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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다예연구소(원장 이영자)에 설치된 "보이생차"로 만든 차벽의 일부, 2010년 5월 설치]

보이차에 대한 자료를 알기 쉬운 방식으로 정리하면서 많은 책들을 새롭게 보게되었다. 이전에도 보았지만 그 당시엔 그때의 관심사만 보았을 뿐이다. 이젠 차학이란 분야에서 접근해 보면 “차의 선진국(필자 주)”에서 만들어진 중국차에 대한 관심은 보이차에 집중되는 현상을 실감하게 된다. 그 원인이 어디에서 출발하는가는 차지하고 차에 대한 비전문가 들이 알고 싶어하는 차(茶)가 ‘보이차’라고 하면 믿고 싶지 않겠지만 현실이다.

 

특히 홍인이 언제부터 제조되었는가 대한 논리는 ‘호차급(號茶級)’ 차(茶) 생산 이후에 만들어진 ‘인급차(印級茶)’ 포장 인쇄술에까지 그 시대 상황이 반영된 내용으로 볼 때 박창식 선생(필명 죽천향)의 블로그(죽천향실)에 올려진 2009년 8월 28일 ‘인자급 홍인의 진실’에 대한 글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동안 여러 논저에서 나온 인급차(홍인, 녹인 등)의 생산 기간을 (1938-1970)에서 [인급차(印級茶) : 1951-1970]으로 하게 되었다.

박창식 선생의 논저를 믿는 것은 첫째 ‘호차급과 인급차’를 수년 전만 해도 실제 생활에서 완편을 쪼개어 마셔온 차꾼으로서 ‘등시해 교수 책과 짱유화 교수의 논저’ 및 중국내 신문을 인용하여 그 근거가 매우 논리적인 점이다.  http://blog.daum.net/36254598/13385065

『푸얼차(普洱茶)』의 저자인 ㄷ교수의 설명.
“찻잎 원료의 산지를 구별하기 위해 맹랍(勐臘)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붉은 색으로 표기하여 ‘홍인(紅印)’이라 했고, 맹해(勐海)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푸른색으로 인쇄하여 이를 ‘녹인(綠印)’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붉은 차자(茶字)의 푸얼원차(普洱圓茶)는 맹랍의 제일 좋은 찻잎으로 만들어졌고 이무진(易武鎭)은 맹랍현(勐臘縣)에 속해있기에 붉은 색으로 찍힌 차자(茶字)의 찻잎은 가장 좋은 찻잎으로 인정받은 이무차산(易武茶山)의 대엽종 차나무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곁들여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홍인푸얼원차(紅印普洱圓茶)는 40년대 국민당정부(國民黨政府)(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50년대 공산당정권(共産黨政權)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진다. 40년대의 조기홍인은 이무차산에서 생산된 최고품질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졌기에 품질이 우수한 반면 후기홍인 제품은 50년대 공산정권 아래서 제조한 것으로 품질면에서 조기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홍인에 대한 판별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짱유화 교수의 인급차(홍인)에 대한 이야기
홍인에 대한 의혹 풀이는 먼저 제작연대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다. 1950년대, 내란을 겪은 후의 중국은 전쟁의 피폐함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효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우리가 언급하고자 하는 맹해 지역은 중국의 변방이기에 그 참상은 더욱 심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의 맹해의 물품거래는 현금이 아닌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이곳에서의 화폐는 가치가 없으며 돈이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불해차창(佛海茶廠) 오늘날 맹해차창 복원에 참여했던 탕렌량(湯仁良) 선생의 인터뷰

“1949년 중국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이곳에서 철수한 후 맹해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맹해차창의 경우 생산설비들이 모두 도난 또는 파괴가 되어 차 생산은 물론 기초 작업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되었다. 당시 우리는 맹해차창의 복원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오직 차창(茶廠) 작업장의 복원에만 매진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맹해의 현황에 대해 “당시 맹해의 인구 구성원을 보면 소수민족이99%이며 이곳의 한족은 모두 외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뿐이다. 소수민족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 자신들이 생산하는 물건으로 서로 교환하면서 생활하는데, 당시는 무척 빈곤했던 터라 모두들 곡물을 시장에 내놓아 교환할 처지이지 차를 만들어 내다 파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설사 있었더라도 그 양은 아주 미미했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번 맹해현 정부자료실을 들췄으나 당시 이곳의 차에 관한 그 어느 자료도 찾지 못했다.

