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일암 차실에서

다회와 다사는 카이세키요리가 있고 없고로 구분할 수 있다. 즉, 다회는 우스차와 고이차를 마시고, 다인수의 손님을 초대하여 즐기는 모임이다. 그리고 다사는 카이세키요리와 함께 고이차, 우스차를 마시며, 소인수의 손님을 초대하여 즐기는 모임이다.

특히 다사의 순서를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마치아이(待合)라는 공간에 그날 초대받은 손님들이 모두 참석한다. 2) 주최측은 손님에게 가벼운 음료를 제공한다. 3) 손님들은 정객(한국에서는 상객)부터 말객까지 순서대로 코시카케마치아이(腰掛待合)로 가서 순서대로 앉는다

4) 주인은 손님을 맞이하러 중문까지 가서 (무카에츠케), 츠쿠바이로 안내한다 5) 손님은 정객(상객)부터 순서대로 손과 입을 헹구고 순서대로 다실로 들어간다 6) 다실에 들어와서 순서대로 도코노마와 도구 등을 배견하고 자기에 앉는다 7) 주인은 카이세키요리를 손님에게 대접한다(40분가량소요)

8) 요리를 다 먹고, 그릇 등이 모두 나가고 나면 과자가 들어온다. 9) 과자를 먹고나서 다실 밖으로 나와서 휴식을 취한다(나카다치(中立ち), 40분 전후 정도) 10) 다실이 정리되고 나면 주최측은 토라(銅鑼)를 울려 손님이 모이게 한다 11) 손님은 다시 다실로 들어와서 고이챠(濃茶)와 우스챠(薄茶)를 즐기고 파한다

youtu.be/-E5i5_NSM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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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사기장(부산시인간문화재 13호)과 김덕기 대표

김덕기 박사의 [중국의 도자문화] 10강에서는 김영길 사기장을 손님으로 초대하였다. 이번 강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북송 가마터에서 나온 유물들을 살펴보면서 사기장 입장에서 견해를 밝히는 이야기릐 흐름황하가 흐르는 하남성 북부에는 숭산(崇山)이 있고 중부에는 평정산(平顶山)이 우뚝한데, 그 아래로 여하(汝河)를 따라 북으로 보풍현, 남녁에 노산현이 있다.

汝河는 노산수고(鲁山水庫)에서 물길을 열어 보풍宝豊.겹현郏县.여주汝州.등봉登封. 소림사를 지나  용문석굴.낙양洛阳. 황하로 흘러간다.

좋은 흙에, 물이있고,땔감까지 풍부하여 자기 생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곳이 노산(鲁山)이다. 노산 단점요는 수隋.당唐시기 유탁유(乳濁釉) 화자(花子)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균요와 여요 심지어는 북송관요에 까지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인 요장이다.

우리가 송나라 "5대 명요"를 거론 하기에 앞서 꼭히 鲁山 段店窑를 짚어 볼수 밖에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이다.

youtu.be/TnlK2q2Od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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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다석tv

산센케(三千家)에 관하여

산센케는 다도유파 중 오모테센케(表千家)우라센케(裏千家)무샤노코지센케(武者小路千家)를 총칭해서 부르는 명칭이다. 센리큐(千利休)가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1591년 할복을 명받고 죽게 된다. 이후 그의 계보를 이어받은 자손은 리큐의 양자였던 쇼앙(少庵)이었고, 쇼앙은 그의 아들 소탄(宗旦)에게 대를 물려주게 된다. 소탄은 조부가 권력을 가까이하여 할복을 당하게 된 이유에서 인지, 평생을 권력에 가까이 가지 않고, 청빈한 생활을 하였다.

소탄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들은 모두 권력자의 집안에서 차선생을 하게 하였다. 이후 에도시대가 되면 첫 번째 아들을 제외하고 둘째는 무샤노코지센케(武者小路千家), 셋째는 오모테센케(表千家), 넷째는 우라센케(裏千家)로 나누어져 산센케가 생겨난다.

유파명의 유래를 보면 소탄이 셋째 아들과 큰 길가에 후싱앙(不審庵)을 짓고 살다가 셋째에게 다실을 물려주고, 후싱앙 뒤편에 곤니치앙(今日庵)을 짓고 넷째아들과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곤니치앙을 넷째아들에게 물려주고 죽는다. 그러한 연유에서 생긴 유파가 오모테센케와 우라센케이다.

