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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일기 17 - 윈난 차여행 일곱째날 이무 가는 길 -

 

운남에 내리는 비는 맑습니다.

찻잎을 스친 빗방울이 원시림 속에 물길을 만들어

란창강을 돌아 들녘을 적시고

강아지 . 도야지 . 병아리 더불어 사람이 삽니다.

이무고진 소학교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여전하고

주인모를 짐승들이 한가로이

아스팔트를 산책합니다.

때 되면 돌아가 주인이 남긴 음식을 먹고

때 되면 몸을 남겨 주인을 먹입니다.

 

언젠가 이무를 다녀오면서 남긴 글입니다. 빠름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갑자기 느림 속으로 들어가면 잠시 답답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처음 중국을 다닐 때 도대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이 나라의 정체성에 많이 혼돈스러웠습니다.

 

신용을 담보로 사업을 하는 저로서는 몇 번 손님들과의 약속 때문에 애를 태운 적이 있습니다. 느리지만 결국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행동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점점 나도 모르게 느긋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은 피고지고 또 열매를 맺습니다. 차산을 다니며 자연의 순리에 모든 걸 맡겨버리고 때론 훌훌 날려버리고 싶은 갈망들을 옮겨 보았습니다.

 

징홍은 멍하이보다는 약간 후덥지근합니다. 징홍은 평균해발500m 멍하이는1200m 정도 되는데 고도의 차이로 느껴지는 기온의 차이가 제법 큽니다. 멍하이도 사월이 되면 차산은 그래도 시원한편이지만 시내는 아열대 특유의 다습함이 있습니다. 일정의 편의를 위해 멍하이에서 징홍의 란창강변에 있는 호텔로 숙소를 옮기고 다음날 아침 이무로 출발합니다. 란창강 좌우로 분포해 있는 고육대차산과 신육대차산을 가로지르며 이무까지 약 세 시간 곳곳에 식물왕국이란 팻말이 보입니다. 멍하이에서 이무 가는 길 중간쯤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열대식물원이 있습니다.

 

연 평균기온이 21도 전후이고 강수량이 풍부한 이 지역은 중국에서도 아열대림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900여 핵타르에 달하는 면적에 4000여종의 희귀식물들이 재배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선 일정이 빠듯하여 간단히 기념 촬영만 하고 지나갔지만 북회귀선상의 푸른 보석지대로 알려진 이곳은 시간을 내어서라도 꼭 한번 들러볼만합니다. 길을 따라 사람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산비탈엔 주로 바나나와 고무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청나라 때 이무의 차가 황실에 진상품(進上品)으로 지정되었던 시절에 이곳은 아마도 전부 차밭이었을 것입니다. 청일전쟁이후 관리를 하지 않아 황패해졌던 차밭은 문화혁명을 기점으로 경제작물로 전환되었습니다. 비타민 공급원으로서 차가 생명과 직결된 티베트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먹을거리 해결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절에 차는 그저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차밭을 찾아 오지로 들어가면 새까맣게 거스른 주전자를 숯불에서 꺼내어 주변의 빈 그릇에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따라주는 토착민들의 정겨운 눈을 만나곤 합니다.

 

징홍에서 두 시간 정도를 달리면 이무 초입입니다. 여기서부터 꼬불꼬불한 오르막 산길을 삼십분을 올라가면 이무향(易武鄕)이라는 대문을 만납니다. 잠시 내려서 기념 촬영을 합니다. 세월의 격랑속에 이무 길가의 고차수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직도 남은 이무지역 고차수를 보려면 몇 시간씩 산을 올라야합니다. 몇십 년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는 전부 고차수 밭이었을 겁니다.

 

보이차의 전성기로 알려진 청나라 시절에 이무 지역 보이차 생산량이 지금의 몇 배나 되었다고 합니다. 인구 비례로 따져보면 가히 엄청난 량이 생산 소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옛날의 차창 흔적이 그대로 보호되고 있는 이무고진으로 이동하여 아직도 남아있는 복원창, 동흥호, 차순호 등의 보이명가를 둘러봅니다. 지금은 유력 차창의 홍보 공간으로 내지는 탐방객들에게 기념품 정도로 몇 편씩 생산 판매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덩그러니 몇 그루 남은 이무의 고차수들과 쓰러져 가는 이무 고택을 바라보며 잠시 세월의 무상함도 함께 느낍니다.