:현 운남성 서쌍판납 맹해현 차엽판공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1951년까지 맹해는 무척 혼란하기에 차를 만들고 상품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 운남성의차의제조 및 판매에 관한 유통은 모두국영형태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지시는 모두주관 부서인‘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로부터 받았다. 설령 생산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들이 만든 가정용 형태의 차일 뿐 상업제품은 아니다.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맹해에는 푸얼차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정확한 일기는 갖고 있지 않다.” 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운남성의 푸얼차에 관한 모든 자료는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에 보관되고 있다.

필자는 현 중국운남성차엽협회(中國雲南省茶葉協會) 회장이신 쯔어우자쥐(鄒家駒)씨의 도움으로 당시의 자료를 찾을 수가 있었다 .운남성공사의 기록에 따르면 맹해차창은 1956년부터 푸얼차를 만들었으며 당시 출하했던 이 제품은 모두 광동성으로 갔는데, 이 제품이 바로 후일 ‘홍인’이라는 푸얼차다.

그럼 여기에서 나타나는 의혹은 어떠한 연유로 정식으로 등록된 녹색‘ 차(茶)’자의 마크가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 출하된 것이냐의 문제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50년대 맹해는 무척 낙후된 지역이기에 인쇄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이에 당시 맹해차창에서 출하한 모든 포장지는 가장 가까운 지역인 푸얼현(보이현)에서 인쇄됐으며 이러한 작업은 6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50년대 당시 푸얼현의 인쇄는 원시형태인 목판으로 이뤄졌다. 목판인쇄(木版印刷)란 목재의 엇결이나 절단면에 그림이나 글자 따위를 볼록하게 또는 오목하게 조각한 판목에 안료를 첨가한 수성잉크를 칠하고 인쇄지를 놓고 종이 뒷면을 문질러 인쇄하는 방법이다. 인쇄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잉크를 배합하는 과정에서 색상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다. 즉 사용된 색상의 배합비율의 정확성이 바로 인쇄의 품질을 좌우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푸얼차 포장지의 인쇄는 단순한 색감 즉 붉은 색과 녹색 등 2가지 색감의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포장지 전체를 붉은 색으로 인쇄했던 것은 보통 당시의 낙후된 인쇄기술로 치부하고 있으나 필자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오늘날 인자급 푸얼차를 판별하는데 에 있어 포장지의 글씨체뿐만 아니라 인쇄된 붉은 색의 농담(濃淡)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즉 붉은 색의 진하고 엷음에 따라 도홍판(桃紅版)과 주홍판(朱紅版)로 나뇐다.

여기서 말하는 ‘도(桃)’란 복숭아와 같은 엷은 붉은 색, ‘주(朱)’란 주사(朱砂)와 같은 짙은 붉은 색을 말하는데, 이러한 색상의 차이는 염료의 배합비율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2가지의 색상 즉 녹색과 붉은 색을 한 가지의 색으로 통일되어 인쇄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업자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잘못된 포장지의 인쇄는 3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얼마가지 않아 운남성공사의 직원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부각되었으며, 이 일로 인해 운남성공사는 맹해차창을 심하게 비판하였다. 질책을 받은 맹해차창은 푸얼현의 인쇄소에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 결과 포장지의 ‘차(茶)’자를 원안대로 녹색으로 인쇄하게 된다. 이 포장지로 출하한 제품이 바로 ‘녹인’이라는 푸얼차다.

이상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답이 나온다.

홍인과 녹인의 구분은 찻잎 원료의 생산지 즉, ㄷ교수가 설명하는 것처럼 ‘홍인’은 맹랍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며, ‘녹인’은 맹해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 라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러한 포장지의 차이는 단순한 인쇄상의 착오일 뿐 찻잎의 생산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리고 맹해차창에서 ‘팔중차’ 로고로 출하한 첫 번째 푸얼차의 연도는 1956년도 이다. 글. 짱유화

죽천향의 첨언:
그럼 도대체 인급차 홍인은 몇 년도부터 생산된 차인가요!
첫째, ㄷ 교수의 말대로 1942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절대로, 아니다” 입니다.
그 이유는 운남성 차엽 진출구공사<云南省茶叶进出口公司志>의 기록에 따르면 “云南中国茶叶贸易公司”는 1950년 9월 이름을 “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로 개명한 바,

