게 비교해서 마셔본 사람과의 대화는 같을 수가 없다.

즉 흔히 골동보이차에 대해서는 죽천향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박창식 선생님의 의견을 믿고 있다. 위에 말한 인급, 호급의 모든 차들을 비교해서 마셔본 사람이고, 늘 중국의 실제 동향을 관찰하면서 우리들에게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의 블로그에 여러사람의 글을 비교해서 올려진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바르게 인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석우여담에 올려본다.

아래 글의 원본 보기 http://blog.daum.net/36254598『푸얼차(普洱茶)』의 저자인 ㄷ교수의 설명. “찻잎 원료의 산지를 구별하기 위해 맹랍(勐臘)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붉은 색으로 표기하여 ‘홍인(紅印)’이라 했고, 맹해(勐海)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푸른색으로 인쇄하여 이를 ‘녹인(綠印)’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붉은 차자(茶字)의 푸얼원차(普洱圓茶)는 맹랍의 제일 좋은 찻잎으로 만들어졌고 이무진(易武鎭)은 맹랍현(勐臘縣)에 속해있기에 붉은 색으로 찍힌 차자(茶字)의 찻잎은 가장 좋은 찻잎으로 인정받은 이무차산(易武茶山)의 대엽종 차나무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곁들여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홍인푸얼원차(紅印普洱圓茶)는 40년대 국민당정부(國民黨政府)(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50년대 공산당정권(共産黨政權)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진다. 40년대의 조기홍인은 이무차산(易武茶山)에서 생산된 최고품질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졌기에 품질이 우수한 반면 후기홍인 제품은 50년대 공산정권 아래서 제조한 것으로 품질면에서 조기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홍인에 대한 판별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짱유화 교수의 인급차(홍인)에 대한 이야기 - 홍인에 대한 의혹 풀이는 먼저 제작연대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다. 1950년대, 내란을 겪은 후의 중국은 전쟁의 피폐함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효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우리가 언급하고자 하는 맹해 지역은 중국의 변방이기에 그 참상은 더욱 심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의 맹해의 물품거래는 현금이 아닌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이곳에서의 화폐는 가치가 없으며 돈이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불해차창(佛海茶廠) 즉 지금의

맹해차창(勐海茶廠) 복원(復原)에 참여했던 탕렌량(湯仁良) 선생의 인터뷰 “1949년 중국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이곳에서 철수한 후 맹해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맹해차창의 경우 생산설비들이 모두 도난 또는 파괴가 되어 차 생산은 물론 기초 작업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되었다. 당시 우리는 맹해차창의 복원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오직 차창(茶廠) 작업장의 복원에만 매진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맹해의 현황에 대해 “당시 맹해의 인구 구성원을 보면 소수민족이99%이며 이곳의 한족은 모두 외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뿐이다. 소수민족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 자신들이 생산하는 물건으로 서로 교환하면서 생활하는데, 당시는 무척 빈곤했던 터라 모두들 곡물을 시장에 내놓아 교환할 처지이지 차를 만들어 내다 파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설사 있었더라도 그 양은 아주 미미했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번 맹해현 정부자료실을 들췄으나 당시 이곳의 차에 관한 그 어느 자료도 찾지 못했다. :현 운남성 서쌍판납 맹해현 차엽판공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1951년까지 맹해는 무척 혼란하기에 차를 만들고 상품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 운남성의차의제조 및 판매에 관한 유통은 모두국영형태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지시는 모두주관 부서인‘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로부터 받았다. 설령 생산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들이 만든 가정용 형태의 차일 뿐 상업제품은 아니다.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맹해에는 푸얼차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정확한 일기는 갖고 있지 않다.” 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운남성의 푸얼차에 관한 모든 자료는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에 보관되고 있다. 필자는 현 중국운남성차엽협회(中國雲南省茶葉協會) 회장이신 쯔어우자쥐(鄒家駒)씨의 도움으로 당시의 자료를 찾을 수가 있었다 .운남성공사의 기록에 따르면 맹해차창은 1956년부터 푸얼차를 만들었으며 당시 출하했던 이 제품은 모두 광동성(廣東省)으로 갔는데, 이 제품이 바로 후일 ‘홍인’이라는 푸얼차다.

