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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기남

백기남

 

오늘 특별한 인연으로 상해에서 온 香人 장선생을 만났다. 

자색기남, 녹기남, 백기남을 새로운 방향에서 체험해 보았다.

백기남의 시원한 맛이 어떤 맛이며, 자색 기남의 꽃 향기가 무엇인지

녹기남의 시원한 맛과 우유향이 난다는 맛이 어떤 것인지를 살짝 엿보았다.

 

석우연담을 멀리 상해에서 북경에서 보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차에 대한 책을 茶人 뿐 아니라 香人도 관심가지고 보고 있는 것에 놀랍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이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징금다리 역할이 되는 것 같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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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가 차관

 

경주에 있는 아사가 차관(대표 김이정)에서 매월 두차례 열리고 있는 차회가 이번 4월에 드디어 100회가 되었다. 100회 기념 축하 세미차회는 아사가 차관에서 4936명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가진 바 있다.

 

100회 특별 차회는 516일 경주 보문단지내의 야외에서 가지는데 이번에는 참가자 가운데 개인 찻자리를 만들고 손님은 각각의 찻자리에 예약된 순서대로 차 맛을 시음하는 자리가 된다. 이러한 차회는 대규모 회원이 있는 차 단체에서 해온 일인데 개인 차관에서 이러한 큰 일을 한다는 것에 차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와 함께 응원을 보태고자 한다.

 

이번에는 사전에 예약 관계를 잘 알고 그동안 아사가 차회에 참석해보고 싶었던 분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아사가차관 김이정 대표는 한국향도협회 이사로서 경주 지역의 향문화 보급에 앞장선 분으로 이번 일을 향도 협회 회원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제목: "세월유수" 그 어떤 그 어떤 표현으로도 대신할수 없기에 함께 나누며 기억의 한 자락을 남기고져 "아사가차회 100회기념" 차회를 아래와 같이 같습니다

 

일시:2015.5.16()

오전11~17(식사제공)

장소: 1)아사가차관

2)보문정

3)보문둘레길

회비: 5만원

농협351-2813-2050-83

(입금확인순으로 마감)

차회내용

1.보이차 2.무이암차 3.야생고차수 4.야생수제녹차 5.대만청차 6.야생수제황차 7.용정차 8.수제말차 9.홍차 10.나눔찻자리 11.향시연(한국향도협회) 정진단원장외

회원 "복따리"작품판매전

1.도자기(장작가마) 2.그림(까스또르) 3.솟대(다향) 4.차도구(우드) 5.규방공예(청여) 6.(작은이뿐이)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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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 상태가 양호한 일점홍인

 

인급차를 대표하는 홍인은 현재 보관 상태에 따라서 3000만원에서 8000만원을 호가하는 차이다. 이런 홍인이 보관 과정에서 어떤 환경에 노출되었는지 모르고  무조건 건창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경우 대표와 호급차와 인급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홍인은 건창으로만 보관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유익한 내용이라 생각하여 김 대표에게 부탁하였다. 홍인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고 석우연담에 올려 공유하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받아 보기로 했다.

 

보이차 퇴창 창고

 

홍인은 건창으로만 보관되지 않았다.

홍인은 1980년대 후반 돈황차루(敦煌茶樓)에서 먼저 차가 나왔다. 다음은 녹백다장 최윤석 대표의 구술내용이다. “홍인을 구입하러 갔었는데 창고 바닥 한쪽에 종이를 열어 선풍기로 병면에 눅눅한 습기를 말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상으로 미루어 보아 홍인이 우리가 건창차의 대명사로 알고 있지만 모든 홍인이 결코 건창으로 깨끗하게만 보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0년 중반에 이르러 금산루(金山樓), 용문차루(龍門茶樓)등에서도 홍인이 창고에서 나왔다. 이때 나온 홍인은 비교적 깨끗하게 보관된 차였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1950년대에 지어진 가옥 구조에 따라 보관된 창고의 습기 노출 정도에 따라 홍인은 습기에 노출된 편차가 있었든 것이다. 통풍이 잘되든 곳에 있었던 차는 비교적 깨끗하게 보관되어졌고 통풍이 잘되지 않은 장소에 있는 차는 습기에 노출되어 병면의 형태, 포장된 종이 등이 온전하지 못했다.