1942년-1949년 만들어진 소위 조기홍인의 포장지에 1950년 에 바뀐 이름인“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라는 명칭이 절대로 인쇄되어 찍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짱유화 교수의 말대로 홍인은 맹해차창에서 1956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인급차가 맹해차창에서 1956년 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사실은 위 여러분들의 증언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맞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인급차는 1952년부터 생산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가요 ........
그것은 바로 맹해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으로 보내 하관차창에서 생산한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아래 중국의 인터넷 자료를 보면 현 운남성서쌍판납맹해현차엽판공실(雲南省西雙版納勐海縣茶葉辦公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 중에 나와 있는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중국 인터넷 자료중에서...
http://www.puertea8.com/html/259.html
下关茶厂的制式茶品

(상략)
饼茶篇 印级圆茶 自上世纪50年代初,下关茶厂生产了现在称为“印级圆茶”的红印、绿印、蓝印甲乙级圆茶。这些产品,长期以来的普洱茶书籍中都误解为勐海茶厂生产。但前不久,在早期勐海、下关厂的相关史料中,发现了勐海厂早期只有经营原料收购、调配业务,而印级茶都是下关茶厂生产的相关证据。并且,坊间所称的印级茶年代承接也被进出口公司的纪录所修正。印级圆茶,最早生产的是绿印(蓝印)系列,后因绿色原料在卫生检疫中未能过关,而改印全红包装。

"인급원차
20세기 50년대 초,하관차창은 현재 “인급원차”로 불려지는 홍인、록인、람인 갑을급 원차를 생산하였다。이 생산품은 오랫동안 보이차 서적에는 맹해차창이 생산한 것으로 잘못되어있는데 맹해, 하관차창의 상관사료에 나타난 것을 보면 맹해차창은 초기에 경영과 원료를 거두어 사들이고 배급을 조절하는 업무를 보았다. 이는 인급차가 하관차창에서 생산되었다는 관계있는 증거이다 (하략)....。 "


그리고 1949년 12월 중국차엽공사 정식성립, 1950년 9월 중국차업공사 운남성공사의 성립 1951년 말 팔중차 로고의 (중차패) 등록, 이라는 기록을 감안하면 중국차업공사 운남성공사“의 지시로 맹해차창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차창으로 보내어 1952년부터 인급차를 생산하였다는 정황이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해서 초기에 하관 차창에서 만든것이라 하여도 인급차의 역사는 아무리 빨라도 1951년 말 - 1952년 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확한 것입니다.


여기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의 진실과 거짓 5 - 홍인 에서 발췌한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푸얼차’서적에 따르면 홍인원차의 역사 기원은 40년대 국민당정부(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 50년대 공산당정권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졌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괴력이 발휘되어 1950년에 설립된 회사의 명칭이 40년대의 제품에서 등장하게 되고 1951년에 설계한 로고가 40년대의 제품에 인쇄되어 출하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것이 홍인에 관한 기록이자 역사이며 진실과 거짓에 대한 답이다.

상품이라는 존재는 비록 자신의 능력껏, 재주껏 파는 것이 상술이라고 하나 상술에도 격이있어야 한다. 있지도 않는 제품을 존재하는 것처럼 고가에 판매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것은 분명히 격이 결여된 상술이다.

푸얼차 상술에 관한 대가들은 모두 홍콩과 타이완에 모여 있다. 세계 푸얼차 상품의 출고가 이들로부터 비롯되었기에 이들을 가리켜 푸얼차계의 큰손이라 한다. 이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는데 필자는 이 모임의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푸얼차에 관한 상업적 정의는 대부분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필자는 이들과 푸얼차의 역사에 대해 적잖은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학자의 논거에 대해 귀를 기울여 지난날의 실수를 대부분 인정하는 반면 이들을 통해 푸얼차를 취급하고 있는 개인상점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부정하는 것을 보면 푸얼차의 진실을 가리는 것이 얼마나 험난하고 요원한가에 대해 한탄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인급차의 역사가 10년 정도 뒤쳐졌다고 해서 보이차의 왕자로 불리는 인급차 홍인의 명성과 품격이 결코 손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등시해 선생의《普洱茶》에 쓰여진 자료에 오류들이 있지만 운남보이차에 대한 전고가 미비했던 시절, 나름대로 수많은 보이차를 접하고, 그에 대한 자료들을 수합하여 한권의 책을 만들어냄으로 보이차에 대한 지평을 보다 넓게 만들었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보이차에 대해 알게 되고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오늘의 보이차세계가 있게 한 그분의 공로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는 점과 더불어 홍인이라는 이름의 보이차는 그 생산 년대를 떠나서 현대보이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명품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차는 그저 차일뿐이고 홍인의 맛과 향은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죽천향_()_

