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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리큐 영화 "리큐에게 물어라" 완성 기자 회견

일본 다도를 완성시킨 리큐(利休, 1522~1591)는 일본 사카이시(堺市)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리큐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로부터 센(千)이라는 성을 하사 받아 센리큐(千利休)라 불렸다. 오다 노부나가의 사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다도 자문 역할을 하며 다두(茶頭)로서 차에 관해서는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센리큐는 차의 세계에서 혁신을 가져왔으며 화경청적(和敬淸寂)의 정신을 강조해 다도를 일본을 대표하는 독특한 문화로 자리잡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그의 후손으로 현재 오모테 센케(表千家), 우라센케(裏千家), 무샤노코지센케(武者小路千家) 가문이 내려오고 있다. 일본 에서는 다도를 완성한 리큐의 덕을 기리기 위한 추모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센리큐에 대한 영화는 현재 일본에서 완성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12월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아래 기사는 지난 7월 10일 <신주쿠바르토9>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번역하여 올리는 것으로, 이후 한국에서 개봉 되는 지행 상황을 계속 기고하고 한다. 기자회견에서 
이치카와 에비조(35), 나카타니 미키(37), 다나카 미츠토시(54) 가 나왔다.

본 작품을 하기로 했을 당시의 감상
이치카와 에비조(이하, 에비조): 감독과 원작자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꼭 에비조군이 해주었으면 한다」라고. 지금까지 여러 명배우분들이 연기 해 왔었기에,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 정중히 거절했습니다만,「꼭 당신이었으면 좋겠다」고 다시 편지가 왔었습니다.

그로부터 일부러 만나러 와주셔서, 그때 「왜 저여야 합니까? 」라고 물으니, 감독으로부터 「패션입니다. 」라고 영문 모를 말을 들었네요(웃음) 그리고 다시 한 번 만날 기회가 생겨서, 긍정적 방향으로 작품에 관한 여러가지를 듣고, 역할을 맡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나카타니 미키(이하, 나카타니) : 10대 시절부터 「お~いお茶」라는 상품의 광고를 할 수 있도록 해주셨기에, 여배우인생은 お茶(차)와 함께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お茶(차)와 함께 걸어왔기에 茶道(다도)라는 것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렇고, 이 작품이 영화화되기 전부터 무언가 관련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리큐의 역이 헤이세이의 무법자 에비조씨이기에 (웃음) 여러 의견이 있었습니다만, 저로서는 어떤 곤란한 상황이 와도 리큐의 부인역을 연기해 보이고, 이 작품을 좋은 것으로 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의 감상
에비조: 저는 자신의 작품으로는 울지 않으며, 자신이 출연했다해서 호의적으로 보거나 하지 않습니다만, 마치고 난 후 울었네, 눈물이 나더라. 라는 부분이 새로웠습니다. 책을 읽은 분, 리큐나 역사에 흥미가 있으신 분은 물론입니다만, 젊은 분들도 봐 주신다면, 예술은 보통의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부분에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치카와 단주로(특별출연)와의 공동출연에 관해서
에비조: 아버지는 武野紹鷗(다케노 조오)역을 받아들였을 당시, 집으로 저를 불러서 「출연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지만, 저희는 평소 경어를 사용하며, 거리가 있는 사제관계이기도 합니다만, 「이번은 당신이 주역입니다」의 이유로 저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출연장면으로는 3,4 씬입니다만, 다케노 조오의 자료를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매우 열심히 역할연구를 하였으며, 감독에게도 이 씬은 리큐에게 이렇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의견 등을 꽤 이전부터 이야기 했었습니다. 단지,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오늘 보시는 형태로 하고 싶었다. 평소에는 그런 말을 하면, 「아뇨」라고, 아버지는 주장한 방식을 고집하는데, 이번에는 몸이 안 좋았나 봅니다. 감독이 씬에 대해 아버지께 설명하러 간다고 말할 때, 「아마 반대하실꺼에요」라고 말했습니다만, 아버지가 「응」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들은 순간,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오시면 「아니야」라고 말하는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만, 아무 말없이 연기하셨습니다.

다케노 조오와 요시로(리큐), 혹은 단주로와 에비조, 스승인 아들이라는 관계성은 아버지가 아니면 안 되었을테고. 아버지는 이 영화가 개봉할 때에는 어쩌면 자신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인식했던게 아닌가 하는 부분도 느껴졌기 때문에 왠지 아버지의 모습을 영화로 보면 다시 한 번 이 작품에 출연해 주신 것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에비조씨와의 공동출연에 관해서
나카타니: 원작도 매우 치밀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감독의 미의식의 정도는 리큐에 버금갈 정도로 훌륭하며, 또한 에비조씨가 연기한 리큐를 보고 3곳 정도 눈물을 흘린 씬이 있었는데, 그런 작품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독님과 에비조씨에게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출연: 이치카와 에비조, 나카타니 미키 / 이치카와 단주로(특별출연) / 이세야 유스케 / 오모리 나오 등
카테고리: 미디어정보 by 영화 [리큐에게 물어라]
2013년 7월 1일

『리큐에게 물어라』 제37회 몬트리올 세계 영화제 월드콤페부문 노미네이트! 2013년 12월 7일에 전국 개봉을 결정한 『리큐에게 물어라』가 이번 제37회 몬트리올 세계영화제 월드콤페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아래는, 주연의 이치카와 에비조, 나카타니 미키, 다나카 미츠토시, 본 작품을 콤페부분 노미네이트 한 몬트리올 세계영화제의 의장인 セルジュ・ロジーク로부터 도착한 코멘트입니다.

이치카와 에비조
이번, 몬트리올 세계영화제의 콤페 부문에 선정해주셔서, 본 영화의 주연으로서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또한, 본 작품을 통해서 일본의 美의 원점을 만들어낸 센리큐 라는 위대한 인물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정말 훌륭한 출연자 분들과 스탭 분들, 협력자 분들을 만나, 저도 全身全霊(전신전령)의 마음으로 연기한 결과가, 해외의 분들께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까가 기대됩니다.