 

온전한 홍인 한 통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홍인중 일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입창과 동일한 결과물로 포장된 종이와 차의 상태가 습기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기에 딱히 입창이라고 결론 내릴 수도 없다. 다만 보관된 창고의 특징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당시 가옥 고조의 특징상 바닷가 근처 습도가 높은 지역에 보관 창고를 지었다. 입구 쪽 문은 크게 하여 습도가 높은 해풍이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으나 바람이 빠져 나갈 수 있는 반대쪽 창문은 작게 지어진 구조였다. 창고 구조상 상대적으로 높은 습도가 창고에 그대로 머무는 구조였기에 홍인은 습기에 노출 될 수밖에 없었든 것이다.

 

현재 홍인은 인급 보이차를 대표하는 차로서 높은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또한 대다수가 홍인을 건창차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신차를 만들면서 세월이 지나면 홍인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세월이 지난 후 홍인이 되기 위해서는 홍인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한 다음에 신차를 만드는 과정이나 보관과정에 적용 시켜도 세월이 지난 후 홍인의 맛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홍인과는 거리가 멀다. 단일지역에서 생산된 찻잎과 이른 봄에 채엽 한 찻잎으로 홍인을 만들지 않았다. 이른 봄 찻잎 여름 찻잎 가을 찻잎을 적절히 병배하여 차가 만들어질 당시 아주 강한 고삽미를 가진 차가 홍인이다. 보관과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순수한 자연 상태의 환경에서 보관된 것이 아니다. 적절하게 습도가 유지되는 창고에서 홍인은 보관된 차이다. 이렇듯 모차가 다르고 보관환경이 다름에도 홍인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은 한번쯤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 보이차 시장의 절대 다수의 중국 유통 상인이나 소비자는 2005년 이후에 보이차업에 종사하기 시작하였으며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보이차를 접하기 시작한 시기는 호급 보이차, 인급 보이차, 숫자급 보이차중에서도 오래된 차는 가격이 비쌌고 차의 수량이 부족하여 접해볼 수가 없는 시기였다. 그러다보니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신차를 제작하여 유통한 것이다.

습기에 노출된 홍인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신차를 보관해서 발효가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해 본적이 없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차를 두고 세월이 가면 무조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한 무조건 신차가 좋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손에는 오래된 차나 잘 발효된 노차가 없으니 무조건 신차가 좋다고 한다. 보이차는 체질에 따라 신차가 맞는 사람 잘 발효된 차가 맞는 사람으로 엄연히 기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차가 나쁘다는 취지에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의 소지가 없어서면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 좋은 차, 훌륭한 차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보이차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는 좋은 모차를 사용하여야 하며, (이 부분은 오해의 소비를 없애기 위해서 보충해서 설명하자면 풋풋한 향과 청아한 향으로 마실 차는 굳이 오랜 기간 보관해야할 이유가 없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유의 향의 없어지면서 발효된 향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발효가 될 수 있는 보관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세월이 지난 후 홍인이 되든 람인이 되든 훌륭한 차를 기대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알았으면 하는 부분은 건창차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홍인은 절대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적인 환경으로 습도가 낮은 곳에서 보관되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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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의 종류

홍인은 1950년대에 맹해차창에서 생산된 차이며 포장지의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하고 있다. 생산시기에 따라 조기홍인(早期紅印), 중기홍인(中期紅印), 후기홍인(後期紅印)으로 구분하며 포장지의 특징에 따라 갑급홍인(甲級紅印), 일점홍인(日點紅印), 세자홍인(細字紅印)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단일 품목으로는 람인철병과 더불어 잔존 수량이 가장 풍부한 차이다.

 

김경우 씨의 보이차 관련 지난 기사

2015/04/08 - 73청병은 80년대 생산된 차가 아니다

2015/03/25 - [인터뷰] 골동 보이차 유통의 전문가 김경우

2015/02/15 - 다미향담(155) 73청병과 97년 7542를 함께 즐기다

2015/02/02 - 다미향담(152) 황인 숙차와 1990년대 맹고의 조합

2014/02/20 - 대익보이차 영웅준마 런칭

2014/01/18 - 중국 대익보이차 서울 여의도점 오픈

2010/09/17 - 다미향담(2) 맛으로 승부하는 차 

2010/08/09 - 말복에 마신 보이차와 오동단총 

2010/04/15 - 혜산초당에서 만난 김경우 대표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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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산내면 옥정호 부근 숲속 차밭

 

석우연담에서 차와 관련한 두 번째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번에는 초롱 출판사 윤여목 실장이다.