 

저희의 이무기지에 들러서 올해 생산된 이무차들을 몇 가지 시음합니다. 마침 부허당(薄荷塘)에서 가져온 고수차 생잎을 말리고 있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1kg60만원입니다. 모차로 제작하면 1kg300만원 가까이 되는데 작년보다 50%정도 오른 가격입니다. 올해 이무에서 생산되는 차중에서 만송(曼松)차와 더불어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궁금해 해서 맛이나 보려고 해마다 조금씩 구하는데 그것도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올해도 예상과 달리 모차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아직 덜 알려진 지역까지 모차상들이 몰리면서 좋은 원료를 좋은 가격에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하필 제가 작년에 남몰래 점찍어 놓은 지역들이 집중적으로 오르고 있는데 좋은 차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가고 있다는 반증일까요! 중요한 것은 가격보다도 정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만 출시 가격을 생각하건데 자꾸만 치솟고 있는 가격이 고민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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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삼년째 경매산 근처의 경익차창에서 손님들 환영식을 했습니다. 2015년 한국 손님들 40여분을 모시고 차산 여행을 할 때 위잉빙의 남편인 옌종의 제의로 우연찮게 이루어진 행사입니다. 태족, 하늬족, 포랑족, 라후족, 등의 소수민족들이 자발적으로 각 민족의 고유의상을 갖춰 입고 같이 즐기며 노는 한마당을 여는 것입니다.

 

작년엔 프랑스, 스페인, 미국, 등에서 오신 손님까지 합하여 10여개 민족이 함께하는 자리가 연출되었습니다. 모두들 전문적인 배우가 아니라서 서툴고 진행 또한 허술하지만 다함께 즐긴다는 마음으로 참여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해가 더해갈수록 조금은 세련되게 연출하려는 모습이 보입니다만 아직은 춤도 노래도 그야말로 동네가수입니다. 때론 춤추는 중간에 음악이 꺼져버리고 노래를 하다가 부끄러워서 웃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함께하기에 즐겁습니다.

 

매년 시솽반나 최대의 축제날인 포쉐이지에(물뿌리기 축제) 415일을 전후하여 거행하였는데 올해는 한국 손님의 일정에 맞추어 조금 빨리 하게 되었습니다. 경매산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대문 입구에 오색 찬란한 복장의 소수민족 아가씨 아줌마 할머니?들이 각종 악기를 요란하게 울리며 저희를 맞이해 줍니다. 저는 몇 번 경험하는 일이라 웃으며 들어갑니다만 다른 분들은 웬일인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두리번두리번 우쭐우쭐 입구로 들어갑니다.

 

널찍한 차창 마당에 저녁 햇살이 비취고 노동에 지치고 그을린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하나 둘 전통 의상을 차려입고 맑고 밝게 웃으며 마당을 돌고 춤추며 노래합니다. 한국 손님들도 답사로 마당으로 나와서 한판 놀아보라고 합니다. 마침 저희 오운산 한국 대리상인 모여사님의 민요 실력이 가수 못지않다고 소문이 자자한지라 박수로 모셨습니다. 밀양아리랑으로부터 시작한 답가가 박수 속에 그칠 줄 모릅니다...마지막엔 마당 중앙에 커다란 화분에 심은 차나무를 세워 놓고 손에손잡고 둥글게 원을 그려가며 라후족의 단결댄싱을 추어봅니다. 댄싱 스텝을 밟으며 빙빙도는 춤인데 처음엔 자꾸만 스텝이 꼬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익숙해집니다.

 

매년 이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해주는 옌종에게 뭐라 감사 표시를 하고 싶은데 같이 노는데 무슨 비용이 필요하냐는 한마디로 딱 자릅니다. 내년에도 많은 외국인 친구들 모셔오면 그걸로 충분하답니다. 다음날은 저희 오두막으로 먼 길 오신 손님들을 모셨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지붕에 중국 국기와 나란히 펄럭이는 태극기를 발견하고는 탄성을 지릅니다. ‘사드문제 때문에 이번 여행 내내 말씀들은 안하셔도 불편한 심정이었을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다행이 우려했던 상황들은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곳의 대부분인 소수민족들은 대도시와는 달리 정치적 현실에 무관심한 편입니다. 가게를 찾아오는 대도시 사람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정치적 문제를 거론하지 않습니다. 혹여 사드문제 등을 거론하더라도 당당히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면 대부분은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제 논리의 주체는 항상 사람입니다.

