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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 해를 보내면서 지유명차에서는 보이차 관련 블로그나 커피와 차에 관해서 활동 하는 분들을 초대하여 <‘전설의 차(茶)’와 함께 하는 이색송년회>라는 이름으로 찻자리를 만들었다. 장소는 지유명차 서초점 아크로비스타 아케이트 로비층 120호에서다. 

사실 중국차 관련해서는 찻자리가 참 많이 생기고 있다. 최근 추세는 좋은 차를 마시기 위해서 찻자리에 사용되는 차 값의 일부를 부담하는 형식으로 회비 10만원 정도 내고 있다. 회비를 10만원 낼 때 주인은 꼭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많은 내용을 담고 나온다.

그래서 그 자리 만의 가치가 있었고 우리는 늘 기억하고 있다. 그 좋은 예로는 지금은 폐업하였지만 대구 자연주의 찻집에서 10회 찻자리가 있었던 “자연주의 찻자리”다. 어쩌면 그 때의 찻자리는 호급 인급 보이차를 마시는 자리로서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참석한 손님께 대접하는 차 값만 해도 회비로서는 충당되지 않았으며, 다식(茶食) 으로 준비한 음식 하나하나가 주인장의 정성과 격(格)이 묻어 나왔다.

주최측에서는 한 번도 그런 찻자리를 “전설”이라고 해본 적이 없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호급 인급 차를 평소에 마시거나 그 차의 맛과 가치에 대한 깊은 식견을 갖춘 사람들의 입에서 그 때의 찻자리는 이젠 “전설”이다고 한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필자에겐 그런 자리를 주선해달고 하는 분들이 있다.

 [지유명차 서초점 찻자리]

 

이번 지유명차 송년 차회는 주최측에서 스스로 “전설의 차”와 함께 라는 말을 하고 나왔다.

물론 마케팅차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전설의 차(茶)’와 함께 하는 이색송년회>에 참석 여부를 물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보이차라는 테마를 사업으로 연결하고 있는 지유명차가 기업차원에서 하는 홍보를 마케팅전문회사(무버먼한국)에 의뢰하였다는 점이 향후 차 산업 전체로 볼 때 긍정적으로 볼 수 있기에 참석여부에 흔쾌히 답변을 보냈다. 이 자리가 지유명차 보이차 홍보하는 자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어떤 격조로 다가갈 것인가? 그것이 궁금했다.

 

[서초점 내부 보이차 진열]

12월 17일 저녁 7:30분-9시까지 / 나를 포함해서 7명이다. 네이버나 다음에서 카페나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들이다. 자리에는 그날의 프로그램이 놓여있는데 1단계 차로는 보이차(포랑산청병) + 작가차호, 2단계: 보이차(간운숙병) + 작가차호, 3단계: 보이차(대남인) + 대사차호

처음 마신 차는 1998년, 맹해차창에서 만든 생차로서 판매 가격 350,000원으로 표기되어 있는 차다. 우리에게 배포된 자료에는 “포랑산청병은 ‘포랑산’이라는 지역에서 생산된 잎으로 만든 생차(청)이며, 병차(병)라는 뜻의 포랑산청병은 단일 차청으로 사용하여 차성이 강하고 맑은 맛이 특징이며 숙성기간이 마실만한 10년이므로 강력한 아린 맛을 즐기시는 분이나 저렴하게 좋은 차를 구매하고 오랜 숙성 후 최고의 차를 즐기시려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차다”.고 되어 있다.

 

그 차를 지유명차 김은주 점장이 직접 차를 내었다. 3-4잔 시음하고는 참석자에게 소감을 물었다. 참석하신 분 가운데 중국에서 차를 만드는 사정을 잘 아시는 한 분이 이의를 제기했다. “내가 이런 수준의 차를 마시기 위해서 일산에서 이곳까지 오지 않았다”. 그 분의 강단있는 말씀에 동감했다.