윤실장이 만든 차 이름은 홍심, 청심, 단심이다. 이날 마신 차는 홍심과 청심으로 그 구분은 찻잎을 따는 계절이라고 한다. 단심은 우전에 해당하고 청심은 세작, 홍심은 중작 정도의 잎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다른 차밭의 기준과는 차이가 많다. 일반 평지의 차는 기온이 온화하면서 잎이 올라오는 기간이 완만하다. 하지만 이 차는 추운 날씨가 지속되다가 갑자니 기온이 올라가서 찻잎이 쑥 자라는 것도 있다. 그래서 찻잎을 따는 시기로 구분하고 있는데 단심은 비장의 무기로 아직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윤 실장은 평소 차 품종을 연구해 오면서, 한국 차로 한국형 홍차를 만들어 보겠다는 강한 의지로 오랜 연구 끝에 차농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품종을 연구하며 각 품종마다 무성번식으로 차 밭을 일구어왔다.

 

홍차를 만들어 차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는 정읍 지역의 기후 특성을 잘 살려 만들었다. 아래 질문과 답변에서 윤실장의 차를 바라보는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 채다헌의 차 향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킵니다. 언제부터 차를만들기 위해 준비하셨는지요? 

 

: 15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제가 본래는 차 품종 연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의 과일이나 채소, 인삼이나 약초 등은 중국이나 대만보다 맛에서나 영양에서 결코 뒤지지 않거나 훨씬 더 좋은 반면, 차에 있어서는 중국이나 대만차에 명함도 못 내미는 것을 보고 왜 그런가 깊이 생각하던 차에 원인을 찾아보았더니 제 나름의 결론이 내려지더군요.

 

삽목시 뿌리 내림의 형태

첫째,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 소위 차를 재배하거나 차를 하는 차인이라는 사람들이 차를 문화적인 면으로만 부각시키다 보니 차예절이나 다인의 입장에서 차를 받아들이고 화려한 외형에만 치중했지 정작 차의 품종이나 재배법 그리고 제다법은 도외시 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둘째, 제가 한동안 책 출판을 하며 간간히 차에 대한 논문집을 만들어 주다가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논문들 중에 너무 말이 안되는 데도 그럴듯하게 학설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 예를들어 차는 옮겨 심으면 죽는다든가 꺾꽂이를 하면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해서 동해에 약하다든지... 이러한 학설이 근간을 이루다 보니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차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후학들에게 빼앗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중국은 이미 송나라 명나라 시절에 무성번식법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책상 앞에서 펜으로만 연구했다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중국에서 공부하고 온 학인들 중에 품종이 다른 중국차를 우리땅에 심으면 강남의 귤이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의 고사성어를 인용하면서 우리의 녹차품종으로 변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럴 듯 하지요... 하물며 와인을 만들때도 품종이 중요하고 사과 배 복숭아도 품종에 따라 다른 맛과 향을 내는데 어찌 차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고를 할 수 있는지...

 

셋째, 차를 접하는 초심자들이 차의 세계에 먼저 들어온 차선배나 상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너무 현혹되다 보니 그들이 모든 차의 전문가처럼 여겨져서 그들의 말이 곧 학설처럼 굳어져 진실이 왜곡되는 점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차인이 돼서 차를 발전시켜야 할 좋은 싹들을 미리 싹뚝 자르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적응시킨 오룡차 품종

 

저는 차의 분야를 크게 다섯 가지 측면에서 보고 있습니다.

 

- 차의 품종을 연구하는 육종전문가

- 차를 재배하고 재배지의 기후나 토양의 적합성을 통찰하는 차 재배기술전문가

- 차엽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차의 제다를 연구하는 제다전문가

- 다양한 차에 대한 다기를 다루거나 만드는 다기전문가

- 잘 만들어진 차를 다인의 입장에서 차문화예술로 승화시키는 차예절전문가

물론 한 사람이 전부다 박식하게 알 수는 있으나 어디까지 차인은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지 모두다 전문가일 수 없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제가 차에 어지간히 빠질 즈음 간간히 들리는 소식이 우리 녹차는 만들어야 팔리지 않고 차농가들이 차밭을 갈아엎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커피가 대세인 요즈음 차농가는 죽을맛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안이 있다고 말하고 홍차를 만드세요했더니, 평생 녹차를 가꾸고 만들어 오신 칠십대의 지인이신데 우리차는 홍차를 만들 수 없는 품종이라는 것입니다. 차를 연구하는 저로서는 머리가 띵 했습니다.

