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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오명진

8월 27일 동양차문화연구회 정기 모임에서 제2대 회장에 오명진 교수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차회 > 동양차문화연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양차문화연구회 가을 차회  (0) 2020.10.19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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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7일 부산 김봉건 회장 차실에서 동양차문화연구회(회장 김봉건) 가을 차회를 가졌다.

참석자는 허만욱, 오명진, 박영식, 김봉건, 박홍관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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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차를 담아온 다기

지난 2월 5일 부산 해운대에 있는 비비비당 찻집에서 동양차문화원연구회 정기모임이 있었다. 이날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각자 백초차 3명, 대추차2명 , 구지뽕차 3명이 주문했다. 이후에는 김봉건 회장님이 준비해온 보이 전차를 마셨는데, 8명이 대부분 보이차에 대한 거분감 없이 잘 마셨다. 필자가 보기엔 중국차만 팔지 않은 찻집에서 보이차를 준비해와서 마시는 것을 보면 우리만의 일은 아니겠지만 보이차에 대한 선호는 대단해 보인다.

비비비당의 명품 다식

필자가 백초차를 비비비당에서 처음 마신 경우는 오픈하고 몇일 되지 않는 시기에 강선생님을 이곳에서 만나면서였다. 그때의 첫 기분은 백초차를 담아온 소담스런 그릇이 참 마음에 들어서 이후 몇차례 더 마실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이날에는 어떤 찻그릇에 담겨올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세사람이 주문하여 다관에 차를 넣고 우려마시는 방식으로 와서 그 때의 맛과 기분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식은 세트메뉴인지 모르지만 인삼을 이용한 것과 검정깨 호두 대추 잣을 이용하여 검정 나무 소반을 이용하여 매우 운치있게 가꾼 곳임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차들은 담아온 그릇이 주는 격이 다른 여느 찻집과 다른 운치와 격조를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보이고 겨울 산세를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연구발표 못지않은 마음의 풍요를 느끼며, 내심(內心) 차향 가득 품고 나왔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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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비비비당에서 동양차문화연구회 정기발표회

2014년 2월 5일 해운대 비비비당에서 동양차문화연구회(회장 김봉건) 정기모임을 가졌다.
올해 신입 회원으로는 금지수, 서정임으로 모두 중국 차문화에 대한 연구가 깊은 분들로서 향후 기존 회원들과 공동연구가 진행될 것이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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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차문화연구회 정기 모임(장소, 호정다실)

동양차문화연구회(회장 김봉건) 가을 차회가 10월 31일 부산 호정다실에서 열렸다. 연 4회 모임에서 논문발표 2회(겨울, 여름), 차회 2회(봄·가을)로 1년 회기를 마쳤다. 금번 회원동정에서 중요한 내용은 첫째, 김종경 교수의 회원영입. 둘째, 김봉건 회장의 국제학술대회 발표 내용과 함께 동참하여 사천성 문화를 탐방하고온 회원들의 소식, 셋째, 오명진 원광대학교 대학원 출강, 넷째, 조은아, 청와대에 퓨전 티 납품 다섯째, 필자의 <차도구의 이해> 출간 등이다.

일시: 2013년 10월 31일 12:00/장소: 호정다실(부산 문현동 소재)
참석회원: 김봉건, 박홍관, 오명진, 조은아, 김평순, 선미용/신입회원: 김종경
초청내빈: 김말기, 권옥희, 이유주

[진행순서]
1. 공양전 차실 관람
2. 점심 공양
3. 회장 소개
4. 내빈 소개
5. 신입회원 소개(최근 활동 상황, 역·저·논문 등)
7. 회원 동정
1)김봉건: 10월18일-20일 중국 사천성 성도 국제학술회의 참석 ‘남헌(南軒) 張栻선생 誕辰 880주년 기념 논단’ 논제: 退溪李滉的聖學十圖和朝鮮的性理學(퇴계이황적성학십도화조선적성리학) 11월 29일(금) 2:00 제1회 부산인문학포럼 발제「아시아적 가치」
2)박홍관: <차도구의 이해>(형설출판사) 저서 출판
3)오명진: 원광대학교 대학원 출강
4)조은아: 중국 상해 활동 상황, 청와대 퓨전-티 납품
8. 퓨전 티 발표 및 시음(조은아)