다실이 길가 앞쪽에 지어졌다하여 오모테라는 명칭이 붙었고, 뒤쪽에 다실을 지었다고 하여 우라라는 명칭이 붙게 된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다른 집안의 일을 보다가 무샤노코지(武者小路)라는 지역에 칸큐앙(官休庵)이라는 다실을 짓고, 센케집안을 이어가면서 무샤노코지센케(武者小路千家)라는 유파가 만들어 지게 된다.

youtu.be/LPHmj-Cz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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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원 전주 지점

보이차 전문점 명가원에서 첫 번째 대리점으로 전주지점(대표 박종관)을 오픈하였다. 오픈 기념 차회는 박종관 점장 주관으로 이날 2시와 5시 두 차례 열렸다. 2시 차회를 참관하였는데, 처음 차는 2005년 여명차창에서 생산한 숙차, 두 번째는 1998년 강성 전차를 내었다.

매장 내 차탁

참석자 대부분 10년 이상 차를 즐겨온 분들이기에 익은 차 맛에 익숙한 듯 찻자리는 시종 화기애애하였으며, 젊은 점장의 차 내는 모습에서 더욱 참신한 도약을 기대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김경우 명가원 대표가 준비한 충시차(송빙호)는 최상(VF)의 깊은 맛을 보여주었다. 이날 충시차는 개업 기념 차회의 특별 보너스 격이었다.

명가원 전주지점 박종관 대표

특히 박종관 점장은 3년간 커피전문점을 운영한 경험이 있기에 보이차 전문점은 새로운 도전이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그의 젊은 미감이 전주에서 새로운 문화의 터를 만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실내 전시된 보이차

위치: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1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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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테센케류 적조암 숯 피우기

다도의 세계에서 특히 남성들이 빠진다고 하는 숯불 다법을 공개하였다. 오모테센케류 부산 적조암 최미경 선생의 동작 하나하나를 상세히 보여준다.
炭斗(탄두)와 灰器(회기)를 옮기고, 고리를 솥에 걸어 올리는 동작. 솥을 오덕에 올리고, 향합 배견의 인사까지 33년 동안 차를 수행으로 여긴 최미경 선생의 숯피우는 다법이다.

youtu.be/QtkHaCPSC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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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명차 최해철 대표

간단히 정리한 나의 이력서

중국으로 입국하면서 2주간 격리되는 동안 페이스북을 자주 보고 사흘에 한 번 정도 글을 올렸더니 갑자기 친구 요청이 쇄도합니다. 차에 관심이 있는 분들 그리고 환경과 예술 방면에 인문학적 식견이 있는 분들 위주로만 요청을 수락하고 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신청하다 보니 혹여 저를 아는 분들의 신청도 빠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유명 인사도 아니고 그저 차 만드는 사람일 뿐인데 귀한 분들의 친구 신청을 거절하기가 때론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내용으로 도배를 하거나 야한 사진을 올려 그렇잖아도 쓸쓸한 밤을 망상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은 바로 삭제하고 있습니다..^^

댓글과 메신저로도 여러분들이 소식을 전하는데, 답장을 안 하기도 그렇고 일하는 틈틈이 답장을 쓰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군요?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자주 휴대폰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특별한 사연이 아니라면 그냥 읽었다는 표시로 하트 정도만 남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해철 대표 카톡

어쭙잖은 글 그냥 읽어만 주셔도 감사한 일입니다. 차업에 열중하다가 틈틈이 다시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박홍관 선생님이 운영하는 '석우연담'에 2017년 3월부터 '멍하이 일기'라는 코너를 만들어 연재하면서부터입니다. 윈난성 멍하이에 한국인 명의의 '석가명차차업유한공사'를 설립하고 거주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보이차의 생산과정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에피소드를 소개한다는 차원이었습니다.

그 후 석가명차 오운산 이름의 밴드와 블로그 그리고 유튜브를 개설하였고 작년부터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도 개통했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건 물론 저희 업체를 소개하고 홍보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목적은 얼마 전에 열 편에 걸쳐 올렸던 '보이차의 불편한 진실'처럼 현재 다소 왜곡되고 있는 차문화를 개선하고 맑고 밝은 차세상을 여는데 일조하고픈 마음에서입니다. 이십여 년 차업을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사명감도 생겼습니다. 차로 인연하여 삶을 꾸릴 수 있었기에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소명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최근에 페이스북에 제 글의 조회 수가 높다 보니 각종 개인적인 질문을 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보이차에 관한 질문도 많지만 의외로 저 개인의 이력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군요. 일일이 답변드리기도 그렇고 이 지면을 빌어 간단하게 제가 살아온 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1965년생 56세입니다.