 

전세계 어디에도 사람이 살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현실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입니다. 나와는 크게 상관도 없는 일시적 정세에 일희일비 하고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 저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제가 원하는 정직한 차 열심히 만들어 국적 불문하고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과 향기로운 마음을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아직도 완성이 덜된 초제소 마당에 둥근 탁자 몇 개 놓고 식사 대접을 했습니다. 며칠간 입맛에 맞지 않는 중국 음식 억지로 드시느라 고생하신 것 같아서 과일과 채소 위주의 상을 차렸는데 너무너무 잘 드십니다. 다락방차모임 회장 사모님은 망고를 얼마나 열심히 먹었던지 입 주위까지 노랐습니다...중국이 음식 천국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윈난의 요리는 향신료가 비교적 강한 편이라서 여간해서 적응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한지 삼년이 되어 가는 저도 소수민족의 식사 초대에 기꺼이 응하지만 아직도 불편한건 사실입니다. 아무리 적응하려해도 한국 사람인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가게 냉장고에 된장과 고추장을 넣어두고 식사 때마다 조금씩 꺼내먹고 있습니다.

 

마을 주위에 있는 저희의 생태 차밭에서 채엽해서 그늘에서 적당히 말린 찻잎들로 각자 돌아가면서 살청(殺靑) 체험을 합니다. 비비기를 해서 널따란 광주리에 널어두고 맑고도 깨끗한 윈난 햇살에 꼬들꼬들 말라가는 찻잎들의 비틀기를 지긋이 바라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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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반장 마을 입구

 

멍하이 일기 15  

 

린창으로 와서 향죽청, 석귀, 빙도, 경매산 등을 견학하고 귀국하신 팀을 뒤로하여 곧바로 멍하이 지역을 견학하고자 오신 팀을 맞이하였습니다. 부산여대에서 차를 공부하시는 분들과 오운산의 한국대리상 그리고 78세임에도 불구하고 정정하신 모회사 회장님 등 20여분입니다. 마침 멍하이 가게로 직접 찾아오신 한국 분들과 중국의 오운산 대리상 등 나중엔 30여분이 같이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봄차철이되면 전세계에서 보이차매니아들이 멍하이로 몰려듭니다. 린창과 푸얼, 이무, 지역을 찾는 분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현제 보이차의 중심은 멍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왔다가도 반드시 멍하이는 들렸다가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이 노반장 지역을 비롯한 고수차밭들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고 차창과 각종 보이차 관련 시설 또한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도 3000여개로 폭증하였습니다.

 

포랑산 노반장을 오르는 길도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고속도로입니다. 주변의 신반장, 노만아, 반분, 하개 등과 더불어 일종의 보이차 실크로드를 형성하고 있는데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량행렬이 옛날의 마방행렬과 대비되곤 합니다. 30인승 버스를 임대하여 노반장을 올랐습니다. 반분에서 노반장까지의 길이 아직은 흙길이라서 처음엔 대형버스가 오를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만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노반장 대문에 도착하자 다들 기념 촬영을 하느라 바쁩니다. 아직도 노반장촌민위원회와 계약 관계에 있는 진승차창에서 일억여원을 들여 작년 시월에 완공하였다는 기록이 대문에 새겨져 있습니다. 2008년 진승에서 노반장을 개발할 때부터 진승의 한국총판을 했음으로 저는 헤아릴 수도 없이 여러 번 노반장을 올랐습니다. 제 기억에 이번이 네 번째 바뀌는 노반장 대문입니다. 찻값이 올라가면서 대문도 점점 크고 화려하게 변해갔습니다. 마을 입구에 전세계 어디에도 없을 산골 은행이 들어서고 옛날의 고즈넉하던 하늬족 촌은 산중의 별장마을이 되었습니다.

 

노반장 대문 앞에 버스를 세우고 걸어서 20여분 마을을 반바퀴 돌아 차왕수를 친견합니다. 천이백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차왕수와 왕후수가 철조망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탐방객이 너무 많아서 차나무를 보호하려는 목적이지만 웬지 저는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잠시 후 군복 비슷한 차림의 한 남자가 철조망에 채워진 열쇠를 열고 차왕수 곁으로 다가갑니다. 촬영 기사가 그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고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던 그가 저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어디서 왔냐고 하길래 한국에서 왔다니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합니다. 알고 보니 차왕수의 주인입니다. 때마침 와주어서 일행 모두가 차왕수 가까이에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 차왕수 경매 입찰 가격은 1kg에 약 육천만원으로 팔각정 상표로 알려진 차창의 협조 상인 양선생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우리가 다녀간 다음날인 330일에 채엽 행사가 있었는데 차왕과 차후수를 합하여 생엽으로 12kg이 생산되었습니다.