“포랑산청병” 실제적인 차 자체에 대해서는 그 차를 중국에서 구매해온 관계자들이 내밀한 부분을 더 잘 알 것이기에 필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다만, 지유명차에서 판매하는 최고가라고하는 “대남인(大藍印)”을 주인공으로 하고 찻자리를 만들었다면 워밍업으로 마시는 차라고 보기엔 함량미달이다. 두 번째 마신 차는 “간운숙병”이고, 세 번째 차는 지유명차 자료집에 보면, “전설의 차”라 불리는 대남인은 1960년대 중후반 운남성 서부지역인 봉경일대의 교목

대엽종 차엽을 사용해서 봉경차엽의 특징으로 약간 쓰고 거친 구감이 있으며, 부드러운 맛을 함께 지니고 농익은 약향과 단맛이 감도는 특징이 있다. 고 되어 있다. 이 날 참석하신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꼈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공이 부족하여 이 곳에서 어렵게 제공된 “대남인” 에 대해서는 훗날 좀 더 연구가 되었을 때 다루도록 하겠다.

 

 

[보이차 대남인]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지유명차”라고 하는 회사를 알리는 일은 어떤 말을 해도 광고이기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홍보가 잘되어 한국에서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회사가 성공한 기업으로 드러나는 것도 자랑일 수 있다. 그런데 차(茶) 자체를 가지고 이야기 할 때는 다르다. 이런 일을 야심차게 기획한 것은 좋지만 ‘차의 세계’를 너무 모르고 한 것 같다. 필자가 연말 그 바쁜 시기에 시간을 내어 갈 때의 작은 기대는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대남인을 대사급 자사호에 차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차를 많이 사용한 자사호(紫砂壺)를 이날 대남인을 위해 등장시켰다고 하며 참석자에게 호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거나, 작가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30년 정도의 나이를 먹은 수준 높은 주니호를 준비하여 오늘 노차는 이 호(壺)가 담당하겠습니다. 하는 말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보이차 대남인]

둘째는 차를 넣기에 앞서 우리가 마실 차의 원편을 보여주어 그동안 먹고 남은게 이것 뿐입니다는 말이라도 기대하고, 그 차 맛을 음미하는데 간섭을 주지 않을 찻잔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상상은 서울에서 기대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생각인 줄 다시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지만, 지유명차 서초점 자체는 우리가 흔히 쉽게 볼 수있는 찻집이 아니다. 고급스럽게 인테리어를 하여 우리나라 전통찻집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도심속에서 반듯하게 차려진 곳으로 차가 발전할 수 있는 차관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찻자리에 참석한 나의 시각이 좀 다르다고 지유명차를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보이차 시장을 이끌고 가는 지유명차가 좀 더 건강한 차로서 왜곡되지 않는 보이차로 대중에 다가가기를 기원하며, 향후 또 다른 형식으로 찻자리를 만든다면 좀 더 신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다. 비록 이날은 회비를 받지 않았지만 주변의 많은 차인들은 회비를 내고 돈을 지불한 만큼의 수준이 되는 찻자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도 장기적으로 고객을 만드는 역할이 될 것으로 본다.

장소 : 교대역 6번 출구로 나와서 곧장 10분간 가면 아크로비스타 아케이트 로비층 120호가 나온다. 그곳이 지유명차 서초점이다. 전화 02-3482-5634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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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운남 보이시에서 일을 마치고 곤명으로 나왔다. 택시로 장장 4시간 소요되는 거리다. 곤명의 다른 차시장에서도 일을 보고 우리는 처음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곤명에 가면 정숙희 선생님의 자매가 운영하는 ‘일명원’ 차 전문점에 가기로 약속을 한 바 있었다.

그곳에 가고 싶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정숙희 선생님의 자녀(자매)를 한국에서 대학을 보내지 않고 중국에 체류하며, 더구나 그것도 보이차를 전공하게끔 하였을까 하는 의문때문이기도 했다.

[사진, 운남전홍] 만남이 있었던 자리에는 정숙 선생님과 두 자매도 자리에 있었다. 공부하는 책상위에서 한국, 중국 서적이 뒤섞여 있었다. 그 공부가 그리 쉬운 과목은 아닐 것이리라. 일명원의 운영방식은 매일 사장이 교체되어 운영된다고 한다. 하루는 언니, 하루는 동생이 그 날의 사장이다. 참 흥미롭고 또한 현장에서의 강한 교육방식이기도 했다. 필자의 처음 생각은 과연 이러한 운영방식을 꾸준히 해 왔을 것인가에 맞춰졌다. 그러나 나약한 자매라는 한국식 개념을 뛰어넘어 두 자매는 충분히 한사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다름아닌 결과! 근처의 기존 중국인이 운영하는 차 전문점이 문을 닫고 나갔다고 한다.