2014년 논문발표는 1월 부산에서 개최된다.
차도구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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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양장)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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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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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차문화연구회는 2012년 10월 20일 부산에 있는 매월당 김시습 사당에서 회원들과 함께 발표회가 있었다. 이번 모임에서는 회원 개개인의 사정이 많아서 참석 인원은 적었지만 부산 해동 저수지 부근에 있는 매월당 김시습 사당에서 돌로 만든 둥근 차석에 둘러 앉아 발표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발표문 첫 번째는 김봉건 회장의 방외지사(方外之士)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유학사상을 중심으로 연구한 내용이며, 두 번째는 필자로서 이번에 출간한 <한국인은 차를 어떻게 마시는가>에서  16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기록을 엮은 책에서 참가자 전원 혈액으로 구분하여 차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와 차를 마시는 이유, 즐겨마시는 차 등등을 통계학적으로 분류한 내용을 요약하여 설명하고 저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저술하게 된 이유와 결과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아래 발표문의 전체 원문은 향후 간행될 연구지를 통해 보급될 예정이다.

방외지사(方外之士)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김봉건

<동양차문화연구회 회장>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성을 발휘하였으면서도 또 가장 불우한 생애를 보낸 선비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세 살 때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세종(世宗) 임금으로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 다음에 크게 쓰일 것이라는 전지(箋紙)를 받고 오세(五歲)라는 호로 불리었을 정도의 천재였지만 계유정난(癸酉靖難)을 목도한 후 무도한 세상의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일찌감치 벼슬길을 포기하고 방외(方外)의 길로 접어든 인물이다.

때로는 승려의 행색으로 팔도를 유람하는가 하면, 세상이 바뀌자 다시 관직에 진출하고자 경전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불경을 가르친 일로 탄핵을 받고 끝내 사환(仕宦)의 길은 좌절되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유자(儒者)였지만 때로는 산수에 묻혀 차나무를 기르는 유인(幽人)이 되었다가, 다시 환속하여 결혼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가의 양생술에 심취하여 도교의 내단(內丹)과 외단(外丹)을 닦기도 했다.


그의 한 평생은 도무지 대요를 파악하기 힘든 회오리 같은 생애였으나 지조는 오히려 뚜렷하여 후세인들에 의해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지칭되고 있다. 그의 시문(詩文)을 접해보면 뛰어난 시재(詩才)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가 얼마나 경서(經書)에 해박한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끝내 조정의 동량이 되지는 못했지만 유자로서의 비분강개는 조선 중기 이후 사림(士林)의 절의정신에 크게 영향을 주었고, 산수에 묻혀 유유자적했던 삶의 자세는 걸릴 것 없는 진인(眞人)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매월당 김시습을 통해 난세에 처한 지식인의 자세에 대해 많은 시사를 얻을 수 있으며, 한 인간의 위대함은 반드시 세속적 목표의 달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세계 또한 유교다, 불교다, 도교다 하는 식의 어떤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침착(沈着)되었을 때라야 정체성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역설적이게도 김시습은 세속의 뜻이 좌절됨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인생을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김시습의 신세


김시습은 조선 초 세종17년(1435년)에 태어나 성종24년(1493년)에 죽은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김일성(金日省), 어머니는 선사(仙槎) 장씨(張氏)이며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열경(悅卿), 호는 설잠(雪岑), 동봉(東峯), 매월당(梅月堂) 등이 있다. 태어난 지 여덟달 만에 글을 알기 시작하여 집안 어른 최치운(崔致雲)이 그의 비상함을 알아보고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한다.

그는 3세에 시를 짓기 시작하고 『유학』『소학』 등을 공부했다 하며, 5세(세종21년) 때에는 세종(世宗)이 승정원을 시켜 그를 시험한 뒤 능력을 칭찬하여 비단을 하사하였다 하여 오세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이후 모친의 정성으로 선비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서 13세까지 이계전, 김반, 윤상에게 사서삼경을 배우고 역사서와 제자백가를 독학했다 한다.

