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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국제무아차회는 미국 센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다. 14일 폐막식에서
한국측에서 깃발을 미국차문화학회 (American Tea Culture Association)회장인
Chiung Chin Lim 에게 넘겼다. 차기 개최지에 대한 회의는 2007년 10월 12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채용장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 일본 대만 회원들이 참석하여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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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차문화학회 회장(임영지)

국제무아차회(無我茶會 총재 채영장)는 이번 한국대회(대회장 이진수)에서 2009년 차기 국제무아차회 개최국으로 미국 “센프란시스코”를 확정했다. 무아차회는 1989년 대만에서 시작돼 격년제로 열리는 순수 민간차원의 국제교류행사로 본부는 대만에 있으며 무아차회의 근본정신을 통해 나눔과 평등 정신으로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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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에모토 슈운시쯔  마사끼 기칸(75세), 중국 행다법 정립자 동계경 교수

제11회 국제무아차회(無我茶會 총재 채연장), 한국대회(대회장 이진수)가 12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환영식을 시작으로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마쳤다.
13일 전북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잔디밭 광장에서 일본, 중국, 싱가포르, 미국 등 11개국에서 모인 160명과 내국인 250명이 함께 찻자리를 하였다. 무아차회는 1989년 대만에서 시작하여 격년제로 열리는 순수 민간차원의 국제교류행사. 본부는 대만에 있으며 무아차회의 근본정신을 통해 나눔과 평등 정신으로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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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국제무아차회 채영장(蔡榮章) 총재의 단아한 찻자리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펼쳐진 첫번째 무아차회에 이어 14일 서울 창경궁내에서 두번째 무아차회를 가졌다. 한국의 고풍스런 창경궁에서 오백명의 차인들이 묵묵히 차를 우리고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서 장관이었다. 무아차회는 일반 다도와는 달리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시작을 알리는 첫번째 징이 울리면 참가자 모두 말없이 차를 우리고 세 잔을 따라서 자신과 오른쪽 두 명에게 차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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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의 찻자리(일본, 나까지마 기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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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전차도
두번째 종이 울리면 참가자 전원이 차를 우려서 소반에 들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찻잔을 여분으로 준비하는 것은 도자기 잔이 아니라 작은 종이컵을 준비한다. 남녀노소, 차를 잘우려 내고 못우려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 누구에게나 차를 대접하고 함께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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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어린 아이의 찻자리
종료를 알리는 세번째 징이 울리면 다구를 정리한다. 무아차회는 모든 찻자리의 배치는 추첨에 의한 임의 배정 방식으로 정해지며 모든 사람이 주인이자 진행자로 참가한다. 차를 내는 법이나 차를 내는 종류에 어떤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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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차회를 마치고 각국의 회원들은 서로 기념품을 주고 받으며  사인을 해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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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에서 온 한양 양의 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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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임숙연 씨와 옆좌석에서 찻자리를 한 일본 차인과의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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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찻자리가 원을 그리며 첫번째 징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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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요시노가리, 일본 속의 고대 한국]


ㅇ전  시  명 : 요시노가리, 일본 속의 고대한국            YOSHINOGARI, Ancient Korean Culture in Japan

ㅇ전시  기간 : 2007. 10. 16(화) ~ 12. 2(일)

ㅇ전시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 2,000년 전 바다를 사이에 두고 교류했던 한 ․ 일 양국의 문물 600여점 비교 전시

- 일본 최대의 마을 유적인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유적 출토 유물 국내 최초 공개


국립중앙박물관은 2007년도 기획특별전 <요시노가리, 일본 속의 고대 한국>을 일본 사가현 교육위원회와 공동으로 10월 16일부터 12월 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00년 전의 한·일 양국 문물을 비교 전시하는 최초의 기획특별전으로 양국의 유물 600여점이 전시된다. 특히 일본 유물 중에는 요시노가리 유적 출토 세형동검 등 국가중요문화재 20여점이 포함되어 있다.


