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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류건집 교수님을 만나뵈옵고 학위 논문도 전해드리고 그동안 차계의 여러사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최근 출간되는 번역서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류교수님은 최근들어 번역서가 많이 나오지만, 차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기에 많은 번역의 오류가 있음에 대하여 아쉬움을 표현하고. 여러가지 사항에 대하여 본의[本意]가 왜곡되어가는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올해 발행된 "다부 주해"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 편역자인 류교수님의 뜻을  "석우연담" 블로그를 통해서 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나누게 되면서 그 첫 번째 글을 올리게 되었다.

--茶賦에 나온--  원광디지털대학교 석좌교수 류건집

내가 다부주해(茶賦註解)를 쓰면서 긴 지면을(p80-p100) 할애하여 역점을 둔 것 중의 하나가 한[艹 +寒]과 파[菠]에 관한 것인데, 이에 관해서 아직도 나의 본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요약해서 첨부한다.

먼저 결론은 “한[艹 +寒]은 맛이 시고 씁쓸하지만 약효가 많은 고차(苦茶) 계통의 차를 말하고, 菠는 여린 잎을 따서 만든 달고 부드러운 계통의 차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한[艹 +寒]과 菠”는 꽈리나 시금치로 만든 대용차가 아니고, “茗과 荈, 檟, 蔎, 같은 차의 이름이라는 말이다. 곧 앞에 나오는 “茗과 荈”이 차잎의 채취 시기에 의해 분류한 차의 이름이라면, 한[艹 +寒]과 菠”는 色香味에 의해서 분류한 차의 이름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결론이지 무슨 “꽈리차나 시금치차”라는 대용차를 말하기 위해서 그렇게 논리를 편 것은 아니다. 중간에 “꽈리나 시금치”라는 글자 곧 ”한[艹 +寒]과 菠“에 어떤 특징이 있기에 한재가 그렇게 분류해서 사용했을까 라는 것을 究明하기 위해서 차로 만들어 본 것이지 대용차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만들어 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다시 말하면 한재가 중국에서 가서 들었던지, 혹은 어떤 글에서 읽었던지 “한[艹 +寒]과 菠”라는 차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은, 내가 제시한 여러 기록들과 특히 “고대에 쓴맛을 가진 일종의 음료였다(古代一種含有酸味的飮料).” [『제민요술(齊民要術)』, 대소릉인(大小夌) 인(引)『범승지서(氾勝之書)』]는 기록으로 볼 때 확실한 것이다. 즉 한재 생존 당시에 차를 분류하여 부르는 “茗과 荈”처럼 “한[艹 +寒]과 菠”라는 차에 관한 명칭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이는 한재같은 도학자가 근거도 없이 임의로 이름을 만들어서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둘은 어떤 차이로 구분해서 설명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야 했다. 그래서 한[艹 +寒]과 菠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기록들을 조사해서 제시하고 또 만들어 보기도 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 둘의 차이가 확연한 것이 들어나서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원래 차를 뜻하는 “荼는 씀바귀에서, 茶는 동백나무에서, 檟는 가래나무에서, 蔎은 풀의 이름에서, 茗은 단술[酩]에서, 荈은 쓴 씀바귀에서 轉義된 글자들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艹 +寒]과 菠”도 “꽈리와 시금치”에서 전의된 차의 이름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더욱 자세한 것은 졸저 <다부주해 ; 이른아침> p80-p100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책소개 : 도학의 정종(正宗)을 이어받아 군자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설파하고 있는 명저인 『다부』는 원문 자체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지만 기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연구, 설명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에 편역자 류건집은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원문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다 풍성한 의미를 얻어낼 수 있도록 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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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0일 배재학당 역사발물관 3층에서 (사)국제차문화교류재단 이진수 이사장의 특강이 있었다. 한국 차마케팅 전략과 인재육성에 대한 주제였다. 강의 시작 10분전에 도착 했지만 별로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소슬다원 오영순 사장 님이 들어오셨다. 차 마실 수 있는 여건이 잘 안된 것 같아서 편리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왔다고 하시며 종이컵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나는 혼자 생각으로 차는 언제 주는가 하고 조금은 기다렸는데 다른 사람들은 종이 컵을 가지고 복도로 나가서 물을 담아 와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씩 마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컵을 가지고 나가면 준비된 차를 주고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그 순간 강의를 위한 파워포인트 화면을 열고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강의실에는 학우님들이 계속들어오면서 나의 빈 컵을 보고는 들고 나가서 물을 담아 왔다 앗! 근데 이게 이럴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아닌 종이 컵이 진화된 티백 컵이었다

즉, 대만 오룡차 티백을 둥글게 만들어 종이컵 밑바닥에서 한쪽은 살짝 붙어있고 다른 한쪽은 단단하게 고정된 것이다. 물을 부어면 한 쪽은 접착이 풀어지면서 차는 곤두서있게 된다. 그러면서 물에 의해서 천천히 차가 풀어지고 탕색은 갈홍색으로 농도가 짙어지면서 차를 우려마시는 느낌이 들게끔 만들었다. 마셔보았다. 이전에 나온 티백과는 전혀 다른 컨셉이다.