오늘은 동생이 대표로 차를 낸다. 무슨 차를 원하느냐고 해서 운남전홍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저울을 가져온다. 학교 품평시간에 배운 그대로 하는 것 같다. 보통 알고는 있지만 실제 사용은 잘 안하는 편인데 이 장소에서는 모든 것이 습관이다. 본인도 운남전홍을 좋아하는데 올해는 좋은 차가 없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상급이라 하는 차를 내었다.

[사진, 좌에서 김소연(26), 정숙희(母, 52), 김남희(25)]

필자보다도 이 장소와 자매를 너무나도 궁금해 하던 분이 또 한 분 있었다. 그분은 다름아닌 동행이었던 이영자 선생님이시다. 어떻게 중국에서 자매가 운영하는 차전문점이 자리잡고 성공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많으셨다. 필자가 옆에서 지켜보건대 어머니의 모습과 자매의 아름다운 동작 하나하나는 이영자 선생님께 더할나위 없는 행복을 선사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저 남의 행복이 아니었다.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두의 행복이었다.

우리는 모두가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운남 전홍을 중국의 정확한 산지에서 참 맛을 모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왜 한국에서는 유럽의 홍차가 자리잡지 못하고 맴돌고 있을까? 일단 오늘 모인 사람들이 중국차 애호가이다 보니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첫째는 중국 홍차(기문홍차, 운남전홍, 정산소종 등)를 즐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잎을 파쇄하지 않은 차 만을 마시고 즐기는 분들이다. 지금은 유럽의 홍차라는 것이 마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지만 원류는 바로 이 홍차들이다. 굳이 비교해서 말하자면 잎 그대로 마시는 차엽들을 보는 이들과 티백에 담긴 분쇄차들을 즐기는 그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중국산 홍차를 즐기는 분들의 공통점은 홍차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요구하지도 않고 알고자하는 노력도 잘 하지 않는다. 홍차는 우리가 마시는 잎차가 홍차일 뿐 유럽으로 번져나가 여러 가지 감미를 더하고 우유까지 동원하는 것은 차의 본질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영국의 홍차문화를 배격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차꾼이라면 홍차는 그렇게 마시고 싶지 않을 뿐이다.(영국의 수준 높은 홍차와 격조 있는 찻자리 로 즐기는 분도 분명히 있지만 주변에서 보는 보편적 시각에서 볼 때)

보편적으로 중국홍차 생산지를 방문해 본 분들도 많은 편이거나 그 지역의 차를 현지인의 도움이나 지인들로부터 정확한 차를 구해서 마신다. 어디에서 만든 것인가 하는 회사 이름은 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해의 농사가 잘 된 것인가 아닌가를 따진다. 이렇게 서로 생각을 나누며 마실 때, 곤명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오은숙씨가 자리에 같이하게 되었다. 전에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미생물 발효균을 연구하는 분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 있는 연구소에서 더 중요하고 급한 일들이 있다고 잠시 학업을 접고 한국에 들어간다고 한다. 우리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역해주신 박미영 학생도 보이차 학과 석사과정 졸업반이다. 정말 자연스럽게 발효라고 하는 차에 대해서 일가견을 가진 분들이 만났다. 자연 이야기는 풍성해졌고, 좋은 차들과 함께했기에 좌중은 정홍, 보이타차, 보이전차를 마셨다.

이 모임이 있었던 일명원, 이곳에서 한국 유학생에게 주는 메시지도 다양하리라 여겨진다. 현재처럼 모범적일 때 더 큰 파장이 예상되었다. 잠시 머물렀던 시간이나마 저 먼 곤명에서 한국인이 보이차를 전공하고 보이차 전문점에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은 훗날 기록되어 질 것이 분명하다. 아니 필자가 그 사실을 지금 기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업(成業) 되는 이유는 성실함을 기본으로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보이차를 전공하는 학생이기에 필자를 비롯한 제 3 자가 볼 때는 전문가가 운영하는 집으로 보기 때문이다.

2009년 이 글을 쓰면서 정숙희 선생께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요즘 일명원의 근황을, 작년 12월 더 많은 공부를 위해서 일명원을 접었다고 한다. 큰 딸은 보이차를 전공하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둘째는 경덕진에서 도자기 전공으로 대학원에 갔다고 한다. 이제 방학이 되면 석우연담 “차를 향한 눈”에서 그들 두 자매의 인터뷰를 담아 보겠다.

