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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차 전문점 '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또 하나의 중국차 전문점이 생겼다. 몇 개월 전부터 찻집으로 리모델링한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늘 오픈 날짜를 기다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주변에 커피 전문점이 많은 지역에서 순수 '차'를 고집하는 찻집이다. 차의 향기로 젊은 이의 발길을 잡고 싶다는 최동진 대표의 말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보였다.

[담 대표, 해마 최동진]
중국차를 마실 때 자사호 뚜껑위로 물을 부우면, 테이블 아래로 물이 내려갈 수 있도록 만든 맞춤 테이블을 준비하므로해서 젊은 이들이 익숙하지 않은 중국차를 좀 더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하였다.
이곳의 차 맛은 차를 내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메니아들은 별도로 차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이런 류의 집은 주인과 친해지면 다른 곳에서 시음해 볼 수 없는 '담'만의 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중국 운남성 보이차 생산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차를 구해오는 열정을 앞으로 찻집 담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하게 된다. 
[실내 분위기]

찾아가실 분은 가능하면 전철을 이용하시길 권합니다.
2호선 합정역 5번 출구로 나와 10미터 지점에서 우회전하여 100미터 전후에서 죄회전 하여 도보로 5분내에 오른쪽에 <찻집,  담>이 보인다. 인터넷 상에서 약도를 프린터해서 물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5번출구로 나와야 한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396-27
070-4671-9903
010-4364-9903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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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티마스터학교 개원식에서 (사진 오른쪽 교장 여연스님, 왼쪽 교감 박희준)

11월14일 종로구 인사동 36-1 남영빌딩 3층 303호에서 '티마에스트로'를 양성하는 한국티마스터학교가 개원하였다. 행사장에는 동국대학교 대학원 차학과 학생들과 과거 티월드페스티벌 주관으로 한 티마스터 과정을 공부한 회원들이 참여하였다.
필자가 이날 행사장에 간 것은 교수진과 교육 프로그램을 알고자 했는데 아직 교수진은 밝힐 단계가 아니라는 점만 확인하였다. 향후 교수진이 확정되면 강좌에 대한 세부 사항을 확인하여 밝히고자 한다.

강좌개설: 녹차/청차/발효차/보이차/커피/향도/다화/티테이블셋팅/차와 명상/홍차/차문화공간/다식/대용차/꽃차/차치유/찻집창업 및 경영컨설팅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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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에 문자가 한 통 왔다. 한국티마스터학교 개원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이런 형식으로 온 것을 보아서는 수 백명에게 동시에 보내는 스팸성 문자이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전하는 측에서 직접 전화가 왔고, 강의 장소는 필자가 아는 곳이며 한국티마스터학교장이 여연 스님으로 발송되었기 때문에 강사진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강의가 개설된다는 사실을 석우연담 독자에게 전한다.

'티마스터'에 관한 유사 강의가 전국에서 개설되고 있다. 특히 티마스터과정은 차 학과가 개설되지 않은 정규대학에서도 교수진을 공개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티마스터학교>의 강사진이 확정되고 공개할 수 있을 때 상세한 모집요강을 추가로 공개하겠다. 특히 침향을 중심으로 '향과 향도',  '티테이블세팅'에 대해서는 전국적인 붐이 불고 있는 상태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한국티마스터학교 개원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녹차, 보이차, 청차, 홍차, 백차의 역사, 제다, 품평 등 차에 대한 실제적인 것을 교육하며 더불어 차에 필요한 향도, 다화, 명상, 차치유, 다식, 도자에 대해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한국티마스터학교는 30-40년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 교수진들이 강의에 나섭니다.

전 세계 차에 대해 알 수 있는 한국티마스터학교는 차와 문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열려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격려와 참여 바랍니다.

한국티마스터학교장 여연.

개원식: 20121114일 오후2/후원바자회: 20121114-21
주소: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36-1 남영빌딩 3303/ 연락처 02-735-8468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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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만원에서 2,000만원 호가로 나온 것이 1,250만에 낙찰]

서울옥션 경매에서 다도(茶道) 분야 카테고리가 생겼다. 이때까지는 중국이나 홍콩에서 낙찰 받은 결과만을 보고 감을 잡은 입장이라면 이제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거래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보이차나 차도구 소장가라면 매우 반가운 일이다.
2012
116일 서울옥션 부산지점에서 주관한 경매에서 가장 최고가로 경매된 보이차는 람인철병으로 한 편에 1,250만원에 거래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황인 500만원, 0737542400만원으로 거래가 되었다.