사람들은 강의장에서나 공공 장소에서 차를 낸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인 아닌데 이 종이컵은 물을 부어마시면 되는 것이다. 차를 다 마시고나면 그냥 버리면 된다.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대만은 그만큼 음료의 비중이 많은 지역이기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것도 부럽지만, 이 티백 컵의 발상이 우리나라에서 나타난다면 상품화가 참 더뎠을 듯한 생각이 든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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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까지도 홍차를 즐기는 인구가 많지 않아서 유럽의 다양한 형태의 홍차가 수입은 되었지만, 고급 홍차를 수입하는 곳이 드물었다. 수입을 하였다고 해도 유통이 원할하지 못해 고급홍차 수입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최근, 유럽식 홍차 마시는 인구가 급속히 늘어가는 것 같다. 나는 중국 홍차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유럽의 홍차 맛에 감동하지 않는 편이라고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일반적으로 홍차를 즐기는 분들은 유럽홍차가 멋있고, 더 우아한 다기를 다루는 것에 크게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중국 홍차 메니아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것에 아직은 감동을 받지 못한 편이다. 최근 홍차와 관련한 논문이 자주 나오고, 차관련 세미나에서도 홍차관련 논문이 발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유럽 홍차를 즐기고자 하는 메니아 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전되기르 바라는 입장이다.

전국에서 규모있는 서점에 가면 차와 커피, 커피와 차, 와인과 차, 커피와 다도 코너를 업장마다 제목만 다르지 비슷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차에 관한 책이 늘어가면서 서울에 있는 대형서점에서는 특설 코너를 만들었지만 계속해서 커피코너 책이 넘쳐나서 차 쪽으로 침범하고 있는 것을 차의 책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만큼 차 보다는 커피 인구가 더 많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차에 관한 책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녹차 보다는 중국차 그중에서도 보이차에 관한 책이 일시적이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지속적으로 나왔다. 그것이 대중적으로 보였다면 홍차에 관한 책은 너무 빈약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홍차를 만나는 여행> 형설라이프, 서지은 저자의 책을 보면 과거에 나온 홍차와 관련된 책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구성이 되었다. 역사성과 현실성을 동시에 알 수 있도록 되었으며, 팁을 만들어 초보자가 알고자 하는 부분이 쉽게 설명되어 유럽 홍차를 이해하기에 좋은 구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홍차의 원류인 중국 홍차에 관해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거나 중국차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저자의 전공이 유럽 차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차의 등급이나 분류는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홍차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현재백석예술대학 외식산업학부 교수이며, 차와 커피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책의 구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홍차의 발전 - 홍차 탄생의 배경, 유럽에 수출된 홍차, 홍차의 영국 전파, 미국의 보스턴 차 사건, 차를 계기로 시작된 아편전쟁, 쾌속 범선들의 차 운반 경쟁, 대영제국의 홍차 탄생
홍차의 제다 과정 - 전통방식, Orthodox, 로터반 방식, Semi Orthodox, CTC(Crush Tear Curl) 방식
홍차의 등급 - 홀 리프(Whole leaf) 타입, 브로큰(Broken) 타입, 그 외 등급
홍차의 분류 - 산지별 분류, 스트레이트 티, 블렌드(Blend)에 의한 분류, 가향(Flavored)에 의한 분류, 티타임에 의한 분류
홍차의 꽃, 다구의 선택 - 티포트(Tea pot), 티 컵(Tea cup), 스트레이너(Strainer), 메저 스푼(Measure spoon), 티코지(Tea cozy)와 티워머(Tea warmer), 타이머와 모래시계, 티캐디(Tea caddy) 그 외 도구들
홍차 음료 - 사과홍차(Apple Tea), 딸기홍차(Strawberry Tea), 티 펀치(Tea Punch), 키위 아이스 티(Iced Kiwi Tea)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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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정민 교수님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다산의 떡차론과 구증구포설>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이 글을 옮겨오게 된 이유는 이 시대의 차 제조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데, 현장이나 차관련 학자들은 구증구포에 대한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 정민 교수의 글에 공감하여 구증구포에 관련된 글의 전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차 공부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차 만든다고 모두 떡차 만들고 있습니다. 차의글로벌을 이야기하면서 제법은 후퇴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실 수있는 좋은 차가 필요합니다 http://jungmin.hanyang.ac.kr/

 

구증구포(九蒸九曝)의 실체 

다산의 제다법과 관련해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구증구포(九蒸九曝)의 실체는 무엇일까? 구증구포는 오늘날 다산의 권위를 등에 업고 하나의 신화가 된 듯하다. 다산은 앞서 본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증구포를 줄여 삼증삼쇄(三蒸三曬)로 말했다. 그렇다면 다산이 만년에 주장을 바꾼 것인가? 이 문제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구증구포란 말 그대로 아홉 번 쪄서 아홉 번 말린다는 말이다. 구증구포는 인삼이나 숙지황 등 한약재의 강한 성질을 누그러뜨려 약성을 발휘시키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이를 차에다 적용하는 것은 중국에서도 달리 예를 찾기 힘들다. 다산의 구증구포나 삼증삼쇄는 덖음 녹차가 아닌, 곱게 빻아 가루를 내 돌샘물로 반죽해 빚는 떡차에 해당하는 제법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덖음 녹차를 만들면서 다산의 이 구증구포를 적용하고, 이를 마치 절대의 비전(秘傳)인 양 떠받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째서 다산은 그 여린 찻잎을 아홉 번이나 쪄서 말려 차를 법제해야 한다고 했을까? 구증구포에 대한 다산의 최초 언급은 「범석호의 병오서회(丙午書懷) 10수를 차운하여 송옹(淞翁)에게 부치다(次韻范石湖丙午書懷十首簡寄淞翁)」란 시의 둘째 수에 나온다.