15세(세종31년)에 어머니를 여의고 삼년상을 치른 뒤 18세(문종2년)에 훈련원도정 남효례의 딸과 혼인하고 과거 공부를 했다. 그러나 19세(단종원년)에 과거에 낙방하고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던 중에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나 단종(端宗)의 양위 사실을 전해 듣고는 통곡 끝에 책을 불사르고 머리를 깎은 후 방랑길에 올랐다.


22세(세조2년) 때에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처형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에 묻었다. 24세(세조4년) 때에는 함께 어울리던 인사들과 더불어 정몽주, 이색, 길재의 초혼제를 지낸 장소인 공주 동학사(東鶴寺)를 찾아가 사육신을 위한 초혼제를 지냈다. 이후 수년간 승려 차림으로 팔도를 유람하면서 학문과 유교, 불교에 대해 토론했다. 김시습은 이때 관서, 관동, 호남 지방을 유람하면서 백제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등 우리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안목을 형성했다. 또 이때 직접 목도한 민초들의 생활에 대해 한없는 연민의 정을 품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많은 불경을 읽으며 여러 절을 전전하기도 했다.


28세(세조8년) 때에 경주에 이르러 정착할 결심을 하고 금오산(金鰲山) 중턱 용장사(茸長寺)에 머물렀다. 29세(세조9년) 때에는 경주의 유적을 돌아보는 한편 당나라 육우의 『다경(茶經)』을 읽고 직접 차를 길렀다. 그리고 이 해에 효령대군의 추천으로 서울에 올라 가 열흘 동안 궁중의 내불당에 머물면서 『묘법연화경』의 언해 사업에도 참여했다. 이를 보면 그는 몸은 비록 낭인의 행색을 하고 있어도 여전히 왕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31세(세조11년) 때에는 경주 용장사 부근에 금오산실을 짓고 정착하여 살았다. 다시 효령대군의 요청으로 원각사(圓覺寺) 낙성회에 참석하였고, 세조의 환도(還都) 명령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37세 무렵까지 금오산에 머물렀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다.


그리고 38세(성종3년) 때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새 조정에서 임금을 보필하고자 하는 포부를 가지고 경전을 다시 익혔다. 그러나 관직에 진출하고자 하는 꿈은 좌절되었고 수락산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41세 때에는 정업원(淨業院)에서 불경을 가르친 일로 탄핵을 받았다.


46세(성종11년) 때에는 『황정경(黃庭經)』을 읽는 등 도교의 내단, 외단 사상을 익히고, 도가의 양생술에 관심을 가져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 주목했다.

47세(성종12년) 때에는 다시 머리를 기르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제사를 지냈다. 환속 후 안씨의 딸과 혼인하나 이듬해 안씨부인이 죽고 조정에서는 폐비 윤씨의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관동 지방으로 방랑길을 떠났다.


53세(성종18년) 때에는 양양 부사 유자한(柳自漢)과 친밀하게 교유하다가 유자한의 청으로 구황책에 관한 상소문을 대신 짓고, 유자한에게 『장자(莊子)』를 가르쳤다. 이 무렵 유자한이 여인을 주선했으나 돌려보내고, 벼슬에 나가라는 권유도 사양했다.

59세(성종24년) 때에 부여 무량사(無量寺)에 머물면서 절에서 간행한 『묘법연화경』에 발문을 썼다. 그리고 이곳에서 병들어 세상을 떠났다.

중종16년(1521) 이자(李耔)가 십 년에 걸쳐 자신이 수집한 김시습의 시문을 모아 책을 만들고, 「매월당집서(梅月堂集序)」를 썼다. 선조15년(1582) 선조의 명으로 『매월당집』이 편찬되었고 이이(李珥)가 왕명을 받아 『김시습전』을 지었다. 선조16년(1583) 이산해(李山海)가 「매월당집서」를 짓고, 이 무렵 운각(芸閣)에서 『매월당집』 시집 열다섯 권과 문집 여섯 권이 간행되었다.

정조6년(1782)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정조8년(1784) 청간공(淸簡公)의 시호를 받았다.