[2001년 왕복군 작 자사호]

서울옥션에서 자사호를 다도 카테고리로 나온다면 가장 위험한 부분은 진위여부이다. 그 부분에서는 보이차에서 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보이차는 처음부터 한국이나 중국에서 대단한 안목을 가진 분들이나 대수장가들이 그동안의  경험과 안목을 바탕으로 일정 부분에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자사호 부분은 또 다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유명 자사호 작가의 작품을 오랫동안 사용해온 것과 처음부터 보관해온 것이다. 처음부터 방품이 존재해온 입장에서 사용을 하고 있는 것도 많이 있다. 이번 서울옥션 다도 부분 경매를 통해서 좀더 현실적인 수집 풍토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날 경매에서 자사호 부분
최고가는 왕복군
(Wangfuiun) 2001년 작품으로 270만원이다. 그 외 오개허 1999년 작품은 230만원, 장춘금 2006년 작품은 95만으로 거래가 형성되었다. 자사 1창에 제작한 자사호 4점은 240만원에 거래되었다.
그 외 국내 차도구 작가의 작품으로 정재효의 다기와 접시, 신경균의 다기와 단품으로 출품된 숙우 등은 거래가 형성되지 못했다.

다미향담(56) 아사가, 제1회 인급 보이차(남인철병) 차회 후기 http://www.seoku.com/553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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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구주도자문화관(九州陶磁文化館) 특별기회전]

일본 구주도자문화관(九州陶磁文化館)에서 도쿠가와 쇼군에 헌상(獻上)한 것 가운데 나베시아, 히라도, 카라츠에서 생산된 차도구 특별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특별기획전 취지를 보면, 에도시대에 도쿠가와 쇼군을 정점으로 한 막번 체계의 유지를 위하여 참근교대가 제도화 되어 있을 때, 전국의 다이묘에는 여러 가지 각 나라의 산물등을 쇼군가에 헌상하는 예년헌상(例年獻上)이 의무로 부가 되었다.

[도쿠가와 쇼군에 헌상한 품목은 차도구외에도 당시 도자기로서는 최고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년헌상한 것은 대명가(大名家)의 도자기로 나베시아, 히라도, 카라츠에서 생산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 당시에 만든 최고의 연구성과로 평가 받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카라츠에서 생산된 다완은 일본 차도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중요문화재 수준에 비중을 두었다면 이번 전시에는 박물관과 미술관 소장품 중에서 중요문화재와 개인 소장품에서 도쿠가와 쇼군의 헌상품에 대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시장 내부, 사진 촬영을 엄격하게 통제하며, 특히 다완 사진은 절대 불가하여 아쉬움을 가졌다]

차도구외 그 당시에 도자기로 만든 화병, 술병, 접시 류와 술을 따르는 용도로 만든 것으로 오늘날 다관의 형태에 술을 부리 부분이 길게 몸통의 두배 이상 되는 것으로 매우 특이하면서도 조형성이 빼어난 기물도 전시되었다.  

전시기간: 평성24년(2012년) 10월6일-11월25일

장       소: 구주도자문화관(일본 큐슈 사가현 아리타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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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회째를 맞이하는 TOPIC 전시 <을 즐긴다>

규수국립박물관에서는 2012년(평성 24년) 가을 전시회에 발원지 구주(九州)가 있는 가마()을 특집으로 전시한다. 또한 구주박물관 소장품외에도 전시회의 목적에 부합하는 차도구의 기탁품도 함께 전시하여 심오한 차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앞으로는 일본 전시회를 소개하고자 한다. 현재 한국에는 무쇠 탕관과 차 솥으로 사용할 무쇠 솥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중국과 대만 등지에서 차인들의 수집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을 볼 때 무조건 구매하는 것이 유행인 것 같다.

절대 권장할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광풍은 어쩔 수 없다. 일본에서도 좋은 탕관은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전차도에 사용된 질이 잘 난 탕관은 차도구 경매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중요 차도구에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기회가 없는 편이다.
박물관 전시기간 9월 12일 ㅡ 12월 9일

오늘날 우리나라의 차문화 현상은 중국 차문화에 너무 치우친 점이 있어서 차를 처음 접하는 상황에서 는 혼돈이 올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중국 차의 접근이 쉬운 반면 일본 차와 차도구 문화는 그 깊이가 얼마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심오한 차의 세계가 있다. 앞으로는 석우연담에서 일본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의 차도구 특별전을 알리고자 한다
.