 

가공을 하면 약 3kg의 모차가 만들어 지는데 3kg에 일억팔천만원입니다. 그야말로 조상 잘 만난 덕에 이 주인은 차나무 한 그루로 평생을 경제적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차나무가 죽지 않는 한 자손 대대로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회장님이 올해 생산된 차왕수 차를 조금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십니다. 이젠 많이 남지 않은 인생 사람들이 최고로 좋다고 하는 차 한번 맛이라도 보고 싶답니다. 손사래를 치며 만류했습니다.

 

올해 78세이지만 회장님 건강 상태를 보니 앞으로도 30년은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내년의 차왕수 경매에 참여할 방법도 문의 하셨는데 홍보를 목적으로 생각한다면 지출한 비용에 비하여 월등한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석가명차 오운산의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상념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노반장 121호인 파투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동안 노반장을 오르면서 개인적으로 여러 집들과 인연이 있습니다. 파투는 2014년 오운산을 오픈할 때부터 알게된 친구로서 노반장132가구중에서도 단주즉 수령이 오래된 차나무를 가장많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2015년 저희가 출시한 노반장 차왕수 차가 그의 집에서 10여그루 단주를 선택하여 생산한 것입니다. 작년에 파사 지역의 꾸냥과 결혼하여 이제 갓 삼개월된 아기를 키우고 있습니다.

 

노반장에 사는 강아지도 100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이 지역에 돈이 몰리면서 이혼율의 급증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파투는 정직하고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이던 배우려는 열의가 있습니다. 종종 저희 멍하이 가게를 방문하여 보이차 시장의 정보와 앞으로의 전망 등을 묻곤 합니다. 현제 노반장 지역의 한가구당 년 소득은 평균 사억 정도로 추정되는데 중국 물가에 비하면 엄청난 금액입니다.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잘 쓰기는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특별한 노력 없이 생긴 돈은 관리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파두 집에서 올해 생산된 노반장 고수차를 마십니다. 노반장이 유명해진 이유는 쓴맛, 떫은맛, 단맛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고 빠르고 화려한 회감까지 있으니 진정한 노반장 차를 한번 맛본 사람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모두들 묵직한 노반장의 매력에 흠뻑 빠진 모습입니다. 몇 분이 구매를 부탁하는데 이런 경우 솔직히 참 난감합니다. 저희 같은 업자와 일반인들의 가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파두 집은 저희의 오랜 친구로서 특별한 가격에 주는데, 손님들이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옵니다. 저희를 믿고 이억만리를 날아오신 손님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봉사가격으로 드려야겠지만 파두 입장에서는 원가가 오픈되면 곤란하다고 합니다.

 

현제 노반장의 시세는 1kg에 5000~8000위안 사이에 거래되고 있는데, 단주라고 불리는 특별히 오래된 차나무는 보통 일반 시세의 두 세배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고수차의 비율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고 또 파는 사람에 따라서도 차이가 납니다. 어떤 손님은 집요하게 저희가 구매하는 가격을 물어보십니다. 제가 얼마라고 이야기해도 다음날 다시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어서 물어본답니다...매사한 철저한 성격은 좋은 것이겠지요...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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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357g 긴압 과정

 

멍하이 일기2

 

한국에서 보이차를 직접 생산하고 싶어 하는 의욕에 찬 젊은이가 있습니다. 원료를 윈난에서 전부 한국으로 운송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한국에서 한국인의 손으로 직접 보이차를 생산한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제작에 필요한 각종 설비들을 주문해 와서 자세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먼저 보이차를 찍는 압병 기계인데 한번에 한개, 두개, 세개 씩 찍을 수 있는 기계로 나뉩니다. 가격은 한국 돈으로 이백, 삼백, 사백만원 정도 합니다. 숙련공이 작업하면 한개짜리로도 하루에 천편이상 압병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전부 석모로 제작했습니다.

 

맷돌같이 생긴 석모

 

맷돌처럼 생긴 돌인데 위에 손잡이가 있고 아래쪽 중앙이 약간 움푹합니다. 그곳에 수분을 적당히 공급하여 포대기로 감싼 보이 모차를 넣고 눌러서 압병하는 것입니다. 석모의 무게는 일반적으로 30kg 전후이며 너비는 33센티 높이는 15센티 정도 됩니다. 가격은 석모 한개에 대략 4만원정도 합니다만 윈난에서 보내자면 운송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압력이 모자라면 사람이 올라타서 꼰들꼰들 좌우로 밟아줍니다. 흡사 춤을 추는 듯한데, 차산 여행길에 한국 아주머님들에게 올라가서 시연해보시라고 하면 아주 좋아 하십니다. (모두 올라가 내려오질 않아서 다음일정에 차질이 생깁니다...)