차도구의 이해 http://seoku.com/625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
http://seoku.com/44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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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한국에서 중국 다예사 시험에 대비한 차인들이 많았다. 기존 차 선생님들 조차 중국 다예사 자격증의 필요성을 염두에 두었는지 국내에서 일정 교육을 받고 중국에 가서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다.

외국 사람들 가운데 유독 한국 사람들이 지원을 많이 하였기에 현지인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치루어진 시험이라고 보기에는 합격률이 너무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체로 지원하여 통역의 도움을 받아 시험을 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그렇게 할 경우 스스로 자격증에 상실감을 가져올 수도 있다.

자격증을 받는 것 보다는 실제 그나라 말과 글로 현지인과 동일한 규정에서 시험을 치고 중국어로 한 중 일 차문화사에 대한 레포트를 제출하여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있다. 중국에서 차학과 박사과정을 마친 분들은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언어와 실력이 겸비되어 자연스럽게 취득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학기에 고급다예사, 고급품평사(평차원) 두가지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서울 오명진, 포항 김용희 선생이다. 이 두 선생님이 두가지 자격증을 취득하였다고 대단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차에 대한 공부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점을 필자는 잘 알고 있기에 중국 다예라고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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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무이산 동목촉에서 생산되는 정산소종홍차 실험실에서 처음 만난 금준미의 가격이 한 근에 1600위안인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정산소종 홍차 가격보다 몇 배 비싸게 판매되는 것으로 그것을 구입해서 사진 작업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2007년에는 2,500위안이다 그래서 또 못했다. 2008년에는 3,000위안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같이 구입해서 사진 작업을 하였다. 2009년 11월 무이산 시내에서 판매되는 금준미는 50g 880위안 또는 100g 한 통에 1600위안이다. 그 들의 유통 방식인 한 근 단위로 보면 8,000위안(원화 130만원)이다.

세계적인 명차라고 한는 정산소종은 특급이라고 해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매년 찻값이 오르지도 않는다. 금준미나 은준미 같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 중국 홍차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수긍할 수 있는 가격이다 그런데 “금준미와 은준미”를 만들어 그들은 기막힌 마케팅 방식으로 매년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다. 올해 구입하지 못하면 못 마실 것 같아서 구입하는 사람도 있고, 중국홍차 애호가로부터 입소문으로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더욱 극성이다. 2009년 11월 22일 저녁 무이산 시내의 중국 정산소종홍차 전문점에서 가장 자랑하는 차를 시음하며 느낀 점이다. 차 맛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마케팅 방식이 특별하였다.

[사진, 정산소종홍차 금준미 100g 단위 통, 100년 노총수선 100g 차통]

 

입하고자 하는 사람과 같이 시음하였지만 용납될 수 없는 가격에 돌아섰다. 건차에서의 차 향기와 외형, 엽저의 상태로 보아서 이 차가 가격을 떠나서 최상급일 수 있는 요건이 되지 못하다는 생각에 미련을 둘 수 없었다.

짧은 시간에 흥정없이 일어나는 우리를 사장은 호텔에까지 데려다주었다. 23일 오후, 전날 함께 시음한 제주도 차세상 이정주 선생은 다른 곳에서 맛과 향이 더 뛰어나면서도 착한 가격에 구입했다고 좋아하시는 것을 보았다. 차인들이 외국에서 좋은 차를 적정한 가격에 구매할 때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되고 그것이 축적될수록 자신의 안목을 믿게 된다.

차는 가격의 높고 낮음에 차별을 두는 것이 아니라 더 뛰어난 풍미를 가지고 맛과 향이 좋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루고자 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그런데 차 전문점이라고 한 곳에서 너무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가격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 귀국할 때 중국 동방항공 비행기 안에서 면세품 책자에 나온 베리나인 골드 21년 가격을 보았다. 640위안이다. 차와 술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날 만큼은 본질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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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성주사에서 찻자리 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창원 삼소방에서 듣게 되었다. 최근 창원을 몇 차례 다니면서 가까운 사찰에서 그러한 행사가 있다는 소식에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지역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차회 활동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사찰에서의 행사이기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삼소방으로 가서 이창희 사장님과 같이 성주사에 가기로 하고 서울에서 내려갔다. 그곳에서 몇 차례 뵌 적이 있는 손님의 차를 타고 사찰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약간 추운 듯 하였는데 사찰 주변 분위기로는 차에 관한 어떠한 행사도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조용하였다.