저의 나이는 회사 기밀이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했는데, 여러분들의 거듭된 질문에 굳이 밝히지 않을 이유도 없어서 그냥 알려드립니다. 농촌에서 태어나 8살 때 아버님을 여의고 홀로되신 어머니 곁에서 8형제와 더불어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4년 전액 장학금이 아니면 대학을 진학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공부 실력 또한 고만고만했었기에 이대학 저대학 기웃거리다가 결국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군대를 갔고 단기사병으로 복무했습니다. 무슨 특권으로 일명 방위를 간 것은 아니고, 지역 방위라고 그 지역 출신은 근처에 있었던 군부대에 자동 징집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짧은 군 생활을 마치고 또다시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주로 산으로 다녔기에 절집과 인연이 많은 편입니다. 한때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거창한 구호에 이끌려 좇아다닌 적도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뜬구름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7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고 이십 대 말에 지금은 목사를 하고 있는 친구의 권유로 '부산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습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글재주를 눈여겨 봐준 친구가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번번이 낙방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더니 지원서까지 가지고 와서 협박? 하길래 할 수없이 다시 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울산대학교' 국문과로 편입하여 최종학력은 국문학사입니다.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던 이유는 단 하나 가끔씩 마음속에서 뜬금없이 솟아나는 콤플렉스를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94년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것은 '민들레'라는 도서대여점이었습니다. 가진 건 책밖에 없었든 시절 그것도 남들은 잘 읽지도 않는 고리타분한 철학 서적들을 통도사 터미널 근처의 작은 공간에 쌓아두고 그렇게 또 굴곡의 한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1996년 울산 언양의 작천정이란 곳에 '가시리잇고' 라는 전통찻집 겸 식당을 개업했는데, 요즘 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1999년 더 이상 돈벌이를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지리산 자락의 토굴에 들어가 영어 공부나 하며 2년 정도 잘 놀았습니다. 그리고 2001년 운명처럼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고 '석가명차'를 창업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4년 중국의 윈난성 멍하이에 '오운산'이란 상표의 보이차 전문 회사를 창업하고 지금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저의 간단한 소개를 마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이나 다소 이상한 댓글을 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한마디로 잡놈이기에 곤란한 질문이나 거창한 물음에는 답할 능력이 안된다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번 올린 글에 500명이 넘는 분들이 하트 표시를 해 주셨는데, 일면식도 없지만 멀리서 응원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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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손희주 2020.12.13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릴때 언양온천을 자주가면서 가시리잇고를 자주 들렸어요. 음식도 너무 맛있고 그중 제일은 돌솥비빔밥입니다!!! 어릴때 먹은게 아직도 생각이나네요 ~ 우연히 네이버에 가시리잇고를 검색하여 선생님 글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제 어린시절의 언양을 장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최해철 2020.12.20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기억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렇습니다. 찻집으로보다 돌솥비빔밥집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때가 IMF 시절이라 밥 한그릇이라도 든든하게 드시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통도사 앞에서 민들레책방을 할때 근처의 학생들이 민들레 아저씨라며 많이들 챙겨주고 '가시리잇고'를 개업했을 때는 내가 좋아했던 꽃 한송이 씩을 들고 부모님 모시고 왔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꽃을 차마 버릴수 없어서 가게 주위에 노끈을 두르고 꽃아 두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려운 시국에 다들 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잘 자라서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바랄뿐입니다.

2020년 10월 17일 부산 김봉건 회장 차실에서 동양차문화연구회(회장 김봉건) 가을 차회를 가졌다.

참석자는 허인욱 교수, 오명진, 박영식, 김봉건, 박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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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보이차의 불편한 진실'이란 제목으로 현재 보이차 시장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제 나름의 시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품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동안의 글들을 마감할까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들 이외에도 농약과 비료의 문제, 아플로톡신을 비롯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의 검출 문제 등 여러가지 고민할 부분이 있습니다만 차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겠습니다.