이 특별전에는 일본 야요이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독무덤, 토기, 꺽창, 본뜬거울 외에 한반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인 덧띠토기, 청동기 거푸집, 한국식동검 등이 비교·전시된다. 이와 함께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식 토기와 청동기도 전시되어 당시의 활발한 교류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 한반도에서 유입된 벼농사와 농경기술로 출발한 초기의 작은 요시노가리 마을이 야요이 후기(기원후 1세기~기원후 3세기)에 대규모의 주거 공간과 마을 공동의 제사 공간, 생산물 보관창고와 시장 등을 갖춘 도시 또는 초기국가의 중심 마을로 번창한 발전과정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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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지인 요시노가리

요시노가리유적은 일본 북부 규슈의 사가현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마을유적으로, 1986년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규모와 발굴성과는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유적에서는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 문화의 특징과 한반도와의 교류를 증명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요시노가리유적은 이 시기 한반도의 농경문화가 일본에 전래되어 일본 고대사회 문화의 발전에 미친 영향을 밝혀주고 있다.


전시는 크게 한반도의 농경문화와 일본 전파, 야요이 마을의 탄생, 고대 한반도와 야요이 마을의 생활, 한반도 출토 일본유물과 한일문화교류 등으로 구성된다.


제1부 ‘한반도의 농경문화와 일본 전파’에서는 진주 대평리, 부여 송국리 등 벼농사 관련 유적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벼농사의 시작과 발전을 밝히고, 일본 야요이시대 초기의 벼농사 유적인 나바다케菜畑유적 출토품을 전시하여 일본의 야요이시대 벼농사 문화가 한반도 벼농사의 일본 전파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제2부 ‘야요이 마을의 탄생’에서는 요시노가리 유적의 초기 출토품들을 통해 요시노가리 유적의 탄생이 한반도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이와 함께 현재 복원된 요시노가리 유적을 사진 자료로 소개하여 관람객들이 요시노가리 유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3부 ‘고대 한반도와 야요이 마을의 생활’에서는 한국식동검, 다뉴세문경, 점토대토기 등 한반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들을 한반도 출토 관련 유물과 비교 전시하여 당시 문화교류의 양상이 어떠하였는지를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출토 일본유물과 한일문화교류’에서는 한반도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 시대 유물을 통해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이번 전시 기간 중에는 곡옥 만들기, 흙피리 만들기 등 당시 한반도와 일본 사람들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행사와 전시를 관람하면서 문제를 풀어보는 교육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11월 10일에는 한·일 양국의 관련 학자들이 참여하여 당시의 문화 교류상을 되짚어보는 국제학술심포지엄도 예정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2008년 1월 1일부터 2월 11일까지 일본 사가현립미술관에 순회 전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옮긴 후 다양한 기획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한 일 양국의 문물 600여점이 비교 전시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또 한 번의 역작을 볼 수 있는 것에 벌써 부터 기대가 됩니다. 역사물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관 바랍니다.

박물관에서 전시 리뷰를 올려주었습니다. 참고 하십시요

요시노가리吉野ケ里유적은 일본 북부 규슈의 사가현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고대 마을유적으로, 1986년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규모와 발굴성과는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유적에서는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 문화의 특징과 한반도와의 교류를 증명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야요이시대 전기에는 소규모였다가 야요이시대 후기가 되면 넓이 40만㎡가 넘는 대규모의 마을로 발전하게 된다. 이 마을에는 지배자의 생활 공간 및 마을의 제사 공간, 수확물 등을 보관하고 주변마을 사람들과 교역交易을 하였던 시장 겸 창고 구역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규모로 보아 야요이후기의 요시노가리 유적은 일종의 도시都市 또는 초기 국가의 중심 마을 역할을 한 것으로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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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식동검韓國式銅劍]

길이 44.8cm(오른쪽), 일본중요문화재, 사가현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일본 요시노가리 유적의 분구묘에서 출토된 한국식동검이다. 한국식동검은 청동 혹은 백동으로 만든 단검으로, 검몸劍身의 폭이 좁고 끝이 뾰족하며 양날이 직선적이어서 세형동검細形銅劍이라고도 한다.


한국식동검은 기원전 4세기 충청도지역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종종 한국식동검문화라고 불리는 특징적인의 유물과 함께 출토된다. 처음에는 부채날도끼扇形銅斧·거친무늬거울多紐組文鏡등과 함께 출토되지만 이후 꺽창銅戈 ·네모도끼銅斧·잔무늬거울多紐細文鏡·각종 청동방울靑銅鈴 등이 새롭게 나타난다.