이창희 사장은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법당에서 한다고 하신다. 안에 들어가 보니 입구에서부터 여느 찻자리의 모습과 비슷한 유형으로 자리가 바닥에 깔려 있다. 오른 쪽의 첫 번째 두 번째 찻자리[사진, 윤은주 님의 홍차 찻자리] 주인은 이번 일에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 볼 수 있는 도구의 배치와 어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찻자리를 보고 지나가는데 저 끝 쪽에서 많이 본 얼굴이기에 자세히 보니까 삼소방 사모님(윤은주)의 홍차 찻자리가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앉은 면적의 3배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사찰의 다도반 회원들에게 미움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찻자리에 참가하는 많은 회원들의 자리 배분을 볼 때 분명 튀는 자리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보수적인 사고로 생각하면 한국차 내는 자리도 아니면서 말이다. 왼쪽으로 돌아보니 메뉴는 모두 비슷하다. 우리나라 황차라고 자랑하는 이가 많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 물었다. 왜 황차를 가지고 나왔는가 하고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답변이다. 중국 발효차는 보이차인데 보이차는 가짜가 많다고 하는 것과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녹차로 발효시킨 황차 만든 것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녹차보다는 황차를 많이 준비한 것 같다. 사이사이에는 연차도 있고 녹차를 내는 분도 있었다. 창원 지역의 사람들은 아는 얼굴이 잘 없었다. 가끔 학교 졸업생이나 학생들은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조금 있으니 여자 가수 한 명이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모두 조용한 가운데 연주하는 쪽으로 사람이 모였다. 그제야 나는 홍차가 있는 찻자리에 앉아서 차를 요청했다.

삼소방 사모님은 그날 머리와 옷을 잘 갖추어 오신 것 같다. 찾아온 손님에게 최대한 예를 갖추고 차를 내는 모습이 능숙하게 보였다. 처음 마시는 차는 웨지우드 다기에 얼그레이를, 두 번째는 로얄 밀크티를 내는데 그것은 코펜하겐 찻그릇에 담아 내고 준비하는 것을 보면 홍차를 일상에서 늘 마시는 사람 같은 분위기였다. 차를 내는 중간중간에 코지를 사용하기도 하고 다식으로 준비한 것도 홍차를 맛나게 마실 수 있는 종류로 하나하나 정성이 묻어나 보였다.

행사에서의 아쉬운 점은 홍차를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도구와 차가 준비된 것처럼 한국차와 일본차 중국차도 하나의 찻자리는 조금 신경을 써서 준비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행사를 마치고 주지 원정 스님과의 짧은 인터뷰를 했다. 스님은 이런 행사를 12년째 하고 있는데 매년 하는 이유는, 사찰이 가지는 지역 사회의 역할에서 신도들이 시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 사찰내의 다도반을 통해서 부처님께 차 공양을 하고, 본인 스스로도 차를 통해서 불심이 깊어지고 문화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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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차 견문록을 준비하면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많은 사진을 정리하였다. 그 가운데 지난날의 추억을 되새기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하였다. 북경에서 한국인이 많아 찾아가는 곳에 있는 사진 갤러리다. 중국에서 외국인이 찾기에는 어려운 사진갤러리다. 최근에 몇 년간 북경을 가더라도 반가원 시장을 가본적은 없다. 그런데 오늘 그 당시의 기록물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사진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이야기 하고자 한다.

[2005년 2월에 촬영한 사진 갤러리안에서] 북경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세계적인 큰 도시이며, 차와 관련해서는 중국 차시장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차 관련 업을 하는 사람들은 북경에 도착하여 바로 가는 곳은 마렌도(馬蓮道) 시장이다. 그곳에서 일을 보고 다른 도시로의 이동을 위한 교통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의흥에서 북경으로 가거나 전혀 다른 곳에서 찻에 관한 일을 보고 북경을 거쳐 귀국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에는 중국의 보이차와 오룡차에 대해서 생산하는 현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과거와는 달리 보이차나 오룡차류의 정보도 매우 북경 차상인들에 의해  나올 수 있을 만큼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의 마렌도 차 시장의 흐름은 중국의 차시장을 보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곳이다.