나카타니 미키
「お~いお茶」의 광고를 계기로, 다도를 즐긴 지 약 10년이 됩니다만, 특히 의미 깊은 「리큐에게 물어라」가, 2011년에 그의 땅에서 첫 무대를 밟은 이후, 매우 의미 깊은 몬트리올에서 국제영화제의 컴페티션에 참가할 수 있었다는 것, 더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센리큐처럼 미의식이 높은 다나카 미츠토시 감독의 연출아래, 예민한 이치카와 에비조씨가 연기하셨던 리큐가 할복직전의 최후의 차를 끓이던 모습에, 몬트리올 분들도 숨이 멎는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기사 원본 http://www.rikyu-movie.jp/?page_id=17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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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에 대한 책이 줄줄이 출간되고 있다. 호불호를 가리기엔 내 전공이 아닌 분야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출간한 한유미 선생은 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녹차 생산자를 대상으로 차 심평 수업을 했다.

그동안 인사동에서 만나지 못해 궁금했는데 이번에 큰 책을 내었다.고전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소개한다.

고전 <다경>을? 한유미 선생께 전화를 해보았다.? 왜 어려운 책을 내었냐고, - 돌아온 답변은 그동안 차를 모르는 사람이 번역해 왔다는 취지다. 아래 글은 보도자료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올린다. 독자가 가려서 보기 바란다.

저자의 집필 의도
다경(茶經) 동다송(東茶頌)이 중국과 우리나라의 차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실로 독보적이다. 하지만 두 나라의 차 문화를 상징하는 그 위상과 달리 두 책에 대한 연구 성과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이나 중국 학자들의 일방적인 견해를 옮겨 놓기에 급급한 실정이고 보면 연구서라 할 만한 책조차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새로 나온 책 육우다경과 동다송은 이러한 국내 차계에 경종을 울리는 첫 연구서로 저자가 6년여의 담금질 끝에 내놓은 역작이다. 차의 가공과 심평의 전문인으로, 차 품평에 대해 공식적으로 ‘심평(心評)’이란 용어를 알렸던 저자는 두 책의 출간 배경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시 시중에는 다경의 번역서가 1~2 권쯤 유통되고 있었으나 그나마 일본학자 누노메의 영향권을 벗어난 책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경』을 출판하리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은 이미 연구실이 꾸려져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생각이 깊어졌다.

그러다 어느 대학원에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관성 있는 수업을 이어갈만한 교재가 전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다경 서문)

“차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기관이 없고, 학습능력을 검증할 만한 시스템이 없는 문화의 변방에서 어깨 너머로 배웠거나 시류에 흘러다니는 단편적인 말들을 주워 모아 스스로 정리하고 판단하여 세력을 만들어 사는 사람들, 기본 생존능력이 차에 대한 학습능력인양 착각하는 사람들이『동다송』을 등에 업고 초의의 차 사상이 중정(中正)이라고 외치다 못해, 아예 우리나라의 대표적 차정신이라고 수십 년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했다.”(동다송 서문)

책의 특징
다경은 1,200여년 전에 나온 차 문명의 시발점이 된 책이다. 따라서 다경의 연구 또한 그 시대의 언어 습관과 생활상, 정신세계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당대 차 문화를 향유하던 지식인층은 물론이고 『다경』을 세상에 내놓은 육우의 정신세계를 알지 못하는 한 겉핥기에 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경』이 육우라는 인물을 아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고, 그밖에 다른 기록도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

“차 지식은 단순하고 변화가 없어 우리가 필요한 몇 가지만 보충하면 육우 시대의 차도 똑같은 차일 뿐이니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육우의 생각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자면 그가 영향을 받아 정신이라는 것을 형성하게 한 바탕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여 파악하자니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결국『다경』의 해석은 죽은 육우와의 싸움이었다. 그가 생각하고 마시고 읽고 본 것을 똑같이 해야만 했다.”(다경 서문)“

그가 생각하고 마시고 읽고 본 것을 똑같이 해야만 했다”는 고백처럼 저자는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고집스럽게 집필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다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과 지명에 대한 상세한 주석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토씨 하나에서 시작된 의문을 당대의 생활상으로 확장시키고 육우의 정신세계로까지 연결 짓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더구나 차 연구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누노메(일본)의 학설을 반박하는 저자의 새로운 시각은 연구실에서 익힌 지식과, 차 가공과 심평의 전문인으로 차와 더불어 살아온 일반적인 차인(茶人)이라는 사람들의 시선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고 있다.

육우 차 정신의 백미를 수중(守中)이라 단언함에 있어서 ‘배꼽이 긴 차솥’을 그 근거로 제시하는 치밀함이나, 가끔씩 던져 놓는 한국 차계를 향한 고언(苦言) 등을 보면 차와 하나 된 삶을 살아온 차인의 엄정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또 필요 이상으로 포장되어 한국의 차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초의선사의 참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동다송』은, 요즘 유행하는 말 그대로 한국 차계에 던지는 돌직구나 다름없다. 거침없는 직설과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육우다경과 동다송은 한국 차계에 크나큰 선물이다.

주요 내용
제1장 주)37 - 야생이 좋고(野者上): 육우는 야생차(산에서 나는 차)가 가장 좋다고 했으나 , 지금시대의 차는 야생차보다 다원에서 자란 것이 더 우수하다. 현실적으로 야생의 경계도 불분명할 뿐더러 채엽하기가 어렵고, 변종도 많고, 영양의 불균형이 높아 다원(茶園)에서 잘 관리된 찻잎 품질이 우수하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들이 얽히고 차 지식에 대한 부족하여 원료가 차 품질의 전부인 것처럼 말들 하지만, 차에서는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것이 가공기술이다.