 

중국의 소종홍이나 특히 기문홍은 우리 차와 맛이 비슷하던데 어찌 이렇게 연구와 노력도 안해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시나... 그 분은 저에게 품종을 달랍니다. 홍차를 만들게... 홍차는 세계 차시장의 75~80%의 유통량을 자랑하는 찬데 아이러니 하게 우리나라는 이렇다 할 홍차를 내놓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기후가 이렇게도 좋은데... 대만은 청향과 맛을 얻기 위해 2,000미터나 3,000미터의 산 위에서 차 재배를 하는데 다행히 우리는 위도가 높아서 지리산이나 남도는 그냥 있어도 그들이 재배하고자 하는 기후보다 더 좋은 기훈데... 겨울에 조금만 신경쓰면...

 

한 삼년 됐는데요. 한번은 후배가 정읍에는 시에서 지원해서 2002년도에서부터 차를 심기 시작했는데, 녹차가 안 팔리니까 다들 차밭을 버리고 떠나거나 그나마 몇 안남은 차농가도 지리멸렬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정읍 농업기술센터에 들러 제일 큰 차농가를 수배해서 둘러보았습니다. 차밭은 그야말로 그림 같았습니다. 너무 정갈하게 관리해서 영화를 찍어도 아름다울 만큼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원의 다실에 들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차밭은 그렇게 훌륭하게 가꾸어 놓고 정작 뽕잎차나 개똥쑥차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읍은 내장산 단풍도 있고 하니 정읍미인이라는 부랜드와도 맞는 홍차를 하셔야죠라고 했더니... 잘 와 닿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홍차를 잘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원의 찻잎을 사서 홍차를 만들어서 그분들께 맛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차를 만드는 기계도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걸 알리 없지만 차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다만 차를 연구하는 저로서는 차가 갖추고 있는 향과 표현되지 않은 맛이지만 우리차도 홍차를 만들면 맛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 제가 직접 그 지역으로 내려가서 홍차제다의 가능성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제 주소도 옮기고 다원을 빌려서 홍차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지만 노력하면 좋은 홍차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읍시 현암다원

 

2. 정읍에서 채엽한 우리 녹차 잎인데도 찻잎이 큰 것은 이유가 있나요?

 

: 제가 홍차를 만든 다원은 정읍시 산내면 옥정호 기슭인데, 지대가 높고 산속이라 정읍의 다른 지역보다 한 보름 늦게 차엽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숲속이라서 차싹이 길쭉길쭉 합니다. 차품종도 중엽종입니다. 지리산지역이나 남쪽의 기후와 달리 4월 중순까지는 춥다가 갑자기 더워지는 날씨라 차엽이 빨리 자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잎은 크지만 부드럽습니다.

 

위조시설

다양한 빛깔의 차싹

 

3. 직업은 도서출판 초롱 편집자 인데 어떻게 해서 차 농사를 지을려고 했습니까?

 

: 제가 차를 접한지는 이십대 중 후반이었습니다. 한 이십 오륙년쯤 되는군요. 저희는 불교출판사라서 그런지 많은 스님들이 방문하셨지요. 특히 선방 스님들은 차를 좋아해서 늘 가지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연스레 차 매니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차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고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나도 좋고 세상 사람들도 이로운 일이 최상의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이 직업이면 오죽 좋겠습니까. 세상에 선연을 쌓는 일이겠지요...

 

4. 현재 보유하고 있는 품종의 종류와 출시할 차를 알려주십시오.

 

: 우리 차는 다양한 품종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차엽의 빛깔로만 봐도 녹색, 미색, 홍색, 자색 등등 색이 있다는 것은 다양한 향이 있겠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저는 그래서 차엽의 맛과 색과 향과 형태 등등을 가지고 분류했습니다. 많게는 이십여종 그 중에서 상품으로 개발하면 좋겠다 생각하는게 십 여종 됩니다. 그동안 실험만 했으므로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어떤 품종은 백도향이 좋고 어떤 품종은 꽃향기 같은 화향이 좋습니다. 청향이 담백한 것은 녹차로 과향이나 화향이 좋은 차는 홍차나 기타 중국의 봉황단총이나 대만의 동방미인과 견줄 수 있는 차를 만들려고 합니다. 참고로 제가 10여년 전에 차씨를 들여와 토착화시킨 오룡차 품종이 있습니다. 그 것을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청향이 아주 좋습니다. 오룡차는 녹차로 변하지 않더군요.