북경 마렌도 차시장을 갈 때는 명가원 김 사장과 동행할 때의 일이다. 북경에서는 또 하나의 큰 시장으로 북경 공항에서 동남쪽으로 30km 지점에 자리한 반가원(潘家園)이 있다. 그곳은 매주 금, 토, 일 3일간 한족을 포함하여 소수민족의 생활용품을 비롯한 문방사보, 고서화, 도자기 등이 판매되는 곳이다. 그곳에도 여러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김 사장과는 만날 시간을 정하고 각자 관심 있는 곳을 찾아다닌 후에 합류하기로 하였다.

난, 그곳에서 우연히 중국의 지나온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사진 갤러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오랜 역사속의 사진을 걸어 놓고 판매하는 곳이다. 나도 사진을 좋아하기에 이곳에서 사진을 한 장씩 구입하는 재미 또한 솔솔한 편이었다. 처음엔 차 마시는 사진을 찾기 위해서 들어왔다가, 차와 관련 있는 사진을 한 장도 얻지 못했지만, 이곳은 내가 반가원 시장을 방문할 때 마다 꼭 들르는 곳이었다.

이 사진 갤러리는 중국 돈으로 130위안에서 200위안(1위안 : 150원)으로 사진을 구매할 수 있는, 내 마음속 한 곳에 감동을 주는 곳이기에 지금도 그 갤러리를 생각하곤 한다. 2005년 2월 6번 째 방문할 때 이젠 안면이 있어서인지 주인은 나에게 기념으로 사진 한 장을 촬영해 주었다. 중국에서 차문화와 관련한 사진 찾는 것은 포기했지만, 지난 세월동안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차에 관한 사진들을 정리하여 차문화사에서 바른 역사를 기록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에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하는 것 같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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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차관련 행사에 큰 비중을 갖고 있는 부산 국제 차, 공예 박람회가 4회 째를 맞이 하였다. 차인들에게 좋은 정보와 큰 장을 열어서 부산 경남 상인들과 도예가들에게 상품이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여, 차인들은 이 날을 기다리고 찾아가는 즐거움이 많을 것으로 본다. 필자는 행사 이틀째 되는 날인 11월 6일 오후 2시에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 행사에서 저자 사인회가 있다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모두 네사람이 최근 저술한 책을 독자들에게 선보이면서 직접 사인을 받는 행사는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행사장에서 본 저자 사인회는 행사일정에 구색으로 갖추었지 저자의 사인회를 위한 준비가 없어 보였다. 오늘 날자로 사인회를 한다고 공지한 저자는 전체 4명중에서 3명으로 장소도 제각각이고 그 중 한 분은 사인 받을 독자가 없어서 심심해서 그랬는지 무대 행사를 보고 있거나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런 경우 저자 사인회라고 날짜와 시간을 명시한 주최측의 무성의가 드러나 보였다. 진정 저자를 위하고 차문화 발전을 위해 이런 대규모 행사를 한다고 하면 저자 사인회도 별개의 행사로 여겨야 될 것이다. 행사장의 휴게실 같은 분위기에서 자리만 배정해두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최측은 알고 있어야 한다.

행사 안내문이나 공지로 발표하는 것으로 끝낸다면 지방이나 서울에서 참석한 저자에게 가혹한 일이다.

저자 사인회를 1시부터 5시까지로 늘려 잡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1시간이나 2시간만이라도 시간을 정해서 이 행사에 집중할 수 있게 행사장에서 관심을 끌 수 있도록하고 저자 사인회 시간에는 보조하는 인원이 배치되어야 사인회다운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과 같은 저자 사인회는 진정 저자의 좋은 책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남는 일이다.

똑 같은 시간에 한 사람은 별도의 부스를 가지고 저자의 회원들이 손님께 차 대접을 하면서 책에 대한 설명과 안내가 뒤따르고 시간 차는 있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인을 받는 모습과 너무 대조되는 일을 보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부산국제차공예박람회의 발전을 기원하는 바램으로 하는 말이다.

차와 공예문화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이번 행사에서 저자 사인회는 5일부터 8일까지 계속된다

⑴[茶經]김진숙(중국절강대학 차학박사) -목,금 1:00~5:00

⑵[사발,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 [신의 그릇Ⅰ,Ⅱ] 신한균 (도예가)-토,일 1:00~5:00
⑶[보이차다예] 이영자(한중다예연구소 원장) -목,금,토,일 1:00~5:00

⑷[녹동골에 茶가있네] 김기원 (시인) -목,금,토,일 1:00~5:00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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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차 유래설은 3가지가 전한다 김대렴의 차씨를 가지고 와서 지리산에 심었다는 김대렴 전래설이 있고, 차나무는 원래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하였다는 자생설, 그리고 삼국유사에 나타나 있는 수로왕비 전래설이다.