제3장 주)7 - 지금의 엽차 가공과 날씨와의 관계를 보면 일단 비 오는 날 작업하는 사람은 없다. 흐린 날의 기준을 햇살이 가려진 정도라고 한다면, 맑은 날 가공한 녹차보다는 향기가 덜 난다. 그런데 구름이 끼었다고 육우 시대처럼 차 따는 일을 그만두지는 않는다. 그 정도의 날씨는 어렵지 않게 기술(정교한 가공)로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에서 볼 때 그 정도의 날씨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자가 현재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지식이 없고서는 찻잎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를 못하니 향기를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것이다. 그 가공기술을 검증하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심평(審評)이다. 기술(자연과학적 차 지식)은 차 가공에 있어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제4장 주)1 - 『다경』은 문명의 조건을 제대로 갖추기 위한 책이다. 차에 대한 정의를 세우고, 차 만드는 도구를 제정하고, 만들기를 가르치고, 차의 새로운 법(法: 규칙)과 차 끓이는 그릇을 설정하여 바르게 끓이기를 지시하고, 제대로 끓이는 법에 대해 절실하고 간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풍로는 마치 예기(禮器)를 설정하듯 신성성을 부여하기까지 한다…

『다경』의 출현으로 이전에 밥사발을 찻사발로 사용되었던 것들이 구별되었고, 차 또한 감로나 제호와 견줄 수 있는 음료라는 걸출한 사회적 신분을 갖게 되었다. 육우에게 성차(成茶: 차를 이루는 것)는 속된 차(혼합차)가 아니라『다경』에 기록된 대로 만들어 마시는 차이다.

제4장 주)23 - 솥의 배꼽을 길게 하는 것은 수중을 지키라는 뜻이니(長其臍 以守中也): 제(臍)는 솥의 배꼽이다. 솥의 배꼽을 ‘솥의 밑바닥 중심부’로 해석했다. 당대의 솥이 다 배꼽이 길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일상적으로 가스 불에서 사용하는 냄비와 같이 배꼽이 평평한 솥도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우가 배꼽이 긴 차솥을 쓰라고 한 것은 바로 수중(守中)을 위해서이다.

문제는 중(中)에 대한 해석이다. 여러 해석 중에 필자는 중(中)을 마음(心)과 비슷한 내면(內面)으로 해석했다. 내면으로 해석하면 수중은 중정(中正)이며 중정은 무위(無爲)의 도(道)이다. 수중은 전형적인 도가(道家)의 용어이며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마음의 상태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지만 새롭게 생성될 수 있는 근원(뿌리)의 바탕이 되는 현상’이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더욱 더 외부를 향해서 발전하고 만물이 더욱 더 흥성하기 때문에 사람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수중은 득차(得茶)의 경지를 이루기 위한 현실적 표현이다. 차에 대한 육우의 궁극적 목표이자 우리의 목표이기도 한 득차의 실체는 향기와 맛으로 나타난다. 필자는 수중(守中)을 육우 차 정신의 결정(結晶)으로 본다. 차 정신은 장생불사(영원히 죽지 않는 것)와 연결된다. 그러나 정신이란 것은 검증되는 것이 아니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배꼽이 긴 차솥을 지정하는 육우의 차 지식이, 정신의 도구로 활용되어 외부로 발전하며 직접 표현된 것을 통해서 그의 차 정신과 목표를 확인할 수 있다.

『다경』은 득차를 위한 전제 조건인 성차(成茶: 자연과학적 관점의 물질적인 차를 이루는 것)를 위한 책이다. 득차(내면)의 열망이 외부의 발전을 불러일으킨 물증을 수중(守中)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수중은 성차의 완결이다. 이 완결이 차(탕)의 근본을 지키는 일을 향해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육우의 의중(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제5장 주)21 - 첫 번째 찻물이 끓으면(第一煮水沸): 누노메의 책에서는 이 부분을 일비(一沸)와 같다고 해석하고 있다. 일비는 차가루가 들어가 있지 않은 물의 끓음이며 그 물이 전영이라고 해석했다. 초비(初沸)일 때도 그는 이 부분과 같이 일비로 해석을 했다. 그러나 과정은 엄연히 다르다. 국내의 어느 책은 그나마 모순을 발견했으나 혼란스러움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모두가 이비(二沸)에서 두 번의 과정이 있음을 간과했기에 생긴 혼란스러움으로 생각한다. 이 문장“第一煮水沸”는 이비 중에서 두 번째 과정인 차가루를 넣고 난 이후의“첫 번째 끓는 차탕(찻물)”으로 해석이 되어야 한다. 이비 중 첫 번째 과정은 끓는 물을 숙우에 덜어놓는 것이었다. 누노메와 국내 다른 책들의 해석대로 첫 번째 끓은 찻물(煮水)이 일비라면, 지극히 맛있고 좋은 전영(雋永)이 소금물이라는 말과도 같다. 소금물은 맛이 아니며 간을 봤으면 더 보지도 말고 버리라고 한 육우의 말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제5장 주)27 - 검(儉): 일본의 『다경』 연구자들에게 육우의 차 정신은 검(儉)으로 정론화 되었다고 한다. 중국 학자들 역시 의심 없이 동의하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차(사물)의 실용적 가치에 과도한 정신작용을 부여하다보면『다경』의 본질적 의의가 훼손될 우려가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실용적 가치를 가벼이 여겨 역사적으로 손실이 많았다.『다경』의 의의와 사물의 실체를 제대로 보려면 차(茶)의 실용성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차(茶)의 성질이 검한 것은 그 자체의 본질이지 육우가 부여해 준 도덕성이 아니다. 물론 양생(사실 양생은 중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국의 의술과 양생에 대한 것도 불교의 영향이 있다)을 위하여 검한 것이 인문학적 관점, 차를 대하는 태도와 연관된 정신으로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검이 양생을 위해 차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음식에 대해서도 많이 먹지 않는다는 보편적 정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차 정신을 검이라고 과도하게 생각하여 본질을 왜곡할 우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차의 성질이다. 외부적 환경이 아니라 차 자체가 갖고 있는 찬 성질, 몇 모금만 먹어도 열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찬(쓴맛) 바탕(質)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전해내려 오는 통치자의 미덕은 검소였다. 아마도 이 문제는 문화와 문명을 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화의 관점으로 차를 본다면 차를 마시고 다루는 사람들의 정신적 자세를 중요시하게 되는데, 보편적인 것을 너무 숭상하여 부담이 느껴질 정도라면 한 번 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과도한 부자연스러움에서 일본 다도(기예)를 연상하게 됨은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다경』은 득차(得茶)의 경지를 갈망하는 육우의 실행정신이 빛나는 실용적인 차 전문서이지, 도덕적 행동규범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로 차라는 사물에 대해 서술해 놓은 책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차 정신이 검이라는 학문적 유행을 따라가야 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제6장 주)11 - 차의 대중화를 선불교(禪宗)의 발흥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그러나 차가 남쪽에서 올라오는 물건이었다는 것과, 또 북쪽의 사찰에서 차(茶)농사를 짓지 는 한 그 많은 대중이 먹는 양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임을 생각해 보면, 어떻게 사찰에서 그 많은 양을 다 조달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는 먹지 않으면 안 될 물건이 되어 사 먹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필자의 관심은 ‘그렇게 퍼지기까지’의 과정이다.…