小雨庭菭漲綠衣 보슬비가 뜨락 이끼 초록옷에 넘치길래

任敎孱婢日高炊 느지막이 밥 하라고 여종에게 얘기했지.

懶拋書冊呼兒數 게을러져 책을 덮고 자주 아일 부르고

病却巾衫引客遲 병으로 의관 벗어 손님 맞이 더뎌진다.

洩過茶經九蒸曝 지나침을 덜려고 차는 구증구포 거치고

厭煩雞畜一雄雌 번다함을 싫어해 닭은 한 쌍만 기른다네.

田園雜話多卑瑣 시골의 잡담이야 자질구레한 것 많아

漸閣唐詩學宋詩 당시(唐詩) 점차 물려두고 송시를 배우노라.


1구의 ‘녹의(綠衣)’는 마당에 깔린 이끼다. 아침부터 조찰이 내린 비로 뜨락의 이끼 옷이 자박자박 젖었다. 오늘 같은 날은 마냥 게으름을 부리고 싶다. 갑자기 책을 덮으니 무료하다. 공연히 이래라 저래라 아이를 불러 심부름을 시킨다. 의관을 풀어헤친 채 지내다 갑자기 손님이 오면 허둥지둥 의관을 정제하느라 손님맞이가 늦어진다.

5구에 구증구포가 나온다. 직역을 하면 “지나침을 줄이려고 차는 구증구포를 거친다”는 말이다. ‘설과(洩過)’는 『좌전(左傳)』에 “부족함을 건져서 지나침을 줄인다. 濟其不足, 以洩其過”란 표현이 있는데서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차의 성질이 지나치게 강한 것을 감쇄시키려고 구증구포, 즉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과정을 거친[經]다고 했다. 6구에서는 조촐한 살림이라 닭도 두 마리만 기른다는 이야기를 대구로 얹고, 쓸데없는 잡담에 마음 쓰지 않고, 지금까지 보던 당시를 접어두고 송시를 더 읽겠노라는 다짐을 적었다.

차를 법제할 때 구증구포 하는 이유를 ‘설과(洩過)’에 둔 것이 흥미롭다. 지나치게 강한 차의 성질을 감쇄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이다. 다산의 구증구포설은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가운데 「호남사종(湖南四種)」이란 항목에 한 번 더 나온다.


강진 보림사의 죽전차(竹田茶)는 열수 정약용이 얻었다. 절의 승려들에게 구증구포의 방법으로 가르쳐 주었다. 그 품질이 보이차에 밑돌지 않는다. 곡우 전에 딴 것을 더욱 귀하게 치니, 이를 일러 우전차(雨前茶)라 해도 괜찮다.

康津寶林寺竹田茶, 丁洌水若鏞得之. 敎寺僧以九蒸九曝之法. 其品不下普洱茶. 而穀雨前所採尤貴. 謂之以雨前茶可也.


중요한 기록이다. 보림사의 죽전차를 처음 개발한 사람이 정약용이라고 밝혔다. 다산이 보림사에 갔다가 절 둘레의 야생차를 보고, 구증구포의 방식으로 차를 법제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 품질도 중국의 보이차만 못지않다고 했다. 곡우 전에 딴 것을 더욱 귀하게 쳤다는 것은 앞서 다산이 백운동에 보낸 편지에서 곡우 때가 되었으니 서둘러 따서 떡차를 만들어 보내달라고 한 언급과 일치한다.


구증구포 떡차인 보림사 죽로차

이유원은 「호남사종」외에도 문집인 『가오고략(嘉梧藁略)』에 「죽로차(竹露茶)」란 장시를 지어 보림사 차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기록을 남겼다. 여기서도 다산의 구증구포설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뿐만 아니라, 차의 법제 과정 및 차 맛까지 자세히 적었다.


普林寺在康津縣 보림사는 강진 고을 자리 잡고 있으니

縣屬湖南貢楛箭 호남 속한 고을이라 싸릿대가 공물일세.

寺傍有田田有竹 절 옆에는 밭이 있고 밭에는 대가 있어

竹間生草露華濺 대숲 사이 차가 자라 이슬에 젖는다오.

世人眼眵尋常視 세상 사람 안목 없어 심드렁이 보는지라

年年春到任蒨蒨 해마다 봄이 오면 제멋대로 우거지네.

何來博物丁洌水 어쩌다 온 해박한 정열수(丁洌水) 선생께서

敎他寺僧芽針選 절 중에게 가르쳐서 바늘 싹을 골랐다네.

千莖種種交織髮 천 가닥 가지마다 머리카락 엇 짜인듯

一掬團團縈細線 한 줌 쥐면 웅큼마다 가는 줄이 엉켰구나.

蒸九曝九按古法 구증구포 옛 법 따라 안배하여 법제하니

銅甑竹篩替相碾 구리 시루 대소쿠리 번갈아서 방아 찧네.