1927년 김시습의 후손 김봉기(金鳳起)가 『매월당집』 시집 15권 4책, 문집 6권 1책, 부록 2권 1책, 총 23권 6책을 신활자로 간행했다.

                    <매월당 김시습의 초상>(충남 유형문화재 제64호, 충남 부여군 무량사 소장)


20대의 아이들이 무슨 차 맛을 알까? http://seoku.com/541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http://seoku.com/44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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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른쪽부터, 발표자 김봉건 회장, 김주환, 조은아, 오명진 회원]

동양차문화연구회는 2011년 7월 30일 부산 동래 향교에서 정기모임을 가졌다. 연구회는 부산에서 발기되어 부산을 주축으로 활동하는 순수차연구 모임이다. 연구자와 후원회가 함께 참석하여 연구 발표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는데 이번에는 김봉건 회장의 『다경』의 자다법과 『대관다론』의 점다법
(『茶經』의
煮茶法과 『大觀茶論』의 點茶法) 구에 관한 내용으로 발표하였다.
발표자는 '다경도설' 역자로서 중국 차문화의 고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연구자이다.

발표를 마친후 손님에게 차를 접대하는 행다법인 접빈다례 발표가 있었다. 손님으로는 비회원으로 초청받은 금당차문화연구회 강옥희 원장외 2명으로 팽주는 무쇠 솥을 준비하여 3인용 분청다기를 사용하였다.
동양차문화연구회는 부산에서 발기한 순수 차 연구 모임이다. 대부분 40대 50대의 연령인데 이번 정기발표장에서 신입회원이 영입되었다. 26세 조은아(차 마시는 여자, 저자) 한국외국어대학을 나와 중국 북경에서 차공부를 하고 상해의 현지 신문에 학생들을 상대로 면접 방법에 대한 기고와 중국 대학에서 자신이개설한 중국차 강의로 언론에 주목받기도 하였다. 어릴 때부터 찻집을 운영하고 싶었다는 그는 현재 전통방식의 차를 젊은이의 입맛에 맞는 차를 개발하고 있다. 

[명륜당]
발표문은 다음과 같다.
                         
다경』의 자다법과 『대관다론』의 점다법 金奉建 (東洋茶文化硏究會 會長)   
                                                                                            
『茶經』의 煮茶法
1. 그릇
風爐(灰承) 풍로와 재받이
筥 숯광주리
炭檛 숯가르개
火筴 부젓가락
鍑 솥
交床 교상
夾 집게
紙囊 종이주머니
碾(拂末) 연자방아와 가루털개
羅(合) 체와 합

 

則 구기
水方 물통
漉水囊 물 거르는 자루
瓢 표주박

竹筴 대젓가락
鹺簋 소금단지(주걱)
熟盂 숙우
盌 주발
삼태기
札 솔
滌方 개수통
滓方 찌꺼기통
巾 행주
具列 구열
都籃 모듬 바구니 

2. 煮茶法
1) 차 굽기(炙茶)
차를 구울 때는 조심하여 바람이 부는 곳이나 불똥이 남아있는 불에서 구워서는 안 된다. 집게에 병차를 끼워 불에 가까이 대고 자주 그것을 뒤집어가며 새우나 두꺼비 등 같이 부풀 때까지 굽는다. 그런 후에 불에서 다섯 치를 떼어 말렸던 것이 펴지면 다시 처음과 같이 하여 또 굽는다. 만약 불에 구울 때라면 향기가 무르익으면 중지하고, 햇볕에 말릴 때라면 부드러워지면 중지한다.

차가 잘 찧어지면 찻잎의 줄기(穰骨)가 없는 것과 같이 된다. 이런 차를 구우면 그 마디가 말랑말랑하게 되어 마치 갓난애의 팔같이 부드럽게 된다.

2) 차 식히기
다 구워진 차는 종이주머니에 넣어 향기가 흩어져 달아나지 않도록 하고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루로 빻는다. 가루의 상품은 가는 쌀가루와 같고, 가루의 하품은 마름열매의 깍지와 같다.