현종은 전국의 각 주(州)에 개원사(開元寺)라는 국립사원을 짓도록 명령했고 황제의 생일이나, 축하불공, 국가의 중요행사를 모두 국립사원에서 치르도록 했다. 그 국립사원 중 하나가 산동의 태산인데 중요한 행사를 잘 치루기 위해 조정에서는 승려를 파견하고 사찰에서 필요한 모든 물품을 하사했다. 하사품을 전해줄 조정의 대신이 해마다 파견되었다. 승려들은 조정의 후원을 충분히 받았으므로 생계를 꾸릴 필요도 없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차(茶)도 그 하사품 중의 하나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차를 마시는 것이 꼭 차가 생산되는 곳이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비록 시기는 차이가 좀 있지만 황제의 하사품 속에 차(茶)가 들어있었던 것을 본 외국승려도 있었다. 오히려 북쪽에서 마시기가 보급되었다는 기록이 남을 정도였다.

이러한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사찰에서 차 마시는 문화가 형성되어 세상에 퍼진 것이 아니라, 왕의 공덕 표시인 하사품으로 사찰에 파급된 것이 먼저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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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유미는 중국에서 심평(차 품질 심사평가)을 배웠다. 십여 년이 넘게 차 가공과 심평, 최초의 차 전문서적인 중국의 고전『육우다경』과 우리나라 초의의 다시(茶詩)인『동다송』을 가르치고 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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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3호/우송 김대희

우송 김대희 사기장 2013년 7월 22일 별세 하였습니다.

빈소: 서울 아산병원장례식장 33호
발인: 7월 25일 7시
장지: 전남영광불갑사

우송 김대희 사기장은 근대 2세대 사기장입니다. 정교한 백자 다기를 만드는 한국 대표 작가로서
차인들이 고급다기를 사용할 수 있게 연구해 왔습니다. 척박한 한국 차도구 시장에 격(格)을 갖춘
다기를 제작해 왔습니다. 
장녀 김현진 도예가, 차녀 김현아 한양대 박사과정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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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작업장 부근에서 변을 당하였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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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주 씨의 신간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차도구를'바라보는 시각은 필자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오랫동안 동다문화론을 강의하면서 ‘차문화 독립운동’을 말해온 저자의 인문학적인 사고를 바라볼 수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보도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차문화, ‘전통’과 ‘다도’(茶道)의 개념을 되짚어보다

차문화에는 매우 강력하면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문화적 힘, 막강한 전파력이 담겨 있다. 중국의 차에는 유장한 역사와 웅장한 전통이 응축되어 있어, 흔히들 한번 맛보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예술성과 약리적 효험을 체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중국이 1500년 넘게 차문화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정교한 인문철학이 집약된 일본의 차문화는 사무라이의 거친 정신에 중국 차문화의 넓고 깊은 지혜를 융합시켜 변용해낸 이성적 창조물이다. 차는 음식의 한 가지로서 정신과 심성을 형성하고,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찻그릇은 그 사회의 의식을 담는 산물이며, 차법은 전통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자본, 기술, 경영의 산물인 현대의 커피나 탄산음료와는 차원이 다른 문화 응집체라는 의미다.

또한 차는 매우 미묘해서 단순히 유행과 이윤을 따르기보다는 생산국의 의식구조와 역사인식 등 철학적 가치와 영향력에 더 따르게 된다. “차를 아는 민족은 흥하고 차를 모르는 민족은 노예가 된다”거나, “군대 없이 상대를 정복할 수 있는 정신 전쟁의 무기가 바로 차”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주로 학자, 예술인, 상류사회의 부유층, 주체의식 강한 지성인 등 사회 주류 인사들이 차를 즐겨왔다는 역사를 보더라도 차가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국과 일본 정부가 100여 개국의 중국대사관을 통해 중국 차문화를 전략적인 문화상품으로 활용하고 주재국 국민들에게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차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모방과 종속의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차 식민지’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차문화와 전통을 말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전통이란 일정 단위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그 공동체의 생활을 지속시키는 정신적, 물질적 양식이다. 또한 현재의 생활과 필연적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통차는 ‘전통’ 개념을 함부로 끌어다 붙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철저한 역사의식과 논리가 결핍돼 있다.