天竺佛尊肉九淨 천축국 부처님은 아홉 번 정히 몸 씻었고

天台仙姑丹九煉 천태산 마고선녀 아홉 번 단약을 단련했지.

筐之筥之籤紙貼 대오리 소쿠리에 종이 표지 붙이니

雨前標題殊品擅 ‘우전(雨前)’이란 표제에다 품질조차 으뜸일세.

將軍戟門王孫家 장군의 창 세운 문, 왕손의 집안에서

異香繽紛凝寢讌 기이한 향 어지러이 잔치 자리 엉긴 듯 해.

誰說丁翁洗其髓 뉘 말했나 정옹(丁翁)이 골수를 씻어냄을

但見竹露山寺薦 산사에서 죽로차를 바치는 것 다만 보네.

湖南希寶稱四種 호남 땅 귀한 보물 네 종류를 일컫나니

阮髥識鑑當世彦 완당 노인 감식안은 당세에 으뜸일세.

海橽耽䔉檳樃葉 해남 생달(栍橽), 제주 수선(水仙), 빈랑(檳榔) 잎 황차(黃茶)러니

與之相埓無貴賤 더불어 서로 겨뤄 귀천을 못 가르리.

草衣上人齎以送 초의 스님 가져와서 선물로 드리니

山房緘字尊養硯 산방에서 봉한 편지 양연(養硯) 댁에 놓였었지.

我曾眇少從老長 내 일찍이 어려서 어른들을 좇을 적에

波分一椀意眷眷 은혜로이 한잔 마셔 마음이 애틋했네.

後遊完山求不得 훗날 전주 놀러가서 구해도 얻지 못해

幾載林下留餘戀 여러 해를 임하(林下)에서 남은 미련 있었다네.

鏡釋忽投一包裹 고경(古鏡) 스님 홀연히 차 한 봉지 던져주니

圓非蔗餹餠非茜 둥글지만 엿 아니요, 떡인데도 붉지 않네.

貫之以索疊而疊 끈에다 이를 꿰어 꾸러미로 포개니

纍纍薄薄百十片 주렁주렁 달린 것이 일백 열 조각일세.

岸幘褰袖快開函 두건 벗고 소매 걷어 서둘러 함을 열자

床前散落曾所眄 상 앞에 흩어진 것 예전 본 그것일세.

石鼎撑煮新汲水 돌솥에 끓이려고 새로 물을 길어오고

立命童竪促火扇 더벅머리 아이 시켜 불 부채를 재촉했지.

百沸千沸蟹眼湧 백 번 천 번 끊고 나자 해안(蟹眼)이 솟구치고

一點二點雀舌揀 한 점 두 점 작설(雀舌)이 풀어져 보이누나.

胸膈淸爽齒根甘 막힌 가슴 뻥 뚫리고 잇뿌리가 달콤하니

知心友人恨不遍 마음 아는 벗님네가 많지 않음 안타깝다.

山谷詩送坡老歸 황산곡(黃山谷)은 차시(茶詩) 지어 동파 노인 전송하니

未聞普茶一盞餞 보림사 한잔 차로 전별했단 말 못 들었네.

鴻漸經爲瓷人沽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은 도공(陶公)이 팔았으나

未聞普茶參入撰 보림사 차를 넣어 시 지었단 말 못 들었네.

瀋肆普茶價最高 심양 시장 보이차(普洱茶)는 그 값이 가장 비싸

一封換取一疋絹 한 봉지에 비단 한 필 맞바꿔야 산다 하지.

薊北酪漿魚汁腴 계주(薊州) 북쪽 낙장(酪漿)과 기름진 어즙(魚汁)은

呼茗爲奴俱供膳 차를 일러 종을 삼고 함께 차려 권한다네.

最是海左普林寺 가장 좋긴 우리나라 전라도의 보림사니

雲脚不憂聚乳面 운각(雲脚)에 유면(乳面)이 모여듦 걱정 없네.

除煩去膩世固不可無 번열(煩熱)과 기름기 없애 세상에 꼭 필요하니

我産自足彼不羨 보림차면 충분하여 보이차가 안 부럽다.


죽로차는 앞서 「호남사종」에서 말한 보림사 죽전차(竹田茶)의 다른 이름이다. 보림사 대밭에 차가 많이 자라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게 차인 줄도 모르고 잡풀 보듯 한다고 했다. 그것을 다산이 와서 보고 절의 승려들에게 차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어 비로소 보림사 죽전차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곡우 이전의 일창일기(一槍一旗)의 여린 잎만 골라 딴 것을 구리 시루로 찌고 대소쿠리로 말려 구증구포를 거쳤다. ‘아침(芽針)’만을 골라 뭉쳐 쥐면 마치 머리카락이 엇짜인듯 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다산처럼 방아를 찧어 가루로 만든 것은 아니다. 한 점 두 점 작설이 풀어져 보인다고 한 데서, 구증구포한 일창일기 여린 찻잎을 쪄낸 후 그대로 뭉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유원이 마신 보림사의 죽로차는 대나무 발로 짠 작은 그릇에 담아 ‘우전’이란 상표까지 붙인 최고급의 떡차였다.