3) 불 피우기
차를 구울 때 사용하는 불의 연료는 숯이 가장 좋고, 다음은 단단한 땔감들이 좋다.(단단한 땔감이란 뽕나무, 홰나무, 오동나무, 상수리나무 등의 종류이다.) 그 숯은 일찍이 지지거나 굽는 일을 해서 누린내나 비린내가 스민 것이나 진이 나는 나무와 썩은 그릇 같은 것은 쓰지 않는다.(진이 있는 나무는 측백나무․계수나무․전나무 등이다. 썩은 그릇이란 썩어 문드러진 그릇이다.)
옛사람들이 ‘썩고 문드러진 땔나무로 음식을 만들면 이상한 맛이 깃든다.’고 하였는데 믿을 만하다.

4) 물 가리기
차를 달이는데 사용하는 물은 산수가 상품이요, 강물은 중품이요, 우물의 물은 하품이다. 산수는 젖샘이나 돌로 된 못에서 천천히 흐르는 것이 상품이다. 용솟음치거나 소용돌이치며 ‘솨아’하는 소리를 내는 물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런 물을 오래 먹으면 목병이 생긴다. 또 산골짜기에 많은 지류 가운데 맑게 고여 흐르지 않는 물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물속에 양기(龍)가 너무 쌓여 독이 되기도 한다. 이 물을 마시려면 먼저 그 나쁜 것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물이 졸졸 흐르게 한 후에 떠야 한다.
강물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것을 취하고, 우물물은 길어가는 사람이 많은 곳을 취한다.

5) 물 끓이기(三沸法)
물 끓는 것이 마치 고기의 눈알과 같은 기포가 올라오고 가느다란 소리를 내는 것이 첫 번째 끓음(一沸)이다.
솥의 가장자리 쪽이 솟아오르는 샘과 같고 구슬이 이어진 것과 같이 기포가 올라오는 것을 두 번째 끓음(二沸)이라 한다. 물결이 뛰어오르고 파도가 솟아오르듯 하는 것을 세 번째 끓음(三沸)이라 한다. 그 이상 끓으면 물이 쇠어서 먹어서는 안 된다.

6) 차 달이기
물이 처음 끓을 때(初沸) 물의 양에 맞추어 소금으로 간을 본다. 물이 두 번째 끓을 때 끓는 물을 한 표주박 떠내고 대젓가락으로 끓는 물의 중심을 휘저으며 차가루의 양을 헤아려 솥의 한가운데에 붓는다.잠시 끓기를 기다려 이윽고 물 끓는 기세가 마치 성난 파도처럼 넘쳐흐르듯이 하면, 이때 미리 떠내어 식혀둔 물을 끓는 물에 부어 더 이상 끓지 못하게 가라앉히는데, 이는 차탕의 정화를 기르기 위한 것이다.

물을 끓이는데 일비(一沸)에 이르러 물 위에 검은 운모와 같은 수막이 생기면 걷어낸다. 마시면 그 맛이 바르지가 않다. 일비 때에 표주박으로 떠낸 것을 전영(雋永)이라고 한다. 전영은 숙우에 담아두었다가 화(華)를 기르기 위해 더 이상 끓지 않도록 하는 데에 대비한다.

끓여낸 차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발이다. 세 번째 사발은 그 다음이고,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사발 이외에는 갈증이 심하지 않으면 마시지 않도록 한다.물 한 되를 끓이면 차가 다섯 사발 정도 나온다. 차탕의 양은 적으면 세 사발, 많으면 다섯 사발이 나온다. 만약 사람 수가 많아 열 사람에 이르면 풍로 두 개를 사용한다.

7) 차 마시기
차를 마시기 위해 여러 사발에 따를 때는 말발(沫餑)을 고르게 나눈다.말발은 차탕의 정화이다. 거품이 엷은 것을 말(沫)이라고 하고 두터운 것을 발(餑)이라고 한다. 또 가늘고 가벼운 것을 화(花)라고 한다.

화(花)는 그 모양이 마치 대추 꽃이 둥근 연못 가로 두둥실 떠있는 것과 같은 것도 있고, 물살이 천천히 도는 연못이나 구부러져 흐르는 물가에 푸른 부평초가 자라고 있는 모양과 같은 것도 있으며, 또 맑게 갠 날에 하늘에 비늘구름이 떠 있는 모양과 같은 것도 있다.