흔히 말하는 ‘다도’ 또한 그러하다. ‘다도’라는 말은 1960년대에 우리 생활에 파고들었다. 일본 차문화의 고유 명칭인 ‘차도’와, 차를 끓이고 끓인 차를 손님 앞에 내놓거나 차를 마시는 ‘행다’(行茶)를 배우면서부터다. 신라 중엽에 중국의 차문화가 처음 알려졌으나 ‘茶道’라는 말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고려 때도 송의 차문화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茶道’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차’라는 말 외에 ‘茶道’라는 글자가 따로 사용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적 외교나 공식 행사, 왕실과 귀족, 사대부들이 차를 마셨다는 기록에도 ‘차’만 있을 뿐 ‘
茶道’는 없었다. 한국의 다도는 일본 차도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말이다. 차를 끓이고 마시는 방법 모두 일본 차도를 근간으로 삼았다. 놀라운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한국 ‘다도’의 정체성과 독자성, 그리고 동아시아 차문화의 상징적 명칭인 ‘茶道’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계속돼왔다. 특히 한국의 다도는 중국과 일본의 ‘茶道’가 수천 년 시간을 겪으면서 확립해온 것처럼 보편성과 독자성을 인정할 만한 사료가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공식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오랜 역사를 통해 차문화가 확립됐다. 여기에 따라 차문화와 전통을 말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 첫째는 독자적으로 만든 차가 있어야 할 것, 둘째는 그 차를 끓이고 마시는 데 고유의 찻그릇을 갖출 것, 셋째는 차 마시는 법, 즉 차법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반드시 독자적으로 그 나라의 정체성을 보여주어야만 ‘전통차’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차문화는 어떠한가?

차(茶), 군대 없이 상대를 정복할 수 있는 정신 전쟁의 무기

저자는 수십 년 동안 차문화를 연구하고 발굴해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해오면서, 한국 차문화와 그 역사가 똑바로 자리를 잡지 못해 마음 쓰린 지경에 처해온 것을 지켜보았다. 유럽 주요 도시에서는 중국이나 일본 대사관의 문화원이 주관하는 차 관련 행사가 자주 열리는데, 대체로 중국차·일본차·한국차를 동시에 비교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세 나라의 차인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차회를 진행하고 문답 시간이 가질 때면, 주로 한국 차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국 차법은 중국과 일본 두 나라 차법과 매우 닮았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한국 차로 볼 수 있냐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시드니, 런던, 파리, 뉴욕 등지에서 모두 비슷한 질문을 받곤 했다. 행사 주관자가 중국과 일본의 대사관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단순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대사관에서는 이와 같은 행사를 주관한 일조차 없었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실상 차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기호음료 ‘차’는 기원 이전부터 인류의 생활 속에 등장했다. 고대인들에게 차는 생존에 꼭 필요한 약으로 쓰였고, 더 폭넓게는 신에게 바치는 제사음식으로도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 중국 차문화가 전해진 6세기 이후로 차는 신라, 고려, 조선시대 중반 이전 상류층 사람들의 기호음료가 되었다. 중국에서 수입한 차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차를 두루 마셨다. 중국 차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한국 차문화에는 매우 상징적인 특징이 있다. 손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겸손 위에 차살림을 펼치는 행위가 그렇다. 좋은 차를 지성으로 달여 권하는 일을 통해 겸손의 덕을 기르고, 고마움,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다. 차를 내는 사람은 위압적이거나 상대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정치·경제·사회의 위대한 지도자는 물론 문학과 예술에서도 불멸의 작품을 남긴 이들이 대부분 차에서 큰 힘과 영감을 얻었다.

고려시대에는 ‘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신하가 중죄를 범해 사형이나 이에 준하는 엄한 판결을 받게 되었을 때 왕이 사헌부 관리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형벌 정도를 토론한 제도다. 판결이 엄정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데, 이때 차는 냉철한 이성과 편향되지 않은 견해를 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여겨졌다. 조선 중엽 사헌부의 ‘차시’(茶時)는 감찰들이 사헌부와 같이 감독하고 검열하는 관청에 모였다가 파하는 것으로, 이는 차를 마시고 파하는 것이었다.

기록을 통해 차를 마시는 것이 휴식이 아니라 업무의 연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업무를 보기에 앞서 정신을 맑게 가다듬고 공정한 판단과 엄정한 일처리를 위해서 차를 마신 것이다. 명분과 체통을 목숨같이 여겼던 조선시대에 관료들이 차와 함께 정신을 다스려 소통하는 자리는 또 있었다. ‘사다’(賜茶), ‘사좌(賜座)의 예(禮)’도 정치적 소통 방법으로서 차가 훌륭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임금과 신하가 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여러 문제나 정치적 사안 또는 개인적 소견을 말하는 방법이었다.

동다와 차살림, 동다문화론으로 차문화의 독립을 외쳐오다

저자 정동주는 1966년 처음 차를 마셔본 이래 47년째 차와 더불어 살고 있다. 1980년에 처음 차 만드는 실험을 시작했고, 중국차의 약효와 품격, 일본차의 멋과 맛에 비교해 한국차만의 특성을 밝히고 그 독자성을 구체화시키는 데 긴 시간을 보냈다. 숱한 곡절 끝에 1990년 무렵에 반 발효차의 약효와 차의 품격에 대해 안정된 확신을 얻었고, 중국과 일본의 오랜 차문화를 바탕으로 볼 때 여기에 견주기 위해서는 한국 차문화에만 사용하는 찻그릇과 차 마시는 법도까지 분명히 갖춰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에 따라 연구를 쉬지 않은 저자는 도예가들과 긴 세월 토론을 거쳐 동다완(東茶碗)이라 불리는 우리만의 찻그릇 형태를 연구하고 만들어냈다. 고된 연구 끝에 동다완은 이제 안정된 형태와 빛깔로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우리 차법을 정립하는 데도 여러 해가 걸렸다. 일본과 중국의 차문화와 함께 놓고 볼 때 한국 차문화에 잘못 배어든 것, 즉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고 또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한 것이다.