이유원은 젊은 시절 자하 신위의 집에서 초의가 자하에게 선물로 준 보림사 죽로차를 마신 적이 있었다. 그 후 백방으로 그 차를 구했으나 다시는 마셔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고경 스님이 찾아와 차 한 봉지를 선물하였다. 둥근 떡을 실로 꿰어 꾸러미로 만들었는데, 세어 보니 떡차가 110개였다. 차를 마신 소감은 막힌 가슴이 뻥 뚫리고 잇뿌리에 단맛이 감돌더라고 했다. 효능은 번열과 기름기를 제거해준다고 적었다. 이유원은 『임하필기』에서 중국의 보이차에 대해서도 자세한 언급을 남긴 바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마셔본 결과 보림사의 죽로차가 결코 중국의 고급 보이차에 못지 않은 품질을 지녔다고 단언하였다. 그래서 그 맛을 기려 후대의 증언을 위해 보림사의 죽로차를 기록으로 남긴다고 했다.


증쇄를 거듭할수록 차의 독성이 눅는다. 냉한 성질이 따습게 변한다. 향과 맛이 부드러워진다. 다산은 이러한 약리를 잘 알았다. 이러한 제다법은 확실히 약용으로 차를 음용하던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 위 시를 통해 이유원이 「호남사종」에서 말한 구증구포로 법제한 보림사의 죽전차, 또는 죽로차는 잎차 아닌 떡차임이 더 확실해졌다. 또 다산이 처음 제다법을 알려주었다는 보림사 죽로차를 초의가 그 방식대로 만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초의차 또한 다산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제시대로 이어진 떡차 제법

보림사의 구증구포 죽로차가 떡차였다는 사실은 조선의 차에 관심이 많았던 모로오까 다모쓰(諸岡 存, 1879-1946)와 이에이리 가즈오(家入一雄 1900-1982)가 1938년 전남 나주군 다도면 불회사와 장흥 보림사 등을 직접 답사하여 조사한 결과와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답사기에 수록된 불회사의 전차[磚茶] 제다방법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차를 만드는 기본은 순을 딴 뒤의 남은 잎을 채취해서 이것을 하루 안에 3,4회 찐(찐 것을 방안에 얇게 펴서 식히는 정도로 하여 찌며, 찌는 횟수가 많을수록 향기와 맛이 좋다) 것을 절구에 넣고 끈적끈적하게 충분히 찧은 뒤, 지름 아홉 푼(약 2.3cm), 두께 두 푼(약 0.5cm)이 되게 손으로 눌러 덩어리 모양으로 굳히고, 이 복판의 작은 구멍에 새끼를 꿰어서 그늘에 말리며 될 수 있는 대로 짧은 기간에 만들어 사용한다.


몇 번을 찌든 차 잎을 딴 그날 낮과 밤 안에 여러 번을 찌는데, 찌는 횟수가 많을수록 향기와 맛이 좋아진다고 언급한 사실이 흥미롭다. 또한 완전히 건조시키지 않고, 찐 것을 방안에 얇게 펴서 뜨거운 기운을 식히는 정도로만 말린다. 이렇게 여러 번 찌고 말리는 일을 반복하는 이유는 향과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다. 여러 차례 찌고 말리기를 되풀이한 뒤에 비로소 절구에 넣고 끈적끈적해질 때까지 찧는다. 찌는 회수를 3,4회 정도라고 했는데, 앞서 본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 다산의 떡차 제조법과 한 치의 차이가 없다. 또 당시 보고서에는 보림사의 청태전(靑苔錢) 제조 방법도 보인다.


이(보림사) 부근에서는 청태전을 보통 차라고 하여, 1919년경까지 부락 사람들이 만들었으나, 그 뒤 작설차(雀舌茶)를 마시게 되면서 만들지 않는다. (중략) 가져온 날잎차는 곧장 가마에 넣고 쪄서 잎이 연하게 되면 잎을 꺼내(찻잎이 누런 빛깔을 띨 무렵) 절구에 넣고 손공이로 찧는다. 찧을 때는 떡을 만드는 것처럼 잘 찧는다. 이때 물기가 많으면 펴서 조금 말리고, 굳히기에 알맞게 되었을 무렵, 두꺼운 널빤지 위에서 내경 두 치(6cm), 두께 5리(0.15cm), 높이 1푼 6리(0.48cm) 가량의 대나무 테에 될 수 있는 대로 짜임새가 촘촘한 얇은 천(무명)을 물에 적셔서 손으로 잘 짜서 펴고, 그 안에 찧은 차를 넣고, 가볍고 평평하게 엄지 손가락으로 눌러 붙인다. 그것이 조금 굳어갈 때에 꺼내서 자리 위 또는 평평한 대바구니 위에 얹고 햇볕에 쬐어 절반쯤 말랐을 무렵에 대곶이로 복판에 구멍을 뚫는다. 잘 마른 다음 곶이를 꿰면 차가 부서지므로, 연할 때에 하나씩 꿴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그 날 안에 말리도록 한다.


찐 차 잎을 절구에 찧고 말리는 과정 또한 다산의 방법과 같다. 대나무 통을 얇게 잘라 차 잎을 담을 틀을 만들고, 거기에 찧은 차를 눌러 담아 말렸다. 당시 보고서에는 50년도 더 된 청태전이 이 마을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언급도 있다. 다산 이래로 초의가 만들고 이유원이 마셨던 죽로차를 거쳐, 보림사 인근에서 생산된 청태전, 즉 떡차는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던 셈이다.