 

그리고 각종 병차의 크기에 맞는 스텐통이 필요합니다. 아래에 구멍이 송송 뚫려서 증기가 통과 될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인데 가격은 357g 병차용이 5만원정도입니다. 선별한 모차는 스텐통에 담아서 증기를 올린 다음 압병용 마대에 담습니다. 그리고 모차를 담아두는 포대입니다.

 

일반적으로 25kg용 마대를 많이 사용합니다. 압병 할 때 병차의 크기에 따라 357g,200g,100g,50g 등으로 나누어 담는 마대가 있습니다. 가격은 25kg 마대 8000, 병차용 마대는 1000원정도 합니다. 그리고 모차에 증기를 공급하는 기계입니다. 바짝 마른 모차는 수분 함수율이 12%전후 됩니다. 압병하기 전에 충분한 습기를 공급해야만 모차가 손상되지 않습니다.

 

생차의 경우 357g기준 20g정도의 수분을 공급하고 숙차의 경우에는 먼저 숙차 원료에 15% 정도의 수분을 뿌린 후 잘 섞고 압병 당시에 10g 정도의 증기를 다시 공급합니다. 그러면 생차는 압병 당시에 377g, 숙차는 420g 정도가 됩니다. 압병이 끝난 후에는 간이 건조대에서 건조한 후 홍방이라는 고온 건조실로 옮겨집니다. (온도는 대략 50도 전후)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애초의 357그램에 도달하면 포장실로 옮겨 포장하면 완성입니다.

 

증기 공급 기계의 가격은 60만원 정도입니다. 그 외에 건조대, 선별대, 저울 등은 꼭 필요합니다. 기타 모자, 장갑, 마스크 등의 자잘한 소품들도 필요한데 만약 한국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이 있다면 꼭 필요한 기계제품 이외의 부피가 크거나 한국에서 간단하게 제작 가능한 것들은 국내에서 준비하는 것이 운송비 부담과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조만간 보이차가 출시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멍하이 현지의 생엽을 바로 가공하여 차창에서 생산하는 것 보다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커피나 홍차의 경우를 보면 원료 생산지보다 음용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서 더욱 발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욕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젊은 친구에게 경의를 표하며 저는 멍하이 일선에서 최선을 다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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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묵당(운보현)의 만전

 

보이차 사진 작업에 매진한 결과물이 나올 시점이 다가온다. 긴 세월, 고독한 작업이었다.

 

보이차, 보이생차라고 하는 그 차들을 고육대차산과 신육대차산으로 나누고 기타 차산과 기념병차로 나눈 보이차의 계보가 어떻게 정리되고 만들어지는지 조금씩 그 형태가 드러난다.

 

무위산방, 지묵당, 죽로재, 오운산고차, 진미호, 서경호, 쌍어각, 허사화, 홍익, 포랑, 부생반일, 해만차창, 맹해차창 등 보이차의 세계에 새로운 유행이 생길 것이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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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 보이차

 

2016년은 유난히 차회가 많은 해였다. 20171월부터 좀 특이한 차회에 초대 받은 일을 소개하려고 한다. 보통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마시는 차회라 하면 10, 20, 30, 40년 단위로 나누거나 90년대 보이차 80년대 보이차 등으로 나눈다.

 

여기서 80년대 보이차를 잘 마시려고 하면 회비를 5만원에서 10만원을 내고 마시는 자리다. 그러고 그런 자리에서는 보이차를 3가지 마셨다면 하나 정도는 다른 차를 마시는게 상례다. 그런데 2017123일 홍은숙 선생은 김포에 있는 아파트에서 차회를 한다고 했다. 전문 영업점은 아닌데, 차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요일에 방문했다.

 

허동창 대표, 주인 홍은숙, 최경순 화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전주에서 최경순 화가가 먼저 오셨다. 최경순 화가는 2016년 무이산여행도 함께 했던 분이고 예술적인 성향이 짖은 분으로 만날 때 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희망을 안겨주는 분이다. 오전 10시에 만나서 점심 전까지 고수차로 만든 생차만 4가지를 마셨다. 처음 마신 차는 2010년 의방차, 망지, 1999년 천가채, 2010년 노반장 순서로 마셨다.