그는 한국의 차문화가 중국과 일본의 ‘茶道’가 아니라 혹여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는지, 독자성을 평가할 만한 유산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오랜 시간 추적해왔다. 유장하고 도도한 중국과 일본 ‘茶道’ 역사에 가려 아예 잊혔거나 희미하게 흐려진 한국 차문화의 원형이 없는지 찾아 헤맸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토종 인문학이라 할 ‘동다문화학’을 창안했다. 지난 50여 년 동안 ‘다도’와 ‘행다’ 행위를 한국 차문화의 정체성인 것처럼 일컫고 가르쳐온 데 대한 뼈아픈 반성이고, 이를 견디고 이겨내면서 매진한 연구였다.

차 한 잔에 담긴 ‘보태주기, 챙겨주기, 돌봐주기, 보살피기, 섬기기’의 미덕

본디 중국 당나라 승려 교연의 시에 처음 쓰인 ‘다도’가 일본에서 ‘차도’가 되고, 한국은 중국의 ‘차다오’와 일본의 ‘차도’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차법이 통용됐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동다’ 개념을 정립하고, 한국 차문화의 정체성을 새롭게 탐구한 것이다. 일찍이 차에 탐닉하고 그 정신성을 높이 산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 등 역사 속 인물과 기록의 자취를 따라 우리 고유의 차문화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이렇게 바로 세운 ‘차’의 정신성을 되살려 현대 한국인의 생활에 맞춰 ‘차살림’으로 다듬었다. 내 몸을 살리고, 가족과 이웃을 살리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우리 일상에서 ‘보태주기, 챙겨주기, 돌봐주기, 보살피기, 섬기기’ 등을 구체적 방법으로 구현해낸 것이 바로 ‘동다살림’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차문화사 전반에 걸쳐 폭넓은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차와 그릇에 관한 책을 6권 저술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13년째 강의하고 있는 주제는 모두 22가지다. 1 차살림론, 2 『백장선원청규』(百丈禪苑淸規), 3 육우의 『다경』(茶經), 4 초의의 『동다송』(東茶頌), 5 이목의 『다부』(茶賦), 6 다례사(茶禮史), 7 그릇의 사회사, 8 불교문화와 차, 9 비교차문화론서양의 차 의식, 한·중·일의 차문화 비교, 10 사림학파와 차문화의 계보, 11 차시(茶詩), 12 차의 효능과 약, 13 헌다의 미의식과 제사, 14 차와 불살생: 채식 세계, 15 찻그릇의 미학, 16 한국 잎차문화의 역사, 17 차와 명상, 18 제다론, 19 한국차문화론, 20 동다살림법 이론과 실제, 21 동다문화학, 22 중국·일본 차문화 체험과 비교론 등이다.

오랫동안 동다문화론을 강의하면서 ‘차문화 독립운동’을 말해온 저자는 차를 통해 우리나라 차문화가 바로서는 것뿐만 아니라 차가 그 자체로 토종 인문학의 씨앗이 되기를, 수입 학문의 열대우림 속에서 온대성 소나무 같은 학문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은이 소개 정동주
1948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났다. 시집 『농투산이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해, 장편시 『순례자』로 ‘제8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서사시 『논개』를 비롯해 대하소설 『백정』 『민적』 『단야』, 장편소설 『콰이강의 다리』 등 40여 권의 시집과 소설을 펴냈다. 마당극 『진양살풀이』와 오페라 『조선의 사랑 논개』를 쓰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글쓰기 방향을 전환하면서 민족 정체성 연구를 시작했고, 『소나무』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어머니의 전설』 『부처, 통곡하다』 등 광범위한 연구 성과를 책으로 발표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오랜 차 생활을 바탕으로 ‘한국의 차 문화’라는 새로운 인문학 분야를 개척했다. 이후 『조선 막사발과 이도다완』을 비롯해 『우리시대 찻그릇은 무엇인가』 『한국 차살림』 『한국인과 차』 등 차와 도자기 문화를 비평적으로 탐구해 꾸준히 책으로 출간해왔다. 현재 한국 차문화학 연구에 매진하며 저술과 강의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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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문경새재 달빛차회를 마치고 기념촬영] 

경북 문경차문화연구원(원장 고선희)은 매달 야외에서 차를 즐기는 모임을 열기로 했다. 첫 번째 차 모임은 6월 21일 오후 8시 30분 문경새재 1관문 앞에서 열렸다. 찻자리를 여는 방식은 대만에서 시작된 무아차회[(無我茶會, 총재 채영장(蔡榮章)] 형식과 비슷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차를 대접하는 사람과 손님이 함께 차를 우려 내고 차를 대접받음으로써 평등한 관계가 이뤄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행사 참석자는 자신의 차도구와 물을 준비하여 다른 사람에게 대접할 차를 우려서, 다른 사람의 자리에 가서 차를 마시면 된다.
문경차문화연구원이 정기적인 찻자리를 열기로 한 이유는 전통 찻사발의 고장인 문경에 어울리는 차문화를 보급하기 위해서다. 문경은 전통 찻사발을 만드는 도예인이 많은 만큼 차를 즐기는 문화도 확산돼 있다. 차문화연구원은 좀 더 많은 사람이 차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달빛차회를 열기로 했다.

공지
제2회 7월 달빛차회는 20일(토) 저녁 8시 문경새재 제1관문 앞 잔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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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발전을 위한 잠시의 입니다-
어제 오후 장대 같은 빗줄기를 차창으로 보면서 지방 출장을 가고 있던 중, SNS로 문자 알림이 왔다.

경주 문화의 거리에서 2013720일까지 운영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함께해 주신 여러분들께 더 나은 모습으로 뵐 수 있도록 충실한 준비를 거쳐. 이전 장소가 정해지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이정 올림
김이정님은 경주의 전통다원 아사가를 운영하는 대표다.