다산은 구증구포가 차의 강한 성질을 감쇄시키기 위함이라고 했고, 위 글에서는 차의 향과 맛을 더 좋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증포를 거듭하면 강한 성질이 감쇄되면서 향과 맛이 순하고 부드러워진다. 이유원은 위 시에서 차를 마시자 막힌 가슴이 뻥 뚫리고 잇뿌리에 단맛이 감돌더라고 해서 이를 뒷받침했다.

구증구포는 여러 차례 되풀이한다는 의미이지, 꼭 숫자를 세어 아홉 번 하란 말이 아니다. 9는 만수(滿數)이므로, 여러 번의 뜻으로 흔히 쓴다. 이렇게 본다면 다산이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에서 ‘삼증삼쇄(三蒸三曬)’로 횟수를 줄여 말한 것도 이해가 된다. 다산이 말한 구증구포는 꼭 숫자를 헤아려 아홉 번을 말한 것은 아니었고, 3회 이상 여러 차례 찌고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는 의미로 보아 무리가 없겠다. 즉 다산이 만년에 횟수를 줄이는 쪽으로 견해를 수정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를 오늘날의 구증구포설처럼 교조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다산이 직접 말한 증거가 나왔으니 구증구포는 마땅히 삼증삼쇄로 바뀌어야 옳다. 하지만 찌는 횟수가 몇 번이냐는 큰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이때 구증구포는 녹차 아닌 떡차를 전제로 한 언급이 아닌가?

이제껏 다산의 떡차론과 구증구포설을 살폈다. 다산이 통상 마신 차는 잎차 아닌 떡차였고, 구증구포로 법제한 차 또한 덖음 잎차가 아닌 떡차였다. 다산이 중국에서도 쓰지 않는 구증구포의 방법을 도입한 것은 당시 조선에서 차가 약용으로 사용된 것과 관련이 깊다. 또한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는 당시 조선의 식습관에 비추어 녹차는 성질이 너무 강해 위장에 강한 자극을 주고, 정기를 손상시킨다. 차의 냉한 성질을 감쇄시키고 떫은 맛을 부드럽게 하며 단맛을 강화시키는데 구증구포의 제다법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으리라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 연구자들의 과학적인 검토가 더 필요하겠다.


필자는 이글에서 다산 선생께서 마신 차가 떡차였으니,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차도 떡차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떡차는 진공 포장이나 냉장 보관을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당시에, 잎차를 덖을 경우 장마철을 넘기기도 전에 차가 발효되어 맛이 변해 버리는 상황에서 나온 제다 방법이었다. 떡차가 잎차보다 맛이 더 좋아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시대가 다르고 기술이 발전하면 제다법도 바뀌는 것이 마땅하다.


연암 박지원은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과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을 말했다. 옛 것을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더라도 능히 법도에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의 자취를 함부로 왜곡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전통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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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차예절 관련 단체에서는 전국 지회를 통해서 각 단체 고유의 행다법을 교육시키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지만, 차를 바르게 마시고 차로서 대접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 과정에서 차이는 있지만 차를 내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와 도구를 사용함에 있어서의 유연성,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는 방법 등을 배우게 된다. 최근 전국의 유치원에서는 다도예절반으로과목이 만들어진 곳이 많이 있으며 이곳으로 차마시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또 한 부모님의 참여프로그램도 많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지역민의 교양 프르그램 형식을 갖추고 있다.

대구세계차문화축제(2009년6월18일-21일) 기간 마지막 날에 열린 청소년 차예절겨루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엄수민(유치부), 유혜진(초등부), 김혜진(청소년부)은 축제위원회대회장상(대회장 이진수)을 받았다. 심사위원은 위원장 김태곤, 심사위원 박선우, 배계순, 김정규, 하태선으로 모두 대구에서 오랜기간 차회 활동을 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다례원 원장으로 구성되었다.

[차예절겨루기 대회에 참가한 원생, 왼쪽부터 명지유치원생과 금강유치원생] 이번 차예절 겨루기대회에서 금강유치원 원생 3명이 대상과 최우수상, 장려상을 모두 수상하였다(5번, 6번, 7번).
[사진 위, 대구 시내 유치원생으로 청소년 티를 내는 유아생]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청소년부 등으로 나누어 시행되는 차겨루기 대회는 어떤 행다법을 하드라도 교육받은 대로 하기 때문에 실제 행다법의 순서나 다구배치에는 교육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순서가 다르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유치원생부터 차예절을 익힌 아이는 가정에서도 쉽게 차생활에 적응하며 차를 마시면서 사회성도 넓혀나가게 되는 좋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차 예절 겨루기 대회는 전국에서 각 단체마다 시행되고 있다.

[부모마음은 누구나 같습니다]

[심사위원 좌, 하태선, 배계순, 김태곤(심사위원장), 박선우, 김정규]

차예절겨루기 대회는 매회 참가유치원이 늘어가고 있으며, 부모님의 관심이 많은 분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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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차도구 관련 전시는 많이 있다. 대부분이 현대 도예가의 작품이다. 최근에는 차도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차도구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전업작가가 생겨나고 있다.

그렇게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의 확산은 우리 차계에서 활동하는 무지의 차인들에 의해서 더욱 양산되고 있다.