참고 (중국신문의 기사)

http://www.yxdaily.com/yxnews/cate/xxb/2007_5_18/239399.shtml
http://www.yuxinews.com 2007-5-18 8:07:00

富豪陈茶庄里的印级茶
玉溪新闻网讯(实习记者 马瑞华 文/图)说起来应该算是缘分,才第一次去富豪陈茶庄,店家就给我介绍了三款市场上很少见的印级茶,分别是八十年代朱砂红印铁饼、八十年代大红印生茶饼和八八九二生茶饼。

据了解,印级茶指的是上世纪五十年代初至六十年代后期下关茶厂生产的红印、绿印、蓝印甲乙级圆茶,以及后来的蓝印铁饼等茶品。(인급차 지적시 상세기 오십년대 초 지 륙십년대 후기 하관다차창 생산적 홍인、록인、람인갑을급원다,이급 후래적 람인철병등 차품)。印级圆茶的外包装纸,上方自右向左横书大字“中国茶叶公司云南省公司”,下方为小字“中茶牌圆茶”,中间为八个中茶商标,内有印刷了八个中茶商标的方形小纸条,没有其他字样。
印级圆茶整体品质优异,尤其以红印、无纸红印等为佳品。这些茶的原料主要来自西双版纳勐海地区的班章、巴达、布朗等茶山的野生、野放型老茶园,所以茶质厚重、茶韵深沉。印级圆茶,是由石磨手工压制而成的。

印级圆茶有着悠久的历史,它见证了中国普洱茶国营生产及社会主义计划经济时代的开始,凭借着为“红火江山,生生不息”创造的高品质,成为市场中高级普洱茶的代称,是普洱茶中高陈期、高价位的杰出典范。在经历了四五十年的陈化后,他们现在的身价都已超过了万元,所以渐渐从流通市场上退出。印级茶是陈茶中的陈茶,精品中的精品。因其用料考究、做工精细,除了饮用之外,也是一款馈赠、珍藏佳品。

[2010년 5월에 <보이생차>로 설치된 차벽이다. 사진은 벽면 전체의 일부, 1년이 지나면서 벽에 조금씩 틈이 생기는 현상이 보인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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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목다완(天目茶碗)은 예로부터 은하수를 보았다고 할 만큼의 영롱한 빛이 차와 함께 드러남에 찬사와 감탄을 겸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보기에도 드물었던 천목, 그저 검은 흑유가 아니라 반짝이는 별빛을 느끼리만치 반짝였고 세월이 지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천목이 우연이 아니라 과학적인 유약과 불의 조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목은 다양한 발전을 하는 가운데 영롱한 빛을 더하고 마치 장중한 불꽃놀이에서 화려한 공작의 펼친 깃과 같은 오색찬란한 광경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말차를 마시거나 또는 청차를 담아도 그 안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찻물을 본 경험이 있다면 그야말로 이번 전시의 초대는 헛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김동열은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을졸업한 공학도 이었지만 지난 IMF로 인한 사업 실패후 바로 도자기 작업에 뛰어들어 현재 13년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천목다완 작업은 맹목적으로 우연에 의지하기 보다는 과학적 탐구가 50% 이상 되어야 작품이 되기에 그의 적성[공학도]에도 맞았으며, 불과의 치열한 데이터 작업을 통해 장작 가마를 사용하기 보다는 현대적 설비로 불을 다뤄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제6회 부산국제차어울림문화제 초대전, 부산문화회관 전시실, 9월30일-10월2일]

필자가 김동열의 작품세계를 가까이서 알게 된지도 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짧은 기간에 그는 열정적인 삶으로 작품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그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현해 나가고 있는 바로 현시점에서 부산차문화진흥원(대회장 이미자)에서 천목다완 특별전을 펼친다는 것은 우리시대에 새로운 다완을 선보일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천목의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중국 도요지에서의 천목생산, 더 나아가 일본 작가들의 참여 속에서도 천목다완이 만들어졌습니다. 수많은 실패작과 아울러 한 두 점의 천목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했고 유약개발과 가스가마의 설비로 일정한 천목들이 만들어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김동열의 천목다완을 볼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천목다완과 이 시대의 천목다완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더 나아가 우리 찻자리에서 반짝이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천목다완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깊어 가는 가을, 정겨운 찻자리에서 그 반짝임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 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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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동열 작가의 요청으로 전시회 초대장에 <초대의 글>을 요청받아 쓴 내용입니다.
석우연담 독자 여러분에게도 알리기 위해 올립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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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테마파크가 많이 생기고 있다. 그 가운데 차와 관련해서 제주 티파크(대표 우제민)는 한국, 중국, 일본 차실까지 만들어져 있어서 다도 체험교실을 겸하고 있다. 동양의 차(茶)와도 연관선상에 있는 유럽 차도구가 은(銀)으로 제작된 티포트와 황동으로 만든 사모바르가 다양하게 전시된 곳으로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차도구 관련 박물관이다. 