지난주 금요일 아사가에서 무지홍인 차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아사가가 문을 닫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해부터 인급 차회를 주도적으로 열면서, ‘남인 철병’, ‘홍인’, ‘무지 홍인차회를 연속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경주라는 지방 도시에서, 그것도 해당 차회 차() 금액 정도만을 회비로 받고 열 수 있다는 것은 보이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큰 화젯거리였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말하면 현재의 아사가로는 더 이상 확장된 일을 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기에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어야, 한국에서 차관(찻집)을 대표하는 이름,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은 웅지(雄志)를 펼쳐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곳에서 6년 동안 A급과 B급의 차회를 한 달에 두 번이나 가진 것만으로도 아사가는 이 시대 차관으로서는 성공한 사례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사가 차회 참석해 보았나요?’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되고, 하게도 된다.
새로운 장소에서 아사가 문을 열었습니다는 소식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그동안 수고하셨고, 여러 번의 차회에 초대해 주신데 대한 감사한 마음도 함께 전한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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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세계, 최석환 대표의 신작 '천연의 다향'이 발행되었다. 중국이라는 큰 차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취재해온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된 책이다. 전문적인 책을 월간지로 발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가운데 다시 기사를 정리하여 내용을 확인하고 단행본으로 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데, 이 책에서 최석환 대표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출판사의 보도자료에 의하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끈질긴 추적 끝에 복원해 낸 한국 차의 기원과 제다의 비밀, 천년의 차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낸 역작!

차나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여러 가지 궁리를 하기 시작했고 차는 종교, 서화, 문화와 어울리면서 발전을 해 나갔다. 저자는 5천년 전 차나무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이 차를 앞에 놓고 어떠한 생각을 해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때문에 차를 접할 때마다 공허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저자는 한 잎의 찻잎이 여러 겹 만나 향기로운 차 향기를 뿜어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는 종교이며 예술의 한 장르로 차 한 잔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게 됨을 깨달아 가면서 저자는 차에 빠져들게 되었다.

2007년 《차의 美》 출간 이후 한국인의 마음속에 차가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어 왔는지에 천착해 오던 저자는 동아시아를 10여 년간 누비며 한국차의 문화를 미학적 관점에서 다루고자 했다. 저자는 차의 현장을 직접 따라가며 한국차가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기록하여 이 한 권의 책에 千年의 차향을 담아냈다.

저자는 2001년 10월, 무상 선사가 중국 오백나한 중 455공존자로 모셔진 사실을 발견하고 쓰촨성 공죽사(筇竹寺), 나한사(羅漢寺), 항저우의 영은사(靈隱寺)에서 이를 확인함으로써 무상의 존재를 망각 속에서 발굴해 냈다. 또 무상이 목면가사를 전수받은 덕순사(德純寺)가 지금의 영국사(寧國寺)이며 무상의 인성염불이 오회염불로 이어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2001년 허베이성 조주관음원(현 백림선사)에 <조주고불선차기념비>, 2005년 대자사(大慈寺)에 <무상선사행적비>를 세워 무상의 업적을 더욱 공고히 했으며 무상의 인성염불이 오대산의 법조가 일으킨 오회염불로 이어진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또한 한국 차의 전래시기를 놓고 대렴보다 앞선 시기 신라 왕족 출신인 김지장 스님이 구화산 노호동에서 찾아낸 차나무에 대해 도판과 함께 제시하고 있고 우리 제다시기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구증구포 설에 대해서 이유원의 《임하필기》의 근거로는 백양사 방장을 지낸 수산 스님의 육성 증언을 통해 7시간에 걸친 구증구포제다방법을 복원해 냈다.

이렇듯 이 책의 면면에는 한국 차의 정신이 오롯이 숨쉬고 있으며 지난 십여 년간 발로 뛰는 취재로 한국 차 천년의 역사적 순간을 발굴해 낸 저자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함께하고 있다. 또 이 책에는 곡우 전후 찻잎이 솟아나며 그 찻잎을 채취하여 차를 법제한 뒤 다신에게 차를 헌다하고 한 칸 오두막집에서 햇차를 앞에 놓고 품미를 즐기며 찻자리를 누렸던 선현들의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

정신문화의 유전자처럼 이어지며 종교와 예술을 관통해 온 차문화에 대해 미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낸 이 책에서 독자들은 차를 통해 인류가 문화의 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새로 찾아낸 한국의 차사(茶史)
한국의 차문화사는 대렴이 차씨를 지리산에 심은 이래로 전래되어 왔다고 말해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대렴이 당나라로부터 차씨를 가져오기 전 신라의 김지장 스님이 중국으로 건너갈 때 차씨를 가져가 중국에서 명차로 자리 잡은 구화불차의 내력을밝혀냈고, 저자의 노력으로 중국 오백나한에 오른 사실이 밝혀진 무상 선사의 선차지법이 조주의 끽다거로 이어졌고 마침내 원오극근을 통해 다선일미가 일본에 전파된 내력을 소상히 밝혀냈다. 닝더 화엄사에서 보림사에 와 닿은 덖음차의 비화 및 한국차의 전래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구증구포 제다의 비밀 등 한국 제다의 진면목을 파헤쳤다. 그밖에도 <백석신군비> 발굴 비화와 금릉월산차의 상표 발간에 얽힌 이야기와 정읍의 차와 차의 발견 후 정읍시가 차 산업을 육성하게 된 과정 또한 그리고 있다.

저자는 2007년 《차의 미》가 차를 미학적으로 접근했다면 이 책에서는 조선에 말차가 사라진 배경을 이성계의 조선왕조의 정책과 연관지어 분석했으며 고려 다완이 일본에서 국보가 된 내력을 살피는 등 한국 차의 전반적 흐름을 짚었다.

저자 소개
책의 저자 최석환(崔錫煥)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1980년부터 차와 선에 매료되어 1996년 <불교춘추>를 창간했고 이어서 2000년 8월 월간 <선문화>를 창간한 후 2002년 월간 <차의 세계>를 창간하면서 차와 선을 아울렀다.