홍차가 유행이다고 하면서 홍차도구는 판에 박힌 것에 몰두하고 있고 한국에서 즐길 수 있는 홍차에 대한 개념은 유럽홍차여야 한다는 전재하에 활동하다 보니 이러한 현상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나라에서나 도구의 사용에서는 충돌이 생긴다. 차 자체가 좋은데 도구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개념의 차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안목이 깊은 분들은 그런 것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도구 전시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홍차용 다기가 많은 전시가 있다. 6월 18일부터 22일까지 전시하는 고미술, 불교미술품과 차도구 판매전이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 내 나무갤러리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차도구 품목은 국소적인 면이 있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취급한 엔틱으로서의 홍차 다기를 자주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서 청대의 홍차용 찻잔과 다호를 감상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전시는 가헌아트. 고전문화. 고하. 풍경. 미감예감. 엔틱아시아. 해인가 등에서 공동 주최하는 것으로 불교미술품 전문화랑과 차도구 관련 전문점이 공동으로 개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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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의 맛은 일상의 음식에서 찾는 것과는 다른 맛이다. 차에 대한 초심자인 경우는 보이차의 이름만 가지고는 맛의 특징을 찾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보이차의 마니아라면 흔히 말하는 옛날 골동급의 보이차는 그 이름만으로도 고유의 맛을 알 수 있다.

보이차의 맛을 논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좋은 차를 많이 마셔본 경험을 통해서 일것이다. 거대한 자연 환경에 순응해서 나오는 찻잎을 보며, 마음으로 인사 나눌 수 있고, 차를 만드는 현장에서 찻잎의 변신을 보며, 차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된다. 보이차는 다른 녹차나 백차, 홍차와 달리 발효가 잘 될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을 갖추고 보낸 세월만큼 차는 정직한 [람인산차를 내는 김경우 대표]                                    맛을 내어준다. 요즘은 흔히 골동보이차라고 하는 차의 유통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재현해 오는 차라고 볼 수 있다. 재현한 차가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옛날 차의 특징을 내는 그 차 고유의 맛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로들면, 옛날 보이차 중에서는 유독 홍인을 재현하여 만든 병차, 산차들이 많다.

[사진 위, 포장된 차는 람인산차(藍印散茶)]]

그런데 재현한 사람들이 과연 홍인을 한번이라도 맛 보고 재현하였는지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홍인은 고유의 향과 맛이 있다. 홍인 고유의 대표적인 맛이라면 고삽미(쌉쌀한 맛)가 상당히 풍부하다. 고삽미는 세월을 거쳐 잘 익어 장향이 풍부하며 마시고 난 후 혀밑에서 올라오는 맛과 여운들이 보이차의 진미를 느끼기엔 손색이 없는 보이차의 대명사이다. 이런 차를 두 사람이 조용히 맛을 음미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6월14일 오전 11시 30분에 명가원에 도착했다. 휴일 이 시간 쯤에는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늘 만나는 사람이 있다. 나도 휴일마다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휴일에 나가는 날에는 만나게 되는 확률이 많다. 오늘도 그분이 오셨지만, 손님이 계셔서 우리만이 통하는 이야기를 못하게 되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대만에서 들여온 봉황단총 차를 김사장과 둘이서 마셨다. 나도 일어날 시간이 되어 카메라 가방을 챙길 즈음에 김사장이 오늘 맛있는 차, 진하게 한 잔 할까요 한다. 그러면서 ‘남인산차’라는 큰 글씨가 있는 봉투를 꺼내어 차를 다호에 넣었다. ‘람인산차’라고 되어 있지만 나는 이제까지 병차는 보았지만 산차 형태로는 처음이라서 차의 출처를 물었다. 김사장은 원래 이 차가 대만에서 올 때는 황인이라고 들어왔는데 차 맛을 보고 남인 고유의 특징에 더 가깝기 때문에 “람인산차”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차에서는 요즘 만나기 어려운 잘 익은 고삽미가 입안 가득한데, 홍인에서 나는 고삽미와는 분명히 달랐다. 홍인에서 나는 강렬한 맛보다 한 옥타브 낮은 것이 람인의 특징이며 이 차에서 나는 이러한 고삽미도  남인의 특징을 지녔기 때문에 "람인산차"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과거 2-3년 전만해도 농익은 고삽미가 나는 차를 접하는 기회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만나기 어려운 차였다. 모처럼 차의 이름과는 상관없이 홍인이든, 남인이든  “람인산차”라고 하는 차 맛을 보면서 느낀 점은 아무리 차가 귀하다고 해도 인연에 의해서 만날 수 있고, 외국에서 차 이름이 잘못 만들어져 한국에 들어와도 안목있는 사람에 의해서 바르게 고쳐질 수 있다는 것은 최근 5-6년간 중국차 붐이 생기면서 중국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고 더 깊은 내용을 다룰 수있는 인프라가 응집되어 나온 차계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 위, 명가원 김경우 대표: 차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차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 끼리는  모든 것이 간소하다. 이 날도 차와 다호, 찻잔 만이 그 차의 풍미를 극도로 끌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차를 내는 사람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에 대한 것으로, 차의 진정성을 알고 마시는 사람들의 찻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풍경의 하나이다]

차는 공간적 보존 상태에 따라서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는 체험 뿐만이 아니라, 차농의 힘겨운 삶과 따뜻한 세상을 모두 느끼면서 차가 지닌 세월이 안겨 주는 맛, 함께 나누는 맛을 음미하게 된다.