 

서경호 개완으로 차를 낸다

 

2010년 의방차는 사실 쉽게 마실 수 있는 차가 아닌데도 이 집에서 처음부터 마시게 되었다. 그 맛과 향이 참 고급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망지차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2009년 천가채와 노반장을 마셨다. 지역적인 특징이 뚜렷하기에 맛과 향에서 고차수 만의 기운을 더욱 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을 집에서 먹고 좀 휴식을 취하면서 차실을 보니 방문의 문짝을 떼어내고 오직 차실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게 만든 것으로 매우 서구적이면서 포근한 입식 찻자리다. 1시간 정도 쉬고 나서 다시 찻자리에 앉았는데, 2010년 맹고를 만났을 때, 맹고 특유의 강한 맛이 7년이란 세월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좋았었다.

   

한쪽 벽에 세운 보이차

 

이 맹고차는 2010년 당시에 고차수로 만들었기 때문에 차기의 보존이 아직 성성했다. 이후 노반장이 황제라면 황후차경매(징마이)’라고 하는데, 이 차를 2003, 2005년차를 각각 마셨다. 차회를 하면서 보이생차로 7가지, 즉 고수차로 잘 만든 여섯 지역의 차를 일곱 종류로 마셨는데도 속이 편안한 것을 보면서 매우 신기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 만든 차에서 느낄 수 있는 현장 체험을 아주 강하게 한 셈이다. 보이차, 특히 생차로 7종을 이어서 하루에 소화하기에는 많은 용기가 뒤따른다.

 

그러나 차회에서 접한 7종의 차들은 각기 그 품성을 뚜렷이 드러내면서도 진짜 차의 품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할 만큼 사람을 거스르지 않았다. 각기 차의 특성을 잘 나타내었으며 그 차 하나 하나마다 최상의 구감으로 다가왔으니 신년에 매우 특이한 경험을 한 차회로 뚜렷이 기억될 것 같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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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쿱 보이차 전시장

 

624일부터 8월 14일까지 한국문화정품관 갤러리에서 보이차, 흑차 특별전이 열린다. 전시품은 150여 점의 보이차와 흑차류인데, 보이차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볼 수 있게 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생산된 보이생차는 6대 차산에서 변경차구, 북부차구 등으로 산지를 구분하고, 제작 시기별, 대표성 있는 차들을 모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하였다.

 

1990년 전후 보이차

전시장 내부

 

보이차에 관심 있는 분들이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차의 실물과 사진으로 만든 연대기도 볼 수 있다. 생차와 숙차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보이차를 시음할 수도 있게 했다.

70년대 보이차

 

특히, 보이차 전시는 부산이나 울산에서 마니아가 주축이 되어 전시를 해 왔지만, 서울에서 기업 차원에서 하는 전시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차와 흑차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사로 평가받을 수 있다. 전시장에서 서해진 본부장을 만나서 재미있게 설명을 듣게 되었다.

티쿱은 보이차 전문 유통업체인 지유명차에서 만든 한국차문화협동조합이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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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산고차 부스

 

석가명차(대표 최해철)는 보이차 브랜드 오운산고차신제품인 진, , 미로 상해 차 박람회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15년 운남성 곤명에서 런칭한 이후 지속적으로 중국 차 박람회에 참가해온 결과이다. 참관하는 박람회 마다 손님들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왔는데, 2016519일 상해 차 박람회장에 취재차 들렀다가 오운산고차를 보게 되었다.

 

2016년 신제품

 

중국 차박람회에서 "한국인이 만든 보이차"라는 문구를 넣어 장식한 전시부스는 깨끗하고 신선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그것은 오운산고차의 진중한 맛과 조화를 이루며 중국내에서의 이미지 부각은 아주 잘 된 것으로 보였다.

 

오운산고차부스

 

부스 입구에는 2016년도 신차가 진열되었다. 포장지도 새롭게 디자인 되었다. 순백색에서 미색으로 올해부터는 진, , 미로 구분하여 병배차를 위주로 생산하였다. 제품을 단순하면서도 세분화 되었으며, 숙차도 한 품종 추가되었다.

 

상해박람회장 풍경(동영상)

 

병배차로서의 진, , 미는 종류별로 생산 노하우를 가지고 만들어야 되기에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는 재료와 기술이 담보된 생산능력이 오늘과 같은 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올해는 오운산고차가 중국 차 시장에서의 대리점 확보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오운산고차를 개완으로 마시는 법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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