말(沫)은 그 모습이 녹색의 이끼가 물가에 떠있는 모양과 같은 것도 있고, 또 국화 꽃잎이 술 단지 가운데에 떨어져 있는 모양과 같은 것도 있다.

발(餑)은 그 모습이 차의 찌꺼기를 달여서 끓어오르게 하면 화(花)가 겹치고 말(沫)이 포개어져 희끗희끗하게 눈이 쌓인 것과 같다. 《천부》에 이를 일러 “빛나기가 쌓인 눈과 같고, 화려하기가 봄꽃과 같네.(煥如積雪, 燁若春敷)”라고 하였다. 차탕은 뜨거울 때 잇대어 마셔야 한다.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에 엉키고 정화는 위에 뜨기 때문이다. 만약 차가 식으면 정영(精英)의 향기도 열기를 따라서 사라진다. 마셔도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차의 성품은 검소하므로 진하게 마셔서는 안 된다. 차가 진하면 그 맛이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가령 한 사발 가득한 차도 다 마시지 않고 절반만 마셔서 그 맛을 적게 하는데, 하물며 그 진함에 있어서랴!(茶性儉, 不宜廣, 廣則其味黯澹. 且如一滿碗, 啜半而味寡, 况其廣乎!)

차탕의 빛깔은 담황색이며, 향기가 매우 아름답다.

대저 향기롭고 맛있는 차는 석 잔이요, 그 다음 것은 다섯 잔까지이다. 만일 찻자리에 다섯 사람이 있으면 사발 세 개를 돌려서 마시고, 일곱 사람이 있으면 다섯 개를 돌려 마신다. 만일 여섯 사람일 때에는 사발의 수를 따로 보태지 않고 한 사람을 뺄 따름이다. 그리고 차가 부족한 그 사람에게는 전영(雋永)으로써 보충하도록 한다.

8) 차의 공효
날개 달린 새는 날아다니고, 털 달린 짐승은 뛰어다니고, 사람은 입을 벌리고 말한다. 이 세 가지는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 마시고 쪼아 먹으면서 살아간다. 마신다는 것의 의미가 참으로 깊고 멀다. 목이 마르면 음료를 마시고, 근심과 번뇌를 벗어버리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차리고 잠을 깨려면 차를 마신다.

9) 암차법(痷茶法)
차에는 추차(觕茶), 산차(散茶), 말차(末茶), 병차(餠茶)가 있다. 이것들을 찧고, 덖고, 불에 쬐고, 절구질하여 병이나 오지그릇 속에 넣고 끓인 물을 넣어 우려 마시는데 이를 암차(痷茶)라 한다.

10) 대용차
어떤 사람들은 파, 생강, 대추, 귤껍질, 수유, 박하 등을 넣고 오랫동안 끓인 후 혹은 차탕을 떠내어 매끄럽게 하거나 혹은 끓여서 거품을 버리기도 하는데, 이는 도랑에 물을 버리는 것과 같은 일일 뿐인데도 세상에는 이런 습속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늘이 만물을 낳아 기르는 데에는 모두 지극히 오묘한 이치가 들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만 얄팍하고 하기 쉬운 것만을 취하려 한다. 덮어 가리는 것은 집이다. 그래서 집을 정교하게 짓는다. 입는 것은 옷이다. 그래서 옷을 정교하게 만든다. 배부르게 하는 것은 음식이다. 그래서 밥과 술을 모두 정교하게 만든다.