이러한 한국식동검은 일본 규슈 북부지역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일본 야요이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는 한국식동검·투겁창·꺽창·거울·방울·옥·덧띠토기·검은간토기 등의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야요이시대 규슈 북부에서 유력한 집단 중의 하나인 요시노가리 유적의 거대한 분구묘에서도 한국식동검과 유리대롱옥이 출토되어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얘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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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띠토기粘土帶土器]

높이 18.7(좌)·23.4cm, 아산 남성리(좌)·사가현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아가리에 점토띠를 덧붙여 만든 토기이다. 덧띠토기는 한강 하류에서 금강 하류에 이르는 중서부 해안지역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주변지역으로 전해지는데, 영·호남 등 한반도 남부지방뿐만 아니라 규슈를 중심으로 한 일본열도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요시노가리 유적에서는 덧띠토기 외에 한반도계 무문토기도 함께 출토되어 당시의 교류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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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 전시인 [계룡산 분청사기 전시회]는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을 통합적으로 전시를 한 것 같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하기 때문에 그릇의 아래 쪽에 명문이 있는 종류별 전시도 가능했으며, 제작 기법에 따른 종류의 설명을 실물과 그림을 함께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욱 알찬 기획전으로 보였다.

계룡산 분청사기
Buncheong Ware from Mt. Gyeryong Kilns

 ㆍ일시 : 2007. 9. 18 ~ 2008. 2. 17
 ㆍ장소 : 미술관Ⅱ 분청사기실
 ㆍ전시대상 : 학봉리 가마의 1927, 1992년 발굴품 등 총 60건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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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는 분청사기와 백자이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의 상감청자가 쇠퇴하면서 백자와는 다른 형태와 문양, 구도를 가진 것으로 매우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도자기이다. 15세기에서 16세기 중엽까지 만들으며, 귀족적인 고려청자와는 달리 서민적이고 순박한 맛을 지니면서도 활동감과 생동감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1467~1468년 무렵 경기도 광주에 백자(白瓷)를 생산하는 관요(官窯)가 운영되면서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자기의 공급은 광주분원(廣州分院)에서 맡게 되자 관장제수공업체(官匠制手工業體)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분청사기의 생산은 점점 소규모화되면서 민간용을 주로 생산하게 되었다. 국가가 주로 백자를 생산하면서, 그 영향력으로 지방 가마들도 점차 분청사기 대신 백자를 만들게 되었다.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제작된 백자는 순백자의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조선 도자 문화를 이끌었다. - 전시장 내의 설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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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인화 문늬 접시 포개구운 조각
분청사기란 말은 1930년대 고유섭(高裕燮:1904~1944)이 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미시마[三島]’란 용어에 반대하여 새롭게 지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약칭(略稱)이다.

박물관에서 하는 기획전을 가능한 빠지지 않고 관람하는 편이다. 보통 3번 이상을 보는데 그럴때 마다 느끼는 점은 이러한 전시회에는 일본인들이 참 많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나라 것이라서 귀한 줄 몰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렇게 한자리에 모아놓고 전시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잘 차려놓은 상을 보지도 않고 관심도 기울이지 않다고 보니까 무엇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조차도 없는 것이다.

개인적인 바램이 있었다면 차(茶) 하는 사람으로서 계룡산 분청사기가 차와 관련하여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도(茶道) 용 그릇 종류가  전시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 일을 주관해 오신 분께 감사드리는 바이다.

학봉리 가마의 도자기 굽는 방법
학봉이 가마에서는 그릇을 대체로 포개 구웠다. 나라에 바치는 공물용 그릇에도 포개 구운 흔적이 발견된다. 그릇을 포개 구울 때에는 그릇 사이에 태토 비짐이나 굵은 모래를 받쳤다. 귀얄 및 철화 분청사기는 굵은 모래를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있다. 다만 흑유 항아리는 항아리들의 손쉬운 분리를 위해서 항아리의 굽 주변에 백토를 바르는 방법으로 제작하였다.