일본에서 4번째로 설립된 국립박물관으로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満宮] 뒤의 구릉지에 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도쿄[東京], 교토[京都], 나라[奈良]의 국립박물관이 미술 관련 박물관인 것에 비해 이곳은 역사 관련 박물관이다. 규슈[九州] 지역은 아시아 문화와의 교류에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던 곳이다. 박물관은 일본문화의 형성을 아시아사(史)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
[출처] 규슈국립박물관 | 두산백과

 

규수국립박물관은 일본에서 4번째로 설립된 국립박물관으로 '다자이후텐만구'뒤의 구릉지에 있다. 일본문화의 형성을 아시아사(史) 관점에서 보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다.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満宮] 뒤의 구릉지에 있다.
[출처] 규슈국립박물관 | 두산백과


한국인은 차를 어떻게 마시는가 http://seoku.com/523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 http://seoku.com/442

규슈국립박물관 [ Kyushu National Museum , 九州国立博物館(구주국립박물관) ]
[출처] 규슈국립박물관 | 두산백과
규슈국립박물관 [ Kyushu National Museum , 九州国立博物館(구주국립박물관) ]
[출처] 규슈국립박물관 | 두산백과


 

일본에서 4번째로 설립된 국립박물관으로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満宮] 뒤의 구릉지에 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도쿄[東京], 교토[京都], 나라[奈良]의 국립박물관이 미술 관련 박물관인 것에 비해 이곳은 역사 관련 박물관이다. 규슈[九州] 지역은 아시아 문화와의 교류에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던 곳이다. 박물관은 일본문화의 형성을 아시아사(史)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
[출처] 규슈국립박물관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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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차문화연구회는 2012년 10월 20일 부산에 있는 매월당 김시습 사당에서 회원들과 함께 발표회가 있었다. 이번 모임에서는 회원 개개인의 사정이 많아서 참석 인원은 적었지만 부산 해동 저수지 부근에 있는 매월당 김시습 사당에서 돌로 만든 둥근 차석에 둘러 앉아 발표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발표문 첫 번째는 김봉건 회장의 방외지사(方外之士)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유학사상을 중심으로 연구한 내용이며, 두 번째는 필자로서 이번에 출간한 <한국인은 차를 어떻게 마시는가>에서  16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기록을 엮은 책에서 참가자 전원 혈액으로 구분하여 차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와 차를 마시는 이유, 즐겨마시는 차 등등을 통계학적으로 분류한 내용을 요약하여 설명하고 저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저술하게 된 이유와 결과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아래 발표문의 전체 원문은 향후 간행될 연구지를 통해 보급될 예정이다.

방외지사(方外之士)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김봉건

<동양차문화연구회 회장>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성을 발휘하였으면서도 또 가장 불우한 생애를 보낸 선비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세 살 때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세종(世宗) 임금으로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 다음에 크게 쓰일 것이라는 전지(箋紙)를 받고 오세(五歲)라는 호로 불리었을 정도의 천재였지만 계유정난(癸酉靖難)을 목도한 후 무도한 세상의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일찌감치 벼슬길을 포기하고 방외(方外)의 길로 접어든 인물이다.

때로는 승려의 행색으로 팔도를 유람하는가 하면, 세상이 바뀌자 다시 관직에 진출하고자 경전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불경을 가르친 일로 탄핵을 받고 끝내 사환(仕宦)의 길은 좌절되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유자(儒者)였지만 때로는 산수에 묻혀 차나무를 기르는 유인(幽人)이 되었다가, 다시 환속하여 결혼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가의 양생술에 심취하여 도교의 내단(內丹)과 외단(外丹)을 닦기도 했다.


그의 한 평생은 도무지 대요를 파악하기 힘든 회오리 같은 생애였으나 지조는 오히려 뚜렷하여 후세인들에 의해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지칭되고 있다. 그의 시문(詩文)을 접해보면 뛰어난 시재(詩才)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가 얼마나 경서(經書)에 해박한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끝내 조정의 동량이 되지는 못했지만 유자로서의 비분강개는 조선 중기 이후 사림(士林)의 절의정신에 크게 영향을 주었고, 산수에 묻혀 유유자적했던 삶의 자세는 걸릴 것 없는 진인(眞人)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매월당 김시습을 통해 난세에 처한 지식인의 자세에 대해 많은 시사를 얻을 수 있으며, 한 인간의 위대함은 반드시 세속적 목표의 달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세계 또한 유교다, 불교다, 도교다 하는 식의 어떤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침착(沈着)되었을 때라야 정체성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역설적이게도 김시습은 세속의 뜻이 좌절됨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인생을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김시습의 신세


김시습은 조선 초 세종17년(1435년)에 태어나 성종24년(1493년)에 죽은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김일성(金日省), 어머니는 선사(仙槎) 장씨(張氏)이며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열경(悅卿), 호는 설잠(雪岑), 동봉(東峯), 매월당(梅月堂) 등이 있다. 태어난 지 여덟달 만에 글을 알기 시작하여 집안 어른 최치운(崔致雲)이 그의 비상함을 알아보고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한다.