이 곳에서 우제민 대표의 수집 과정 하나하나 듣고 보니 전시품이 새롭게 보이는 것 같았다.

전시품은 개인이 하나하나 수집하여 구성하였기 때문에 기획을 통한 일괄준비로 만들어 지거나 박물관을 연다는 명목으로 관련 소장가 또는 주변에서 찬조받아 구성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형태이다.

그래서 아기자기하다. 이야기거리가 많고 그 소장품 하나 하나가 역사 적인 배경, 그리고 차에 관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차와 관련해서 많은 수집품을 관객의 수준에 따라 볼 수 있다.

[사진, 19세기 유럽 사모바르(티파크 소장)]             이곳에는 일본 전차도에 사용되는 백동 탕관을 비롯해서 러시아의 사모바르나 영국 홍차도구, 중국 호남성의 흑차, 일본의 풍로 등이 그야말로 희귀한 백태만상을 볼 수 있어 도심 한가운데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흑차에 있어서는 시대별 구분이나 종류별로 아직 세분화된 전시는 아니지만 우제민 대표의 역량과 포부를 읽을 수 있었기에 차관련해서 국제적인 차전시가 가능할 것으로 볼 수 있었다.

특히 우제민 대표는 식품영양학 쪽으로 깊은 조예가 있어서 보이차를 분말로 가공하여 제품화 시킨 것과 티파크에서만 판매하는 보이생수, 녹차와 보이차를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것 등이 모여 하나의 재미있는 차 관련 파크를 이루어 놓았다.

대표적 소장품
홍차 문화를 대변하는 러시아 전통 황동사모바르(1870년), 페르시아 은제 사모바르(1910년)가 있다. 일본 전차도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명치시대 제품인 백동호랑이 탕관이다.

규모는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550평이 실내 면적과 230평의 전시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150평의 옥상 정원 및 야외 전시관은 도심속의 또 다른 차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티파크 전화(064-748-9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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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테마파크가 많이 생기고 있다. 그 가운데 차와 관련해서 제주도 티파크(대표 우제민)는 한국, 중국, 일본 차실까지 다도 체험교실을 겸하여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차도구 관련 박물관이다. 이 곳에서 우제민 대표의 수집 과정 하나하나 듣고 보니 전시품이 새롭게 보이는 것 같았다.

전시품은 개인이 하나하나 수집하여 구성하였기 때문에 기획을 통한 일괄준비로 만들어 지거나 박물관을 연다는 명목으로 관련 소장가 또는 주변에서 찬조받아 구성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형태이다.

그래서 아기자기하다. 이야기거리가 많고 그 소장품 하나 하나가 역사 적인 배경, 그리고 차에 관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차와 관련해서 많은 수집품을 관객의 수준에 따라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일본 전차도에 사용되는 백동탕관을 비롯해서 러시아의 사모바르나 영국 홍차도구, 중국 호남성의 흑차, 일본의 풍로 등이 그야말로 희귀한 백태만상을 볼 수 있어 도심 한가운데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흑차에 있어서는 시대별 구분이나 종류별로 아직 세분화된 전시는 아니지만 우제민 대표의 역량과 포부를 읽을 수 있었기에 차관련해서 국제적인 차전시가 가능할 것으로 볼 수 있었다.

특히 우제민 대표는 식품영양학 쪽으로 깊은 조예가 있어서 보이차를 분말로 가공하여 제품화 시킨 것과 티파크에서만 판매하는 보이생수, 녹차와 보이차를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것 등이 모여 하나의 재미있는 차 관련 파크를 이루어 놓았다.

대표적 소장품
홍차 문화를 대변하는 러시아 전통 황동사모바르(1870년), 페르시아 은제 사모바르(1910년)가 있다. 일본 전차도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명치시대 제품인 백동호랑이 탕관이다.