이 시기의 연보
1455년 중국에서 회화청을 구입하여 청화백자를 만든다.(세조실록)
1467년 사옹방을 사옹원으로 개칭하다(세조실록)
1481년 광주 관요에 해마다 사옹원 관리가 그림 그리는 사람을 인솔하고 가서 궁중에서 쓸 그릇을 감 독하여 만든다.(동국여지승람)
1504년 광주 백자가 최고이며 그 다음이 고령 백자다.(용재총화)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토산물조에 자기소32개소, 사기소 4개소, 도기소 13개소 기록
1537년 함경도 육진까지 모두 백자를 사용한다(중종실록)

분청사기는 분장과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에 따라 7가지로 분류한다.

1. 상감기법(象嵌技法)
도자 표면을 선이나 면으로 판 후 백토나 자토(裏土)를 감입(嵌入)해서 무늬를 나타낸다.

2. 인화기법(印畵技法)
문양을 도장으로 찍고 백토분장(白土粉粧)을 한 후에 닦아내어 찍힌 무늬가 희게 나타낸다.

3. 박지기법(剝地技法)
백토 분장 후 문양 이외의 백토를 긁어내어 태토의 어두운 색과 분장된 백색을 대비시켜 무양을 표현한다.

4. 조화기법(造花技法)
백토 분장 후 선으로 무늬를 새긴다.

5. 철화기법(鐵畵技法)
백토 분장 후 철분(鐵分)이 많은 안료(顔料)로 무늬를 그린다.

6. 귀얄기법
귀얄로 분장만 한다.

7. 덤벙기법
백토 물에 담궈서 분장한다.

이러한 기법들은 시대성과 지역성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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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차(茶) 심포지엄 발표자 : 오영순

"대만 목책철관음 관광다원의 성공사례" 발표가 지난 2007년 9월 8일 서울유스호스텔 대회의실, 서울 차 심포지엄에서 오영순(소슬다원 대표)씨의 “목책철관음 관광다원의 성공 사례 연구”에서 이 시대의 차문화를 연구하는 많은 학생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혼동하기 쉬운 목책철관음에 대한 깊이있는 내용을 발표하여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발표문 가운데 목책철관음의 유래와 홍배(烘焙)에 대해서 요약해보면, 다음돠 같다. 5만 년 전 중국 대륙의 땅덩어리와 맞붙어 있었던 때부터 대만에는 토착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네델란드 동인도회사가 한족의 이민을 장려하면서 한인들이 “날짜와 문자”를 가지고 대륙에서 대만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토착민족은 고지대에 고산족과 평지에 살았던 평포족으로 나뉘는데, 지금의 목책지구 부근의 신디엔[新店]계곡 상류에 고산족이던 태아족이 살고 있었다. 청 강희 말년에 복건성 안계에 민란(民亂)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만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 고씨, 임씨, 장씨족들이 泉州府 안계현 大坪에서 민란을 피하여 지금의 목책지구 안쪽의 景美 계곡에 대단위로 거주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원주민인 태아족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경미계곡 오른쪽(현재 도남교)부근에 촌을 이루고 살면서 나무 말뚝을 박아서 울타리를 만들어 이들을 방어하였다고 다. 이것이 오늘날 목책(木柵)이라는 지명을 얻게된 유래인 것이다.

제조공정에서 발표자는 공정의 순서를 차청(茶菁), 채적(採摘), 일광위조, 실내위조, 살청, 초유, 초건, 복유(覆揉) 또는 포유, 홍배(烘焙)로 나누었다. 이 가운데 마지막 공정인 홍배가 중요한데, 목책절관음에서는두가지로 구분한다.

1) 탄로(炭爐) 홍배

목책의 장지장씨 집에는 증조부가 만든 100년이 넘는 탄로가 있는데 전통부뚜막식 홍배실로서 상사수(相思樹)로 숯 재료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목탄 홍배는 다농으로 하여금 너무 고된 작업으로서 열이 아래쪽에서만 올라오니까 고르지 못하여, 30분 마다 뒤집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다농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고된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2) 열풍기계식 홍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목책 철관음은 목탄 홍배에서 올라오는 탄배향 때문에 아무리 차가 좋아도 소비자의 취향에 부합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기계식 열풍 홍배기를 사용하면 장시간 홍배시에도 비교적 맛이 깔끔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다농들은 최근에 이 홍배기로 대체하여 차를 제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10일에서 20일에 걸쳐서 장시간 정밀 배화를 하는 다농이 많기 때문이다. 1회에 24시간 홍배하고 3일 정도 차를 쉬어 주고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5회에 걸쳐서 100시간 이상 홍배를 하는 다농이 많다. 이 과정 중에 차를 담아 방치하는 과정에서도 다시 후숙이 조금 일어나기도 하며, 맛이 좋아지고 차엽의 선택이 진한 암갈색으로 100~110℃사이에서 홍배를 진행한다. 여기서 철관음의 청기가 사라지고 쓴맛 이 제거되기에 이른다.