2005년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世界禪茶文化交流大會)를 조직하여 선차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 앞장서 왔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중국의 불학, 철학, 종교계와 두터운 인맥을 구축하여 한국 선차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 힘써 왔다. 그 결과로 2007년 세계선차공헌상, 2009년 세계선차문화촉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는 2001년 난창 우민사(佑民寺) ‘홍주선(洪州禪)과 신라 선종(新羅禪宗)’, 2001년 백림선사(栢林禪寺)에서 중국 최초로 다선일미 학술연토회 개최, 2002년 장시성(江西省) 한․중차문화교류(韓中茶文化交流) 개최, 2003년 지주사범대 초청으로 ‘한국인의 눈으로 본 중국 문화’ 특강, 2004년 쓰촨성 인민정부 초청 ‘무상과 오리진’ 특강, 2004년 난창대학에서 ‘강서와 한국 차문화’ 특강, 2005년 쓰촨성 대자사에서 한․중 무상학술연토회 개최, 2008년 닝보시 인민정부에서 <중국차를 한국에 전파한 인물> 논문 발표, 2010년 닝보시 인민정부에서 열린 차와 건강 학술연토회에서 <인류 문명의 차>, 2012년 8월 제4기 법문사 차문화 국제학술연토회에서 <한․중 차문화 교류사>를 내놓는 등 아시아에서 저명한 선차 학자로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는 월간 <선문화>, <차의 세계> 발행인과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차의 미》, 《세계의 차인》, 《정중무상 평전》, 《석옥․태고 평전》, 《선과 차》, 《신 세계의 차인》 등이 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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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차 부스에서 보이생차를 직접 틀작업하여 제작과정을 보여줌

 '제11회 국제차문화대전’이 6월 5일부터 8일까지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다. 1회부터 참관해온 필자로선 늘 ‘이번에는 어떤 류의 사람들이 무엇을 가지고 참여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둘째날 오전에 잠시 찾아보았다. 큰 틀에서 보면 한국차와 중국차, 차도구와 기타 상품들이다.

 

국제차문화대전 위원장 김정순

 

명가원 부스에서는 좌식으로 차를 마신다(사진 왼쪽 신부님 오른쪽 김경우 대표)
시장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 곳은 역시 중국차다. 작년에도 나오고 올해도 나온 업체 가운데 대표적인 업체로는 김경우 씨가 대표로 있는 ‘명가원’이다. 명가원은 다른 업체와는 달리 꼭 팔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매입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진 오른쪽 오른쪽 공부차 대표 박성채]
두기차를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한국총판인 ‘공부차’에서는 자리를 잡았다기보다는 공간 활용을 잘하여 어느 쪽에서든 부스 안으로 들어가 차를 시음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볐다. 그 이유는 두기 대표가 직접 들어올 때와 같이 보이 생차를 찍어서 바로 판매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초심자들의 발걸음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두기차를 판매하는 공부차의 장소 선정과 부스 운영 방식은 여러 사람들에게 흥미로울 수 있었다.

 

[석가명차 부스앞에서, 짱유화, 최해철,, 중국석가차업 대표 김승환 대표]

작년에 최고로 인기가 좋았던 부스는 ‘석가명차’다. 그때는 진미호라는 차를 가져오면서 추병량대사의 한국 방문과 보이차 세미나가 연계된 이벤트가 있었고 차 맛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서 중국 5대 차산의 차창과 한국총판을 독점 계약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을 중점적으로 했고, 그래서인지 상담에 비중을 두는 것 같았다. 전단지가 준비되고 ‘차도구옥션’ www.tauction.net 오픈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으로 보아, 여러 개의 부스를 각각 특징을 살려 운영하는 점이 여느 업체들과는 좀 다른 풍경이었다. 부스 앞에서 최해철 대표와 짱유화 교수 및 같이 온 일행과 만나서 기념촬영.

 

[청차 전문점으로 나온 명운당 조상운대표]
처음으로 나온 업체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던 곳은 김영숙 선생의 조카가 운영하는 청차 전문점 ‘명운당’ 부스다. 붉은색 치파오를 입고 나온 여성 다예사의 눈빛과 손동작이 눈길을 끌었고, 차향 만큼이나 신선함도 있었다.

 

[대익차 부스] 그리고 규모면에서는 ‘대익차’의 부스가 독특했다. 중국 심천이나 광주 박람회에서나 볼 수 있는 형식의 부스 운영으로, 우리 정서와는 약간 다른 면이 있었다. 중국 본사차원에서 하는 홍보 인테리어를 한국 대익차에서 홍보차 나온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대익차 부스는 ‘차생활 공간’이란 컨셉이 느껴졌는데, 초심자 뿐 아니라 궁금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차생활 공간으로 보였다.

 

목전요, 김평

 

[해정 김만수] 3-4년 전에 다화 그림 전시로 부산에서 오신 해정 김만수 선생님의 부스를 찾아보았다. 고객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인지 혹시 그림에 관심 없는 분들이 오면 차 거름망이라도 보고 가시라고 손으로 직접 만든 작품을 가지고 오셨다. 도자기 쪽으로는 오랜만에 묵전요를 보았다, 과거와 좀 다른 점은 천목 형으로 만든 다완과 다관이 보였다. 분청으로 만든 다관은 아직도 그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몽평요에서 만든 전기화로] 목포에서 온 몽평요가 전기를 이용한 화로를 몇가지 유형으로 디자인한 것으로 개성있는 작품이다. 몽평요 아들 작품으로 무쇠 질감이 나는 흙맛이 재미있게 나왔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찾아다닐 수는 없었지만 지인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대충 촬영을 해보면서 느낀 점은, 시간이 갈수록 이곳도 힘들어지는 것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사회 경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특히 부산과 대구 행사를 거쳐서 마지막으로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차문화대전’은 이제 더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 더 변화하지 못하면 차문화도 상업적으로 승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젠 과거와 같은 방식만으로는 모든 사업이 영위되기 어렵다. 다만 개인이나 법인 모두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성실함으로 무장한다면 좋은 기회를 맞을 것으로 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당히 어려워질 거라는 예측을 해본다.

차도구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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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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