 

태백산 녹차품종

태박산 녹차 품종

 

5. 홍차를 완성하면서 가열하지 않고 만드는 것이 이 차의 장점이라고 하셨는데, 차의 선진국 중국에서 생산되는 기문홍차나 정산소종 등과 어떤 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까?

 

: 지금 우리나라는 홍차를 만든다면서 황차방식으로 홍차를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식혜로 술을 만드는 격입니다. 홍차는 엄연히 산화해서 발효시키는 차입니다. 그래서 오미가 살아있습니다. 아니 오미가 살아 있어야 홍차입니다. 황차는 만드시는 분들이 많아서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중국의 기문홍이나 정산소종은 발효후에 홍배를 강하게 합니다. 요즈음 만드는 무이암차들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향이 강합니다. 그것을 일부는 암향이라고 말하지만 제가 느끼기엔 홍배를 강하게한 불맛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마시면 속이 메스꺼워집니다. 화기가 빠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봅니다.

 

물론 옛날에 마셔봤던 대홍포나 암차는 불맛이 그렇게 강하지 않고 오미가 강했습니다. 쓴맛이 강해서 처음 마실 때 얼굴을 찡그리고 마셨으나 조금 있으면 목안에서 달달하게 느껴집니다. 고진감래지요. 이게 암차지요. 처음 마실 때 강한 향이 나므로 그렇게 차를 배운 분들은 그래야 암차인줄 압니다. 그러나 차를 오래 하신 분들은 대번에 압니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홍차가 향은 강하나 홍차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발효후 열처리를 적당하게 한 차는 일정기간 지나면 화기가 빠져나가 흡수력과 맛이 좋아집니다. 자연스러운 차가 되는 것이죠. 자극적이지 않고 순수한...

 

태백산에서 차 밭을 일구는 모습

 

6. 차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차를 만든다기 보다 육종을 먼저 택했습니다. 바탕이 중요하니까요. 저는 제가 길러낸 품종으로 우리차도 훌륭한 차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차의 미래를 가꾸어 나갈 겁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태백산 차연구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야 세대가 지나도 연구는 끊임없겠죠. 우수한 품종을 끊임없이 소비자 욕구에 맞추어 길러 내야 차산업이 발전하겠지요. 품종에 따른 제다법도 연구해야 하고 다양한 차, 녹차는 기본이고 청차 홍차 백차등등 품종이 많은 만큼 다양한 차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저를 격려 내지 응원하시는 분들께도 좋은 차를 선보일 것이고, 그동안 저를 쓸데없는 짓 한다고 했던 분들께도 다시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모든 분들께 맛있는 차를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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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족의 죽통차 제조 과정에서 마지막 부분(2014년 문경차문화연구회 운남성 답사에서) 동영상

 

죽통은 방금 막 잘라온 것으로 생장기가 일 년 남짓한 생죽을, 찻잎은 6~7분 간 불에 굽는데, 찻잎이 부드러워진 다음에 차를 통속에 채워 넣는다. 한편으론 굽고 한편으론 채우면서 죽통 안에 찻잎이 가득차서 꽉 눌려질 때까지 계속한다. 차를 꺼낼 때엔 죽통을 쪼개면 된다.

 

맛은 강한 쓴 맛을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생차 맛이 좀 순하게 느낄 수 있고 고삽미도 약하게 느낄 수 있었다. 참 이채로운 시음있었다. 방금 막 끓여서 나오는 이 장면을 위에 동영상으로 보면 현장을 실감할 것이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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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가차관 100회 차회지만(공식 행사는 5월16일에 있다)

 

경주 시내 소담한 찻집에서 시작한 차회가 100회째가 되었다. 그런데 100회 기념 차회는 일정과 장소관계로 516일로 미루어지면서 4월달의 차회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김이정 대표의 진심어린 마음으로 간단하게라도 하겠다는 취지로 49일 정기차회 날에 모였다.