그는 3세에 시를 짓기 시작하고 『유학』『소학』 등을 공부했다 하며, 5세(세종21년) 때에는 세종(世宗)이 승정원을 시켜 그를 시험한 뒤 능력을 칭찬하여 비단을 하사하였다 하여 오세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이후 모친의 정성으로 선비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서 13세까지 이계전, 김반, 윤상에게 사서삼경을 배우고 역사서와 제자백가를 독학했다 한다.

15세(세종31년)에 어머니를 여의고 삼년상을 치른 뒤 18세(문종2년)에 훈련원도정 남효례의 딸과 혼인하고 과거 공부를 했다. 그러나 19세(단종원년)에 과거에 낙방하고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던 중에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나 단종(端宗)의 양위 사실을 전해 듣고는 통곡 끝에 책을 불사르고 머리를 깎은 후 방랑길에 올랐다.


22세(세조2년) 때에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처형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에 묻었다. 24세(세조4년) 때에는 함께 어울리던 인사들과 더불어 정몽주, 이색, 길재의 초혼제를 지낸 장소인 공주 동학사(東鶴寺)를 찾아가 사육신을 위한 초혼제를 지냈다. 이후 수년간 승려 차림으로 팔도를 유람하면서 학문과 유교, 불교에 대해 토론했다. 김시습은 이때 관서, 관동, 호남 지방을 유람하면서 백제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등 우리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안목을 형성했다. 또 이때 직접 목도한 민초들의 생활에 대해 한없는 연민의 정을 품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많은 불경을 읽으며 여러 절을 전전하기도 했다.


28세(세조8년) 때에 경주에 이르러 정착할 결심을 하고 금오산(金鰲山) 중턱 용장사(茸長寺)에 머물렀다. 29세(세조9년) 때에는 경주의 유적을 돌아보는 한편 당나라 육우의 『다경(茶經)』을 읽고 직접 차를 길렀다. 그리고 이 해에 효령대군의 추천으로 서울에 올라 가 열흘 동안 궁중의 내불당에 머물면서 『묘법연화경』의 언해 사업에도 참여했다. 이를 보면 그는 몸은 비록 낭인의 행색을 하고 있어도 여전히 왕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31세(세조11년) 때에는 경주 용장사 부근에 금오산실을 짓고 정착하여 살았다. 다시 효령대군의 요청으로 원각사(圓覺寺) 낙성회에 참석하였고, 세조의 환도(還都) 명령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37세 무렵까지 금오산에 머물렀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다.


그리고 38세(성종3년) 때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새 조정에서 임금을 보필하고자 하는 포부를 가지고 경전을 다시 익혔다. 그러나 관직에 진출하고자 하는 꿈은 좌절되었고 수락산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41세 때에는 정업원(淨業院)에서 불경을 가르친 일로 탄핵을 받았다.


46세(성종11년) 때에는 『황정경(黃庭經)』을 읽는 등 도교의 내단, 외단 사상을 익히고, 도가의 양생술에 관심을 가져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 주목했다.

47세(성종12년) 때에는 다시 머리를 기르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제사를 지냈다. 환속 후 안씨의 딸과 혼인하나 이듬해 안씨부인이 죽고 조정에서는 폐비 윤씨의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관동 지방으로 방랑길을 떠났다.


53세(성종18년) 때에는 양양 부사 유자한(柳自漢)과 친밀하게 교유하다가 유자한의 청으로 구황책에 관한 상소문을 대신 짓고, 유자한에게 『장자(莊子)』를 가르쳤다. 이 무렵 유자한이 여인을 주선했으나 돌려보내고, 벼슬에 나가라는 권유도 사양했다.

59세(성종24년) 때에 부여 무량사(無量寺)에 머물면서 절에서 간행한 『묘법연화경』에 발문을 썼다. 그리고 이곳에서 병들어 세상을 떠났다.