11) 아홉 가지 어려움(九難)
찻일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만들기(造), 둘째는 감별하기(別), 셋째는 그릇(器), 넷째는 불(火), 다섯째는 물(水), 여섯째는 굽기(炙), 일곱째는 가루내기(末), 여덟째는 끓이기(煮), 아홉째는 마시기(飮)이다. 날씨가 흐린 날 찻잎을 따거나 밤에 말리는 것은 차를 제대로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차의 맛을 보고 냄새를 맡아서 감별하는 것은 차의 품질을 올바르게 감별하는 방법이 아니다. 누린내 나는 솥이나 비린내 나는 사발은 적당한 그릇이 아니다. 진이 많이 나오는 나무나 부엌에서 나온 숯은 차 달이는 불로 적당하지 않다. 세차게 흐르는 물이나 막혀서 고인 물은 차 달이는데 적합한 물이 아니다. 차를 구울 때 겉은 익고 속은 설익게 구우면 제대로 굽는 것이 아니다. 차를 가루 낼 때 푸른색의 먼지가 되거나 가루가 날리는 것은 옳게 빻는 것이 아니다. 차를 끓일 때 서투르게 다루거나 거친 동작으로 함부로 다루는 것은 옳게 끓이는 것이 아니다. 여름에는 많이 마시고 겨울에는 제대로 마시지 않는 것은 올바로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大觀茶論』의 點茶法
1. 그릇
1) 체(羅), 연자방아(碾)
2) 잔(盞)
3) 차선(筅)
4) 물주전자(缾)
5) 구기(杓)

2. 點茶法
1) 정면점 : 점다(點茶)의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처음에는 모두 차 가루를 적당히 넣어 갠 다음 바로 이어 끓는 물을 붓는다. 그리고 곧장 손은 무겁게 하고 차선은 가볍게 하여 격불(擊拂)하면 좁쌀무늬나 게눈 같은 거품이 일어나지 않는데 이를 정면점(靜面點)이라고 한다. 이것은 격불에 힘이 없어서 차가 일어나지 않고 유탕(乳湯)이 번지지 않은 것인데, 여기에 다시 탕수(湯水)를 증가해도 색택이 극진하지 않고, 영화(榮華)가 잠기고 흩어져 차 거품은 일어나지 않는다.

2) 일발점 : 탕수를 좇아 격불하되 손과 차선을 모두 무겁게 하면 거품이 떠오르는데 이를 일발점(一發點)이라 부른다. 이것은 탕을 이미 과다하게 썼기 때문에 격불을 할 때 손가락과 팔을 둥글게 돌리면서 젓지 않으면 죽면에 거품이 일어나지 않는다. 차의 힘이 이미 다하여 운무(雲霧)가 비록 뜨더라도 찻잔에 물의 흔적[水脚]이 생기기 쉽다.

3) 제1탕 : 점차의 묘한 이치에 정통한 차인은 차의 양을 헤아려 탕수를 부어 아교를 녹이듯이 이긴다. 탕수를 잔 가를 따라 둥글게 돌려 따르되 차가 잠기지 않도록 기세가 맹렬하지 않게 한다. 이때 손은 가볍고 차선은 무겁게 하여 손가락과 팔을 둥글게 돌리면서 격불하면, 상하가 투철하게 되어 마치 효모가 밀반죽을 부풀어 일으키듯 성근별과 밝은 달이 찬연히 살아나서 차의 근본이 서게 된다.

4) 제2탕 : 제이탕(第二湯)은 탕수를 차면으로부터 따르는데, 먼저 둘레를 한번 돌리고 급히 따르고 급히 추어올려 차면이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격불에 힘이 있으면 색택이 점차 피어나고 둥근 구슬과 모난 구슬들이 무더기 되어 쌓인다.

5) 제3탕 : 삼탕(三湯)은 더하는 물의 양을 앞과 같이 하고 격불을 점점 가볍고 고르게 해야 한다. 둘레를 둥글게 돌려 저어 제자리에 돌아오면 차탕의 표리가 통철하여 좁쌀 무늬와 게눈이 그릇 가득 맺혀 뜨면 차 빛깔은 열 가운데 예닐곱을 얻게 된다.

6) 제4탕 : 사탕(四湯)은 더하는 물을 조금 적게 하고, 격불할 때 차선을 반드시 끝부분으로 돌리되 폭을 비교적 넓게 하여 가볍고 완만하게 격불하면 차의 맑은 향과 꽃다운 색이 완연히 피어나고 운무도 점차 생겨난다.

7) 제5탕 : 오탕(五湯)은 더하는 물을 앞 보다는 조금 많이 하고, 격불할 때 차선을 가볍고 고르게 저어 전체에 고루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 만약 차의 색·향·미가 아직 완전히 발휘되어 나오지 못하였으면 격불을 하여 더 일으키고, 피어 일어남이 다 되었다싶으면 격불을 거둔다. 차면(茶面)에 깊은 아지랑이가 맺히고 눈꽃이 서리면 차의 향기가 이미 완전하게 되었다.