그 중에서 수로 왕비 전래설은 상현거사 이능화(1869-1943) 조선불교 통사에 의거, 김해의 백월산에 죽로차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내용은 수로왕비인 허황옥(許黃玉, 33년 ~ 89년 / 수로왕의 부인으로 허황후라고도 한다)은 공주가 서기 48년에 그의 오빠 보옥선사(장유화상)와 함께 차씨를 혼수품으로 가져와 가야에 심었다는 설이다.

[왼쪽 사진]허황옥과 김해 장군차를 연계시켜 김해에서는 장군차라는 상품으로 홍보되는 이 지역의 차는 다음과 같은 사연을 담고 있다. 조선조 인조(仁祖)때 발간한 김해읍지에 보면 황차가 금강곡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 충열왕이 왜구정벌에 동원되어 출전하는 군사들을 격려차 김해에 들어 금강사(金鋼寺) 앞에 있는 차나무를 보고 이 차를 마시면 힘이 솟는다는 뜻에서 장군차로 명명했다고 전한다. 이전의 역사에서 허황후를 근거로 삼는다면 장군차라는 명칭의 근원은 가야국의 가야차(伽倻茶)임이 분명하지 않을까 한다.

[200년 수령의 김해 장군차(將軍樹)] - 현지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차나무의 수령은 200년 정도로 추정되며 가야권인 원예시험장(부산 강동동)에서 우장춘 박사가 관리하였던 나무로서 허황후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 곳 수릉원으로 2008년 3월 16일 이식하였다. 김해 장군차는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封茶로 가져왔다는 설이 있고 고려 출렬왕께서 ‘將軍’이라는 칭호를 내렸으며 지금도 차와 관련된 지명, 자생군락지가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

[사진설명,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학용(우리선문화원 부산센타원장)] 부산에서 차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김학용씨는 최근 차문화답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첫 번째로 김해 장군차의 역사를 찾아다니는 일을 꾸미게 되었다. 나는 부산에서 활동하시는 전정현 선생님께서 초청하여 동행하게 되었다. 마침 현장에 도착하니 차공부하는 사람들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많은 것도 생소해 보였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다식판 , 베겟모 수집으로 알려져 있는 김길성씨, 도예가 김영성씨도 그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모두 8명이 봉고차를 타고 허황후가 가야에 처음 도착한 용원에 있는 망산도앞 유선정에 도착하여 일정을 시작하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경상남도 역사 해설가인 A씨의 집으로 가서 본인이 장군차 찻잎으로 떡차를 만들었다고 해서 5개씩 묶은 것은 것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떡차로 만들 수 있는 작은 틀도 여러 가지 자신이 만들면서 실패하고 한 것도 보여주었다.

허황후묘에 가서 관정다도원 전정현 원장님은 차를 준비해 오셔서 헌다를 하였다. 김길성 선생은 옆에서 보시며 정말 차 하시는 분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신다. “차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은 이런 곳에 오면 헌다 한 번 하겠다는 마음이 절로 나와야 하는데” 하시며 오늘의 여행이 무언가 의미를 둘 수 있는 듯하여 보기에 좋았다.

이 날 하루를 동행해 보면서 느낀 점은 중국차에 대해서는 온갖 전설까지 공부하는 우리네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차의 유래에 대한 접근은 왜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차에 대한 유래도 연구를 한다면 아마도 지역마다 여러 갈래의 유래담이 나올 것 같다.

왜냐하면 차나무 자생지의 입장에서도 지역적 분포가 많은 것이 사실이요, 차나무의 수령으로 따져보아도 그동안의 유래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대규모 차밭이 생긴 것은 조선조 말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였고, 그 유명한 보성이나 여러 차밭의 조성도 일본에 의한 플렌테이션의 형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 차의 유래를 찾아도 그 뿌리가 초의선사부터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으니 가야의 역사, 백제의 역사, 그리고 통일 이전의 신라의 역사가 무척 궁금해지는 가야차, 아니 장군차의 답사현장의 느낌이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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