 

그런데 25명 한정으로 했는데 너무 많은 신청자가 있어서 부득이 37명까지 신청을 받았다고 한다. 참 좋은 일이다. 현재 차문화계가 아주 어려운 불황인데도 이런 자리에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차회가 아닐 수 없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차 향기에 사람이 모이고 소개받아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서 오늘날의 아사가 차회가 만들어 졌다고 본다.

 

필자의 눈에는 늘 보는 사람이 많았다. 18회째 이 아사가 차회를 참석하고 기록해오면서 낯익은 얼굴들이다. 그간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아사가 차회에 참석하는 일이 하나의 생활처럼 된 선생님도 부산에서 울산에서 포항에서 모인 많은 차인들이 이런 자리에서 하나의 공통 적인 차 이야기를 하면서 즐기는 시간들이 훗날 새로운 차회 문화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구심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사가 차관 100회 차회 기념(석우미디어 동영상)

 

일반적으로 차회라고 하면 준비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가장 큰 행사인 100회 기념 차회를 두고 4월은 한 달 쉬어갈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하겠다는 마음이 대단해 보였다.

 

차회를 시작하면서 먼저 김은호 회장의 100회 기념 축사와 케이크를 자르고 간단하게 와인과 함께 연밥으로 식사를 했다. 첫 번째 차는 대만에서 생산되는 동정오룡, 두 번째는 92년 노철관음으로 15그램씩 유선지로 포장이 되었는데 별미였다. 이런 차는 보이차와 달라서 팽주의 실력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음미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다호를 두개 사용하여 37명이 같은 차맛을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필자의 욕심에는 개별적으로 노철관음을 음미해 볼 수 있는 마음이 동한 아주 좋은 차였다.

 

차회에서 차만 마시는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이복규 교수의 10분 특강이 있었는데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은 마담 드 퐁파두르(1721-1764)가 티테이블의 창시자였다는 논지였는데, 참가자들의 호응이 좋은 내용이었고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세 번째 차는 보관이 잘 된 7542. 차회를 위해 새 차를 내었다. 26그램씩 두 개, 52그램으로 정확히 37명이 마시는 차를 골고루 음미하는 시간인데 7542계열의 차품을 보는데 손색이 없는 차였다. 그 다음으로 72년 황인 산차를 마시고 광운공병을 끝으로 공식 차회를 마쳤다. 광운공병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광동성 찻잎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운남성 이무 찻잎으로 만든 차다.

 

보이차는 사람이 다소 많아도 각각의 차 맛을 즐길 수 있고 혹여 맛의 분별을 잘 알지 못해도 차의 이름만으로 좋은 차를 마셨다는 만족감을 가진다. 하지만 청차는 이름만으로 차의 수준으로 가늠할 수 없으며 반드시 차를 시음할 때만 알 수 있다. 이번 차회에서 마신 92년 생산하여 홍배하지 않고 유선지에 15g 씩 보관된 노철관음은 차회에서 마신 맛 이상의 깊고 온유한 맛이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다.

 

차회에 악기를 들고 늘 함께하는 박 선생님의 대금 연주는 아사가 차회가 100회를 이어가는데 있어서 공로가 크다는 생각을 자주 해보았는데 이날 박선생님을 포함한 네 분의 공로에 김이정 대표의 선물이 있었다.

 

100회라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비단 그 모임을 주최한 주인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손님 스스로도 무언가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서 더욱 마음 설레이는 듯하게 보인다. 100회 본 차회를 앞두고 한 세미차회가 이렇게 풍성한 것을 보면 516일 본차회가 더욱 기대가 된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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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73청병

 

73청병은 오늘날 인급 호급차를 제외하면 보이차 매니아에게는 아주 고급차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가격 또한 인기만큼 높다. 그런데 이 차의 출생을 두고 여러 말이 분분하다. 73청병이라는 이름을 두고 연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이들이 여러모로 말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현재 일부에서는 80년대차라고 하는 추측과 확신이 어우러진 상태이다. 여기에 김 경우 씨는 정식으로 반박하는 입장이다. 이 부분에서 필자가 김경우 씨의 논거에 보편적인 동의를 하고 실제 제작 연도에 대해서는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김경우씨가 정리한 자료를 석우연담에 올린다. - <석우>

 

보이차 73청병

 