규모는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550평이 실내 면적과 230평의 전시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150평의 옥상 정원 및 야외 전시관은 도심속의 또 다른 차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티파크 전화(064-748-9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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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온다. 이맘 때가 되면 술 대신 차를 올리는 방법에 대해서 차인들은 고민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와 같은 일에 자신감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된 책이 나왔다. (사)한국차인연합회 부회장이며, 관정다도원 원장인 전정현 저자의 <내 마음의 헌다>티웰 발행이다. 아래 글은 저자의 가족이 그동안 해온 방법이므로 참고하면 좋을 것아서 소개한다.
 
한가위는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추석, 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하다(大·正)’의 관형사형이고, 가위란 ‘가배(嘉俳)’를 의미한다. 가배란 ‘가운데’란 뜻이니 한가위란 8월 중에서도 정(正)가운데란 뜻이다.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仲秋節·中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한 것은 훨씬 후대에 와서 생긴 것으로, 중국 사람들이 ‘중추(中秋)’니 ‘추중(秋中)’이니 하고, ‘칠석(七夕)’이니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중추(中秋)의 추(秋)와 월석(月夕)의 석(夕)을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에는 세상을 밝혀 주는 태양은 당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 번 만월(滿月)을 이루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그래서 일 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이 큰 명절로 여겨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줄다리기, 씨름, 강강술래 등의 놀이가 자연스레 형성되었을 것이다.

차례에 차를 올리는 경우는 차만 올리거나 술과 차를 함께 올리는 경우가 있다. 사진은 술 대신 차만 올리는 가정이다. 그러므로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여겨져 명절로 제정(制定)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유리왕조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진 편은 수로가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날 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음력 팔월 보름은 성묘의 날이기도 하다. 속담에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고 《열양세시기》에 언급하듯이, 한가위의 차례는 그 집안의 풍습을 대물림하듯 조상 섬기기가 조금씩 다르다.

새로 수확한 곡식이나 과실로 사당에 차례를 올리는 데, 절차는 설날과 같은 절차에 따르고 조상의 묘소를 찾아 벌초를 한다. 한가위 차례에 올리는 제수는 햅쌀로 만든 메, 떡, 술 등과 오곡과 햇과일을 마련해 차례상을 차려 경축적 의례를 해왔었다. 요즘 술 대신 차(茶)로 차례를 지내는 가정도 있고 술과 차를 같이 올리는 집안도 있다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전통 예법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통적인 차례 순서

차례는 제주가 기제사를 지내는 모든 조상에게 지낸다. 집(사당)에서 지낼 때는 아침에 지내며, 묘지에서 지낼 때는 그 날 중에 적당한 시간을 정해서 지내면 된다. 성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묘지에서 차례를 지내야 하지만, 요즘 추석 차례는 집에서 지내고 성묘는 따로 하는 경우가 많다.

차례 절차(순서) 강신(조상 모심) (제주) 분향(향을 세 번 사르고 재배) (집사) 제주에게 차를 따라준다.(제주) 차를 모사 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붓는다.━산소에서는 땅에 붓는다.

(제주) 재배/
참신(문안 인사) 제주 이하 모든 남자 재배, 여자는 사배한다.
진찬(제수 올림) 식어서는 안 될 제수를 윗대 조상의 신위부터 차례로 올린다.(적도 올린다)

유식(식사 권유) (제주) 제주가 차병을 들고 윗대 조상부터 아랫대 조상까지 차례로 차를 따른다.
(제주 부인) 윗대 고위부터 아랫대 비위까지 차례로 젓가락을 송편에 걸치고 시접에 걸쳐놓는다.
(제주) 두 번 절한다.
(제주 부인) 사배 같이 절한다.
참사자들 모두 무릎 꿇고 7~8분 동안 조용히 앉아 있는다.
깨끗한 정화수(井華水)로 행다를 해서 차를 새로 올린다.
낙시저(수저 걸기) (제주 부인) 윗대 조상부터 차례로 수저를 내려 시접에 담는다.
사신(작별 인사) 모든 자손이 남자는 재배, 여자는 사배한다.

납주(지방 소각) (제주) 향 앞에서 지방 소각하며 재는 향로에 담는다. (산소에서 지내는 경우에는 따로 납주가 없다) 철상(제사 정리) 안쪽에 있는 음식부터 차례로 음식을 내린다. 음복 자손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조상의 유덕을 기린다.