그럼 여기에서 나타나는 의혹은 어떠한 연유로 정식으로 등록된 녹색‘ 차(茶)’자의 마크가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 출하된 것이냐의 문제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50년대 맹해는 무척 낙후된 지역이기에 인쇄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이에 당시 맹해차창에서 출하한 모든 포장지는 가장 가까운 지역인 푸얼현(普洱縣)(보이현)에서 인쇄됐으며 이러한 작업은 6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50년대 당시 푸얼현의 인쇄는 원시형태인 목판으로 이뤄졌다. 목판인쇄(木版印刷)란 목재의 엇결이나 절단면에 그림이나 글자 따위를 볼록하게 또는 오목하게 조각한 판목에 안료를 첨가한 수성잉크를 칠하고 인쇄지를 놓고 종이 뒷면을 문질러 인쇄하는 방법이다. 인쇄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잉크를 배합하는 과정에서 색상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다. 즉 사용된 색상의 배합비율의 정확성이 바로 인쇄의 품질을 좌우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푸얼차 포장지의 인쇄는 단순한 색감 즉 붉은 색과 녹색 등 2가지 색감의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포장지 전체를 붉은 색으로 인쇄했던 것은 보통 당시의 낙후된 인쇄기술로 치부하고 있으나 필자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오늘날 인자급 푸얼차를 판별하는데 에 있어 포장지의 글씨체뿐만 아니라 인쇄된 붉은 색의 농담(濃淡)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즉 붉은 색의 진하고 엷음에 따라 도홍판(桃紅版)과 주홍판(朱紅版)로으 나뉜다. 여기서 말하는 ‘도(桃)’란 복숭아와 같은 엷은 붉은 색, ‘주(朱)’란 주사(朱砂)와 같은 짙은 붉은 색을 말하는데, 이러한 색상의 차이는 염료의 배합비율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2가지의 색상 즉 녹색과 붉은 색을 한 가지의 색으로 통일되어 인쇄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업자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잘못된 포장지의 인쇄는 3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얼마가지 않아 운남성공사의 직원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부각되었으며, 이 일로 인해 운남성공사는 맹해차창을 심하게 비판하였다. 질책을 받은 맹해차창은 푸얼현의 인쇄소에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 결과 포장지의 ‘차(茶)’자를 원안대로 녹색으로 인쇄하게 된다. 이 포장지로 출하한 제품이 바로 ‘녹인’이라는 푸얼차다. 이상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답이 나온다.

홍인과 녹인의 구분은 찻잎 원료의 생산지 즉, ㄷ교수가 설명하는 것처럼 ‘홍인’은 맹랍(勐臘)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며, ‘녹인’은 맹해(勐海)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 라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러한 포장지의 차이는 단순한 인쇄상의 착오일 뿐 찻잎의 생산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리고 맹해차창에서 ‘팔중차’ 로고로 출하한 첫 번째 푸얼차의 연도는 1956년도 이다. 글. 짱유화

죽천향의 첨언: 그럼 도대체 인급차 홍인은 몇 년도부터 생산된 차인가요! 첫째, ㄷ 교수의 말대로 1942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절대로, 아니다” 입니다.

그 이유는 운남성 차엽 진출구공사<云南省茶叶进出口公司志>의 기록에 따르면 “云南中国茶叶贸易公司”는 1950년 9월 이름을 “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로 개명한 바,1942년-1949년 만들어진 소위 조기홍인의 포장지에 1950년 에 바뀐 이름인“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라는 명칭이 절대로 인쇄되어 찍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짱유화 교수의 말대로 홍인은 맹해차창에서 1956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인급차가 맹해차창에서 1956년 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사실은 위 여러분들의 증언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맞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인급차는 1952년부터 생산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가요 ........ 그것은 바로 맹해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으로 보내 하관차창에서 생산한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아래 중국의 인터넷 자료를 보면 현 운남성서쌍판납맹해현차엽판공실(雲南省西雙版納勐海縣茶葉辦公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 중에 나와 있는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중국 인터넷 자료중에서...   http://www.puertea8.com/html/2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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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앙동에서 중국차 전문점을 오랜 기간 운영해온 ‘다례헌’ 서재홍 대표를 만났다. 지난 6월에 다례헌에서 만났을 때 <시민시대>에 중국차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며, 중국차를 가장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천량차의 제조 과정 사진 한 장이 필요하다고 협조를 요청하였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에 나오는 천량차 부분에서 5명이 발로 굴리며 포장하는 사진 사용에 대한 허락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나는 즉석에서 하시라고 하였고, 필요하면 사진 데이터를 보내드리겠다고 했는데, 서 선생님은 웹상에서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즉시 전달할 수 없었다.