73청병은 홍콩 의안차창 창고에서 나온 차이며 대만 옥호헌(玉壺軒)에서 통째로 매입하여 유통한 차이다. 옥호헌에서 수입한 차는 7542(501)이라고 한다. 다음은 옥호헌 대표 황슬금(黃瑟琴, 72)씨의 구술 내용이다. “1973년 가계 오픈 후 처음에는 자사호를 수입하여 싱가포르, 태국 등지를 역 수출하는 영업을 하였다. 자사호 때문에 중국 의흥을 가기위해 늘 홍콩을 경유하였다. 1980년을 전후하여 홍콩을 드나들 때 당시 대만은 오룡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후 발효차인 보이차가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당시는 오래된 호급이나 인급의 보이차가 창고에서 나오기 전이였기 때문에 홍콩에서는 주로 10년 전후의 세월이 지나 약간의 발효가 진행된 생차 내지는 숙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1980년 무렵부터 조금씩 가져다가 판매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80년대 중반 무렵 어느 날 의안차장에 있는 7542(501)가 눈에 들어왔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돈과 친구에게 빌린 돈을 합쳐 2000천만원(대만돈)을 투자하여 7542(501)을 수입하였다고 한다. 수입할 당시 자료가 부족하여 홍콩에서도 정확한 연도는 몰라 본인 생각과 홍콩 의안차창에서의 말을 종합하여 70년대 초반차라는 결론을 내리고 단순한 생각에서 생차 계통이니 73청병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현재 시중에서는 73청병의 생산 연대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한 때 73청병이 싸여진 바닥에 신문지가 있었는데 신문지의 날짜가 민국 73(서기 연도로는 플러스 11년을 하면 됨)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기 1984년 생산 된 차로 언급되면서 인터넷이나 단행본에서 1984년 생산된 차로 사실로 기정사실화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왜곡된 정보이다. 황슬금씨의 구술에 의하면 신문지와 민국 73년이란 말은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알 순 없으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라고 한다.

 

73청병은 대만 옥호헌에서 홍콩의 의안차창에서 나온 차를 수입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부산의 녹백다장에서 수입하였다. 녹백다장 최윤석 대표의 구술에 의하면 “73청병을 수입하기 위해 통표를 살펴보니 7542(503)으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73청병은 7542(503)이며 최윤석 대표는 73청병의 발음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073청병(공칠삼청병) 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영남지역에서는 73청병을 073청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73청병을 1975년에 만든 차로 추정하는 이유로는 황슬금 대표와 최윤석 대표의 구술 내용뿐만 아니라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근거에 의해서이다.

 

내비에 표기된 글씨가 이를 뒷받침한다. 맹해차창에서 생산 된 차의 내비에는 서쌍판납태족자치주 맹해차창출품(西双版納傣族自治州 勐海茶廠出品)이라고 표기되어져 있다. 여기에서 출()자의 위쪽의 산()자가 아래쪽의 산()자 보다 좁아 뾰족하다. 이런 출자를 우리는 첨출(尖出)이라고 한다. 첨출 내비는 1970년대 생산된 차에서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위쪽의 산()자와 아래쪽의 산()자의 넓이가 같은 것을 평출(平出)이라고 하며 평출내비는 1980년대 이후 생산된 차에서 나타난다.

 

종이질감이 1970년대에 사용된 격문지(格紋紙)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격문지로 포장한 보이차의 종류가 없다.

포장지 중앙의 녹색 차()자의 인쇄 방법이 도장으로 직접 찍은 수인이다. 이렇게 직접 자를 수인으로 찍는 방법은 1980년대 차에선 볼 수 없고 오로지 1970년대에 생산된 차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73청병을 1986~1987년 무렵에 수입하였다. 당시 보이차는 10년 정도 발효된 차의 소비가 주류를 이루었고 황슬금 대표 역시 이런 종류의 차를 선택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975년에 생산 된 7542(501)인 것이다. 하지만 큰돈을 투자하면서 1984년에 만든 차라면 만든 지 2~3년 밖에 안 된 차를 10년 이상 된 차와 구분하지 못하여 수입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몇 가지 사실들을 근거로 73청병의 생산 연대는 1975년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7542로서는 최초로 생산된 차에 속하며 1975년 이후 7542는 계속해서 생산 되었을 것이다.