쓴맛은 교반하고 포유과정에서도 산실되지만, 홍배과정에서 차엽속에 잔존하는 카페인 성분이 대량으로 기화하기 때문에 카페인이 줄어들어 마셔서 편안한 차가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남아 있던 잔여 수분이 홍배를 인하여 최저치로 감소하고 차잎은 더욱더 긴밀하게 오므라들면서 엽저가 쪼글쪼글해진다. 따라서 완성품의 차를 다호에 넣을 때 옥구슬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를 들어 볼 수 있다.
상기의 발표문에서 보면 우리가 대만차 가운데 메니아들이 즐겨 마시는 목책철관음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소화해서 나오는 가를 알 수 있다. 나는 중국차 제조 공정을 촬여해 보면서 늘 느끼는 점이지만 중국차가 앞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원적인 이유는 각 차의 종류마다 홍배의 기술이 오랜 세월 각 농가의 축적된 노하우로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시장 경제에 맞추어 내는 점이다. 우리는 기술적인 표준이 안되어 있어면서도 늘 손 맛이 좌우한다는 어정쩡한 답변 만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차로서는 선직국이라 할 수 있는 대만 다농들의 삶을 오랜기간 직간접적으로 느끼며 함께 한 시간이  이러한 내용을 만들 수 있었다. 이번 발표자의 발표문은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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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자 : 전정애]
한국 차산업 발전을 위한 차 심포지엄에서 발표자 전정애(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예다학과 석사과정)는 영국의 AFTERNOON TEA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하였다. 영국 정통 애프터눈 티 문화를 살펴보고 바르게 이해하고자 하는데 이의를 두고 한 내용이다고 밝힌 발표문은 국내 전문 자료가 부족한 가운데 향후 홍차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우선 한국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영역에서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차 생활에서의 접근을 시도하려 했고, 원서를 번역하고 영국을 방문하는 노고가 베어있었다.

발표자는 영국의 티타임을 아홉가지로 분류를 하였고, 티타임을 중심으로 사교문화를 꽃피워 왔던 영국은 하루에 7~8회나 티타임을 가질 만큼 홍차를 사랑해 왔다고 한다. 영국의 티타임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얼리모닝티(early morning tea, bad tea), 브렉퍼스트티(breakfast tea), 일레븐즈티(elevenses tea), 미드티(mid tea), 애프터눈티(afternoon tea) : 오후 2~4시의 화려한 티타임으로, 귀족들의 수준 높은 생활 문화를 기반으로 발전된 만큼 화려하고 푸짐한 티푸드(tea food) 타임을 갖는다. 애프터디너 티(after dinner tea), 나이트 티(night tea) 이와 같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7~8회의 티타임에서 오늘 날 하루 3~4번 정도의 티타임으로 그 횟수가 간소화 되었다.

일상의 애프터눈 티
차는 서민적 보편성과 제왕적 귀족성의 양면성을 지닌 특성상 일상적인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곳은 서민적 정서를 반영한 비교적 경제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을 말하며 크게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TEA ROOM, TEA SHOPS, TEASALONS, CAFE TEAS, MUSEUM TEAS로 나눌 수 있다. 다방 차가게, 호텔, 박물관 등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상 생활 속에서 또한 어느 장소에서든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있다. 이런 곳은 예약이 필수 사항이 아닌 곳이 대부분이다.

특수한 애프터눈 티
차를 마시는 것은 그들의 생활이기에 학문적인 연구를 한다거나 다법을 고안하는 일은 드물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차를 즐긴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다만, Edware Bramah 씨가 English tea ceremony를 행하고 있다는 것과 유명 호텔에서 영국 정통 애프터눈 티가 행해지고 있으므로 면면히 그들의 문화가 이어짐을 볼 수 있었다.