8) 제6탕 : 육탕(六湯)은 거품이 일어남을 관찰하여 물을 더하고, 만약에 유탕의 점화가 발연히 일어나면 솔을 느리게 둘러 거두며 격불을 그친다.

9) 제7탕 : 칠탕(七湯)은 가볍고 맑은 부분과 무겁고 탁한 부분을 분별하며, 희박하고 조밀함의 중(中)을 얻되 마음에 흡족하면 그친다. 이때에는 젖 안개가 세차게 솟고 잔에 넘치게 일어나 찻잔의 둘레에 빙 둘러 맺혀 움직이지 않으니 이를 일러 교잔(咬盞)이라 한다.

10) 차 마시기 : 차가 이와 같이 되면 비로소 가볍고 맑게 떠있는 말발(沫餑)을 고르게 나누어 마신다. 《동군록》(桐君錄)에 이르기를 “차에는 거품이 있는데, 마셔서 사람에게 마땅하다.” 하였으니 비록 많이 마시더라도 지나침이 없다.

[원문]
點茶不一, 而調膏繼刻, 以湯注之. 手重筅輕, 無粟文蟹眼者, 謂之靜面點. 蓋擊拂無力, 茶不發立, 水乳未浹, 又復增湯, 色澤不盡, 英華淪散, 茶無立作矣. 有隨湯擊拂, 手筅俱重, 立文泛泛, 謂之一發點. 蓋用湯已過, 指腕不圓, 粥面未凝, 茶力已盡, 雲霧雖泛, 水脚易生.

妙于此者, 量茶受湯, 調如融膠, 環注盞畔, 勿使浸茶. 勢不欲猛, 先頻攪動茶膏, 漸加擊拂. 手輕筅重, 指遶腕旋, 上下透徹, 如酵蘖之起麵, 疎星皎月, 燦然而生, 則茶之根本立矣. 第二湯自茶面注之, 周回一線, 急注急上. 茶面不動, 擊拂旣力, 色澤漸開, 珠璣磊落. 三湯多寡如前, 擊拂漸貴輕勻, 周環旋復, 表裏洞徹, 粟文蟹眼, 泛結雜起, 茶之色, 十已得其六七.

四湯尙嗇, 筅欲轉稍, 寬而勿速, 其淸眞華彩, 旣巳煥發, 雲霧漸生.
五湯乃可少縱, 筅欲輕均而透達, 如發立未盡, 則擊以作之. 發立已過, 則拂以斂之, 然後結靄凝雪, 香氣盡矣. 六湯以觀立作, 乳點勃結, 則以筅箸居, 緩遶拂動而已.
七湯以分輕淸重濁, 相稀稠得中, 可欲則止. 乳霧洶湧, 溢盞而起, 周回旋而不動, 謂之咬盞. 宜均其輕淸浮合者飮之. 《桐君錄》曰: “茗有餑, 飮之宜人.” 雖多不爲過也.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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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명진 연구원의 행다법 발표]

동양차문화연구회(회장 김봉건) 1월 모임에서 연구원 오명진은 『金甁梅를 통해 본 明末 市井의 飮茶文化』를 발표했다. 발표자는 명말의『금병매』는 당시의 경제상황을 반영한 소설로서 명대 사회를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회소설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그 가치는 매우 귀중하다고 한다.

『금병매』에는 629여 곳에 차에 관한 내용이 등장한다. 일상 생활 혹은 차관, 차방에서 일으나는 음차문화에 대한 것으로 차도구와  차에 관련한 풍속과 예의 등을 나타내고 있다. 공식문헌 기록이 아닌 市井의 일상생활에 나타나는 생생한 묘사를 통해 차문화를 좀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는 발표의 변을 밝혔다.

논문 발표를 마치고, 사계절 차 맛을 음미 할 수 있는 다법을 발표했다. 개완을 이용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연상할 수 있는 녹차, 연, 구기자 등을 넣어서 각각의 개완에서 특별한 차 향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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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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