중종16년(1521) 이자(李耔)가 십 년에 걸쳐 자신이 수집한 김시습의 시문을 모아 책을 만들고, 「매월당집서(梅月堂集序)」를 썼다. 선조15년(1582) 선조의 명으로 『매월당집』이 편찬되었고 이이(李珥)가 왕명을 받아 『김시습전』을 지었다. 선조16년(1583) 이산해(李山海)가 「매월당집서」를 짓고, 이 무렵 운각(芸閣)에서 『매월당집』 시집 열다섯 권과 문집 여섯 권이 간행되었다.

정조6년(1782)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정조8년(1784) 청간공(淸簡公)의 시호를 받았다.

1927년 김시습의 후손 김봉기(金鳳起)가 『매월당집』 시집 15권 4책, 문집 6권 1책, 부록 2권 1책, 총 23권 6책을 신활자로 간행했다.

                    <매월당 김시습의 초상>(충남 유형문화재 제64호, 충남 부여군 무량사 소장)


20대의 아이들이 무슨 차 맛을 알까? http://seoku.com/541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http://seoku.com/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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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상운작가 자사호 특별 초대전(惠祥雲作家 紫砂壺 特別 招待展) 개막식

10월 25일 대구 비채담에서 혜상운작가 자사호 특별 초대전(惠祥雲作家 紫砂壺 特別 招待展)의 오프닝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 전시장을 보유한 비채담의 넓은 마당 덕분에 오랜만에 사물놀이 공연도 함께 볼 수 있었다. 개막식과 함께 보여준 사물놀이 공연은 중국 작가와 그 일행들에게 환영의 인사로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었다.
[비채담 마당에서 펼쳐진 사물놀이]

필자는 행사 시간을 안전하게 맞추기 위해서 하루전 심야버스로 도착하여 아침에 여유를 가지고 택시를 이용하였다. 동대구에서 네비게이션으로 도착한 택시가 ‘대익보이차전문점’ 표지가 나오는 자리에서 멈추었고 운전시가는 손님 다왔습니다고 한다. 자사호 특별전을 하는 비채담 표지보다 더 크게 만들어진 사각형의 입간판을 보면서 비채담의 신비로운 공간이 이날 더욱 신비롭게 여겨졌다.

[혜상운 작가 작품과 자사호 소장품]

           [어화룡을 들고 작품 설명하는 혜상운 작가]

개막식을 준비하는 과정인 것 같은 분위기에서 1층 보이차 전용 바(Bar)와 테이블, 전시장을 지나서 2층으로 안내되어 접견실에 들어서니 혜상운 작가와 자사호 소장가 협회 회장 작가 메니저, 이 전시가 성사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한 공부차 박성채 대표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케이블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준비하는 분주한 모습들을 보면서 대구 지역에서 보면 팔공산 쪽으로 외곽이지만 국제적인 전시가 진행되는 상황을 읽을 수 있었다.

[작품명, 세박정, 황룡산 자니]

도구로서의 의흥 자사호는 평생 차를 즐겨 마셨다던 청나라의 건륭제(乾隆帝)도 의흥(宜興) 자사(紫砂)로 만든 차호(茶壺)를 가리켜 “세상 다기(茶器) 중에서 최고로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자사호는 오랜 세월 다양하게 변천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차를 잘 우려마시는 역할과 예술품으로서의 소장 가치를 논할 수 있는 자사호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자사호가 세계 여러 국가에서 개최한 국제박람회에 참가하여 입상을 받게 되면서 개별적으로 자연형, 근문형, 기하형 등의 문식(紋飾)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 마다 가장 잘 만드는 작품에 대해서 대외적인 평가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번에 비채담에서 특별 초대한 혜상운 작가는 1968년생으로 의흥에서 태어났다. 중국 자사호 역사에서 "5대 명인(名人)"의 반열에 들어있는 혜맹신(惠孟臣)의 15대 계승자이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작품이 작가의 모든 작품 세계를 다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유명한 혜맹신 작가의 후손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자사호 애호가들이 한 번 쯤은 관심가지고 볼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어화룡은 여러 작가들도 만들고 있지만 혜상운의 어화룡이 어떤 점에서 그의 대표작이 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이번 전시에 얻을 수 있다면 관람객으로서의 안목도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유리관 내의 전시는 자사호 소장가 협회장의 소장품 10점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20대의 아이들이 무슨 차 맛을 알까? http://seoku.com/541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http://seoku.com/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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