책에 나오는 사진을 사용하라고 하였기에 나는 생각하기를 내 책의 사진을 스캔해서 원고로 사용하지 않았겠나 하면서 이젠 책이 나왔을 텐데 어떻게 원고를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찾아뵙게 되었다.             [사진 위, 다례헌 서재홍 대표] 이제는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과거 미처 확인하지 못한 자료를 조금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데, 서 선생님은 1995년 이전의 책에서 원문을 번역하고 계셨기에 더욱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 사진은 다른 방식으로 디지털화시켜서 사용하였고, 원고가 작성된 7월호 책을 한권 주셨다. 자연스럽게 천량차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사모님은 집에 보관된 차 중에서 가장 오래된 차를 가지고 있다고 하시며 보여주셨다. 차생산 년도를 보면 1950년대 차라고 할 수 있다. 좋은차를 맛볼 때면 꼭 꼬장꼬장한 봉지에서 나오는데 이 차도 비닐봉지에 담겨있었다.

[1950년대 천량차] 일단 외형으로 볼 때 입맛이 돌게 했다. 어떤 맛이 나올까를 예측할 수 있는 외형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동안 한국과 중국에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많은 차를 접하였다. 중국 현지의 차 생산 과정을 촬영하면서 지금도 그 현장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차를 보고 시음해 보면 제조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천량차로서는 노차라고 할 수 있는 그 차의 맛을 보면 이런 맛을 우리는 천량차라고 하는데 보통의 경우 이 맛을 모르기 때문에 등급으로 친다면 낮은 등급의 천량차를 표준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천량차의 참맛을 잘 모르고 그냥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례헌 사모님] 중국 호남성 백사계에서 작업자들이 몸에 땀이 범벅 되어 있는 상황에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서 마시는 천량차의 맛을 보고 놀라워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들이 한국에서와 같이 작은 다호에 천량차를 넣고 우려마시는 것이 아니라 끓여서 큰 통에 담아두고 수도꼭지 같은 것을 이용하여 틀어서 넓고 큰 찻잔에 차를 받아 마셨다. 나도 함께 마셨다. 시원스런 맛이며, 갈증을 순간적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이날 마신 천량차는 세월이 주는 맛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차의 성질이 좋았던 것 같다. 좋은 조건에서 보관되어 차를 귀하게 다루는 집에서 관리되었기에 이런 맛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 선생님은 백사계 천량차와 천식방(天植坊) 천량차를 나란히 세워두었기에 두 개를 손으로 짚어가며 비교 설명을 하셨다. 같은 천량이라도 외형적으로 보면 천식방이 더 꽉 차고 긴압이 잘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절달된 부분을 보면 천식방 천량차가 좀 더 짙은 갈색을 띄고 있다.

[사진 위, 백사계 천량차] 차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종류의 천량차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최근에 제조한 호남성 백사계(白沙溪) 천량차와 그 인근에서 만든 천식방 천량차의 외형을 비교하고 ‘천식방’차의 맛을 나누게 되었다. 서 선생님의 말을 빌리면 ‘3년 된 차를 비교하면 백사계 차는 먹을 수 없는 상태이나, 생솔 가지를 태워서 천량차를 만들 때 사용한 천식방차는 한약재로 사용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궁금하여 한 번 마셔보고 싶다는 말에 즉석에서 긴압이 꽉 찬 느낌의 ‘천식방’을 조금 뜯어서 개완으로 마셨다.

개완에 넣기 전의 상태로 보면 노랑곰팡이 같은 것이 보였다. 서 선생은 부분적으로는 흰곰팡이 같이 보인다고 하였지만 내 눈엔 노랑곰팡이였다. 순간 5-6년 전 서울 인사동의 중국차 전문점에서는 천량차를 세워두고 노랑 곰팡이를 자랑하며 차를 팔았던 몇몇의 주인들과 당시 분위기가 잠시 떠올랐다. 그런데 이젠 그렇게 곰팡이를 자랑하며 마시는 일은 하지 않는다.