현재 차례를 지내는 모습을 보면 술을 올리는 경우, 차와 술을 함께 올리는 경우, 차만 올리는 경우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

부산 하단동에 사시는 다인 허광일, 손경희 씨 부부는 술과 차를 같이 올리는 가정이다. 제사상 옆에 차상을 마련해 제주가 격에 맞는 행다를 시작하여 헌공 잔에 차를 따른 뒤 유식 때 주부가 술과 차를 같이 올린다고 한다.

부산 괴정동의 변승욱 씨 형제는 부친이 살아 계실 때 술을 들지 않았고, 제사에는 술은 일체 쓰지 말라고 명했기 때문에(유언) 강신까지도 차를 올리고 있다. 제례상이 차려지면 분향 이전에 차남이 차상과 모든 다도구를 준비해 차를 마련하면 형님인 제주가 강신 때 모사그릇에 세 번 붓고 유식 때도 차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또, 부산 영도 부산남고에 재직 중인 박기호 선생은 유언으로 자제들에게, 자신과 관련된 모든 제례상에는 향 한 자루와 차 한 잔만 올리라고 말하고, 자제들이 제대로 하는지 지켜봐 주십사 하는 당부까지도 하고 있다고 한다.

차례를 지내고 난 뒤에 행해지는 풍속에는 차례(茶禮) 이외에도 벌초(伐草), 성묘(省墓), 소놀이, 거북놀이, 강강술래, 원놀이, 가마싸움, 씨름, 반보기, 올게심니, 밭고랑 기기, 줄다리기, 소싸움 등이 있었다 하나, 대부분 농경문화와 관련된 풍속과 놀이여서 오늘날에는 문헌에서나 확인이 가능할 뿐, 전승되어 오는 것은 몇 가지 되지 않아서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내 마음의 헌다 - 본문에서)
                                                      
내 마음의 헌다 http://seoku.com/450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 http://seoku.com/44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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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징명의 품다도] 16세기

문징명과 심주(沈周)는 모두 소주의 문인세가 출신으로, 생활이 부유하여 한 평생 대부분 산림에 노닐면서 자연을 추구하였기에, 작품 중에 대다수가 그 주변의 생활모습이다.

문징명은 일생동안 차를 즐겨 마셔 일찍이 스스로 이르기를 : “나는 평생 술을 아니 마시지만, 그래도 차에 취해 산다네.” 그는 차로써 시와 그림과 서예에 도입하였으며, 그래서 그림 중에 표현해낸 명대 문인의 품다(品茶) 역시도 상당히 대표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림 가운데에 문징명이 그린 초당(草堂)은 그가 늘상 친한 벗들과 더불어 함께 모여서 품다(品茶)하던 곳으로, 3년 뒤인 가정 갑오(1534)에 문징명은 다시 〈차사도(茶事圖)〉를 그렸으며 그림위에다 또한 다구시 10수를 지었다. 이 그림위에 초당(草堂)역시 곧 이곳이다. 집, 노송,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그 어느 것 하나 <품다도(品茶圖)>와 다를 바가 없다. 이 해 3월에 문징명이 병들어 누웠기에 지형호구(支硎虎丘)에 가서 품다(品茶)할 수가 없자 벗이 찾아와 차 두세 가지를 갖다 주었다.

문징명은 병중에 호구 우전차를 맛보면서 드디어 이 그림을 그리고 또 <다구십영(茶具十詠)>을 썼다. 문징명의 품다차사(品茶茶舍)는 울창한 소나무 숲에 그윽한 경치로 그야말로 명대 문인들이 추구하던바 이상적인 차사(茶舍)의 경지이기도 하다.

차를 마시면서 시원한 그림, 또는 다향을 느낄 수 있는 茶畵 한 점 걸려 있지 않다면 무척이나 적적할 것이다. 이제 우리 찻자리는 이전보다 여유롭고 마음이 넉넉해졌다. 꼭 한 점이 아니라 그날 그날 분위기에 맞는 그림을 걸고 차 한잔 할 수 있는 여유는 그리 요원한 일이 아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 http://seoku.com/44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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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전문점을 오픈 한다고 하면 대게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근데 이번에 개업한 “인야”는 주인의 이름 조은아의 이름을 중국 발음으로 한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메뉴에서 중국차 이름을 많이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차 공부를 하고 개인적인 연구와 노력으로 중국 전통차를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 맛을 만들었다. 그것을 200명, 300명에게 시음하여 테스팅을 그쳤다한다. 개업하고 2주째 되는 날이다.