-중략-
이런 내용 속에서 차도구(teapot, sugartong, tea strainer 등)는 모두 은제품을 사용하며 고급스러움과 품위를 더할 뿐만 아니라 열전도가 잘 되는 은제 티팟으로 우린 차는 따끈하게 홍차를 마실 수 있어 차맛이 한결 좋음을 느꼈다.

-하략-
발표자는 이 논문을 위해서 현지 홍차 문화를 접하고 온것이다. 발표가 끝나고 마지막 말이 차도구를 연구하는 나의 입장에서 늘 귓가에 맴돈다.

전통을 지향하는 차문화 경영학과에서 홍차를 위해서 외국 차도구를 권장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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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차회(無我茶會)란?

1989년 중국과 대만에서 시작되어 격년제로 열리는 무아차회는 여러사람이 함께 모여 마시는 찻자리의 형식을 최소화하여 차 마시는 행위를 차별없는 평등한 마음으로 세계 모든 사람이 소통(Communication)하는 순수한 민간국제교류행사다.

참가국가는 중국 대만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 이태리 미국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세계각국의 차문화인들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차회로 거듭난 무아차회는 각회원국에서 격년제로 개최된다. 무아차회는 또 공식적인 모임외에도 각 회원국간의 교류가 끓임없이 열리고 있는 등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국제차회활동이다.

2006년 6월27일 대만을 방문하여 2007년 10월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국제무아차회[회장 채영장(蔡榮章)]협약식에서 채영장 회장과 한국국제차문화학회 이진수 이사장과의 협정식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 현장에는 박희준(차와 문화 주간), 설옥자(가예원 원장) 손연숙 교수가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제 국제무아차회 한국대회 일정이 공개되면서 한국내 많은 차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무아차회 7대 정신으로 알리고자 한다.

무아차회 7대 정신
1. 모든 사람이 주인이자 진행자가 되어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함께 진행한다.2. 자리배치는 추첨에 의한 임의 배정방식으로 정한다. 이는 계층, 인종, 성별 연령등 어떠한 차별이나 구별도 없는 ‘무아차’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3. 행다법이나 차의 종류에 어떠한 규정도 없다. 이는 지역 국가의 구별없이 전 세계 누구나 쉽게 함여하고 함께할 수 있는 평등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4. 행사중에는 한쪽 방향으로만 차를 나눈다. 이는 ‘주고받음’이라는 보상 개념없이 다른 사람에게 차를 제공하는 순수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5. 서로 다른 차를 받고 감사한다. 어떤차는 좋고 어떤차는 나쁘다는 분별심이나 선호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시는 차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다.

6. 최선의 자세로 차를 낸다. 차 내는 행위에 몰입함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차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7. 시작 신호와 함께 말없이 차를 우리고, 나누고 마시면서 진행한다. 모든 사람은 모두 함께 동시에 시작하고 끝내며 언어적 한계없이 조화로움으로 전체가 하나되는 것을 경험한다.

국제무아차회 한국대회 일정

가. 환영만찬-18:00-20:30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야외특설무대
_welcome to Korea!, 국제 차문화교류의 밤 : 전통다법공연 및 축하공연
_주관 : 국제무아차한국위원회,(사)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
_대회장 인사, 외국대표 감사인사, 각국대표 및 참가자들 소개
_신라다법, 선비다법, 현대다법, 가야금공연, 대금공연, 축하공연3곡

나. 국제무아차회 각국 대표자 회의
-17:00-18:00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회의실
_사회 : 손연숙 /국제무아차한국대회 사무총장
_대회장 인사, 각국 대표자 인사 및 소개, 경과보고 및 일정보고

다. 개막식-10:00 전북익산 원불교총부 반백년기념관
_사회 : 김종희
_식전행사-9:50 : 전인삼 명창과 판소리 합창단 공연
_개막식인사,개막선언,경과보고,대회사,어린이다법시연,내외귀빈축사,무아차회연혁및의의dvd상영
_폐회공연 : 판소리합창단

라. 무아차회-11:10-12:10 전북익산 원불교총부 잔디광장
_세계 11개국 차인 200여명과 한국을 대표하는 차인 1,000여명이 함께하는 세계적인 국제무아차회.
개막식무아차회에서는 무아차회의 기본정신인 무차별성, 개방성, 자발성, 복합성을 볼 수 있는 차문화교류 축제의 장으로 펼쳐진다.
_피날레공연 : 강강수월래