73청병은 홍콩의 의안차창 창고에서 나온 차로서 다른 차에 비해 높은 습도에서 보관된 차이다. 그러다보니 차에 따라 습기에 노출된 편차가 큰 차이다. 의안차장의 보관창고는 홍콩에서도 대표적으로 습도가 높은 창고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보관이 양호한 차와 습기에 노출된 차의 편차가 크고 바닥에 눌러져 있든 차는 매변이 심하게 발생한 차도 있다. -<끝>

 

1970~1980년대 생산 된 차들 대부분은 홍콩 보관창고에서 입창이 된 차들이다. 다만 입창의 정도에 따라 습기에 노출 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73청병은 대표적으로 입창이 강하게 된 차이다. 그래서 인지 습기에 노출된 차들이 많고 병면이 깨끗한 차들은 드물다. 습기에 노출됐더라도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충분하게 거풍이 된 차는 농익은 맛으로 마시기에 편안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보관이 양호하고 병면이 깨끗한 차만 건창차로 인정되며 높은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시장 질서이다. 체질에 따라서 마셔야 될 차가 다르고 선호하는 차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다는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2015년 1월 10일 황슬금 대표와 김경우 대표

 

현재 보이차가 역 수출 되는 시점에서 가격 형성으로 본다면 73청병은 대표적으로 1970년대에 생산된 차가 분명하지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저평가된 차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현재 보이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중국 유통상인들의 이해 부족과 73청병을 마셔보지 못해 객관적으로 품질대비 가격을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접 마셔 본다면 동일한 연대에 생산 된 다른 종류의 차 보다 맛이 절대 뒤떨어지진 않고 오히려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에 따라 품질대비 가격 평가를 제대로 못하는 현실 속에서 다른 종류의 차에 비해 평가 절하된 안타까운 차이다.

 

73청병의 병면 외형 찻잎을 살펴보면 1980년대에 생산된 7542 계열의 차보다 찻잎의 크기가 작다. 오히려 7532 계열의 차에 가까울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는 숫자급 보이차의 병배방식을 1974년부터 만들어 적용하였지만 생산 초창기이다 보니 기술적으로 완성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차의 무게와 찻잎의 크기가 7542라고 보기에는 작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은 1970년대 생산 된 7432, 7452, 7542, 7572, 7582 등등에서 대부분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며 찻잎의 크기에서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생산 10년을 전후하여 홍콩으로 들어 온 차[보이 생차, 숙차]들은 위 말처럼 당시 대만의 주요 차류로 인정받고 시장에서 판매가 되었던 것이며 그 중에서 80년 중반의 시기에 들어와 있던 7542(501)가 연도를 따져 73청병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니 지금 시중에 퍼져 있는 80년대 차라는 인식은 충분히 잠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옥호헌 대표의 구술 내용처럼 직접적인 판매상의 증언이 있는 기록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김경우 씨의 보이차 관련 지난 기사

2015/03/25 - [인터뷰] 골동 보이차 유통의 전문가 김경우

2015/02/15 - 다미향담(155) 73청병과 97년 7542를 함께 즐기다

2015/02/02 - 다미향담(152) 황인 숙차와 1990년대 맹고의 조합

2014/02/20 - 대익보이차 영웅준마 런칭

2014/01/18 - 중국 대익보이차 서울 여의도점 오픈

2010/09/17 - 다미향담(2) 맛으로 승부하는 차

2010/08/09 - 말복에 마신 보이차와 오동단총

2010/04/15 - 혜산초당에서 만난 김경우 대표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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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꽃 위에 쌓인 눈을 녹여 노군미를 우려낸다 - 홍루몽 중

 

무이암차에서 노군미(老君眉)를 처음 마셔보았다. 농가에서 만든 차가 아닌 무이성공사에서 특별히 제작한 차다. 12개의 세트 중에서 나온 것이라 쉽게 만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차의 맛은 일반적으로 접해본 차와 다른 맛이다. 노군미는 수선 계열의 암차로, 향기는 화향이 나지만 맛은 남성적인 묵직한 맛이다. 무이암차로서는 드문 묵직한 맛이 난다.

 

홍루몽에서 나올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명차의 하나지만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최근에 대기업에서 그러한 명차들을 하나하나 제품화 시키고 있다.

중국의 차산업에서 이제 문화가 융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홍루몽에서의 차 이름이 현실적인 차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나타난다는 것은 아마도 문화를 등에 업은 큰 마케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맛이라는 면에서 얼마나 연구하고 또 제품을 만들어 내는가에 따라 암차라는 분류 속에서 얼마나 많은 명차들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도 가지게 한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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