주인은 오늘 찻집 인야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yin ya 카페)오프라인 모임이 있다고 해서 조금 일찍가서 만났다. 봉황단총 황지향을 마셨다.
차 전문점 “인야” 대표 조은아 씨는 오룡차를 블렌딩한 맛을 강점으로 내세운다고 한다. 홍차 역시 기존 홍차 전문점에서 맛 볼 수 없는 차 맛의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차에 대한 블렌딩의 역사는 서양의 커피 블랜딩보다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그러한 문화의 흐름을 이어받지 못했고 현지에서는 각기 다른 차류들을 중첩하거나 분리 추출하여 한번에 출수하는 형식이 일반화 되어 있다. 이에 인야에서는 이러한 블렌딩을 처음으로 한국에서 실현하려 하고자 한다.

일단 응원의 박수부터 보내고자 한다. 이러한 블렌딩, 혼합차류에 대한 인식이 한국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는 어떤 반향을 불러 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차를 마시는 방법 중에는 블렌딩의 방법이 엄연히 존재한다.

위치: 신촌역에서 연세대학교 쭉으로 올라가다가 마지막 건널목에서 약국 안쪽으로 들어간다. 직진으로 100미터 정도가면 우측에 있다.(전화02-3141-0915)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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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부산국제차어울림 문화제(대회장 이미자)는 2011년 9월 30일-10월2일까지 문화회관에서 다양한 차행사를 가진다. 이번 행사에서 천목다완에 대한 기획전으로 가칭 "과거와 현대의 비교 작품전(송대 명품 천목 다완과 토담요 김동열 천목다완)의 기획이다.

송대 건요에서 생산된 토호잔, 유적천목, 목엽천목 등 천목다완으로서 수작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 동안 차인들 속에서 우당 선생의 천목다완 소장품에 대한 내용은 소문은 익히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작품 한 점 한 점이 수작으로 개인 소장품으로서는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주최측에서 과거의 명품과 현대 도예가의 작품을 비교 전시하는 것이 주된 컨셉이다. 송대 천목다완과 현대 작가가 재현하고 있는 천목다완의 비교전시가 특별 기획되었다. 이러한 전시는 일본에서는 과거 조선시대 만들어진 명품 다완과 비교전을 하는 경우, 또 국내에서 2002년 도자기 엑스포 때 조선시대 명품 다완을 한국에서 전시하며 우리나라 사기장들의 작품도 관람할 수 있는 전시도 있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일본에 건너간 일본 차도구인 정호다완만을 전시한 것이며 우리의 다완이 비교전시된 경우는 아니었다.

차의 메카 부산이기에 또한 이러한 시도가 가능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그러한 명품을 소장하고 있는 소장가로서 부산시의 행사에 선뜻 전시의 기회에 흔쾌히 응낙해 주신 우당 선생의 결단은 문화라는 것이 한 개인의 소유를 넘어 문화를 향유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신 용단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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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0일 
집행부로서는 문화회관 전시실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좀 더 큰 전시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천목다완 소장자 중에 김성태 선생이 5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필자의 생각은 최근 월간다도에서 건요 천목다완과 남송 경덕진요 청백유 잔탁에 대해서 기고하는 유물 소장가 김성태 선생의 소장품이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소장자와 집행부의 의견이 일치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상기의 글은 최종적으로결정이 나면 다시 공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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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4일 집행위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일요일 필자는 선약이 있어서 함께 만나지 못했지만, 김성태 소장가와 만남이 있었는지? 500여 점의 천목다완 소장품을 전시하기로 했다면, 우당 선생의 전시 참여가 성립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예전에 많은 소장품을 전시해 보았기에 소장가로서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근데, 이경순 집행위원장의 답변은 오늘 문화회관 전시실에서 김동열 작가와 우당 선생을 함께 만나서 전시하기로 결정을 보았다고 한다. 필자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를 들었지만, 재미있는 현상이다.
우당 선생은 지난주에 필자와의 통화에서 보안상의 문제와 집행부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감안하여 10점을 전시하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김성태 선생은 전시장 규모에 맞게 500여 점의 천목다완으로 시대적인 변화와 발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보여 줄 수 있기에 큰 규모의 전시가 요구되는 행사에 맞게 집행부와 의견일치를 본 것 같다. 이런 경우, 전시가 성립될 수 없지만 우당 선생의 최종적인 결정을 직접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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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5일
우당 선생은 김동열 작가를 통해서 전시를 함께 하기엔 부담스럽다는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 http://seoku.com/44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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