마. 국제 차 학술세미나-14:00-17:00 원광대 숭산기념관 3층 대회의실

14.Sun>
바. 무아차회-10:30-11:50 서울 창경궁
_한국 고궁에서 세계인이 함께하는 찻자리
_우리 한국문화의 진수인 창경궁에서 전세계 차인 400여명(외국인 200명, 한국의 차인 200명)이 함 께한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창경궁에서 세계적인 차문화교류 네크워크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한다.

사. 폐막식-17:00-21:00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룸

_사회: 정수호.
_식전행사-서울 원음국악관현악단 연주
_폐막식 : 시작선언,경과보고,축하공연(백의다심결),대회장인사,내외귀빈축사,참가국 대표단 인사
및참석자소개,‘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2007대회 결산동영상),폐막선언및대회기이양
_식후행사-식사시작 : 세계각국무대전통다법시연(가예원,중국,일본등), 세계각국참가자장기자랑

특별행사- ‘제19회 익산국제차문화축제

(사)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은 한국차문화의 보급과 확산을 위해 해마다 익산국제차문화축제를 실시해왔다.
제11회 국제무아차회 한국대회를 맞아 전북 익산 배산체육공원 내에서
‘제19회 익산국제차문화축제’를 열 계획이다.
1) 일시 : 2007년10월 13일 오후 13:- 오후6시 30분.
2) 장소 : 전북 익산시 배산체육공원 내 특설무대.
3) 내용 :
1. 한국전통차문화체험관
_도자기 체험, 천연염색체험, 서각체험, 차제다체험, 압화체험 등
2. ‘온가족이 함께 만들어요-녹차 떡 다식’
_녹차떡 만들기, 다식 만들기 등
3. 차도구 판매전시관
_우리차 전시, 도자기전시, 찻상전시 등
4. 아름다운 찻자리전
5. 어린이 전통차예절 겨루기대회

특별전시- ‘한국전통차문화전

제11회국제무아차회한국대회에서는 한국차문화의 현주소를 알수 있는 다양한 특별전을 연다.
한국차문화의 중심은 찻자리를 아름답게하는 ‘다화’(茶花) 담백한 찻자리를 풍성하게 하는 ‘다식’(茶食) 그리고 그 찻자리의 품격을 높여주는 한국전통장신구들이다.

(사)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은
제11회 국제무아차회에서 한국전통 찻자리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는 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1. 다화전
2. 다식특별전
3. 한국전통장신구전.
10월13일 개막식 - 익산 원불교 총부
10월14일 패막식 - 롯데호텔크리스탈볼륨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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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그릇이라고는 그저 옹기나 유기, 사기그릇 정도 챙기고 시집, 장가들던 그 시절에는 그릇이 구색맞춰 있는 것만 해도 뿌듯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요즘에 이르러서는 그릇하나, 찻잔하나도 집안에서 분위기를 바꾸는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른바 수요의 수준은 높아지고, 공급이 그를 따르지 못하는 수위에 이르러, 작품을 베끼고, 약간의 수정으로 신제품으로 내 놓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시장의 생리이기에 그에 대해 무엇을 바랄까만은 장인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작품에 책임을 가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무를 져버린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요구가 지나친 것도 이유겠지만 작품을 내 놓고자하는 작가의 정신에도 흔들림이 있지 않을까 한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도 작가(장인)의 작품이 흔들림 없는 예술혼을 자랑하는 것은 정녕 힘든일인가. 만일 그 분들이 혼이 없는 그릇을 세상에 내어놓고 정녕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내 진정 존경해 마지 않는 사기장 님들께 무진무진 바라는 바 한가지 있으니

“당신들이 내어 놓은 그릇 하나하나에 이나라 이 민족이 자랑할 수 있는 우리 혼이 깃들게 하소서”

시간은 지난다. 세월은 바뀐다. 역사속에 이륾 남긴 사기장들의 그릇이 후대에 폄하되어서는 않된다. 작은 잔 하나에도 그들의 깊은 혼을 느끼고 싶다.

석우.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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