오늘 마신 이 차 보다도 더 좋은 차들이 많이 있지만 우린 항상  “가격대비” 품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것이 이해될 수있는 가격으로 형성되고, 신뢰와 믿음으로 차를 선택한다면, 이 차는 가격 대비로 병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차 맛을 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하나의 브랜드를 가진 차 맛을 경험하는 과정은 새로운 맛을 즐기는 여행과 같다. ‘람인산차’를 관념적이거나 감성적인 맛이 아닌 고삽미가 풍족한 울림의 맛으로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2000.06.14 15:00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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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시차(蟲屎茶) - 중국은 나라가 크고 인구가 많으며 수백 종의 차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이름만 들었을 때거북할 것 같은 차들도 있다. 용주차(龍珠茶)라고도 하는 충시차는 화향아(化香蛾)라는 곤총이 화향나무 등의 잎을 먹고 배설한 배설물을 솥에서 덖어 차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특이한 차가 생겨나 사람들이 마시기 시작한 유래로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1. 귀주성 적수시의 전설로는 옛날 산골에 살고 있는 화향나무를 삶아서 먹었는데, 어느날 쌓아둔 화향나무에 벌레가 생긴 것을 보고 벌레의 배설물까지 끓여서 마시게 되었는데 의외로 향기가 좋아 좋아서 그 후로 충시차를 마시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2. 호남성 성보현의 묘족들이 봉건 통치에 불만을 품고 봉기를 일으키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군대를 파견하고 진압하게 되는데 묘족들은 산속에서 숨어 살게 되었다. 극심한 가뭄으로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화향나무의 나뭇잎에 벌레먹은 잎과 배설물을 끓여 마셨는데 맛이 좋아서 그 후 계속해서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충시차(용주차)를 뜨거운 물에 우려낸다]    충시차가 만들어지는 현지에서는 일반적으로 마시는 차와 같이 차를 넣고 물을 넣는 것이 아니라 물을 따르고 충시차를 손으로 집어 넣는다. 그러면 한 알씩 갈홍색이 우러난다. 충시차 특유의 향이 있지만 일반적인 차에서 나오는 단맛 과는 다른 맛이 입안에서 감돈다. 이런 차를 현지인들은 상비약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충시차는 차나무 잎을 먹고 배설한 것일까?

찻잎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왜 차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옛날에는 화향나무를 '백차나무'라고도 불렀다 한다. 그래서 화향아(化香蛾) 곤충이 이 백차나무의 잎을 먹고 배설하였기에 '충시차'라는 이름이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충시차는 약용보건차로서 충시차를 생산하는 현지에서는 충시차가 중요한 차로 인식되고 있다. 홍콩이나 대만 사람들도 충시차에 대한 인기는 좋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생산되는 화향나무잎을 갈가 먹고 배설한 것 보다는 실제 보이차 찻잎을 갈가먹고 배설한 충시차를 애호하는 편이다. 실제 그런 차는 생산량이 극히 적기 때문에 많이 보급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풍천다원 주인, 보이차에서 나온 충시차를 찻숟가락으로 차통에서 조금 들어내어 넣고 있다]

중국에서 말하는 충시차는 실제 현장에서 보았을 때, 옛날 우리나라 60년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각 가정에 하나씩 있는 나무 쌀독안에 화향나무를 가득넣어두고 뚜껑을 덮어놓고 있었다. 벌레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무잎 뿐이며 배설물은 엉켜있다. 이것을 소비자에게 건네지기 위해서는 손으로 한 웅큼씩 덜어내어 채반으로 쳐서 작은 가마솥이나 옴푹한 주방기구에 열을 가하는 등등의 특이한 과정이 있다. 현지 사람들이 상비약으로 두는 이유는 소화기능에 좋고 변변에 좋으며 해열과. 설사, 출혈, 치질에도 좋다고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자금까지 즐기고 있다.

그런 충시차가 실제 보이차 세계에서 족보를 가지고 있는 인급, 호급 보이차에서 생긴 것이라면 입장은 달라진다. 6월 8일 부산 해운대에 있는 중국차 전문점 풍천다원(대표 배철권)에서 배씨가 맛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러한 차를 중국, 대만에서 여러종류의 차를 마셔보았다. 특히 현지에서 구매한 차는 오랫동안 마시면서 특유의 맛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오랫동안 숙성한 보이차에서 나온 충시차는 담백한 단 맛이 나왔다. 아주 진하게 마셔보았는데 거북한 맛이 나지 않고 벌레먹은 차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 색다른 맛이다. 홍콩 보이차 전문 상인으로 부터 구입했다고 한다. 맛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하다.

현장 체험을 한 사람만이 기억하는 맛이 있다. 나는 기호의 맛이 아니라 체험의 맛을 느끼고 그 맛의 저장고를 매일 넓혀가고 있다. 그래서 분석의 맛보다 내가 간직한 맛의 저장고에서 품어져 나온 맛을 믿는다. 이전에 마셔온 충시차 맛과는 다른 맛을 나의 저장고에 보관해 두고 싶은 차이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 http://seoku.com/44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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