품평이라고 하면 흔히 각종 차 관련 행사에서 업계의 저명한? 분들을 모셔서 출품된 차들을 심사하고 시상하는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되는 품평은 행사 차원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시상 또한 그러한 방향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도 중국의 이런저런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여러번 참여를 권유받았고 시상을 거래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심평을 통해 우수한 차를 선택하고 시상하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중국의 차 가게를 방문했을 때, 입구에서부터 장식품처럼 진열되어 있는 국적불명의 상패를 보다보면 이런 시상에 연연하지 말고 제품에 좀 더 신경 쓰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대로 시설을 갖춘 실험실에서 전문 연구원들이 엄격한 기준 속에서 하는 품평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차인들이 차를 나누며 심심풀이?로 하는 품평도 있습니다. 행사 차원의 품평은 주최 측의 의도 등 다양한 품평 기준에 따라 선택지 또한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차의 경우 어쩌면 일반인들이 가볍게 하는 품평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차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약이 아니기에 효능적 측면보다는 마시는 사람의 입맛이 더 중요합니다. 또한 소비자들의 기호를 충족시켜주는 차라야 소비되고 계속해서 생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소비자들의 기호만 좇아 가는 품평과 그렇게 선택된 상품이 꼭 최고의 제품이라 할 수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기호는 시대적 개인적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대중은 때로 일시적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중우(衆愚) 적인 성향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한때 대중의 열열한 호평 속에 사랑을 받았던 것들이 서서히 진실이 밝혀지고 한순간에 내팽개치지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차에 있어서 좋은 품평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무엇보다 본질에 충실한 품평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는 차가 가진 본래의 맛을 가장 잘 살린 차가 좋은 차이고 그러한 맛을 구현한 차를 정확히 가려내는 것이 좋은 품평이 아닐까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차는 차나무에서 딴 이파리를 가공해서 만든 것입니다. 우려서 마시면 향기로우며 입안에 머금었을 때 감미롭고, 마시고 나면 속이 편안하며 여운이 오래도록 몸을 감싸는 느낌이 있는 차, 수시로 다시 생각나는 것이 좋은 차라고 생각합니다.

차를 마시면 곧바로 그러한 느낌이 있는 차도 있고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서 서서히 느껴지는 차도 있습니다. 그래서 품평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합니다. 저는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SNS에 올라와 있는 다양한 시음평을 보면 때론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보기에 목적을 가진 시음평과 순수한 시음평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데 일반 소비자들이 판단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나친 미사여구로 마치 장생불사의 영약처럼 묘사한 차, 그래봐야 쌀값보다 비싼데 가성비만 강조한 차,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라며 터무니없이 비싼 차, 당장 구입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차, 기회는 찬스이니 왕창 사서 쟁여두어야 한다는 차, 지금은 맛이 없으나 훗날에 틀림없이 황홀한 맛으로 바뀔 것이라는 차, 몇 달만 마시면 날씬해지고 예쁘진다는 차 등등 ...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예들을 적어 봤는데 저는 오히려 이렇게 소개하는 차들은 빼고 구입하시면 좀 더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자신이 취급하는 차만 최고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만든 차는 무조건 아니라는 사람이 판매하는 차는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이던 집착하면 객관성이 결여될 수 있습니다. 열정의 오류라고 할까요?

지나친 집중은 오히려 다른 세계를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저도 가끔 제가 만든 차에 대하여 설명하다 보면 문득 이야기가 점점 부풀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최소한 다른 사람이 만든 차에 대해서는 쉽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좋지 않은 느낌이 들면 그냥 입을 다뭅니다. 좋은 차를 생산하는 고통을 알기에 한두번의 간단한 시음으로 타인이 정성껏 만든 차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은 차를 만드는 동업자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보이차의 불편한 진실'이란 제목으로 쓴 10편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전화로 댓글로 응원하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제 나름의 생각을 적었을 뿐 제가 생각하는 진실이 모두의 진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여 제 글로 인해 불편한 분들이 있었다면 사과의 말씀 또한 올립니다. 좀 더 맑고 투명한 보이차 세계를 위한 제 나름의 제안이라 여겨주시고 넓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보이차의 불편한 진실] 10회 마지막 유튜브 영상
youtu.be/3nri3tok8ww

 

 

 

 

Posted by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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