[사진 위, 천식방 천량차] 노랑 곰팡이라고하여 복전차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복전차는 오래되면 흔히 전문 용어로 ‘금화’(유익균으로서 독특한 균화 향기가 있으며, 국가표준의 금화균수까지 정해져 있다)가 핀다고 하여 양질의 흑모차를 원료로, 악퇴와 발효, 발화(發花) 공정을 정상적으로 거치면서 생기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 차에서 보이는 노랑 곰팡이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달랐다. 어찌되었든 ‘천식방’이라고 하는 차는 차의 맛이 제조일이 3년 정도 지난 것으로 일반적인 천량차의 맛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순한 맛으로 마시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무엇이 작용하였는지 알지 못하지만, 한약재와 생솔가지를 태운 솔향기가 흡입되어서 그런 맛이 나는지는 모르지만, 백사계 천량차의 맛과는 다르다. 하지만 생산하고 3-4년 뒤에 마실 수 있다고 해서 좋은 차라고 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차인들이 좋아하는 차맛을 논하는 것은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차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백사계 천량차와 천식방 천량차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잠시 생각할 수 있다. 차를 마시면서 엽저를 보니 백사계 차와 ‘천식방’ 차는 백사계 차에서 볼 수 있는 살청과 퇴적 과정이 고르게 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이런 문제가 천식방의 차 전체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새로운 차들이 유통되면 좀 더 시간이 가면서 충분이 우열이 가려지는 인프라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역적으로 차에 대한 정보가 부재하기도 하기에 낯선차일 수 있다. 3-4년 지난 백사계 천량차에서 나오는 강하면서 떫은맛보다 순한 맛이 난다고 하여 좋은 차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르다고 본다. 더 많은 종류의 천식방 천량차의 시음과 평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인정받을 수 있는 때가 올 것으로 본다.

다례헌 서재홍 대표는 1990년 부산 차계를 대표해서 [제1회 항주국제차문화연토회]참석을 위해 홍콩을 거쳐 항주로 갔다. 회의를 마치고 25박 26일간 중국 차산지를 견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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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효능에 관심있는 분들은 보이차를 어떻게 마실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많이 가지게 된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마시는가? 또한 어떤 종류의 보이차가 보이차로서의 효능을 가지는가? 등등으로 의문을 많이 가지게 된다. 본인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한국에서 누구도 그 부분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보이차에 대한 특별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주변에서 나보다 더 비싼 차를 마시는 사람이 수준이 높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어쩔 수 없이 ‘비싼 차가 좋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작용하면서 혼동 속의 보이차 시장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정작 보이차를 어떻게 마실 것인가에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과학적인 검증을 필요로 하는 부분을 말로 할 수 없기에 그냥 많이 마시면 되겠지 하는 초보자들의 공통된 심리가 보이차 시장의 왜곡을 함께 안고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산데파트 뒷길에 위치한 산다원(대표 김성진)이라고 하는 차와 차도구를 취급하는 전문점이 있다. 여기서 차라고 하면 일본 말차와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면서 한국, 중국, 일본 차도구를 취급한다. 일본 차도구는 보급품에서부터 높은 수준까지 취급하는 곳이다.

 

[사진 위, 삼다원은 10월 경에 이사를 간다]

항상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주인의 찻자리 앞에는 차가 담겨있는 자사호가 5-6개 있다. 보이차라도 같은 차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호 하나에 매일 같은 종류의 차를 새로 넣고 하루 2-3탕 우려 마신다. 마실 때도 당일 차를 마신 후 어제 넣고 마신 차 등으로 지난날에 마신 다호에 끓인 물을 넣고 음미한다. 토요일에는 한주 동안 마신 다호 안의 차를 큰 호에 가득 담아둔다. 또 그렇게 해서 하루 동안 그 차의 맛을 본다. 토요일 퇴근 때는 그 차의 찌꺼기를 담아서 집에 가지고 간다.

  월요일에는 또 새롭게 시작한다. 이렇게 마실 수 있는 차의 공통점은 차의 품성이나 성질이 좋다는 것이다. 즉, 좋은 차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맛과 향기를 간직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동안 하루 2-3탕씩 우려낼 것이 없다.

  이번 만남에서도 80년대 후반의 차, 98년도에 만든 차 등등을 시음하고 왔다. 마시는 차에도 선수들끼리 이야기하고 마시는 차가 있다. 포장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 자체를 두고 말한다. 이 차가 '야생보이차'니, '고산차'니 하는 말이 필요 없다. 사람이하는 말이 아니라 차가 말을 한다. 건강한 차의 공통점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차의 기운으로 말이다. 차를 담아내는 다호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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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에 관한 책을 국내에서 발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울이나 지방에서는 보이차에 대한 깊은 식견을 나누고자 한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내가 책을 한 권 낼거다’는 말도 하게 된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보이차에 대한 책은 전무하다. 물론 번역서 출간은 간간히 있어 왔다.

2007년 여름에 광주에 사시는 박용모 선생 댁을 방문했을 때, “선생님 보이차에 대한 책을 한 권 내시지요?” 하고 권유해 보았다. 박 선생님은 자신이 번역서로 출간이 되어 있고, 또한 보이차에 대한 책을 내기 위해서는 원천적으로 중국차를 번역해서 하는 일인데 굳이 나의 저서라는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럴 생각은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일견 맞는 말이다.

이번에 개인의 저서 형태는 아니지만 ‘글을 읽다’에서 <보이차 수첩>이 발행되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참 잘 엮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공개하는데 약간 머뭇거리게 된 것은 이 책의 실제 저자가 누구인가가 궁금했고 약간의 실체가 드러날 때 밝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어제 그 출판사의 내용을 잘 아시는 건국대학교 정기웅 교수를 만나면서 실제 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신대학교 교수인데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기에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출판사 엮음으로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서문에서 밝힌 중문과 조재송 교수님으로 보인다.

이 책은 보이차의 역사, 보이차의 명칭, 분류, 보이차의 저장, 효능 등에 대해서 중국에서 발행된 책을 중심으로 번역하여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보이차를 좋아하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보이차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각 단원마다 팁을 달아서 [보이차의 제다 과정], [보이차와 차의 성질], [녹차의 항암 작용, 카테킨], [보이차의 극품 ‘반장’] 등을 박스처리하여 편집되어 있다. 책의 판형이 작아서 휴대하기에 편리하다.

내용에서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주관에서 올 수 있는 차이로 볼 수 있다. 보이차는 정답이 없다. 그 없는 정답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 진 것에 가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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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제목 : 조선시대 규범서를 중심으로 한 구용의 몸가짐과 차예절

최근 차관련해서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논문도 나오지만 급조된 것이 많다 보니까 이제는 책이나 논문이 나와도 관심에서 좀 멀어지는 듯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부분은 번역서로 출간이 되기 때문에 조금 안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게 아닌 상식 수준에서 거론되는 것 뿐이다. 오전 외출을 하려는데 우편물이 막 도착한 것이다. 부산에서 이임선(원광대학교 예다학과 석사과정) 학우님이 보낸 것으로 논문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들고 나갔다. 시원한 커피숍에서 한 장 한 장 읽어보면서 최근에 석사논문 가운데 이만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연구자는 그동안 차 예절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논문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만한 자료를 확인하고 정리되었다는 것은 우수한 석사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小學』이 중요시되었던 것은 신유학을 통치이념으로 표방한 조선왕조가 건국 되면서 시작되었다. 유교를 국교로 하였던 조선사회에서 유교이념을 사회질서로 정착시키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연구자는 문헌연구의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주로 많이 인용된 것으로『小學』을 바탕으로 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유아용 윤리교재인 『童蒙先習』, 배우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인 『擊蒙要訣』, 조선시대 부녀자들의 가르침이 실려있는『內訓』,『규중요람』,『戒女書』,『土小節』등을 연구하고, 선행 연구를 중심으로 규범서에 나타난 몸가짐을 고찰하여 기거동작의 기본으로 가르쳐온 구용을 바탕을 행다례를 살펴본바 제한점을 갖는다.고 하였다. 선행연구에서는『小學』등 문헌에서 나타나는 몸가짐에 관한 것은 많으나 표와 관련된 것을 찾기 어려운데 이 논문에서는 소학, 격몽요결, 내훈, 규중요람, 사소절 등의 내용을 표로 만들어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리고 차 생활에서의 몸가짐 편에서는 차생활에서의 구용을  연구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차예절과 연관된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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